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의 모든 것, 프레드 사무엘의 서사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바다를 사랑하며, 동시대적 주얼리 디자인에 앞선 인물. 여전히 하우스에 살아 숨 쉬는 프레드 사무엘의 이야기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펼쳐진다.
파리 방돔 광장에 위치한 주얼리 하우스의 설립자들은 전설 속 인물처럼 느껴지곤 한다. 빛바랜 흑백사진이나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옷차림의 그들은 우리에게 다른 인류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러나 1936년에 창립된 프레드는 86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설립자의 온기로 가득하다.
프레드 사무엘(Fred Samuel)은 2006년에 작고했지만, 파리의 주얼리계와 아틀리에는 아직도 그를 무슈 프레드라는 친근한 명칭으로 부른다. “그를 알고 지낸 이들의 기억 속에 얼마나 강하게 살아 숨 쉬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프레드의 CEO 찰스 룽은 많은 이들이 아직도 그를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여느 설립자와 달리 만년에 회고록을 남긴 덕에 우리는 그의 생각을 짐작하는 대신 그가 실제로 말한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룽은 부회장 겸 아티스틱 디렉터 발레리 사무엘과 함께 2019년 하우스의 헤리티지를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프레드 사무엘의 손녀 발레리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프레드와 아버지 앙리 곁에서 일하며 주얼리를 익혔다. 그리고 라리크와 스와로브스키에서 경력을 쌓은 후 지난 2017년 친정으로 돌아왔다. “제 할아버지가 세운 하우스니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죠. 난 하우스의 ‘젊은 조력자’였답니다.”
이들이 찾아낸 드로잉과 구아슈, 사진, 문서는 수만 부에 이르렀으며, 1,000여 개의 상자를 채웠고, 무게는 총 10톤에 달했다. 하우스의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빠진 퍼즐 조각을 찾기 위해 전 세계에 프레드 컬렉션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준비와 조사, 연구에만 3년여의 시간을 들인 결과는 2022년 파리에서 처음 공개됐다. 보석학자 바네사 크론(Vanessa Cron)과 주얼리 전문 저술가 빈센트 메이란(Vincent Meylan)이 기획에 참여한 전시는 아카이브에서 엄선한 수백 개의 주얼리와 오브제, 문서를 테마별로 나눠 하우스의 90년 가까운 역사를 풀어냈다.
바로 이 전시 <프레드, 주얼러 크리에이터 Since 1936>이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린다.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 대신 프레드 고유의 타임라인을 따르는 전시는 주얼리 하우스 프레드의 스타일과 설립자 무슈 프레드의 개성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룽은 기획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의 설립자가 누구였는지, 그의 정신이 앞으로 어떻게 하우스에 영감을 불어넣을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아홉 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레드 사무엘과 1977년 하우스가 사들인 105.54캐럿 옐로 다이아몬드의 공통점, 태양에 주목한 ‘솔레이 도르, 운명적인 만남’으로 시작한다. 희귀한 팬시 인텐스 옐로 컬러와 엄청난 무게의 에메랄드 컷으로 더욱 가치가 높은 이 원석은 당시 주요 고객에게 판매된 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2021년에 운명처럼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하우스가 다시 사들여 101.57캐럿으로 재가공한 솔레이 도르는 현재 세계에서 52번째로 큰 커팅 다이아몬드로 기록되어 있다. 파리 전시에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 이 원석은 서울 전시에서도 볼 수 있다.
두 번째 전시장은 무슈 프레드의 삶을 들여다본다. 아르헨티나로 이민 간 알자스로렌 출신 가정에서 태어난 프레드는 12세 때 프랑스로 돌아온다. 보석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16세에 주얼리계에 발을 들이고 28세에 자신의 매장을 열지만,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는 전쟁이 종식된 후 아내에게 선물한 다이아몬드 브로치. 브로치에 세팅된 다이아몬드는 프랑스 외인부대와 레지스탕스 일원으로 활동하던 그가 위기 상황에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옷소매에 숨겨 다니던 것이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 브로치를 삶에 비유했는데, “삶의 모든 연약함과 강인함을 끌어내, 우리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듯한 강인한 영감을 줬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프레드의 가장 유명한 주얼리는 포스텐임에 이의의 여지가 없다. 스틸 케이블과 옐로 골드 버클의 조합, 남녀 공용 스포티 주얼리라는 급진적 시도는 1966년에 처음 등장한 후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독특한 디자인은 밧줄과 항해용 매듭, 밧줄을 들어 올리는 윈치, 방향타, 닻 등 바다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사무엘 부자의 항해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무슈 프레드와 함께 하우스를 경영하며 바다에 대한 애정도 공유한 두 아들 앙리와 장은 실제로 유명 요트 경기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전시에선 포스텐 컬렉션의 진화 과정도 훑어본다.
기발함과 다양성의 추구 또한 하우스에 새겨진 특징이다. 보석 세공인이 사용하는 계측기, 오일 배럴이나 구명용품 모형으로 만든 참 컬렉션은 경쾌함과 재치, 유머를 가미함으로써 전통적인 주얼리 개념에 도전하는 설립자의 철학을 보여준다. 참 컬렉션은 1980년대로 이어지면서 운동선수와 연인, 천사 같은 캐릭터의 ‘프레디’ 라인으로 확장되는데, 예술가 장 폴 구드, 패션 디자이너 토모 코이즈미도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했다. 그런가 하면 예술가와의 협업은 무슈 프레드가 꾸준히 진행해온 프로젝트로, 1962년 별자리 메달과 주얼리를 디자인한 장 콕토를 시작으로 화가 베르나르 뷔페와 조르주 브라크, 조각가 아르망, 모델 케이트 모스 등 당대 주요 인물들과 계속 이어오고 있다.
주요 피스에 이어 프레드 사무엘과 셀러브리티, 왕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새 부티크를 오픈하거나 컬렉션을 발표할 때면 가장무도회나 파티를 열곤 했는데, 이때 만난 당대 유명 인사와 스타들이 오랜 고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몬테카를로 부티크 오프닝 파티에서 처음 만난 모나코의 그레이스 왕비는 착용하던 프레드 주얼리를 보여주며 그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상황을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녀는 자신이 끼고 있던 표범 반지를 아주 우아하게 보여줬습니다. 이 반지를 정말 좋아해서 절대 빼지 않는다면서 말이죠.”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는 파리 전시에서 처음 공개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 ‘무슈 프레드 이너 라이트’다. 발레리 사무엘이 조부이자 창립자인 프레드 사무엘에 대한 오마주로 완성한 피스 중 일부가 공개된다. 컬렉션은 무슈 프레드의 개성을 키워드로 한 여섯 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주 주얼리 전문가로서의 명성, 대표 라인인 프리티 우먼과 빵 드 쉬크르, 포스텐과 하우스의 상징이 된 솔레이 도르, 프렌치 리비에라의 태양 빛과 바다에 대한 애정을 함축해 그 자체로 프레드의 집약체와도 같다.
찰스 룽과 발레리 사무엘은 이번 전시가 무슈 프레드의 대담한 창의성과 남다른 정신이 깃든 86년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누구든 무슈 프레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영웅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전시는 11월 11일부터 12월 25일까지 더현대 서울 6층 ALT.1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 컨트리뷰팅 에디터
- 송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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