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휴식이 되는 곳, 나트랑
언젠가부터 여행은 내게 휴식이 아니었다.
그간 여행에서 날 움직인 건 조급함이었다. 어떻게 낸 시간인데, 어떻게 모은 돈인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하루 3만 보를 채우는 여행은 여독 풀 시간도 없는 직장인이 더 이상 즐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 후 내 여행의 목적지는 숙소, 그 자체가 됐다. 타율이 좋았다곤 말 못한다. 심심하기 위해 떠났건만 고독감은 선명해졌고 미식은커녕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서야 했거나 그나마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란 멜리아 나트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며 문득 깨달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걸. ‘그란 멜리아’는 스페인 출신 ‘멜리아 호텔 인터내셔널(Meliá Hotel International)’ 계열 중 최상위로 손꼽히는 브랜드다. 동남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난 7월 베트남 나트랑에서도 주목받는 여행지 베가 시티(Vega City)에 오픈했다. 그란 오션 주니어 스위트, 비치 프론트, 오션 프론트 풀 빌라 등 무려 20개 타입, 총 272개 객실이 손님맞이에 나섰다.
리조트 초입에서 든 감상은 ‘여기가 베트남이 맞나?’였다. 모던한 로비도 한몫했지만 버기를 타고 오션 프론트 풀 빌라로 향하는 길이 특히 그랬다. 푸릇한 식물로 가꾼 산책로와 길 따라 늘어선 깨끗하고 새하얀 빌라 단지의 풍경은 스페인 지중해의 작은 마을을 연상케 했다. 객실은 럭셔리 풀 빌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췄다. 간만에 여행 목적을 제대로 달성한 기분이었다. 여기서 보낸 시간도 풀 빌라의 전형이었냐고 묻는다면, 아니 그보다 더 새로웠다.
그란 멜리아의 모토는 ‘멋진 인생(A life Well Lived)’이다. 스페인을 관통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멋진 인생이란 아이의 삶과 다를 게 없는 걸까? 머무는 내내 거대한 요람 안에 있는 것 같은 안락함을 느꼈다. ‘당신이 할 일은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것뿐!’ 객실을 비롯해 리조트의 모든 시설과 서비스가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현지 음식이 아무리 입에 잘 맞아도 금세 찌개의 얼큰함이 그리워지는 것이 여행의 숙명이건만, 이곳에선 그럴 틈조차 없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저녁은 또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하기 바빴으니까. 그란 멜리아에는 풀 바를 제외하고 총 네 곳의 다이닝이 있다. 지중해와 아시아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내추라(Natura), 오마카세 코스가 일품인 고급 일식 레스토랑 시부이(Shibui), 로비 안쪽에 있는 라운지 테이아(Theia) 등이다. 몸은 내내 리조트 안에 있었지만 혀는 끼니마다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주인공은 언제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하이라이트는 1월 13일 오픈 행사와 함께 화려하게 데뷔한 스페인 레스토랑, ‘히스패니아(Hispania)’였다. 이날 선보인 10코스는 미슐랭 스타 기록을 가진 마르코스 모란(Marcos Morán)이 지휘했다. 히스패니아의 컨셉과 메뉴 개발에 기여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베트남 식재료를 곁들인 스페인 요리라! 낯가림도 잠시, 이내 ‘먹기’에 속수무책으로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숭어, 참치, 그루퍼 등 싱싱한 바닷고기의 쫄깃한 식감과 올리브, 레몬 등 스페인 향취가 물씬 나는 재료가 맛깔스러운 조화를 뽐냈다. 와인 셀렉션도 훌륭했다. 굵직한 순서마다 각기 다른 와인이 페어링을 도왔는데 한 모금씩 혀를 적실 때마다 각 요리의 맛이 더 선연히 와닿았다.
할머니 댁에 내려갔을 때만큼 매일매일 배 터지게 먹었지만 속은 어느 때보다 가뿐했다. ‘소화’ 과정도 아주 느긋하고 다채로웠다. 이제 막 해가 뜬 바다를 바라보며 진행한 요가 수업은 하루를 개운하게 열어주었다. 딱딱하게 뭉친 몸은 터키식 목욕탕 하맘과 온센이 마련된 스파에서 뭉근하게 풀어냈다. 시간대마다 다른 빛을 내는 산책로는 걸을 맛 제대로 났다. 프라이빗 풀장이 지겨워지면 빌라 앞 계단을 통해 작은 해변으로 향했다. 모든 움직임이 곧 쉼이었다. 규칙적인 파도 소리와 푹신한 베딩은 숙면하지 않기가 더 힘들었다.
고급스러운 공간과 시설만큼 인상적인 건 직원들이었다. 날 ‘보살펴준’ 담당 버틀러, 산책로에서 만난 정원사, 로비에서 마주친 매니저까지 모두 격식 있지만 친근했고 자상하지만 정중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방인이 아니라 마을의 새로운 이웃이 되어 환대받는 기분이었다. 휴식이 더 개인적이고 편안했던 이유다. 그러니까, ‘그란 멜리아 나트랑’에 대한 내 소감은 간단하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잤다. 멋진 여행이었다.
- 포토
- 그란 멜리아 나트랑 제공, 이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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