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서 미디어 아트를 보시겠습니까? #친절한도슨트
팬데믹 기간에 OTT 산업만 발전한 게 아닙니다. 이제는 미디어 아트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실 전시장에서 미디어 작품 한 편을 다 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좌석이 모자라 서서 보는 경우가 허다하고, 불편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온몸이 아픈 데다, 상영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 번번이 작품 중간부터 감상하다 보니 몰입이 될 리 만무합니다.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하게 하는 작품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몇 장면 보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뜨곤 합니다. 하지만 아쉬움과 죄책감에 휩싸인 채 미술관을 나서야 했던 나날도 이제 안녕입니다. ‘워치 앤 칠(https://watchandchill.kr)’이라는 아트 스트리밍 플랫폼이 있으니까요.
국립현대미술관이 2021년부터 선보인 ‘워치 앤 칠’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과 협업해 기관별 미디어 소장품을 구독자에게 공개하는 세계 최초의 공개 구독형 스트리밍 플랫폼입니다. 세 번째로 마련된 <서스펜스의 도시, 워치 앤 칠 3.0>은 그 이름처럼 한 단계 더 진화했습니다. 스토리텔링, 긴장감, 몰입의 경험을 강화하기 위해 전시의 내용과 형식을 모두 챙긴 티가 역력합니다. 특히 큐레이션이 돋보이는데요. ‘서스펜스’의 방법론을 구사하는 미디어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몰입으로 점유된 시공간을 탐색하고자 ‘달빛 아래 풍경’, ‘증거의 재구성’, ‘몸의 변이’, 죽지 않는 퍼포먼스’, ‘디스토피아 이후 세계 짓기’ 등 다섯 가지 주제를 정했습니다. 미디어 아트는 곳곳에 난해함과 이질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문학적이죠.
20여 점의 미디어 작품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변화하는 신체를 둘러싼 기이한 풍경, 미래 사회에 대한 기대와 우려 등을 고스란히 펼쳐 보입니다. 특히 박찬경 작가의 작품 ‘늦게 온 보살’이 눈에 띄는군요. 박찬경은 영상, 사진, 설치 작업을 통해 분단과 냉전 등을 겪으며 뒤틀린 한국의 근대성을 해석해온 현대미술가죠. 그중 ‘늦게 온 보살’이 (요즘 특히 회자가 되는) 후쿠시마의 방사능 유출이라는 재난을 부처의 열반이라는 종교적 사건과 연결해 풀어내는 방식 덕분에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거의 모든 영상 이미지가 네거티브로 표현되는 것도 인상적인데, 이는 방사능 피폭을 시각화하는 오토라디오그래프 방식을 차용한 겁니다. 이 연상 작용 덕에 더욱 긴장감 넘치는 여정을 함께하다 보니 대사 하나가 귀에 꽂히더군요. “피할 곳은 어디입니까?” 재난의 시대를 살아냈고, 지금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씨네필은 여전히 영화를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미디어 아트 역시 현실과 차단된 듯한 전시장이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겁니다. 요즘 시대에 맞는 미디어 아트 감상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직 정답을 낼 순 없지만, 중요한 건 적어도 내 방에서 ‘늦게 온 보살’을 보는 낯설고도 짜릿한 재미를 알아버렸다는 겁니다. 박찬경이 제안하는 ‘애도의 공동체’, 절망이 희망의 깊이가 되는 그 지점을, 다른 관객 없이 오롯이 혼자서 만난다는 것, 일상 어디서든 미술을 사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실로 흥미로운 경험이니까요. 매주 새로운 작품이 추가된다고 하니, 미디어 작품 삼매경으로 길고 긴 여름밤이 즐겁겠지요.
그러다 전시장에도 한 번씩 가볼 참입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장소에서, 다른 맥락으로 즐기는 것이 어떤 새로운 감각과 경험의 장으로 우리를 이끌지 비교하는 건 이번 전시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테니까요. 특히 건축가 푸하하하프렌즈가 선보인 동명의 건축 설치작 ‘서스펜스의 도시’가 가상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흐리는 효과를 더한다 하니,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진화된 협업이 기대되는군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오프라인 전시는 7월 23일까지, 온라인 전시는 내년 4월까지 계속됩니다. 자, 당신은 어디서 미디어 아트를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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