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ja, 50×60cm, Gum Bichromate Print, 2023. 에너지 드링크를 비롯한 음료나 디저트에 천연 감미료로 활용하는 유자. 해외에서는 ‘일본 맛’의 핵심 재료로 사랑받는다.
Date Palm, 50×60cm, Gum Bichromate Print, 2023. 스무디나 과자에 천연 당료로 들어가는 대추야자를 오트밀, 핫소스, 스튜 등에 가미하면 풍부한 맛이 난다.
Purple Cabbage, 50×60cm, Gum Bichromate Print, 2023. 고구마와 우베, 적양파 등 오묘한 보라색 식재료에 대한 관심은 계속된다. 수년 전 국내 농학 박사가 개발한 자색 배추는 일반 배추보다 아삭한 식감과 풍부한 단맛, 고소함을 자랑한다.
Golden Oyster Mushroom, 50×60cm, Gum Bichromate Print, 2023. 비건 문화가 확산되며 버섯 요리도 더 다채로워지는 중. 쫄깃한 식감의 노랑느타리버섯은 구이, 무침, 튀김으로 즐길 수 있으며 집 안에서 손쉽게 재배할 수 있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Kelp, 50×60cm, Gum Bichromate Print, 2023. 칼슘과 마그네슘, 섬유질과 비타민 B를 풍부하게 품고 있는 다시마. 핀터레스트와 틱톡에서 다시마를 비롯해 ‘해초 레시피’의 검색 빈도가 급증하고 있다.
Finger Lime, 50×60cm, Gum Bichromate Print, 2023. 과육 형태 때문에 ‘캐비아 라임’이라는 별명이 붙은 핑거 라임은 생선 요리나 칵테일의 상큼한 가니시로 활용해볼 것. * 김수강 작가의 ‘Stranger Than Paradise’ 사진 작업 과정은 보그 웹사이트(vogue.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가 김수강의 검 프린트 작업 과정
사진가 김수강의 검 프린트 작업 과정
사진가 김수강의 검 프린트 작업 과정
사진가 김수강의 검 프린트 작업 과정
경기도 구리의 암실에서 사진가 김수강은 초봄 내내 생경한 식재료를 갖고 새로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대추야자,다시마, 자색 배추, 핑거 라임, 노랑느타리버섯, 유자. 올 한 해, 세계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흥미롭게 요리하고 맛볼 식재료를 피사체로 들여봐달라는 <보그 라이프>의 요청 때문이었다. “평소 둥근 형태의 피사체를 선호하는데 처음엔 난감했어요. 특히 불리니까 양이 어마어마해진 다시마는 황당했죠. 국내에서는 냉동 상태로밖에 구할 수 없는 핑거 라임 역시 기대한 것만큼 색깔이 알록달록하지 않더라고요. 상상의 색을 덧입혀 작업해야 했죠.” 평범하고 익숙한 것을 다루기 좋아하는 그에게 너무 낯선 피사체를 건넨 것일까. 열매와 곡식이 지닌 다채로운 색과 결, 질감이 한눈에 들어오는 ‘Fruits and Grains’(2021) 시리즈를 컴퓨터 모니터로 바라보며 그라면 결국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김수강은 뉴욕 유학 시절부터 19세기에 탄생한 사진 인화 기술인 ‘검 바이크로메이트(Gum Bichromate, 혹은 검 프린트)’ 방식을 고수해왔다. 촬영한 이미지를 사진으로 얻기까지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는데 이는 그의 사진에 보드라운 생명력이 담기는 비결이다. 김수강의 작업실을 방문한 건 2월 초. 그는 모든 식재료를 새하얀 식기 위에 올려 정성스럽게 촬영하고, 이를 포토샵으로 반전시킨 이미지로 필름을 제작해둔 상태였다. 사진 톤을 확정하는 초반 작업은 아주 작은 것에 집중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신중한 과정이므로 그녀는 이 과정을 혼자 고요하게 감내하겠다고 했다. 기묘한 식재료가 뿜어내는 색과 명암을 유심히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레이어가 필요할지 가늠한 김수강이 우리 앞에서 석판화지를 꺼내 들었다.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우리에게 유자 사진을 완성하는 작업의 (극히) 일부를 보여주기로 한 김수강은 아이보리색 석판화지를 제일 먼저 쨍한 오렌지색으로 물들였다. 물감과 검(고무액), 감광액(중크롬산암모늄)을 요리하듯 뒤섞은 액체를 바르고 말린 종이가 빛에 반응하는 인화지로 탈바꿈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다음 그 위에 필름을 올리고, 감광기에 넣어 빛을 쬐어주고, 이후 물로 씻어내 물감을 필요한 만큼만 남겼다. 종이에 새겨진 아주 미세한 흔적은 같은 과정을 15번 가까이 반복하면서 점점 선명해졌다. 작업 내내 무엇을 어느 정도의 강도와 속도로 해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한 그의 손만 바삐 움직였다. 두 달 후, 김수강은 색과 밀도 모두 알맞게 여문 완성작을 보내왔다. 위는 자주색으로, 아래는 녹색으로 은은하게 물든 핑거 라임과 하얀 소금 알갱이가 알알이 박힌 녹색 다시마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다시마는 잘 살리기 어렵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결과물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땅에서 생각지도 못한 열매를 수확한 것 같은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다시마 결 사이의 미세한 톤 차이와 하얀 소금이 신의 한 수였죠. 가장 마음에 드는 작업은 핑거 라임이에요. 다른 식재료는 원래 색과 톤을 그대로 재현했는데 핑거 라임은 인화하면서 새로운 색과 톤을 입혔거든요. 촬영본보다 훨씬 생동감 있는 결과물이 나왔죠.”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낯선 재료로 근사한 한 끼를 만들어야 하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참가자처럼 그는 뿌듯한 소감을 전해왔다.
올 한 해, 이 식재료를 만지작거리며 뿌듯해하는 사람은 김수강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와는 또 다르게, 건강하면서도 맛있고, 지속 가능한 신메뉴에 골몰하는 여러 셰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캐비아를 닮은 핑거 라임 과육을 상큼한 가니시로 올리고, 배추보다 훨씬 달고 고소한 자색 배추로 오묘한 보랏빛 롤이나 샐러드를 만들고, 다채로운 식감과 맛의 버섯으로 채식주의자들이 충분히 배부를 수 있는 메인 코스를 구상하고, 서양인도 다시마를 친숙하게 느낄 만큼 매력적인 레시피를 고안하고, 대추야자와 유자를 천연 감미료로 활용하는 세계 곳곳의 셰프들 역시 연구를 거듭하며 맛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그리고 낯선 재료를 탐하는 존재로 인해 득을 보는 건 우리다. 덕분에 낯가림은 그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테니까. VL
- 포토그래퍼
- 김수강
- 에디터
- 류가영
- 푸드 스타일리스트
-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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