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유리를 만드는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털을 만드는 공방 생루이.
지금 그곳에서 열리는 전시 <유리>에서 완전히 새로운 유리를 만났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차로 1시간여, 멀리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무성한 숲을 지나 소박한 마을에 다다르면 ‘생루이레빗셰(Saint-Louis-lès-Bitche)’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털 공방으로 가는 입구다.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크리스털 제품을 만드는 공간, 1775년에 제작된 첫 번째 크리스털 잔에서 시작되는 2만여 점의 아카이브를 상설 전시로 만날 수 있으며, 반짝임과 그 뒤에 숨겨진 장인들의 숨결이 공존하는 곳. 바로 생루이 공방이다.
공방의 역사는 15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방이 있는 보주(Vosges) 지역은 유리를 제작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지닌 곳이었다. 산림이 울창하고, 아주 가는 모래는 물론 칼륨 채집이 가능한 양치식물이 산재하며, 물을 손쉽게 공급할 수 있는 개울까지 있는 곳. 장인들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유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영국은 산화납을 섞으면 더 투명하고 아름다운 광택의 유리 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소식은 곧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보주 지역에까지 닿았다. 그렇게 환경적 특성에 새로운 기술이 더해져 생루이 공방에서 유럽 최초의 크리스털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크리스털이 어찌나 새롭고 아름다웠는지, 상류층의 생활 방식을 바꿔놓을 정도였다. 1767년 프랑스 왕실은 ‘크리스탈리 로얄 드 생루이(Cristallerie Royale de Saint-Louis)’라는 이름을 수여하고 생루이에서 생산된 크리스털 제품을 베르사유로 주문했는데, 이는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트렌드가 됐다. 귀족들은 일반 유리보다 훨씬 화려한 광택과 경쾌한 소리가 나는 오브제에 현혹되었고, 다양한 커팅으로 더 많은 빛을 굴절시킨 더욱 반짝이는 제품을 원했다. 테이블의 유리잔에서부터 천장 샹들리에까지 유리에서 크리스털로 전부 교체하는,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의 대전환을 불러온 것이다. 크리스털 잔이 없는 테이블 세팅은 있을 수 없었고, 혼수 목록에도 필수로 들어갈 정도로 19세기 귀족들의 크리스털 사랑은 대단했다. 그 위에 24K 금까지 입혀가며 ‘더 반짝이고, 더 화려하게’를 외치던 당시 트렌드는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가죽, 실크, 도자기 등 분야별 최고의 공방을 보유한 에르메스 그룹이 유일하게 소유한 외부 브랜드가 바로 생루이다. 그룹이 1995년에 인수한 생루이는 과거의 전통을 지키되 현대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통해 시대별로 특화된 디자인을 꾸준히 업데이트해왔다. 그 밖에도 에르메스 재단(Fondation d’entreprise Hermès)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생루이 뮤지엄 ‘라 그랑 플라스(La Grande Place)’에서의 현대미술 전시를 통해 다양한 문화적 크로스오버를 보여준다. 지금 생루이 공방은 더욱 특별하다. 2024년 4월 28일까지 재료 기반의 공예 기술과 혁신적인 사고에 대한 탐구를 목표로 두고 있는 ‘스킬 아카데미(Skills Academy)’의 전시 <유리(Glass)>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르메스 재단에서 주관하는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스킬 아카데미’는 2014년에 시작되어 2년 주기로 한 가지 소재를 깊이 있고 다양하게 탐구해왔다. 2021년부터는 ‘유리’를 주제로 22명의 장인, 디자이너, 엔지니어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공개 강의와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전문 지식을 함께 익힌 후 마지막 2주 동안 마르세유에 있는 유리 연구소 ‘CIRVA(Centre International de Recherche sur le Verre et les Arts Plastiques)’에 모여 워크숍을 여는 식이다. 결국 <유리>전은 그 연구의 결과물인 셈이다.
이 과정을 총괄한 프랑스 디자이너 노에 뒤쇼푸 로랑스(Noé Duchaufour-Lawrance)는 지난 2년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지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연구 결과가 공예 시연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환경을 고려해 기왕이면 폐유리를 재활용하는 것이 옳은 시작점이라고 생각했고, 마르세유라는 지역의 상징성 또한 디자인에 포함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특색 있는 유리병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죠.” 노에 뒤쇼푸 로랑스가 선택한 건 프랑스 남부의 상징이기도 한 리캬(Ricard, ‘파스티스’라는 증류주 종류로 남프랑스에 가면 꼭 마셔봐야 하는 술로 통한다) 유리병이었다. “무작정 리캬 공장에 찾아가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한 팔레트를 구해왔지만 의외로 공방의 장인들은 꺼리는 눈치였어요. 공산품, 즉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유리병과 맞춤 제작하는 유리 제품은 구성 성분이 동일하지 않다고 해요. 맞춤 제작 공방에 공산품 유리병을 잔뜩 가져가니 다른 성분의 유리가 섞일까 봐 노심초사한 거죠. 그래서 한쪽에 스킬 아카데미 작업만 가능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 유리가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만들어야 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해냈다. 초록색 병을 녹여 열의 강도에 따라 다른 색과 균열 패턴의 페탕크(Pétanque, 쇠공을 사용하는 프랑스의 구기 종목으로 주로 남프랑스에서 많이 즐긴다)용 유리 공을 완성한 팀, 주둥이 부분만 녹여 납작하게 누른 후 여러 개를 연결해 반투명 가리개 같은 예술적 오브제를 완성한 팀, 고난도의 유리공예 기술로 바닷속 신화를 연출한 팀까지 그들만의 방식으로 공방은 대중적인 술병을 예술적으로 변화시켰다. 비록 크리스털처럼 화려함은 없지만, 겸손하고 은은한 색감과 멋에 자연히 매료된다. 실험과 혁신에 중점을 두면서 상징적, 미적 중요성을 강조한 결과물이다. 세트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루나 뒤쇼푸 로랑스(Luna Duchaufour-Lawrance)가 구성한 자연 친화적인 공간 디자인 역시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가장 많이 사용된 붉은색 점토 벽돌은 40km 떨어진 벽돌 공장에서 그곳의 흙을 사용해 손으로 제작했다. 굽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기 때문에 전시 후에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산업용 유리병의 재활용으로 의미를 더한 작품과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둔 공간 디자인의 완벽한 조우. 전시 <유리>에서는 유리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배울 뿐 아니라 환경적 관점, 공예 기술의 다양성까지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루이를 방문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털 제작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공방 투어에 참여해야 한다. 액체 형태의 유리가 뜨거운 용광로에서 나와 리드미컬하게 모양을 갖춰가는 시작 단계부터 세밀한 커팅이 이루어지는 마지막 과정까지, 200여 명의 장인이 매년 30만 점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430년의 위대한 공예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곳. 공방의 공기에서는 노동의 근엄함이 느껴진다. 유리가 가진 모든 투명함과 광택, 장인들의 땀방울과 눈빛까지, 세상의 모든 반짝임이 다 있다. (VK)
- 글
- 양윤정
- 사진
- COURTESY OF CRISTALLERIE ROYALE DE SAINT-LOUIS,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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