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여행에 실패했다
뉴질랜드 타우랑가에서 웰링턴까지, 무려 9시간 동안 버스를 타며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여덟 살 소녀와 함께 ‘버스에는 바퀴가 몇 개 있을까(Wheels on the Bus)’라는 동요를 6시간 내내 부르면서, 홀로 떠난 여행에 의문을 품던 차였다. 만약 이 여행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였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겠지. 공짜로 남의 아이를 돌봐주는 대신 말이다.
나 홀로 뉴질랜드 여행을 결심한 건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평소 하이킹과 수영을 좋아했고 뉴질랜드에서는 그걸 ‘전부’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 여행 계획을 듣고 “너 혼자서 가겠다고?”라며 걱정할 때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내성적이다. 그래서 오직 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만 행복하다. 독서를 좋아하고, 즐겁지만 고단한 혼잣말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반면 매일 함께 누군가와 피시 앤 칩스를 먹어야 한다? 그거야말로 내게 정말 힘든 일이다.
게다가 뉴질랜드는 한동안 버킷 리스트의 하나였다.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거의 50시간을 가야 한다는 사실에도 당황하지 않았고, 뉴질랜드의 멋진 여름을 만끽하려면 겨울에 떠나야 함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도 대수롭지 않았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획이나 뚜렷한 일정도 없었다. 잔뜩 기대하는 대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걱정은 이 지루한 버스 안에서부터 시작됐다. 스포티파이가 ‘영화 같은 내 인생(My Life is A Movie)’이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를 끈질기게 추천하며 욕망의 정곡을 찔러댔지만 할리우드 대본에나 쓰일 법한 낭만적인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누가 봐도 수상한 젊은 남자가 내 번호를 물어봤고, 계속되는 계산 실수로 환전에 손해를 보며 고통받았다. 가장 당황스러운 건 여행지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혼자 여행하는 여자의 영화 같은 이야기를 재연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대중문화, 특히 영화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설정이다. 모두 (어쩔 수 없이) 여행길에 오르고, 지구 반대편의 나라를 여행하며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와일드>, <투스카니의 태양> 속 여자들은 언제나 장대한 여정에 있다. <비포 선라이즈>의 셀린, <로마의 휴일>의 앤, <청바지 돌려입기>의 소녀는 또 어떻고.
당신이 설령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 해도 이런 뉘앙스의 문화적 장치는 피해갈 수 없다. ‘자아’와 개인주의가 고조되는 시대, 사람들은 이런 영화 캐릭터를 진부하다고 조롱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선망의 대상 중 하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인스타그램에는 770만 개의 #solotravel(나 홀로 여행) 해시태그가 있다. 나 역시 내 몸보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뉴질랜드를 떠돌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들의 포스팅이 이상적인 여행의 모습이라 생각했으며, 인도네시아의 한 시장에서 구매한 발가락 반지를 끼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한 번쯤 혼자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순간을 맞는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 중 약 84%는 여자다. 2019 호스텔월드(HostelWorld) 보고서는 “여행의 미래는 여성이며 한때 여성 여행객에게 혼자 여행하는 것은 (용감하지만) 위험한 일로 여겨졌다. 이제 나 홀로 여행은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한다”고 말한다. 구글에 따르면 팬데믹이 오기 전, 4년 동안 ‘여자 혼자 여행’이라는 검색어는 그 전보다 여섯 배 증가했으며, 하늘길이 열리고 난 후부터 이런 추세는 더 거세졌다.
한 번쯤 나 홀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게 만드는 세상의 이야기는 많은 여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한편 이런 경향이 여행을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여성의 약 70%가 여행을 혼자 떠나는 가장 큰 이유로 ‘변화와 자아 발견’을 꼽는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혼자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영화 같은 순간이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린다거나 여행 중 어떤 깨달음을 가질 거라는 희망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뉴질랜드에서의 첫 하이킹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피하(Piha)의 해안선을 걸을 땐 세상 끝에 있다는 기분에 벅차올랐다. 왠지 모를 평온함과 아찔함도 느껴졌다. 피너클스 워크(Pinnacles Walk)에 갔을 땐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고, 그다음 주 카이코우라(Kaikoura)에서는 보트 앞에 끼어든 혹등고래에게 물세례도 당했다. 퀸스타운(Queenstown)에서는 스노보드를 타고, 밀퍼드 사운드(Milford Sound)에서는 돌고래를 마주했다. 브렛(Brett)곶의 가장 끝에 위치한, 아주 오래된 등대지기의 오두막에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경험의 일부’로 넘기며 애써 태연한 척한 일련의 시련이 이 아름다운 순간을 방해했다. 스노보드를 타고 난 다음 날에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멍든 엉덩이와 무릎을 보며 내가 보드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돌고래를 보러 가던 도중 버스가 고장 나 외진 곳의 이동식 화장실 옆에서 30분 내내 꼼짝없이 서 있었다(물론 풍경은 멋있었다). 앞서 말한 등대지기의 오두막에 가기 위해서는 장장 20km를 내리 걸어야, 아니 등산해야 했다.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장면도 여럿 존재했다. 주유소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 텅 빈 호스텔에 들어설 때의 허탈함, 무자비한 폭풍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 하이킹 등. 아! 괜한 불안감에 상점에서 현지인인 척 연기하던 어색한 모습도 있었다. 팩앤세이브(Pak’nSave, 뉴질랜드 마트)에서 오렌지 몇 개를 살 돈도 없을 거란 걸, 그래서 다른 사람의 차를 대신 운전해주며 뉴질랜드 도로를 달릴 거란 걸 누가 알았겠는가. 나중에 알았지만 뉴질랜드의 도로는 구불구불하고 험하기로 유명했다. 마사 겔혼(Martha Gelhorn)은 자신의 명저 <다른 이와 함께 하는 여행(Travels with Myself and Another)>에서 “수백만 명의 여행자가 큰 희망을 안고 출발해 물에 흠뻑 젖은 신발과 녹슨 변기 사이에 다다른다”고 신랄하게 경고했다.
훌륭한 영적 깨달음도, 자아실현이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로맨스도 없었지만 9시간의 버스 여정이 끝날 때쯤 이 버스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이런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난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실망할 이유가 있을까? 혼자 여행하는 여자에 대한 동경과 우리에게 주입된 이미지는 여행에서 실존적 탐구와 같은 ‘어떤 의미 있는 것’을 얻길 요구한다.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둘러싼 이런 생각에 너무 사로잡히다 보면 (영화같이 멋지진 않을지라도) 나만을 위한 멋진 순간을 놓치게 된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면서도 난장판이었던 식료품점과 불안하기 그지없던 운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견뎌야 했다.
물론 여행하면서 자아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나 홀로 여행은 일상의 경험을 압축한 하나의 형태에 불과하다. 평범한 생활에서 마주하는 비참한 순간을 더 생생하고 강렬하게 경험하게 해주니까. 나 홀로 여행은 내게 깨달음을 주진 못했다. 대신 일상적인 순간에 반짝이는 신선함을 선사했다. 버스를 제대로 탔다는 기쁨,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 피시 앤 칩스 한 그릇이 주는 충만함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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