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미나즈에게 던진 ‘구글에선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
생리통 때문에 의존하던 마약성 진통제, 가슴과 엉덩이 수술을 둘러싼 끝없는 논란 속에서 니키 미나즈가 과거를 직시했다. 여러 자아로 활동한 자신에게 추가된 ‘당당한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 때문이다.
2023년 8월 어느 저녁이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애틀랜타 풀턴 카운티 교도소에 13개 중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입건되는 순간, 샌타모니카 대로는 니키 미나즈(Nicki Minaj)의 핑크빛 뺨과 같은 석양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작 미나즈는 정치에 신경 쓸 시간도, 창문 하나 없는 로스앤젤레스 녹음 스튜디오를 감싼 몽환적인 여름 색조를 감상할 겨를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지난 12월 발매된 미나즈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선공개곡 ‘Last Time I Saw You’의 마스터링을 얼른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스스로를 아주 못살게 구는 중이었다. 버스(Verse)가 명료하게 들리지 않아 믹싱 엔지니어에게 수정을 요청한 상태였고, 결과적으로 곡은 처음보다 밝아졌다. 하지만 이제야 “비트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라디오처럼 선명하게 들린다”며 미나즈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녹음 과정에서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소리에 귀 기울이는 아티스트로 유명하다. 녹음한 부분을 계속 되감아 듣는 것은 물론 녹음 도중 가사를 수정하는 일도 많다. 톤 자체를 바꾸고, 드럼을 추가하거나 빼기도 한다(그녀의 대표곡 ‘Anaconda’도 무려 27가지 버전이 있다). 미나즈는 가사에 풍성한 의미를 싣고, 사람들이 그 가사를 곱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엔지니어에게 요구 사항이 많은 편이다. “제가 좀 유별나요.” 그녀도 인정한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가 듣지 못하는 것을 제가 들을 때가 있죠. 녹음 과정이 어떨지 감이 오시나요? 어쨌든, 저는 틀리는 법이 없어요.”
신곡 ‘Last Time I Saw You’는 다소 멜랑콜리한 분위기의 곡이다. 누군가를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팬들은 2010년 발매된 충격적인 완성도의 데뷔 앨범 <Pink Friday>에 수록된 이별 노래 ‘Moment 4 Life’를 떠올리곤 한다. 녹음실 한가운데서 미나즈가 눈을 감은 채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후렴구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널 봤을 때, 더 꼭 안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너에게 전화를 걸던 그날 밤이 부디 시간 낭비는 아니었기를 바라/ 너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길 바라/ 어쩌면 네가 싫어서 밀어낸 건지 몰라(I wish I’da hugged you tighter the last time that I saw you/ I wish I didn’t waste precious time the night when I called you/ I wish I remembered to say I’d do anything for you/ Maybe I pushed you away because I thought that I’d bore you).” 후회와 불확실한 감정을 담은 이 곡에 대해 미나즈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죄책감을 느끼며 쓴 노래예요. 생각보다 죄책감에 대한 노래는 별로 없거든요.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마음을 담았어요. 후렴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완성했죠. 매일 보니 너무 당연하게 여기게 된 사람들이요. 과거는 되돌릴 수 없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하며 현재를 누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 바쁘게 일하고 뭔가에 늘 얽매여 살다 보면 주변 관계에 소원해지기 쉽죠.” 말을 잠시 멈춘 그가 허공을 응시한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얘기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릴지 고민할 때 취하곤 하는 동작이다. “물론 이 노래가 슬프게 들리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기분이 밝아졌으면 좋겠어요. 왜, 행복하면서도 슬프게 들리는 노래 있잖아요. 아델 노래를 들으면 그런 감정이 들거든요. 이미 100만 번도 더 울었지만, 또 들으며 울고 싶은 곡이죠.”
지금 눈앞의 이 여인이 랩으로 온갖 불만을 퍼붓던 그 니키 미나즈가 맞나? 10년 전 “네 뇌를 씹어 먹어버리겠다”는 파격적인 가사로 신드롬을 일으킨 이가 맞나? 태생부터 다른 ‘스웨그’로 미나즈는 빌보드 핫 100에 이제까지 총 119곡을 차트인시키며 테일러 스위프트와 함께 핫 100 차트에 100곡 이상을 진입시킨 여성 아티스트, 빌보드가 선정한 2010년대 최고의 여성 래퍼로 꼽히며 눈부신 왕좌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래퍼로 활약하며 미나즈는 굳건히 존재하는 곳곳의 ‘보이 클럽’을 과감하게 침공했으며, 여성성을 대놓고 긍정하는 방식으로 동시대 여성에게 무한한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팬덤으로 꼽히는 그녀의 든든한 군단 ‘바브즈(Barbz)’의 증언처럼 미나즈는 한 번도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러나 팬데믹이라는 고립된 위기 속에서 그녀는 서른일곱에 엄마가 되었고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어릴 땐 아버지의 관심과 어머니의 인정이 고팠고, 안락한 생활과 평화로운 가정, 새 모국에서의 인정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했다. 데뷔 앨범을 오마주한 5년 만의 앨범 <Pink Friday 2>는 그동안 꿈꿔온 많은 것을 이룬 한 위대한 여성의 서사를 노래한다. 퀸스(Queens)의 서트핀 대로(Sutphin Boulevard)에서 팔던 CD에서 추출한 리듬에 직접 쓴 가사를 얹어 래퍼의 꿈을 펼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도 담겨 있다. 힙합 음악계에서 그녀처럼 유명해지면 별의별 래퍼와 프로듀서들이 자신의 비트와 코러스를 들고 와 “제발 한 소절만 추가해 당신 곡이라고 해주세요!”라며 옷자락을 붙잡곤 한다(그렇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미나즈는 자신이 쓰지 않은 랩으로는 녹음한 적이 없다). “이제껏 만든 모든 음악이 자랑스럽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거기에 진짜 저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는 진짜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긴 시간 미나즈와 함께 작업해온 엔지니어 오브리 ‘빅 주스’ 들레인(Aubry ‘Big Juice’ Delaine)에 따르면 뮤지션만큼 창작 과정의 모든 면을 정교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Pink Friday 2>는 이전 앨범이 지닌 DNA를 바탕으로 가사와 멜로디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니키 미나즈의 히트곡을 떠올려보세요. 전부 다른 뮤지션의 음악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들레인이 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미나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다운 음악을 만드는 것보다 스타덤에서 느끼는 압박을 수많은 엔지니어의 고유한 감성으로 표현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미나즈의 음악은 항상 달랐다. 데뷔 앨범 <Pink Friday>의 인트로곡 ‘I’m the Best’에는 “나는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소녀들을 위해 싸운다(I’m fighting for the girls that never thought they could win)”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러나 2023년의 미나즈는 고백한다. “이제 그런 말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낙관적인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아요.”
돈과 명예, 성공, 모성애, 중년 등의 변곡점을 따라 언제나 드라마틱하게 급변해온 삶이지만 그는 데뷔하기 직전 약 3년이란 시간 동안 경험한 고난은 앞으로의 삶에 찾아오지 않을 거라 호언장담한다. 정말이지 칠흑 같은 암흑기였다. “빈털터리로 나앉을지, 완전히 실패하게 될지 어둠 속에서 벼랑 끝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그런 불완전함보다 더 복잡하고 두려운 기분은 없죠.”
유일한 빛의 진원지인 촛불 때문에 녹음실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긴 시간 녹음할 때 미나즈가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샤넬 로고가 달린 핑크색 시퀸 블라우스와 청바지, 샤넬 트위드 핑크 샌들을 착용한 그녀 옆엔 ‘Barbie World’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한 핑크색 샤넬 PVC 지갑이 놓여 있었다. 큐티클 라인에 반짝이는 스톤을 올린 핑크색 손톱은 너무 길어서 미나즈는 문자를 보낼 때마다 엄지의 평평한 면을 적극 활용했다. 기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날만큼은 따뜻하고, 편안하며, 친절한 사람이었다.
“다른 아티스트도 공감할 거예요.” 쉬는 시간에 미나즈가 입을 열었다. “전성기에는 뭘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요. 주변 공기가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하죠. 슬픈 노래를 써도 행복해요. 하지만 평가와 평판에 신경 쓰는 순간 자유는 사라지고, 나의 존재가 급격히 쪼그라들죠. 천재적인 실력을 지닌 아티스트들이 얼핏 보면 아주 쉽게 창작하는 것 같지만 안에서는 스스로와 타인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전전긍긍하는지 몰라요. 명성은 이를테면 체포당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달까요. 불안하면서 짜릿하죠. 그런 시기를 거치며 알게 된 것은 모두가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잘해보려고 해도 한결같이 부정적인 결과만 내기도 하죠. 잘하든, 그렇지 않든 슬프게도 상처받는 것은 매한가지예요.”
2019년 9월 미나즈는 자신이 이룬 성공에 대해 연예계와 안티팬들에게 공을 돌리는 것처럼 보이는 어투로 SNS를 통해 중대 발표를 했다. “은퇴 후 가정을 이루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죠.” 우상을 잃은 바브즈는 혼란에 빠졌고, 얼마 후 해당 트윗은 삭제되었다. 미나즈는 유명 래퍼(드레이크? 에미넴?)와의 열애설로 팬들을 놀라게 했지만 결국 케네스 페티(Kenneth Petty)와 결혼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페티가 파란만장한 과거를 지닌 일진 출신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커졌다. 페티는 미나즈를 오니카(Onika)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미나즈의 본명은 오니카 타냐 마라즈(Onika Tanya Maraj)로 카리브해 남쪽에 자리한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이다. 미나즈는 매니저가 지어준 예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미나즈의 명성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는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자”고 말하며 미나즈에게 청혼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저에게는 정말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에요. 늘 서로를 웃게 만들고, 아주 유치하게 지내기도 하죠. 특히 페티와 옛날이야기를 떠올리는 시간이 좋아요. 니키 미나즈라는 신분으로 누군가를 만났다면 내가 니키 미나즈라서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거고, 그럼 매일같이 니키 미나즈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을 거예요. 그런 삶을 살며 임신했다면 언젠가는 무너져 내렸을 것 같아요.” 결혼과 모성애가 그녀를 ‘니키 미나즈’라는 브랜드로부터 탈출하도록 만든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 “오래전부터 그런 예감을 갖고 살았어요. 언젠가 가족이 생기고 나면 왠지 더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다고요. 지인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죠. 아이가 생기면 요리에 전념하고 싶다고, 그래서 매일같이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줄 거라고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무의식 속에 항상 존재하고 있었나 봐요. 그런 미래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죠.”
미나즈는 아들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파파 베어(Papa Bear)’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니키 미나즈 부부는 조부모가 가끔 아이를 보러 오는 것을 제외하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를 키웠다. 그녀의 평판과 과거를 의식한 사람들은 그녀의 가정과 육아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페티와 함께한 시간을 되새기며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여전히 없어요.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죠.”
한때 미나즈의 트위터는 대중에게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성애가 그녀의 인내심을 부쩍 성장시켰고, 다행히 이젠 잘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인터뷰 도중, 나는 미나즈에게 세계 최고의 엄마가 될 거라고 자부하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가정주부였던 내 친구는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자존감이 자녀의 성공에 대한 기대와 다른 엄마에 대한 우월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곧바로 전업주부의 삶에 후회가 밀려들었고, 더는 삶을 낭비하지 않겠다며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이들의 소중한 어린 시절을 놓쳤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미나즈가 맞장구쳤다. “가정주부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때도 죄책감을 느꼈고, 그럴듯한 워킹 맘으로 살아갈 때도 아이의 소중한 순간을 놓치는 것 같아 또다시 죄책감을 느꼈죠. 결국 완벽하게 느긋한 상황은 찾아오지 않았어요. 어떤 선택이든 죄책감은 필수적인 감정이라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미나즈가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세 살 때 그녀의 부모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뉴욕으로 먼저 이주했고, 미나즈는 이모와 삼촌, 사촌들과 부대껴 살며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로부터 2년 뒤, 엄마와 아빠, 오빠와 재회한 미나즈는 가족과 함께 퀸스의 사우스 자메이카에 정착했다. 그러나 더 큰 불행이 들이닥쳤다. 생계는 여전히 어려웠고, 그녀는 뼈저린 가난을 체험하게 됐다. “이민자로 살면 돈의 가치를 빨리 깨우치게 돼요. 보통의 아이들은 잘 모르고 자라는 것을 낱낱이 알게 되죠. 아이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일찍부터 눈치챕니다.” 미나즈는 그녀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모든 여자애들이 50달러짜리 휠라 부츠를 유행처럼 신고 다닌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하던 친구가 어느 날 저에게 ‘너희 엄마는 이런 거 사줄 수 있어?’라고 물은 적 있어요. 그런 말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 없어요.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다음 불쑥불쑥 튀어나오죠.”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어린 시절 기억은 또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오순절 교회에 다니며 외운 기도문이다. 미국으로 막 이주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다섯 살. TV 드라마를 즐겨 보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거실엔 언제나 <우리 생애 나날들(Days of Our Lives)>을 틀어놓고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다섯 살의 미나즈는 자신의 인생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게 됐다. 한번은 무릎을 꿇은 채 다음과 같이 기도하기도 했다. “신이시여, 우리 엄마에게 집도 사주고, 친척과 이웃까지 거뜬히 돌볼 수 있을 정도로 저를 부자로 만들어주세요.”
1980년대 코카인은 미국 대도시에 거주 중인 여러 흑인 가족의 삶을 망가뜨렸다. 몇 해 전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미나즈의 아버지도 직접 마약을 제조해 복용했다. 게다가 알코올 중독자였고, 가정 폭력을 일삼았으며 방화도 저질렀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했을 만큼 마약 문제가 팽배하던 시절이었지만 미나즈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남편의 마약 중독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빠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던 것이 생각나요. 자기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걸 그땐 몰랐어요. 마약에 중독된 아빠가 우리 비디오게임을 훔쳐서 파는 것을 보고 가족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죠. 이젠 아빠도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요. 중독이 아빠의 몸과 삶을 장악한 거예요.”
그런 혼란 속에서도 미나즈는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이 되어야 한다고 마음까지 먹었다. “너무 일찍 철들었지만 비전은 확고했어요.”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라과디아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성공을 확신했기 때문에 얼른 오디션을 보고 싶었다. “열아홉 살이 되면 할리 베리나 제이다 핀켓 스미스처럼 유명한 배우가 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오디션에 떨어진 충격이 상당했죠. 뽑힐 수밖에 없다고 자신했거든요. 점점 돈이 필요해졌어요.” 고객을 무례하게 대했다는 이유로 그녀가 레드 랍스터 3개 지점에서 해고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사무실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 동네에 살던 뮤지션의 작은 무대에 오르게 됐고 자신만의 랩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마이스페이스(Myspace)에 업로드한 공연 영상이 업계에서 심상치 않은 주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래퍼 릴 웨인과의 협업도 성사됐다. 이후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서 니키 미나즈의 존재감이 빠른 속도로 뚜렷해졌고, 2009년 릴 웨인의 레이블 ‘영 머니(Young Money)’와 계약을 맺으며 그녀는 꿈꾸던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2010년대 최고의 랩 음반으로 꼽히는 <Pink Friday>가 세상을 점령했다.
미나즈는 파티를 싫어했다.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마리화나를 피우는 여자를 보면 손가락질을 하곤 했다. 클럽에서는 칵테일 한 잔에 취해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제가 아빠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될까 봐 불안했어요.” 몇 년 전, 그녀는 작업을 위해 애틀랜타에 머물던 중, 생리통으로 퍼코셋을 처방받은 적 있다. 약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지만 통증이 없을 때도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잦아진 것은 위험신호였다. “누구도 이 약이 마약의 일종이고 중독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다행히 저는 스스로 멈췄죠. 중독되면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미나즈는 연예계에서 약물 남용의 위험이 높다는 것을 경고한다. “마이클 잭슨부터 휘트니 휴스턴, 프린스까지 연예인은 항상 자기만의 세상으로 도피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요.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지만 쉽지 않죠.”
미나즈는 마이클 조던의 생애를 조명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에 출연한 적 있다. 마이클 조던은 이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팀 동료들과 라이벌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조던이 매 경기에 임하며 올바른 결정을 위해 혀를 깨물고 버텼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중은 연예인이 많은 말을 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아요. 단지 예술을 원하죠. 돌이켜보면 제가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쓴 것들, 그래서 제 시간을 망친 것들 때문에 진짜 집중해야 하는 일에 방해를 받았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져요.”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 참석한 후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미나즈는 녹음실로 잠적하기 전 잠시 집에서 가족과의 시간을 만끽했다. 1년 전 구입한 널찍하고 현대적인 새집은 히든힐스에 자리한다. 하루 종일 새하얀 소파 위에서 깡충깡충 뛰거나 복도를 기어다니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 파파 베어가 미나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웃었다. 집에서 여유를 부릴 시간은 많지 않지만 게스트 룸에 설치한 간이 녹음실은 가족의 곁을 지키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요리 역시 심신 안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요리사의 자질을 타고났음을 깨달은 그녀는 가족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일에서 엄청난 안식을 얻는다고 고백했다. “확실히 더 행복해졌어요.” 마법의 알약이나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단순한 관점을 취한 덕분이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그럼 신기하게도 고마운 일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삶을 끝없는 경주처럼 여기며 살았는데 멈추고 보니 뛸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게 가장 행복한 변화예요. 특별한 마법을 부린 게 아니에요.”
미나즈에게 SNS는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그녀는 X에서 현재 약 2,8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는 인스타그램보다 10배 적은 수치다. 그러나 꼭 필요한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그는 소셜 미디어를 끊어도 좋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한다. 그녀는 팬들에게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으며, 특히 고등 교육의 열렬한 신봉자이기도 하다. 데뷔 초부터 그녀는 ‘보디 포지티브’를 앞세우며 스스로의 몸매를 과시했으며 특히 유색인종 여성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얼마 전, 스물다섯 살 때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영상을 보게 됐는데 억만금을 줘서라도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더군요. 하지만 지금도 내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이야기는 주저 없이 하는 편이에요.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제 동네에 유난히 만연한 당뇨병을 물리치기 위해 아들에게 과자와 사탕, 주스를 주지 않기로 선언했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처럼요. 자신의 몸을 긍정하려면 일단 건강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전부 헛소리로 들리겠죠. 최근에는 가슴 축소 수술을 받았는데 마음에 들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큰 엉덩이를 원했다면 이젠 그게 아주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여러분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누구처럼 글래머러스한 몸이 아니더라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세요. 어떤 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미나즈는 임신 중 몸매 유지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 그녀는 어머니가 된 많은 여성이 그런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최근 그녀는 SNS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활용하는데 더 많은 엄마들과 소통하고 담론을 교류하는 일에 골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구글로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 너무 많아요.” 더불어 정신 질환과 약물 중독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시간을 너무 무기력하게 흘려보내는 것 같아요.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씩 방에서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잖아요. 어떤 것이 문제라고 공론화하는 건 많은 사람의 인생을 구제할 수 있어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들이 다른 사람도 자신이 겪는 문제로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미나즈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미국의 코로나19 정책을 공개 저격한 일이었을지 모른다(물론 당사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2021년 미나즈는 트위터를 통해 지인이 백신 접종 후 발기부전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무조건적으로 백신을 믿으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언론과 동료, 심지어 팬들까지도 그녀의 의견이 충분히 과학적이지 못하며 보건 및 공공 정책 전문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비판했다. 별다른 처벌은 없었지만 미나즈는 여전히 백신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저는 대중과 그렇게 잘 화합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판단하기 좋아하죠.” 미나즈는 경찰의 권력 남용에 반대하고, 포괄적인 의료보장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정당에 속해 의견을 내는 일은 꺼린다. “제가 정치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낼 때마다 사람들이 화를 내더군요. 죄송하지만, 제가 누구를 위해 캠페인에 가담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정부에서 하는 일 중엔 우리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기도 하고, 어느 쪽을 두둔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대중이 미나즈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스스로를 착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점일 것이다. 그녀는 2015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자신에게 ‘예의 없다’고 말한 마일리 사이러스를 향해 날 선 발언을 했고, 분노를 유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들어간 적도 있다. “늘 사람들에게 비열한 여자와 ‘나쁜 년’의 차이는 ‘나쁜 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라고 말해왔어요. 저를 ‘나쁜 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겠지만, 만약 제가 욕을 퍼붓던 상대가 제게 뭔가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기꺼이 줄 거예요. 제 감정과 행동에는 거짓이 없죠.”
뮤지션으로서 미나즈는 자신의 음악과 캐릭터에 대해 다양한 자아를 형성해왔는데 하라주쿠 바비(Harajuku Barbie)와 다혈질의 영국 동성애자로 설정된 로만 졸란스키(Roman Zolanski)가 그 예다. 미나즈는 자신의 ‘본캐’ 오니카 타냐 마라즈와는 완전히 다른 자아로 살아가기를 즐긴다. “슈퍼맨 수트 같은 거죠. 순식간에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거예요.”
지난 몇 년 동안 미나즈를 항상 자신의 패션쇼 프런트 로에 초대한 친구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만의 예술과 분리된 자아를 지켜내려는 미나즈의 개인적인 도전을 높이 평가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창의적인 결과물이 삶의 다양한 시간대에 따라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큰 영감을 줘요. 살면서 출중한 연기자를 수없이 만나는 행운을 누렸는데 그들은 무대 위에서나 언론에 비치는 모습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곤 하죠. 니키 같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면을 드러낼 때, 그건 그 사람을 더 깊이 바라보는 계기가 돼요.”
만남이 마무리될 때쯤 미나즈는 마지막으로 새 앨범 수록곡 ‘Big Difference’를 들려주었다. 몇 년 전에 쓴 곡으로 오랜만에 다시 사랑에 빠진 스스로를 관찰하는 내용이다. 겉보기엔 자기과시로 가득한 곡이지만 우연히 틱톡에서 바이럴되어 갑작스럽게 얻은 명성을 자신의 실력이라 착각하는 벼락 스타와 자신의 격차를 겨냥한 곡이다. “삶의 비밀을 깨우쳤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어떤 건지 아세요?” 미나즈가 내게 물었다. “타인을 내 멋대로 조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제겐 충격적인 진실이었어요.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을 둘러싼 모든 걸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그건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죠. 그걸 깨달은 뒤부터는 뭔가를 통제하고 싶을 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요. 아들의 얼굴을 잠자코 응시하는 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죠.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자그만 파파 베어는 제가 엄마이자 아티스트로 잘해내기 위해 얼마나 긴장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미나즈의 일상은 매일이 전쟁 같기도, 지극히 평화로운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몇 달 전, 파파 베어가 낯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흥분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처음엔 전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미나즈 특유의 스타카토식 웃음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신을 따라 하는 사람이야 늘 존재했지만 어쩐지 이번만큼은 완전히 생경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하며 그녀가 먼 기억을 붙잡는 듯 어딘가를 응시했다. (VK)
- 포토그래퍼
- 노먼 진 로이(Norman Jean Roy)
- 스타일리스트
- 막스 오르테가(Max Ortega)
- 글
- 롭 해스켈(Rob Haskell)
- 헤어
- 레이시 레드웨이(Lacy Redway), 디온테 그레이(Dionte Gray)
- 메이크업
- 라울 알레한드레(Raoúl Alejandre)
- 프로듀서
- 붐 프로덕션(Boom Productions)
- 세트
- 비키 루치(Viki Rutsch)
- 로케이션
- 언타이틀드 NYC(Untitled 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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