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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한 관심 끄기

2024.01.12

by 이숙명

    타인을 위한 관심 끄기

    불필요한 가십에 관심을 끄는 건 내 시간을 지키는 길일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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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인터넷 켜기다. 네이버에 편집해둔 언론사 헤드라인을 확인한다. 정치, 경제 뉴스에 집중하려 애쓰지만 배우 누가 이혼을 하고 어느 아이돌 그룹의 소송은 어떻게 전개되는지 따위 가십이 끼어든다. 소셜 네트워크를 열면 오늘의 거국적 이지메 대상이 누구인지 즉각 알 수 있다. 연예인이나 예술가일 때도 있고 자영업자일 때도 있다. 신원 미상의 인터넷 ‘네임드’일 수도 있다. 아직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가해자일 때도 있다. 대중은 그들을 비판하면서 오늘 치 정의감을 충족시킨다. 사회적 약자 수만 명을 사지로 몰아넣는 나쁜 정치인이나 금융 사범, 아동 성범죄자, 길거리 흉기 난동범보다 자신들의 입길에 생계가 갈리고 정신 건강을 위협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단죄할 때 대중은 더욱 불타오른다. 소란스러운 곳은 피해 가는 게 군자의 처세. 나는 유유히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책상 앞에 앉는다. 저 모든 가십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자신을 위해 가십에 신경 끄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지는 모르겠다. 요즘 자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이 모든 불필요한 정보를 잠시 눈에 담는 것, 타인의 망신스러운 모습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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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남들이 안 보는 데서는 슬쩍 윤리의 갑옷을 풀어헤치기도 하고 술에 취해 경거망동하기도 한다. 여기서 받은 스트레스가 저기서 폭발하기도 하고 인생이 도무지 풀리지 않을 때 홧김에 소소하게 반사회적인 행동을 했다가 개과천선하기도 한다. 시대의 윤리의식이 변하면서 그때는 맞았던 일이 지금은 틀린 일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맞는 일이 나중에는 틀린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가끔은 그야말로 ‘본의 아니게’ 튀어나오는 언행 때문에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마가 끼었다거나 뭐가 씌었다는 표현이 꼭 맞는 상황 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배우도 동영상의 한 장면만 캡처하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포착할 수 있는 것처럼 전반적으로 훌륭한 인생이라도 오점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인생의 어느 순간이 타인의 기억 속에 캡처되어 돌아다닐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인터넷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 각국에서 꾸준히 제기된 ‘잊힐 권리’ 논쟁은 아직 이렇다 할 공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개인이 검색엔진에서 원하는 정보를 손쉽고 깔끔하게 삭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해도 타인이 지닌 생체 메모리와 가치판단까지 제한할 수는 없다. 한번 원치 않는 정보가 노출된 경험을 한 사람에게는 모든 타인이 지뢰밭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필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사안에는 적당히 관심을 끄는 것이, 나 자신의 시간 활용이나 정신 건강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예의로서도 중요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점점 자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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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에서 마주치는 가십을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는 게 일의 일부이다 보니 그것들을 영영 피할 수도 없다. 연예인 누구 인성이 어떻다더라, 유튜버 누가 무슨 의혹으로 나락 갔다더라, 셀럽 누가 누구랑 어떤 식으로 논다더라 식의 콘텐츠는 추천 거부 버튼을 누르고 눌러도 비 온 뒤 잡초처럼 알고리즘에 돋아난다. 개인 미디어만 피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양질의 뉴스를 얻기 위해 선택한 언론에도 조회 수 피싱용 가십이 넘쳐난다. 그런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데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든다. 그 때문에 옳은 곳으로 향해야 할 주의력도 손상된다. 고백하자면 나도 새해 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앙보다 디스패치 특종이 궁금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주제에, 타인의 추문을 접할 때 나는 정의감보다 죄책감을 느낀다. 개인 대 개인도 아니고 인터넷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나와 무관한 사람의 스캔들을 접할 때는 더 그렇다. 내가 이걸 봐도 되나? 알아도 되나? 본인이 공개하길 원치 않았을 누군가의 사생활을 엿보는 건 몰래 찍힌 상대의 나체를 보는 것과 뭐가 다를까.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가십 문화의 협력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두렵게 만든다. 언젠가 저 단두대에 내 목이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진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나는 단 한 번도 세상에서 가장 윤리적인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인터넷과 미디어를 뒤덮은 지저분한 가십은 정보의 주인공뿐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도 폭력이다.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라면 나는 오히려 ‘모를 권리’를 갖고 싶다. 미디어들이 더 이상 무고한 이용자를 가해자로 만들지 않기를, 우리가 가족에게 하듯 벌거벗은 모습에서 눈 돌려주는 예의를 모두에게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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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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