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즈 오브 펜디’의 첫 게스트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
영화 <비엔나 호텔의 야간 배달부>(1974)에서 샬롯 램플링의 중성적이면서도 모호한 분위기, <수치심에 대한 상식(A Common Sense of Modesty)>(1976)에서 플로린다 볼컨의 자유분방한 매력, <붉은 사막(The Red Desert)>(1964)에서 괴로움에 사로잡힌 모니카 비티의 부르주아적인 우아함. 이러한 영화적 걸작은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고 흑백논리에서 벗어날 때 나타나는 미학에 집중한다. 스테파노 필라티가 펜디를 위해 디자인한 캡슐 컬렉션처럼.
2017년 자신의 브랜드 ‘랜덤 아이덴티티(Random Identities)’를 창립하고 아르마니부터 생 로랑, 프라다, 제냐에 이르기까지 패션계에서 30년간 탄탄한 경력을 쌓아온 밀라노 출신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 그가 ‘프렌즈 오브 펜디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게스트 디자이너가 됐다. 킴 존스와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의 지지 속에서 장르와 카테고리를 넘나들며 42개의 룩을 디자인했고, 10월 26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시한다.
킴 존스는 “저는 필라티의 작품을 무척 좋아하고, 그에게서 영감을 받습니다. 친구지만 시대정신을 완벽히 구현하는 디자이너로서 언제나 질문을 통해 미래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냅니다”라고 극찬했다. 또 “필라티가 랜덤 아이덴티티를 통해 제시하는 ‘드레싱’과 ‘언드레싱’에 대한 관점이 매력적이어서 종종 그의 옷을 입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필라티에게 주어진 미션은? 필라티는 “킴과 실비아는 제게 매력적인 도전을 제안했습니다. 저만의 시선을 통해 펜디의 세계를 완전히 자유롭게 탐구하는 것이었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존스와 벤투리니 펜디는 그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존스는 이번 컬렉션이 모든 것을 ‘펜디화’한 결과라고 말했다.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펜디 고유의 코드인 여유로움과 전복적인 시크함을 융합한 것. 그는 두 도시의 이미지를 이상적으로 결합했다고도 평했다. 조용하고 냉철한 필라티스러운 ‘밀라노’와 펜디스러운 전형적인 ‘로마’의 만남.
필라티 또한 “패션은 주위 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라고 킴의 말에 동의했다. “로마는 화창하지만 밀라노는 그렇지 않죠. 로마는 인류의 유산을 품은 퇴폐적이면서도 숭고한 도시지만, 동시에 경쾌한 면이 있습니다. 이번 컬렉션은 로마의 ‘빛’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완성되었어요. 진홍과 마젠타 사이 특별한 레드 컬러인 엠파이어, 소나무와 세이지 사이 특이한 로마 그린 같은 컬러가 그 예시죠.”
컬렉션 컬러가 ‘영원의 도시(Città Eterna)’인 로마를 상징한다면, 실루엣에서는 커팅의 달인답게 남성적인 테일러링의 구조에 꾸뛰르 특유의 부드러움과 곡선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1920년대 여성들이 입던 슬립, 피카부 블라우스, 리틀 블랙 드레스 사이에서 필라티는 각진 블레이저에 여성스러운 홀터넥 셔츠를 입히고 땅에 끌리는 바스크풍 바지를 통해 더러워도 괜찮다는 메시지, 즉 오염이란 요소를 통한 자유의 찬가를 표현했다. 이에 대해 필라티는 “힙합 스타일의 특정 포인트를 표면으로 드러내려 했죠”라고 이야기했다.
다양한 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필라티는 시간과 관계없이 어느 때든 동시대적으로 나타나는 ‘성적 유동성’이라는 특징과 자신이 사랑하는 1920년대 무드를 근사하게 혼합해냈다. 컬렉션 의상을 주의 깊게 본 패션 저널리스트 이레네 브린(Irene Brin)은 “목에는 볼드한 진주 목걸이, 어깨에는 거대한 꽃, 손목에는 시폰 행커치프 정도가 여성에게 허용된 유일한 장식품이었던 시대입니다. 모자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던 여성들은 시간이 거듭될수록 자유를 향한 열망을 느꼈죠”라고 1920년대를 설명했다.
당시 수천 명 소녀들의 워너비였던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Annemarie Schwarzenbach)’에 대해 평가한 말이 1920년대 여성의 마음을 대변한다. 안네마리의 사진을 찍은 마리안네 브레슬라우어(Marianne Breslauer)는 “(안네마리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오묘한 혼합,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 그 자체”라고 묘사했다. 이 시기에 빅터 마르게리트(Victor Margueritte)의 소설 <더 톰보이>(1922)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중·상류층 출신 소녀, 모니크 레르비에(Monique Lerbier)가 남성용 재킷과 팬츠를 훔쳐 입고 자유분방한 삶을 즐긴다는 내용으로 수천 명의 여성들이 이 이야기에 열광적으로 빠져들었다.
필라티는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분석학과 바우하우스 운동도 1920년대에 시작됐죠”라며 “당시 패션은 계급의 상징이자 사회적 담론을 반영했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는 사라진 이런 모습을 다시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랜덤 아이덴티티에서처럼, 그는 ‘프렌즈 오브 펜디’의 첫 컬렉션을 통해 1920년대 고유의 ‘바이브’를 되살렸다. 당시 하류층의 삶이 담긴 디테일한 복식 문화를 통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자유의 형태를 보여주고자 한다.
필라티가 레퍼런스로 삼은 모든 것은 펜디의 스타일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는 펜디의 상징과도 같은 바게트 백과 피카부 백을 재해석했고, 펜디의 더블 F 로고 역시 그의 손길 아래 단순한 프린팅이 아닌 질감이 느껴지는 패턴으로 재탄생했다. 더블 F 로고가 새겨진 블라우스와 코트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폭력과 열정(Conversation Piece)>(1974)의 부르주아적 무드를 연상시킨다. 극 중 냉철하고 계산적이면서도 우아한 인물을 연기하는 실바나 만가노가 펜디의 스트라이프 셔츠와 모피 칼라가 달린 트렌치 코트를 입고 등장하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필라티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새로운, 혹은 잊힌 이야기를 전하며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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