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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세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23.06.22

여름 세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패션 유튜브를 몇 편 봤더니 알고리즘이 이번 주에만 ‘여름 세일 미리 보기’ 콘텐츠를 열 편 넘게 추천했다. 이건 숫제 축제 분위기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라고 생각하면서도 몇 편을 클릭해서 봤다. 유튜버로 전향한 패션계 사람들의 안부도 궁금하고 요즘 대중의 취향도 공부해야 하고… 라는 건 핑계고 그냥 재미있어 보였다. 과연 예쁜 것을 구경하니 눈은 즐겁다. 하지만 그다지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저 소비의 끝이 어디일지 뻔히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벼락거지’가 되는 세 가지 지름길이 있으니 첫째는 코인 투기요, 둘째는 한국처럼 온 기업이 주주를 거지발싸개로 여기는 후진 나라의 주식을 사는 것이며, 셋째는 세일에 눈이 돌아가는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방금 주식 창을 보고 봐서 조금 열받은 상태다. 하여간 앞의 둘은 우리 조상님께 살해당해 이 집안에 멸문지화를 일으키러 온 원귀라든가 뭔가 다른 고약한 것에 씌어 정신을 잃고 벌이는 일이니까 막기가 어렵다. 그 정도 일이 벌어지고 나면 ‘이러나저러나 구멍 난 통장, 옷값 몇 푼 아낀다고 일론 머스크가 될 것도 아닌데. 에라, 모르겠다. 잘 입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겠지’ 해버릴 수 있지만 잠시 진정하시라.

트위터 명언 중에 ‘안 사면 100% 세일’이라는 말이 있다. 대저 쇼핑이란 것을 해본 사람 중에 여기 공감 못할 자가 몇이나 될까. 단지 돈이 문제가 아니다. 앨리스 펑크의 유튜브 옷장 정리 편을 보다가 그도 명품 세일이나 빈티지 숍에서 할인율만 보고 자신에게 안 어울리는 옷을 산 적 있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 다 똑같구나’ 생각했다. 아무리 많이 사고, 입고, 입히고, 만들기까지 해본 전문가라도 세일 앞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진다. 아무리 큰 옷방을 가진 사람이라도 안 입는 옷을 보유하는 건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 않으면 셀럽들이 플리 마켓을 왜 하고 빈티지 가게에 럭셔리 브랜드 진품이 어떻게 전시되겠나. 체형 변화, 유행 변화, 취향 변화, 소유자의 파산이나 사망이 이유의 전부면 말을 안 한다. 태그도 안 떼고 버리는 옷은 실패한 소비의 뼈 아픈 증거다.

SPA 브랜드 세일을 홍보하는 콘텐츠는 대부분 “한 철 입을 유행 아이템은 세일할 때 싸게 사야죠!”라는 말을 포함한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세일 안 해도 살 아이템 한 벌을 세일할 때 사는 건 현명한 소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보통은 일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일 안 했으면 안 살 아이템을 사거나, 세일한다고 한 벌 살 걸 두 벌 사거나, 할인율만큼 돈을 번 느낌에 다른 것을 덩달아 산다. 할인할 때쯤이면 이미 시즌에 돌입한 상태라 이 옷을 다 입기도 전에 계절이 바뀌고 새 상품이 나온다. 백화점 세일이나 아웃렛도 마찬가지다. 이건 대형 마트 식료품 소비와 비슷하다. 할인율이 큰 대형 번들 상품을 사서 잘 소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구원이 적거나 바쁜 집에서는 그렇게 사재기를 했다가 썩혀서 버리기 십상이다. 이 경우 편의점에서 그때그때 먹을 사과 한 개, 양파 한 개를 사는 게 번들을 사는 것보다 이익일 수 있다. 세일을 기다리느니 당장 필요할 때, 그 옷을 어떻게 활용할지 명확한 답이 보일 때 제값 주고 사는 편이 덩달아 이것저것 사지 않아서 오히려 절약인 경우가 많다.

요는 큰 할인율이 현명한 소비자조차 신중함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외국으로 떠나면서 가진 옷 대부분을 처리했다. 그때 나 자신의 소비 패턴을 돌아보고 놀란 점이 있다. 패밀리 세일이나 외국 아웃렛에서 ‘아니, 이런 브랜드가 이런 겸손한 가격에?’라는 마음으로 “득템!”을 외치며 구입한 물건 중에는 남길 게 별로 없었던 거다. 그 물건들이 나빴던 게 아니다. 할인율에 현혹되어 내 취향을 타협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이 정도 가격이면 실험을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이 브랜드가 이 가격이면 내 취향을 가격에 맞춰야지.’ ‘사두면 언젠가 쓰겠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더 나은 상품을 못 찾았으니까.’ 다 틀렸다. 결국 쓸데없이 옷장만 비좁아진다. ‘내 사이즈가 없지만 가격이 좋으니까 몸을 끼워 맞춰볼까’라는 생각? 동지여, 브랜드 재고 처리를 위한 당신의 숭고한 헌신과 기부를 응원합니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격이 쇼핑의 첫 번째 기준이 되면 안 되는 걸 이성으로는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온 세상이 들썩이면 도리 없이 마음이 흔들린다. 밥 먹고 소비 심리를 연구, 분석, 조종하는 게 업인 사람들을 당신이 당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매년 폭염 기록이 경신되는 마당에 “아하 또 세일에서, 플리 마켓에서, 할인 매장에서 마구 질러버린 못 말리는 나”라고 시쳇말로 ‘자기 모에화’해봤자 전혀 귀여워 보이지 않는다.

패션이 즐겁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으로 남으려면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그건 생산자만의 숙제가 아니다. 그러니 올여름 세일에서는 조금 침착해지자. 당신 공간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고, 다음 쇼핑을 위한 자리를 남겨두어라. 가격은 문제가 아니다. 반려 의류를 구입하면서 쩨쩨하게 굴지 말자. 여장부라면 모름지기 취향과 사이즈를 타협할 바에야 안 사고 만다는 굳은 심지도 필요하다. 그럼 이 점을 고려해 이번 세일 시즌에는 태그 달린 채 버릴 옷 말고 당신을 진짜 행복하게 해줄 물건 꼭 ‘득템’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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