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멀티버스를 넘어서는 멀티버스 이야기
*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게 무슨 영화냐? 샌디에이고 코믹콘 이벤트 중계지!”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을 보았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평행 우주’란 설정을 통해 지난 20년 동안 스파이더맨과 관객이 쌓아온 추억과 애정을 폭발시키는 영화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샘스파’와 ‘어스파’로 불렸던 과거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한 장면에서는 ‘이래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현실 세계의 비즈니스 논리, 그러니까 스파이더맨으로 돈을 벌기 위해 주인공과 감독을 바꿔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덧댄 역사, 거기에 소니와 마블의 새로운 계약까지 소환하다니. <노 웨이 홈>이 넘나든 건 평행 우주가 아니라 영화와 영화 밖 세계였고, 그래서 영화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닌 팬 미팅 이벤트 기획에 가까운 듯 보인 것이다. 동시에 더 이상 ‘톰스파’의 서사만으로는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어서 잔수를 부리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스파이더맨을 정말 좋아했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다. 오히려 그런 잔수를 통해서라도 다시 만나게 된 상황에 감동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노 웨이 홈> 개봉 3년 전인 2018년에는 달랐다. 그해에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이하 <뉴 유니버스>)가 개봉했다. 평행 우주란 설정을 이용해 여러 차원의 스파이더맨을 소환한다는 점에서는 <노 웨이 홈>과 같다. 하지만 <뉴 유니버스>의 멀티버스에 대해 내가 느낀 건 ‘이래도 되나?’가 아니라 유쾌함이었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모르는 만큼 안 보인다’는 뜻이다. <노 웨이 홈>의 샘스파와 어스파에게서 관객은 지난 20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의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를 회상하며 20년 만에 나타난 그들과 비교할 것이다. 하지만 <뉴 유니버스>를 통해 만난 마일스 모랄레스, 그웬 스테이시, 스파이더맨 누아르, 스파이더 햄, 페니 파커에게서는 영화 밖의 기억을 떠올릴 일이 없다. 스파이더맨 관련 코믹스를 모조리 탐독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들 자체가 낯설어서 떠올릴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 웨이 홈>이 평행 우주 설정에 크게 기대고 있다면, <뉴 유니버스>의 평행 우주는 일종의 핑계다. 이 작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매력적이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모아놓고 서로 충돌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 유니버스>로부터 5년 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이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공개됐다. 이번에는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미학과 농담이 최고치를 돌파한 듯 보인다.
1967년에 방영된 스파이더맨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시리즈에는 2명의 스파이더맨이 서로를 삿대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밈’인 이 장면은 <뉴 유니버스> 쿠키 영상에서 패러디되었고, 이 쿠키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시작이 되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는 무려 280명의 스파이더맨이 나온다. 1967년의 그 장면은 더 많은 스파이더맨이 서로 삿대질하는 장면으로 또 한번 패러디된다. 그처럼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말 그대로 멀티버스를 가로지르는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스파이더 인디아, 스파이더 펑크 등의 캐릭터가 각각의 성격에 맞는 작화로 등장하며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애런 데이비스로 출연했던 도널드 글로버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앤드류 가필드가 실사로 나타나 유쾌한 농담을 선사한다. <노 웨이 홈>에서 샘스파와 어스파를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과 달리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이들이 농담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실사로 등장했을 뿐이지, 1967년 애니메이션의 스파이더맨과 똑같은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모두 포함한 스파이더맨 세계관이 충돌하는 곳,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는 농담의 한계가 없다
무엇보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멀티버스를 이용한 최대한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서 더 나아가 이 설정을 부숴버리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방사능 거미에 물려 능력을 얻게 되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후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스파이더맨의 주요 서사는 모든 스파이더맨이 갖고 있는 기억이자, 깨져서는 안 되는 ‘공식 설정’이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은 스파이더맨은 진정한 스파이더맨일 수 있을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생성된 이 의문은 평행 우주를 다룬 또 다른 영화들, 그리고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에 던지는 메시지로 보인다. “누가 진정한 공식 히어로인가?”란 질문이 필요 없는 세계라면? 그곳에서도 멀티버스는 유지될 수 있을까? 사실 이미 멀티버스를 다룬 여러 영화가 나오고 사라진 터라, 멀티버스가 예전만큼 흥미롭지는 않은 시점이다. 하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다음 시리즈인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가 새로운 차원의 멀티버스 서사를 보여준다면, 이 설정은 또 다른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건 코믹콘 이벤트가 아니라,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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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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