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2024 리조트 트렌드 리포트
패션계에 몸담은 처지에도 패션쇼의 세상은 복잡하다. 이는 각 시즌을 어떻게 부를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리조트 컬렉션, 크루즈 컬렉션, 프리폴… 이런 명칭뿐만이 아니다. 다른 브랜드가 리조트 컬렉션을 선보일 때, 홀로 꿋꿋이 프리폴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 역시 존재한다.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보자. F. 스콧 피츠제럴드는 ‘극상류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당신이나 나와 매우 다르다.” 극상류층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확실하게 구분되던 시절, 트렌드란 부유하고 패셔너블한 소수의 여인들로부터 탄생했다. 1년에도 수십 번씩 해외여행을 즐기는 ‘젯셋족’이 있기 전에, 뉴욕과 파리 등 여러 도시에 별장을 소유한 ‘카페 소사이어티’가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옷을 만들었다.
과거의 패션은 글로벌하지도, 지금처럼 ‘모두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럭셔리 소비층은 세계 모든 곳에 널리 퍼져 있다. 1년 중 패션쇼가 열리지 않는 날을 찾기가 어려운 2023년, 브랜드는 전 세계 환경을 고려해 의류를 생산한다. 과거의 리조트 컬렉션은 따뜻한 휴양지(리조트)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몇몇 리조트 컬렉션에서는 바다의 짠 내가 느껴지지만, 고객층이 변화함에 따라 리조트 컬렉션 역시 변하고 있다. 다양한 환경과 날씨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브랜드에서는 판매율도 고려해야 한다. 프리폴과 리조트 컬렉션 제품은 대체로 세일을 염두에 두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구성한다. 적당히 화제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너무 트렌디해서도 안 된다. 대신 많은 이들에게 상품을 선보이기 위해 럭셔리 브랜드가 찾은 해답은 ‘여행’이다. 세계 각지에 퍼진 고객을 찾아가 프리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가 늘고 있는 이유다.
지금의 프리 컬렉션과 꼭 닮은 것이 있다. 미공개 보너스 트랙이 딸린 컴필레이션 앨범을 떠올려보라. 과거에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곡을 재발매하되, 약간의 새로움을 더한 그런 음반 말이다. 록 밴드처럼 브랜드 역시 ‘월드 투어’를 하고 있다. 구찌와 루이 비통은 서울을 방문했고, 샤넬은 LA로, 막스마라는 스칸디나비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와 같은 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과거의 베스트셀러를 적극적으로 참고했다”고 말했다. 콘서트에 가는 관객은 대부분 ‘신곡’이 아니라, 밴드를 대표하는 ‘명곡’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 2024 리조트 시즌을 요약하는 것은 이 한마디로 충분했다. 드레이핑, ‘머메이드코어’, 실용성 등 2023 S/S 시즌에 대두된 트렌드가 돌아왔으며, 2023 F/W 시즌의 키워드 중 하나였던 ‘볼륨감’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바비코어를 연상시키는 핑크빛 룩에서는 리조트 컬렉션 특유의 재기 발랄함이 느껴졌고,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은 ‘조용한 럭셔리’ 역시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보그>가 2024 리조트 시즌에서 돋보인 11개 트렌드를 선정했다. 클래식한 탱크 톱,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실용성은 물론 해양오염이 심화됨에 따라 바다를 레퍼런스 삼은 룩까지. 몇몇 디자이너는 잘록한 허리 라인에 집착했고, 또 다른 이들은 마르탱 마르지엘라라는 거장에게 경의를 표했다.
최근 몇 년을 지배한 미니스커트에 대한 반발 심리일까? 리조트 시즌에는 길쭉하고 차분한 느낌의 펜슬 스커트가 강세를 보였다. 은밀한 이중생활을 즐기는, 멋스러운 커리어 우먼이 입을 법한 그런 스커트 말이다. 데님 재킷은 변주를 거쳐 ‘리조트스럽게’ 재탄생했고, 케이프 코트는 글래머러스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지닌 아이템으로 거듭났다. 페티시즘적 레퍼런스가 가득한 라텍스 룩, 강렬한 인상을 주는 메탈릭 룩도 빼놓을 수 없다.
허리가 생명
시선을 사로잡는 스타일을 완성하고 싶다면? 허리 라인부터 휘어잡으면 된다.
펜슬 스커트는 칼보다 강하다
펜슬 스커트 하나만 있으면 길쭉한 실루엣을 완성할 수 있다.
여전히 세상은 미니
펜슬 스커트가 강세라고 해서 미니스커트가 촌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스쿨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
끝없는 변주의 세상
클래식한 아이템일수록 전복이 주는 재미는 배가 된다. 디자이너들이 데님 재킷의 크기를 줄이고, 이어 붙이고 자르며 새로움을 찾아 나섰다.
마네킹코어
1990년대 후반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컬렉션에는 마네킹의 상체를 본떠 만든 코르셋이 꼭 등장했다. 더 로우와 구찌, 알베르타 페레티 등이 비밀 회담이라도 가진 걸까? 이들이 선보인 모델의 몸에 딱 달라붙는 톱은 마르지엘라를 향한 헌사처럼 느껴졌다.
물, 물, 물
해양오염의 심각성을 인지해서일까? 리조트 시즌에는 스쿠버다이버와 인어를 연상시키는 룩이 넘쳐났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
특별한 날을 위한 옷이 아니라, 모든 날을 위한 옷. 출근길은 물론 나들이에도 맞춤인 변형 가능한 옷.
하드코어 헤비메탈
이제 옷 입는 게 따분하게 느껴진다고? 룩에 실버나 골드를 더해보길.
망토 자락 휘날리며
케이프 코트, 케이프 셔츠가 새로 태어났다. 때론 우아하고, 때론 글래머러스하게.
Rated R
오로지 성인만을 위한, 풀 라텍스 룩.
뉴 클래식, 탱크 톱
모든 아이템과 궁합이 좋은 탱크 톱은 ‘뉴 클래식’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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