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목격한 어떤 삶과 죽음
박가연 작가는 마을에서 전승되는 전통 의례와 풍습에서 일찍이 삶의 본질을 깨우쳤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목격한 삶과 죽음이 작품의 시작점이다.
무당의 굿을 직접 본 적 있나. 박가연 작가는 2021년 <망월(望月)> 전시 이후 개인전 구상과 박사 학위 논문 완성을 위해 굿판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진도에서 굿을 봤을 때는 갑자기 터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뭔가에 억눌려 살고 있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기에 우는 내내 스스로가 의아하게 느껴졌다. 작업을 지속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굿의 노랫가락에 맞춘 춤사위가 마음속 무언가를 건드렸다고 정리했다.
“2022년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출품작 리서치를 위해 5일 동안 강릉 단오제를 참관했어요. 씨름, 그네뛰기와 같은 전통 놀이만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강릉 단오제의 핵심은 의외로 굿이었죠. 5일 내내 무당들이 단오제단에서 굿을 벌이더군요. 가정과 지역의 평안을 빌며 무형문화재와 전수자들이 굿을 하고, 복채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새롭게 공부를 하다 보니 문화의 기원은 무속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예술의 시작이 샤먼과 주술사, 종교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한국 민속 신앙에서는 여성이 중심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샤먼은 대부분이 남성이지만 우리나라는 샤먼과 주요 소비 계층이 모두 여성이다. 가부장제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삶이 무속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워서, 그는 관련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여성이 직접 택하고 의지할 수 있었던 무속 신앙의 바탕에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박가연의 관심은 꾸준히 전통 의례와 행사에 머물렀다. 한국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전남 영암의 할머니 댁에서 마주한 경험이 그녀의 작품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친 것. “아직까지도 풍수지리를 살피거나 이사할 때 손 없는 날을 택하는 풍습은 전통문화에서 출발한 거예요. 전통과의 단절 없이 현대에도 이어질 수 있는 풍습이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글로벌 시대이니만큼 작가도 작품 세계에서 다양성과 차별화가 중요하죠. 국가 정체성, 성 정체성 등이 작가에게 일종의 독창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리엔탈리즘이 전근대적인 동양관 답습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저는 민족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사라지고 있는 우리 전통을 작품에 반영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녀의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한국 민간 신앙에서 나타난 죽음 의례에 대한 예술 세계’다. 전통문화를 연구해서 예술에 접근하고, 이에 영감을 받은 자신과 다른 작가의 작품을 아울러 소개하는 것이 목표다. 최근 막을 내린 전시 <도깨비불>을 새롭게 발전시킨 신년 개인전을 기획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전국 각지의 무속 신앙 관련 장소를 답사하러 다니는 중이다.
사진,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그녀가 사용하는 매체는 전시를 거듭할수록 확장되고 있다. <도깨비불>에서는 처음으로 영상 작품을 선보였는데 제의적 형태의 영상이 제단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이 전시에서 공개한 ‘너바나(Nirvana)’ 시리즈는 제사상을 영상으로 만든 매혹적인 작품이다. 그녀의 작업실 한쪽에서 이 작품이 계속 상영되고 있었다. “제사상을 준비할 때, 삶은 닭을 내놓으면 계속 연기가 피어오르죠. 주방에서 식어가는 뜨거운 닭에서 영적인 느낌을 받았고, 거기서 느낀 아우라를 영상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정물화 같기도 하죠. 2022년부터 영상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오래된 육신처럼 느껴지는 낡은 TV 브라운관을 수집하고 있기도 해요.”
박가연은 죽음과 삶에 골몰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의례에서 느낀 감정이 작품 모티브가 돼주었어요. 할머니 댁에서는 밤마다 옛날이야기를 들었고, 인간의 생사, 동물의 탄생과 도축을 자주 목격했죠. 도시에서는 사람이 병원에서 태어나고 죽지만, 시골에는 아직도 과거의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2018년 아트랩반에서 열린 첫 개인전 <하늘과 빛 대신 그림자>에서는 동물 사진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어요.” 시골에서는 아직도 식용견과 애완견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의 복잡한 마음이 반영된 전시였다. 그녀는 모란시장에서 식용견의 한 부위를 구입하고 초상 사진을 촬영했다. 그리고 이를 화장하며 명복을 빌었다. 그 전에도 버려진 생선과 쓰레기를 모아 십자가를 만들어 촬영하고, 이에 신비로운 힘을 느꼈던 경험을 투사한 프린트 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오징어 눈알을 토란잎 위에 놓거나 방어 머리를 살아 있는 성게와 같이 촬영한 사진은 성스러우면서도 세속적이다. 마장동에서 한우 머리를 구해서 6개월 동안 소금에 절이고 보존 처리해 구더기가 생기는 과정을 전시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구더기가 너무 혐오스러웠지만 시체를 말끔히 처리해주는 구더기와 풍뎅이를 보면서 생명의 순환을 깊이 수긍하게 되었다.
2019년에 열린 두 번의 개인전(<작은 것들의 신>과 <은둔자의 밤>)은 모두 민간 신앙과 연결 고리를 지닌다. “<작은 것들의 신>은 성황당 나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골에 가면 할머니가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았어요. 성황당 나뭇가지 끝을 촬영하고, 사진을 투명하게 색을 빼서 조약돌을 매달아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믿음에 대해 표현해보았습니다. 더불어 선산에 가면 조상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 에너지를 100호짜리 캔버스 3개에 금박, 흑연, 목탄으로 그렸고요.”
이 전시부터 그녀는 관람객의 동선과 스토리텔링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화, 사진과 같은 평면 작품에서 벗어나 입체 설치 작품에 대해서도 기획하게 된 시점이었다. 그리하여 <은둔자의 밤> 전시부터는 설치 작업이 시작됐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을 머금고 보았던 꽃상여를 모티브로 박가연은 꽃상여가 전시장에서 표류하는 듯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등대처럼 움직이는 조명이 전시장 중앙의 꽃상여 배와 드로잉 작품을 비추고, 빛이 투과하는 종이 작품을 천장에 드리웠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망자를 위로하는 무당의 무구와 비슷했다. 사후에 매장이나 화장을 할 때 같이 묻거나 태우는 꼭두와 같이 그가 사후에도 함께 부둥켜 있고 싶은 것들을 형상화한 조각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공간과 입체 설치에 도전한 첫 전시 <은둔자의 밤>에선 한국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반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염두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전시장은 평면이 아니기에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서면 연극 무대처럼 다감각으로 느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전시부터는 사운드와 조명에도 심혈을 기울였죠.” 2021년 인디아트홀 공에서 펼쳐진 <망월> 전시에서 그는 오방색 천막을 치고 십장생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을 동서남북 방위에 맞추어 팔괘 형태로 구성하자 유토피아와 현실이 연결되는 중간 세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망월> 전시에서 관객이 팔괘 안에 들어가면 배산임수의 형태를 체험하게 됩니다. 작품이 나를 보호해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팬데믹 시기에 특히 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삶의 터전이 사람을 보호해주는 집이라고 여기게 됐어요. 풍수지리는 사실 무덤에 관한 것이에요. 내 무덤을 풍수가 좋은 곳에 설치하는 것이죠. 어린 시절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고 트라우마를 갖게 됐지만 이젠 삶이 있으려면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불안해하고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박가연은 예술을 통해 죽음이 단지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자연스럽게 다른 동식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인 작가다 보니 아직까지는 소규모 전시 위주로 선보이고 있어서 그간 많은 관람객을 만나지 못한 것이 그녀는 못내 아쉽다. 박가연은 앞으로 대형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고 싶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가의 메시지를 더 많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람도 크다. 작가가 작품으로 의도를 전하고,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느끼는 마음이 서로 맞물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영적인 순간일 테니까. (VK)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이소영
- 사진
-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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