아트

뉴욕의 젊은 가구 디자이너 김민재의 한국을 향한 세레나데

2023.06.06

by 김나랑

    뉴욕의 젊은 가구 디자이너 김민재의 한국을 향한 세레나데

    브루클린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민재. 그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화엄경>의 핵심 사상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낸다.
    Tip
    [그림자 상상력] 모든 걸 다 보여준다고 해서 좋은 그림이 아니듯 상상력이 중요하다. 방 전체를 밝혀주는 천장 조명보다는 벽걸이 등이나 스탠드 조명을 활용해 빛과 그림자의 영역을 나누면 다양한 분위기의 아늑함을 구현할 수 있다.
    [과감하고 넉넉한 가구 배치] 가구가 들어가는 공간을 고려할 땐 먼저 가구의 역할을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주변에 여백을 주어 깊이감을 주는 것이 좋다.
    [담담한 예술 작품 배치] 그림이나 조각품 혹은 가구까지, 모두 집으로 들여오는 순간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다. 예술 작품을 너무 소중히 여기면 공간 전체가 딱딱해질 수 있으니 편안하게 두는 것이 좋다.

    1990년대 초반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 살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한때 ‘뉴욕 힙스터의 성지이자 무덤’으로 불리던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 여기서 해가 뜨는 동쪽 방향으로 20분쯤 걷다 보면 이스트 윌리엄스버그(East Williamsburg)에 금세 당도한다.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건물과 개성 넘치는 갤러리, 아티스트의 작업실과 스튜디오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언뜻 서울 성수동 뒷골목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이리저리 골목을 걷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 공장 건물로 들어서자 수수하고 차분한 옷차림의 김민재가 마중 나와 인사를 건넸다. 그의 안내를 받아 지하 작업실로 향하는 길에는 톱으로 나무를 깎는 소리, 고함 소리, 날 선 기계 소리 등 각양각색의 음파 진동이 울려댔다. “이 건물에만 아마 200개 정도의 작업실이 있을 겁니다.” 고요한 작업실의 문을 열자, 아늑한 뒷마당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을 배경으로 질서 있게 뒤엉킨 작업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연한 색부터 짙은 색까지, 다채로운 톤의 나무를 활용해 거칠게 깎아낸 의자, 유리섬유를 이어 붙여 만든 섬세한 항아리, 나무 기둥에 걸린 갓 조각, 예술 작품인지 가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우두커니 서 있는 스탠드 조명, 벽에 걸린 페인팅 작품이 차례로 눈에 담겼다. “2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했어요. 그 전까지는 집 지하실과 마당에서 작업했는데 작업량이 많아지면서 이웃들이 시끄럽다고 눈치를 주더군요.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작업을 하기 좋겠다 싶어 단번에 계약했죠. 야외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좋아요.”

    현재 미국 현대 디자인 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구 디자이너로 꼽히는 김민재는 서울에서 친근한 유년기를 보냈다. 대한민국 청소년과 다를 바 없이 치열한 10대를 보낸 그는 그림 그리는 것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곤 했다. 예술가이자 교사로 근무한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김민재의 작업 세계가 풍부한 것은 그의 전공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으로 이주해서는 워싱턴대학과 컬럼비아대학에서 건축 학·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어릴 땐 막연하게 ‘화가가 되어야지’ 생각하곤 했어요. 그런데 막상 진로를 정할 때가 되자 어머니는 미술대학 진학에 회의적이었죠. 본인이 고생한 경험이 마음에 걸렸는지 실용적인 직업을 추천했는데 그게 건축이었어요.”

    착하고 온순한 아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건축의 세계는 비교적 잘 맞았지만 졸업 이후 건축가로 일하면서 김민재는 길고 느린 건축 특유의 프로세스에 수도 없이 좌절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다 퇴근하고 남은 여가 시간이면 ‘소확행’으로 가구를 손수 만들기 시작했다. “3년 정도 인테리어와 건축 작업을 했는데 업무량으로 인한 과로, 이론과 실무 간의 괴리 등으로 신물이 나기 시작했죠. 내가 이상향으로 여기는 디자인, 질감 혹은 물성을 건축적으로 실현할 수 없다 보니 창작 욕구의 만족감을 점점 더 가구에서 찾았어요.” 팬데믹이 선포되자 가구 작업에 더욱 몰두했고 더 실질적인 작품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그의 초기 고객은 친구들이었으며 점차 입소문이 났다.

    앙리 마티스 그림의 유연한 곡선을 떠오르게 하는 김민재의 의자는 완벽한 표면과 유형을 거부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살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한다. 치밀하며 단단한 너도밤나무를 옻칠해 만든 튼튼한 의자와 책상은 미묘하게 비대칭적이다. 때로는 이런 비효율적 실용성과 정밀하지 않은 면모에서 그가 가진 건축적 형태의 경직성이 드러난다. 한국적 삶의 의식과 관련된 모더니즘 혹은 재료와 상관없이 김민재는 각 작품을 다르게 해석한다. “나무나 유리섬유로 만들기 때문에 조금씩 다르게 완성돼요. 오히려 고객은 그걸 원하죠.” 동양적 관점과 서양의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는 김민재의 작업은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어색한 매력과 독특함을 발산한다. 한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그의 세계관에서 어떤 작업이 또 탄생할지 궁금해졌다.

    아담한 규모지만 없는 건 없는 작업실이다.
    내 세계관을 세상에 선보이기 전까지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은밀하고도 유일한 장소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어떨 땐 직장에 출퇴근하는 것처럼 당연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2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는데, 그 전과 달리 작업물로 가득 채울 수 있어 무척 소중한 공간이다.

    가구를 처음 만든 때를 기억하는가?
    운 좋게도 졸업 후에 바로 스튜디오 지안카를로 발레(Studio Giancarlo Valle)에서 3년 정도 인테리어, 건축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건축 특성상 젊은 디자이너에게는 작가 정신을 발휘할 만한 작업 기회가 흔치 않다. 반면에 가구는 조그만 작업실과 시간만 있으면 작은 아이디어라도 직접 손끝에서 구현할 수 있는 접근성이 큰 장점이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집에서 취미로 가구를 만들곤 했는데, 이상적인 디자인과 질감, 물성을 건축적으로 실현할 장치가 없다 보니 그 만족감을 가구 작업에서 찾았다.

    가구를 본격적으로 만든 지 겨우 1년 만에 LA 마르타 갤러리(Marta Gallery)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
    팬데믹이 선포된 때라 낮에는 회사 일을 하고 저녁에는 개인 가구 작업을 하면서 소셜 미디어 외에 작업을 선보일 기회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신기한 것, 갖고 싶은 것 혹은 꿈꿔온 것을 직접 만드는 것이 전시 작업의 근간이며 일환이었다. 마르타 전시는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반응도 좋아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감개무량이었다.

    지난해 말에는 니나 존슨 갤러리(Nina Johnson Gallery)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가구 작업을 선보였다.
    LA 마르타 갤러리 전시의 주제가 서구식 문화에서 살면서 마주한 유형의 것들을 가구나 인테리어라는 생활양식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었다면, 니나 존슨 갤러리에서 지난해 말에 선보인 작업은 이상향으로 삼아온 한국적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갓이나 달항아리를 도자기로 만들 자신은 없으니 레진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리움 미술관 같은 곳에 전시된 영롱한 자태의 달항아리를 한번 쓰다듬어보면 소원이 없겠다 했는데 도자기로 만들 자신은 없으니 레진으로라도 만들어보자 싶었다.

    옻칠한 나무로 만든 의자, 유리섬유와 수지로 만든 달항아리 등 소재 선택이 흥미롭다.
    처음 개인 작업을 시작할 때는 구하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한 재료를 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작업실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작업 방식을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유리섬유는 목공 작업을 쉽게 할 수 없었기에 선택한 최초의 재료다. 유리섬유 같은 경우에는 천처럼 직조된 소재를 사용하는데, 여러 겹을 미리 덧대 재봉틀로 누비 형태를 만든 뒤에 레진을 입히는 방식을 쓴다. 틀을 만들고 여러 겹의 유리섬유를 입히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복잡한 과정을 줄이기 위해 고안한 방식이다. 이 작업실로 이사하기 전 할렘에 살던 아파트 옥상에서 유리섬유 작업을 처음 해봤다. 장소나 재료의 제약을 벗어나는 것 역시 작업의 정체성에 중요하다.

    10대의 서울살이는 어땠나?
    창덕궁 담을 낀 중앙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동네가 참 조용하고 예뻤다. 하루 종일 학원을 옮겨 다니느라 바빴지만 혜화동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창경궁 홍화문, 창덕궁 돈화문을 지나 공간사옥(현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을 지난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이 곧 서울의 인상이 됐다.

    예술을 전공한 어머니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나?
    어머니 이명애는 한국과 독일에서 열 번이 넘는 개인전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다. 나를 키운 것처럼 내가 어머니의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전시나 사진 촬영마다 어머니의 그림을 걸곤 했는데 많은 사람이 내 그림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같이 전시해보면 재밌겠다 싶었다.

    가구를 만들 때 편의성과 디자인 중 어디에 더 집중하는가?
    편안하고 편리한 디자인보다는 우선 시각적으로 끌리고 영감을 주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만든 작품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작품 이미지는 훨씬 더 다양하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편의성을 아예 배제하진 않는다. ‘도무지 앉아볼 생각이 들지 않지만 막상 앉아보면 꽤 편안한’ 그런 지점을 노린다(웃음). 가구는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물건이 될 수 있다. 의미 있는 것을 추구하는 건 결국 최고의 작품으로 귀결된다.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는?
    가을 즈음에 헤드보드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개체 디자인이 각 호텔 객실의 구심점이 되는 전시도 준비한다. 등받이가 옷걸이 역할을 하는 벨벳 체어 등 여러 개를 구상 중이다. VL

    포토그래퍼
    DOMINIK TARABAŃSKI
    에디터
    김나랑
    컨트리뷰팅 에디터
    우주연
    포토
    ©김민재 / COURTESY OF NINA JOHNSON GALLERY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