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사랑, 치유를 위하여, 에비타 테제노 #여성예술가17
고향을 향한 사랑스러운 오마주. 에비타 테제노의 콜라주는 희망과 사랑, 치유의 힘을 품고 있다.
EVITA TEZENO
에비타 테제노(Evita Tezeno)는 텍사스주 포트아서라는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다. 루이지애나에 인접한 곳으로 유독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1960~1970년대 내내 사회·정치적 긴장감이 팽배했지만, 테제노는 비교적 천진난만하게 생활했다. “아주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다른 인종과 접촉할 일이 거의 없었죠. 편견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걸요.”
어느덧 62세가 된 댈러스 출신의 이 화가는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을 바탕으로 생생한 콜라주 작품을 만든다. 직접 제작한 정교한 패턴의 종이를 한 땀 한 땀 오려 붙여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인들, 재잘거리는 소녀들, 빨래를 널고 있는 여인들, 팔짱을 낀 채 산책하거나 무도회를 위해 근사하게 차려입은 연인 등 동네에서 흔히 볼 법한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그렇게 종이 위에 새겨졌다. 남부 출신이라는 점을 훈장처럼 여기는 테제노가 말을 이었다. “‘흑인은 우울하고 슬픈 존재로 인종적 편견과 억압의 희생양이 되어왔다’는 고정관념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에게도 기쁨이 있는걸요. 성장하며 경험한 충만한 행복과 소속감을 그리고 싶어요.”
희망이 느껴지는 테제노의 작품은 최근 미국 전역에서 주목받고 있다. 몇 달 전, 그녀의 첫 개인전이 휴스턴 흑인 문화 박물관(Houston Museum of African American Culture)에서 열렸고, 그녀는 권위 있는 예술상 중 하나인 구겐하임 펠로십의 2023년 수상자로 선정됐다. 최근까지는 댈러스 아트 페어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아트 페어 기간에 테제노는 루이스 드 지저스 LA(Luis De Jesus Los Angeles)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소개했고, 대형 쇼핑몰 노스파크 센터에서 팝업 전시회도 열었다.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이 일이 제가 할 일이라는 걸 알았죠. 그래서 버텼어요.” 요즘의 감회를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순식간에 진행되는 바람에 산사태라도 일어난 기분이에요.”
댈러스 아트 페어의 디렉터 켈리 코넬(Kelly Cornell)은 지난해 초, 우연히 테제노의 작품을 보게 된 것이 굉장한 행운이었다고 고백했다. “아트 페어에 소개된 테제노의 그림은 댈러스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그녀의 그림은 미국에서 흑인의 삶을 기념하는 한편 사소한 일상을 특별하게 표현하죠. 테제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순수한 고백과 생의 찬미로 가득한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해요. 소박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건 미국 남부의 아름다운 전통이기도 하죠.”
테제노는 미국에서 급성장하는 도시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댈러스에서 최근 몇 년간 미술계가 호황을 누리는 것을 목격해왔다. 새로운 갤러리가 잇따라 생겨났고, 미술관은 신디 셔먼, 크리스챤 디올, 쿠사마 야요이 등 거장의 작품을 주제로 별처럼 빛나는 전시를 연이어 기획하고 개최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 중엔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댈러스 수집가들의 소장품이 대거 포함됐다. 댈러스 아트 페어 역시 팬데믹 직전까지 매년 참여 단체가 증가해, 지난 15년간 30곳에서 100곳까지 늘었다. 댈러스는 테제노가 처음 예술계에 발을 들일 때와는 확연히 다른 시장이 되어 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죠.” 테제노는 1990년대경 흑인 남성이 대부분이었던 화가 동료들과 함께 뉴욕처럼 먼 곳에 있는 갤러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승합차 뒤에 각자 작품을 싣고서 우리 작품을 소개해줄 갤러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전전했어요. 유랑단처럼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 댈러스 미술 시장은 놀랍도록 성황을 이루었죠. 굳이 뉴욕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거의 매일 밤 예술 행사가 열리니까요.”
지난해 아트 페어에서 댈러스 미술관이 구입한 테제노의 그림 ‘Joy, Compassion, Generosity’(2022)는 만개한 봄꽃에 둘러싸인 흑인 여성 세 명을 그린 것으로 미술관에서 테제노의 그림을 구입한 첫 번째 사례다. 댈러스 미술관의 현대미술 수석 큐레이터 안나 캐서린 브로드벡(Anna Katherine Brodbeck)은 테제노의 그림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에비타는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완벽한 능력을 타고났어요. 그녀가 하나하나 공들여 제작한 종이가 거대한 콜라주를 이루는데 전체를 보는 동시에 종이의 질감과 섬세한 패턴에서도 시선을 뗄 수가 없어요. 아름답고 조화로운 에너지가 요동치는 작품이죠.”
미술 양식에 관해 논하자면, 테제노의 스타일은 다소 독특한 계기로 정립됐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1998년 어느 날, 스케치북을 품에 안은 한 천사가 꿈속에 나타나 인상파에 가까웠던 그녀의 스타일을 바꿀 것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테제노는 그 계시에 순종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에 뉴올리언스 재즈 앤 헤리티지 페스티벌과 에센스 뮤직 페스티벌 두 곳으로부터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하지만 작업량을 점점 늘려갔음에도 댈러스 미술계는 여전히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제 작품이 너무 디자인 중심적이라고 했어요. 전혀 신선하지 않다고 했죠. 그래서 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어요.” 테제노는 그때부터 조지아, 메릴랜드, 뉴욕, 오하이오 등에 자리한 갤러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비건 셰프로 생계를 일궜다. 1980년대 말, 테제노는 종교를 가지면서 돌연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식습관의 변화는 삶 전체를 뒤바꿨다. 테제노 가족에게 갓 도살된 고기로 몇 달 동안 먹을 돼지머리 치즈, 부댕(프랑스식 소시지), 크래클링(구운 돼지 껍데기) 등을 준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연례행사였기 때문이다. 테제노가 그때를 회상했다. “가족은 제가 정신이 나가 비쩍 곯은 채로 죽을 거라 예상했대요.” 그러나 그녀는 2010년대 초, 생식 레시피 쇼를 직접 진행하며 이름을 떨쳤다.
그 후 만나게 된 유명인들은 그녀의 삶의 궤적을 또 한 번 뒤흔들었다. 2018년 덴젤 워싱턴이 뉴욕시 갤러리에서 테제노의 그림을 보고 무려 여덟 점이나 구입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테제노는 요리사를 그만두고 전업 화가가 됐다. 2020년에는 사무엘 L. 잭슨과 DM을 주고받는 일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몇 달 뒤 잭슨은 아내에게 줄 결혼 40주년 기념 선물로 테제노의 작품을 구입했다. 이 일을 계기로 테제노는 더 널찍한 작업실로 옮겨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LA 갤러리 아트 딜러인 루이스 드 지저스의 제안으로 더 큰 규모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예상은 적중했다. 루이스 드 지저스 LA 갤러리를 통해 공개된 테제노의 새 작품은 전시장에 채 설치되기도 전에 전부 팔리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테제노의 작품이 지극히 개인적인 삶과 추억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며 알 수 없는 유대감을 느낀다. 테제노의 집안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퀼팅과 바느질을 전담했는데 테제노가 콜라주 재료로 활용하는 종이 패턴은 그 천을 모방한 것이다. “저는 종이로 퀼팅을 해요. 여러 패턴을 겹쳐놓고 서로 잘 어우러지는지 보는 일이 재미있죠.” 그녀는 돌아가신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온갖 단추를 작품 속 인물 의상을 표현할 때 활용하기도 한다. 제이콥 로렌스, 엘리자베스 캐틀렛, 로메어 비어든은 테제노에게 엄청난 영감을 준 아티스트다. 전부 알록달록하고 기하학적인 표현법의 대가들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그래픽 디자인 교육을 받았던 시대적 환경이 탄생시킨 예술가들이기도 하다. “우린 모든 걸 손으로 했어요. 자르고, 붙이고, 덧대는 모든 것을요.”
큐레이터 브로드벡은 테제노의 작품이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통해 과거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작품은 피카소부터 비어든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초반에 탄생한 모든 콜라주 작품과 깊이 관련되어 있어요. 그녀가 창조하는 고전적이고 조화로운 비율은 피카소가 중시하던 질서 정연한 미학에서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동일한 것이죠.” 브로드벡은 테제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현지 아프리카계 미국인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테제노는 자신의 성장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티스트예요. 작품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토착 문화의 아름다움을 전달하죠. 남부 미술관이 문화의 척도가 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화가의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이유입니다.” 브로드벡은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테제노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좁은 직사각 형태의 집, 기타 선율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연인들은 미국 남부 문화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다. 테제노의 생각은 이렇다. “그런 남부의 삶과 남부 사람들의 개성이 제가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인 걸요. 전 느긋한 분위기에서 가족과 함께 만든 요리를 나눠 먹으며 자랐고, 그런 추억이 당연히 작품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어요. 남부 사람들이 제 작품을 통해 고향을 느끼고, 그들에게 따뜻한 포옹과 위로를 전하는 건 저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LA에서 그녀의 작품이 전부 매진되었음에도, 나아가 뉴욕 전체에서 그녀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음에도 테제노는 남부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댈러스에서 에비타 테제노라는 아티스트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별로 의식하고 싶진 않지만 고향에서는 제 진가를 전혀 인정받지 못했죠.” 테제노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마을 출신이었다니, 전혀 몰랐군요!’라고들 해요. 하지만 노라 존스와 에리카 바두도 성공하기 위해 댈러스를 떠났다가 금의환향했잖아요. 이제라도 뜨겁게 환영받고 있으니 행복해요.” 브로드벡 역시 이 모든 변화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테제노의 그림을 LA 아트 딜러가 선택한 뒤에야 비로소 그녀에 대한 댈러스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테제노의 재능은 한결같이 뛰어났지만 말이에요.” 최근 브로드벡이 기획한 미술관 VIP 투어에서는 테제노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테제노의 그림은 가슴을 울리거든요. 그녀의 작품은 긍정적인 치유의 메시지를 품고 있어요. 댈러스 사람들에게 특히 필요한 마법이죠.” 테제노 역시 공감한다. “사람들이 제 작품에 끌리는 건 긍정적인 분위기와 호소력 때문이에요. 세상은 슬프고 부정적인 것투성이잖아요. 사람들에겐 제 작품에 깃든 희망과 행복이 필요하죠.” 인종 갈등과 팬데믹의 위협이 극심하던 2020년에는 주로 동부 연안 지역의 사람들이 테제노의 작품을 많이 구입했다면 지금은 큐레이터와 아트 디렉터 등 예술계 사람들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진다. “제 작품이 점점 더 좋아진 것은 맞지만 전 한결같은 스타일과 메시지로 작업에 임해왔어요. 그럼에도 매 순간 제 작품을 원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는 점이 신기해요.” 아마 그녀의 작품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때맞춰 세상의 흐름이 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테제노가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 표현, 마음에 드는군요. 바로 그거예요!”
테제노는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8월에 루이스 드 지저스 LA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마무리하고, 9월에는 뉴욕의 아머리 쇼 무대에 선다. 12월에는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도 참여한다. 그 와중에 판화 제작은 물론 조각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또 다른 소망까지 생겼다. “저는 그저 삶을 사랑하는 남부 출신 여성이에요. 제 경험과 기쁨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요.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하더라도 제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을 거예요. 별로 변덕스러운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요. 항상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어요.” 테제노의 소박하지만 커다란 꿈이다. (VK)
#여성예술가17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Lisa Wong Macabasco
- 사진
- Henry Ladell Miner, Kevin Todora
- 스타일리스트
- Madison Chase
- 포토 어시스턴트
- Chris Martin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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