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두 디자이너가 보내는 향
정반대 성향을 지닌 두 패션 디자이너가 옷이 아니라 새로운 향을 당신에게 건넨다.
Gabriela Hearst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는 향수를 사랑한다. 그녀의 첼시 사무실에 콘 타입 인센스를 항상 피워놓곤 한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갓 뿌린 흙 내음과 묘한 매력을 풍기는 향기가 느껴진다. 2015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설립한 후 그녀는 시그니처 향수 론칭을 종종 고민했다. 유명 패션 하우스가 내놓는 것과 다른 그녀만의 시그니처 향수 말이다. 향수는 패션계의 캐시 카우다. 런웨이에 오른 값비싼 의상과 디자이너의 작품에 멋지게 돈을 쓸 여력이 안 되는 이들이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보통 패션 브랜드는 대규모 다국적 뷰티 기업에 향수 제조를 아웃소싱한다. 그 결과 한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차이점이 거의 없는 여러 제품이 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이 향수는 굉장히 순수한 방식으로 만들었죠.” 허스트가 자신만의 향수 제조 과정에 대해 언급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루트를 취한 그녀는 글로벌 기업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부티크 향수 브랜드 푸에기아(Fueguia)의 설립자 훌리안 베델(Julian Bedel)에게 손을 내밀었다. 베델이 지닌 자연을 향한 열정과 과학에 대한 헌신이 허스트가 지닌 열정과 헌신을 반추하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면 이 세상에 있는 어느 지역이나 나라를 아무 데나 말해보세요. 그곳에서 무엇이 서식하는지 정확히 답하죠.” 그녀가 말했다. “그는 식물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빈티지 기타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의 밀라노 집 벽에는 120개가 넘는 기타가 줄지어 서 있다.
베델은 자신의 기업을 수직적으로 조직해 식물을 연구하고, 향수를 조제하고, 그의 엄격한 기준에 맞춰 향수를 하나하나 생산하고 병에 담는다. 이는 원단 소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많은 동료 디자이너보다 재고 상품과 재활용 자재에 더 의존함으로써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허스트에게 반향을 일으키는 접근법이다. 또한 베델이 그녀의 모국인 우루과이의 이웃 나라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점도 그녀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두 사람이 함께 ‘그녀 삶의 두 도시’로부터 영감을 받은 한 쌍의 향수를 개발했다. 허스트가 성장한 지역의 이름을 딴 미묘한 플로럴 향 ‘파이산두(Paysandú)’는 가족이 운영하는 목장에서 직접 수확한 식물 카르케하(Carqueja)와 마르셀라(Marcela)를 사용한다. 이 향은 허스트의 모국과 여유롭게 쉬는 분위기를 풍기도록 디자인했다. 그 향수와 쌍을 이루는 또 다른 하나는 ‘뉴욕’이다. 이 향수는 토바코, 파촐리, 팔로 산토가 스모키하게 살짝 가미된 우디 블렌드다. “처음 향을 맡으면 정말 섹시하고 강한 느낌이 들죠.” 디자이너가 말했다. “갑옷을 입은 것처럼요.” 베델은 이 두 가지 향수를 하나의 제품으로 총 315개 생산했다. “그 제품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한 병 이상 구매하도록 권할 거예요. 다 팔리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허스트가 말했다. 그러자 베델이 덧붙였다. “우리가 더 많이 생산하기로 결정한다 해도, 두 번째 생산되는 제품이 처음과 같을 수는 없을 거예요. 식물이 계절별로 다르니까요.” 어느 쪽이든 그들의 계획은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선례, 즉 일회적인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이 아니라 메가 히트작을 기반으로 구축된 글로벌 비즈니스로 성장하는 세태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샤넬 ‘N°5’는 매년 1,000만 개가 판매된다. 또 다른 유니크한 점이 있다. 허스트와 베델은 이 향수를 젠더리스로 여긴다. “10대의 저는 ‘이게 여성용 향수다, 저건 남성용 향수다’라는 생각에 동의한 적 없어요. 지금 우리는 그것이 마케팅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죠. 그렇지만 저는 예전부터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허스트가 이렇게 말하며 끌로에(그녀가 2020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고, 올가을 패션쇼가 마지막이다) 향수와 파코 라반의 ‘XS 뿌르 옴므’가 그녀가 젊은 시절 쓰던 제품이었다고 고백했다. 허스트는 늘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일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그녀가 만든 첫 핸드백 ‘니나(Nina)’였다. 그녀는 백화점이나 자신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하길 거부했다. 그 가방을 원하는 소비자는 이메일을 보내야 했고, 순식간에 대기자가 100명에 달했다. 한정 수량 때문에 ‘파이산두’와 ‘뉴욕’에 관심 있는 이들은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기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할 것이다.
Ann Demeulemeester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는 무형의 것에 도가 튼 사람이다. 그녀는 1996년 선보인 기념비적 컬렉션의 비대칭 셔츠에 대해 한때 이렇게 말했을 정도다. “중력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을 보완했죠.” 수단과 매체에 상관없이 드멀미스터는 창작품에 자신의 정신적인 흔적을 남겨놓는 습관을 갖고 있다. 지금 그녀가 첫 론칭한 ‘A’라는 이름의 향수에서도 마찬가지다. A는 시작을 의미한다. 그것은 알파벳의, 앤(Ann)이라는 이름의, 에덴동산에서 자신의 갈비뼈로 이브를 탄생하게 한 아담(Adam)의 첫 글자이기도 하다. 드멀미스터가 젠더 ‘유동성’을 받아들여왔기 때문에, 웜 스파이시 향을 통해 세련된 관능미를 은근히 풍기는 A가 유니섹스라는 점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A는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향이며, 심지어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쪽 팔걸이가 있는 멋들어진 소파나 주름 장식이 많은 화장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향수인 것이다. “어릴 때 향수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엄마나 할머니가 쓰던 향수도 제 맘에 들지 않더라고요. 너무 달콤하거나 파우더리했기 때문이죠.” 드멀미스터가 전화로 말했다. “숲속에서 나무와 풀, 꽃 냄새 맡는 것이 더 좋았죠. 그런 냄새에 매료되었어요. 달콤하고 여성스러운 향은 제가 좋아하던 스타일이 아니었죠.” 드멀미스터는 컬렉션의 핵심을 찾기 위해 피상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습관을 보여왔다. 그런 탐색 스타일 때문에 그녀는 종종 자연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다 보니 가시나무와 깃털이 그녀의 컬렉션에서 모티브로 되풀이되곤 했다. 무엇이든 직접 시도하는 이 창작자에게 향수는 촉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이용하는 또 다른 도전 대상이었다. “항상 존재하던 빛과 그림자를, 강하고 시적인 이 면을 냄새로 승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오로지 제 본능을 믿었죠. 제 본능이 영감이었어요.” 드멀미스터가 설명했다. “그것은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야 했어요. 그리고 사물의 기원으로, 자연적인 것, 동물적인 것, 신비스러운 것으로 되돌아가는 그런 것이어야 했죠. 저는 영화 <야생의 아이(L’Enfant Sauvage)>를 떠올렸습니다. 동물과 함께 살다가 숲에서 발견된 아이를 다룬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 감독의 작품이죠. 늘 그 스토리가 아주 좋았어요. 그것은 늘 영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고 본능이 바탕으로 깔린 향수를 만들고 싶었죠.” 세상에 대한 드멀미스터의 관계를 강화하는 A는 오 드 콜로뉴와는 반대로 냉압착된 천연 원재료의 에센셜 오일로 만든 향수다.
협업자인 남편 패트릭 로빈(Patrick Robyn)에게서 10년 전 발렌타인데이에 장미나무를 받은 후, 드멀미스터 는 식물 성장과 계절 패턴에 정통한 정원사가 되었다. A가 마른땅에 내리는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톡 쏘는 향수 방울이 피부에 닿은 후 서서히 스며들며 퍼지고, 따뜻해지고, 변형된다. 성분은 굉장히 광범위하다. 향수의 핵심은 재스민, 메이 로즈, 자작나무 오일이며, 톱 노트는 클로브, 커민, 스리랑카산 시나몬, 시칠리아 레몬, 칼라브리안 베르가모트 향유다. 그리고 베이스 노트로 파촐리, 베티베르, 로즈우드와 샌들우드가 가미되었다. A의 론칭으로 오랫동안 간직해온 소망이 실현되었다. “제가 오랫동안 품은 꿈이에요. 수년간, 어느 날 누가 제 문을 노크하며 ‘우리 향수를 만들어볼래요?’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했죠. 그래서 대비하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25년간 저만의 향수가 어떤 것일지 생각해온거죠.” 드멀미스터가 말했다. “중요한 것은 제가 그 향을 골랐다는 거죠. 제가 25년 전 골라놓은 것들과 같은 향입니다. 그리고 그 점이 바로 제가 그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공고하게 했죠. 저는 여전히 제가 전에 원하던 것과 같은 것을 원했고, 그리고 그것은 기존에 없는 향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죠.” 클라우디오 안토니올리(Claudio Antonioli)가 2020년 드멀미스터를 인수하면서 그녀에게 그 기회를 선사했다. “안토니올리가 브랜드를 인수했을 때, 그는 제가 함께할 수 있는지, 제가 그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더군요.” 앤이 설명했다. 앤트워프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 리디자인과 마찬가지로, A의 론칭은 그녀의 가족이 함께 하는 일이었다. 패트릭 로빈이 캔버스로 덮인 향수 박스의 안쪽 면에 들어간 앤의 사진을 찍었고, 아들 빅터 로빈(Victor Robyn)이 A를 디자인했다. “그것은 바늘처럼 샤프합니다.” 드멀미스터가 말했다. 어쩌면 이것은 이 브랜드의 심벌인 장미 가시나 새의 발톱처럼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박스와 마찬가지로 향수병도 가늘고, 직사각형이다. 안 쪽 네 면과 바깥쪽 네 면이 사용되었다. 패널 하나의 안쪽과 바깥 면은 블랙으로 불투명하고, 나머지 여섯 개 패널은 투명하다. “향수와 향수병에 대조적인 것을 적용하고 싶었어요. 병 내부에는 자연이, 외부에는 문화가 담기길 원했죠. 분명하고, 모던하며, 굉장히 샤프한 향수병을 원했습니다.” 드멀미스터가 설명했다. 드멀미스터에게 A는 아틀리에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문을 여는 열쇠 같은 것이다. “뭔가를 달성하고 그것을 완전하게 해내면 정말 좋잖아요.” 디자이너가 패션계에서의 삶을 얘기했다. “다시 연약해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뭔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새로운 뭔가를 시도할 수 있기를 바란 거죠. 설명하기 어렵지만 제 안에 있는 어린 야생마 같은 자아가 이 모든 것을 원했습니다.” (VK)
- 글
- NICOLE PHELPS, LAIRD BORRELLI-PER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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