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타렉 아투이의 전시 ‘더 레인’

2023.12.01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타렉 아투이의 전시 ‘더 레인’

전시를 보러 다니는 시간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이 작품이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지점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내년 1월 21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타렉 아투이(Tarek Atoui)의 전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선사합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인 아티스트이자 작곡가 아투이는 고대 원소인 물, 불, 흙(땅), 공기(바람)의 변화와 순환의 개념을 담은 다양한 악기 제작과 연주법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중에서도 특히 물에 집중한 작품을 선보이며, 전시 제목을 ‘더 레인(The Rain)’이라 칭합니다. 정말이지, 전시장 곳곳은 물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소리로 가득합니다. 장구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물에 공기를 주입해 나는 소리(정말 궁금하지 않나요?)도 들리고, 빗소리를 닮은 전자음 등이 뒤엉키며 낯익은 동시에 생경한 빗소리로 완성됩니다.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을 만큼 몰입감 넘치는 빗소리입니다.

‘타렉 아투이: 더 레인’ 설치 전경, 사진: 아인아, 제공: 아트선재센터 ⓒ2023.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타렉 아투이: 더 레인’ 설치 전경, 사진: 아인아, 제공: 아트선재센터 ⓒ2023.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타렉 아투이: 더 레인’ 설치 전경, 사진: 아인아, 제공: 아트선재센터 ⓒ2023.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인류학적, 민속학적 태도로 소리 환경을 만들어내는 타렉 아투이는 한국의 전통 타악기와 전자악기를 결합한 사운드 설치 풍경을 펼쳐놓습니다. 소리와 악기를 리서치하기 위해 작가는 지난 2019년부터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자연의 소리를 기교 없이 담아내는 한국 타악기의 본질을 이해한 그는 이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합니다. 예컨대 북을 해체해 북피 대신 고무나 종이를 씌우기도 하고, 청자와 옹기, 한지, 짚 등을 타악기의 일부로 재창조하는 식이죠. 연구와 상상력의 결합으로 태어난 이 충실한 연주자들이 저마다 내는 소리의 향연은 꽤 조화롭습니다. 짚이 북을 쓰다듬는 소리는 담백한 바람 소리를 닮았고, 물이 담긴 꽹과리에서 퍼져 나오는 진동은 공기의 결을 바꾸며 미세하게 청각을 자극합니다. 한국, 전통, 타악기 등이 선형적으로 연상시키는 예상 가능한 소리 대신 ‘소리를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이라 할 만한 낯선 감각입니다. 기승전결도, 서사도 없는 청각적 퍼포먼스에 자꾸만 귀 기울이다 보면, 고요하게 생동하는 소리는 곧 공기가 되어 몸과 마음을 감쌉니다.

‘타렉 아투이: 더 레인’ 설치 전경, 사진: 아인아, 제공: 아트선재센터 ⓒ2023.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타렉 아투이: 더 레인’ 설치 전경, 사진: 아인아, 제공: 아트선재센터 ⓒ2023.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타렉 아투이: 더 레인’ 설치 전경, 사진: 아인아, 제공: 아트선재센터 ⓒ2023.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타렉 아투이: 더 레인’ 설치 전경, 사진: 아인아, 제공: 아트선재센터 ⓒ2023.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근대와 현대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이 시각 외의 감각을 스스로 존중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촉각, 후각, 청각 등에 대한 고찰이 현대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예컨대 음악은 아주 오랫동안 예술로 인정받은 반면, 소리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기교와 이성이 개입한 음악은 서로 다름을 피력하지만, 소리는 보편과 보통의 면모를 띤 채 시대와 국경을 넘나듭니다. 가까운 예로, 온갖 종류의 음악을 섭렵한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음악가도 말년에 음악 아닌 소리에 집중하고 그것을 수집해 음악보다 더 예술적인 소리를 만들어냈지요. 타렉 아투이가 새로운 악기, 즉 소리 나는 도구이자 설치물을 만들고, 이를 연주하는 방법론을 찾는 데 매진하는 이유 역시 다양한 연령과 계층, 공동체와의 합주를 모색하기 위함입니다. 소리와 소리의 관계는 곧 너와 나의 관계입니다. 뉴스만 틀어도 온갖 반목과 충돌 소식이 쏟아지는 때라 그런지, 생면부지의 예술가가 제안하는 소리의 공동체가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정윤원(미술 애호가)
사진
아트선재센터 제공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