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위시’의 감독을 만나다
<겨울왕국>을 세운 여왕이 또 한 명의 강인하고 주체적인 소녀 ‘아샤’와 함께 돌아왔다.
“신데렐라처럼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위시>의 ‘아샤’처럼 소원이 이뤄지지 않거나 소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죠. 하지만 그게 우리가 살면서 겪어내야 하는 것들입니다.” 제니퍼 리(Jennifer Lee)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저변에 깔린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화의 끝에서 용감한 소녀는 역경을 딛고 결국 자신의 소원을 이룬다.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것 같지만, 현실 속 소녀에게는 앞으로 겪어내야 할 난관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장애물에 부딪히겠지만 피하지 말고 헤쳐나가야 한다. “다섯 살 때 본 장면은 스물다섯 살이 됐을 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겁니다.”
각본가 출신인 제니퍼 리는 10년 전 크리스 벅(Chris Buck)과 함께 <겨울왕국> 신화를 일궈냈다. 디즈니의 첫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기록된 그녀는 <겨울왕국> 시리즈의 성공으로 지난 201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 디즈니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한 세기 동안 스튜디오가 축적한 유산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완성한 새로운 작품 <위시>를 선보였다. 백성들이 자신의 소원을 왕에게 맡기는 마법의 왕국 ‘로사스’, 백성들의 소원을 너그러이 들어주는 척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서 꿈을 앗아가는 ‘매그니피코 왕’, 이 비밀을 알게 된 소녀 ‘아샤’ 그리고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별’. 제니퍼 리는 원대한 꿈과 소원을 품은 수많은 몽상가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동 각본가이자 총괄 제작자로 애니메이션 <위시> 작업에 어떻게 기여했나?
5년 전 <겨울왕국 2>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어떻게 100주년을 기념할지 크리스 벅과 의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초창기 형태에 가장 충실하고 원형에 가까운 동화가 좋겠다고 여겼고, 신세대 작곡가의 노래로 채운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다. 디즈니의 유산에 기여한 아티스트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말이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총괄 제작자로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을 잡는 초고 작업에만 참여할 생각이었지만, <겨울왕국>부터 함께한 크리스가 캐릭터 설정을 비롯한 각본 작업까지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공동 각본가 앨리슨 무어(Allison Moore) 덕분에 CCO 역할을 하면서도 프로젝트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었다.
<위시>의 주제를 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디즈니의 유산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 유산을 관통하는 소원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다. 별에 소원을 빌고, 꿈을 품은 사람이 소원을 비는, 그런 것 말이다. 무언가를 꿈꾸고 바라는 것이 특별할 건 없지만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꽤 수동적이다. 별에 소원을 빌면서 이루어지길 바라니까. 디즈니의 유산을 들여다보면 우리 캐릭터들은 늘 자신의 꿈을 스스로 성취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우리 각자가 갖는 소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힘과 의지로 실현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항상 이야기해왔다. 우리가 마음속에 품은 소원, 바람은 세상을 살아갈 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정말 위대한 소원은 난관을 거치더라도 성취할 가치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왜 지금 자신의 소원을 스스로 성취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느꼈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놀라운 일, 인류가 이룩해낸 위대한 발전 뒤에는 언제나 꿈과 소원을 품은 누군가가 존재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보다 더 위대한 인간의 능력은 없다고 생각한다. 희망과 놀라운 가능성은 디즈니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사람들에게 마음속에 품은 꿈을 적극적으로 좇으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느꼈다.
<겨울왕국>과 <위시> 모두 강단 있고 용감한 소녀가 주인공이다. 이 점이 작품에서 굉장히 직접적으로 강하게 드러난다.
<겨울왕국>의 안나와 엘사, <위시>의 아샤의 공통점은 자기 삶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직접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 속에서 이들이 자기 자신의 영웅이 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여자, 남자 혹은 소년, 소녀, 누가 되었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어려움에 맞서야 한다는 인식은 역사적으로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관객이 <위시>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라나?
살면서 누구나 <위시>의 아샤 같은 시기를 경험한다.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시기 말이다. 이 시기에는 친구들과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주위 사람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일 뿐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세상에 옳지 않은 것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 그랬다. 10대는 매우 인도주의적 사고를 하는 시기라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 이런 청소년기의 특징에 초점을 맞춰 거기서 오는 대립과 상충,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쓸 것인가에 대한 갈등과 두려움을 담고자 했다. 아샤를 보는 관객은 그런 경험을 이미 했거나, 주위에 경험하는 이들이 있거나 혹은 그 시기는 지났지만 지금 이 순간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삶의 도전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고,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디즈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디즈니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계속 반복하고, 팀원이 힘을 합쳐 일한다. 작품을 다양한 측면에서 점검하고 확실히 하는 이유는 보편적인 주제를 독창적인 서사로 담아내기 위해서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전 세계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새로운 서사를 시도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그게 바로 디즈니의 유산을 이어나가는 진지한 자세다. 그동안 디즈니가 일궈온 가장 훌륭한 성취는 미래 세대의 훈련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는 것이다. 작품을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도 멋진 일이지만, 디즈니를 차별화하는 가장 큰 특징은 월트 디즈니가 전설적인 ‘나인 올드 맨’과 함께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한 그 방식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월트 디즈니의 유산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디즈니의 유산은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측면에서 본다면 서사적인 동화와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 이야기, 음악까지 전부 디즈니의 유산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디즈니의 유산은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희망은 경이로움과 상상력, 인내에 대한 것이자 폭풍우 속 한 줄기 빛과 같다. 내 주위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가장 이상적인 나의 모습, 가장 야심 찬 포부를 품게 해주고 그렇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다.
오늘날 애니메이션을 창작하는 이들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애니메이션은 매우 흥미로운 산업이다. 수많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그 작품을 보러 온다. 솔직히 과거와 비교할 때 차이점은 영상을 접하는 매개체가 다르고 시대가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과제라면 영상을 보는 장치가 다양해 각 장치에 따라 포맷을 달리하는 것 정도 아닐까? 요즘에는 영화관뿐 아니라 스트리밍 서비스, 스마트폰 같은 작은 화면과 큰 스크린 등으로 다양해졌으니 말이다. 서사의 핵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을 뿐. 애니메이션은 다른 여느 산업처럼 위기를 극복하며 발전해왔다. 세상에는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현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에서 애니메이션이 사랑받고 있다는 점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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