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의례복이 하이 주얼리가 될 수 있다면?
부쉐론의 ‘파워 오브 쿠튀르’ 컬렉션은 단순하지만 기발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전통 의례복이 하이 주얼리가 될 수 있다면?
매년 1월 공개하는 부쉐론의 ‘이스뚜아 드 스틸(Histoire de Style)’ 컬렉션의 핵심은 부쉐론의 과거에서 현대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2024 S/S 꾸뛰르 위크, 부쉐론의 방돔 부티크에 펼쳐진 부쉐론의 역사는 꾸뛰르였다. 본래 꾸뛰르가 부쉐론 헤리티지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포목상의 아들이었던 메종의 창업자 프레데릭 부쉐론(Frédéric Boucheron)은 다양하고 희귀한 재료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이는 기존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 섬세하고 유연한 주얼리를 만드는 데 더 확연한 영향을 미쳤다. 부쉐론의 아카이브에서 다양한 보우, 니트, 폼폼, 레이스 등의 모티브를 만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Claire Choisne)은 이런 전통 의례복의 장식과 그 의례복이 지닌 상징 그 자체에 집중했다. 하이 주얼리로 재탄생한 역사적이고 전통적이며 엄숙하고 강인한 의례복. 그리고 그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다. 클레어 슈완에게 ‘파워 오브 쿠튀르(The Power of Couture)’의 진정한 ‘힘’에 대해 물었다.
당신에게 꾸뛰르란 어떤 의미인가? 개인적인 정의가 궁금하다.
새로운 비전을 열어주는 무엇. 메종의 창립자 프레데릭 부쉐론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꾸뛰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아카이브 피스가 보여주는 일종의 도전에 완전히 매료됐다고 할까. 이를테면, 이번 컬렉션에서 보여준 단단한 소재를 이용해 유연함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작업 같은 것 말이다.
‘파워 오브 쿠튀르’ 컬렉션의 24개 피스는 메달, 버튼, 자수 같은 전통 의례복의 장식에서 출발했다. 왜 전통 의례복이었나?
‘파워 오브 쿠튀르’ 컬렉션은 의복의 재해석을 통해 권력의 상징을 스타일의 상징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24개 피스를 개인이 원하는 대로 착용하거나 다른 피스와 자유롭게 매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각각의 룩은 매우 강력하게 고유한 개성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방식의 자기표현을 남녀 모두에게 제시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벌써부터 사람들이 이 컬렉션을 어떻게 착용할지 몹시 기대된다.
그렇다면 ‘파워 오브 쿠튀르’의 ‘파워’는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다. 문자 그대로 쿠튀르의 진정한 힘을 나타내거나 혹은 내포된 의미처럼, 역설적으로 권력의 상징을 해체한다는 뜻인가? 이 컬렉션에서 궁극적 의미의 ‘파워’는 무엇인가?
메종 아카이브의 메달이나 견장 같은 모티브에 감탄하다가, 이런 장식이 권력의 상징이라는 사실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전통적으로 어깨의 견장은 탁월함, 보우는 지위의 상징이었다. 메달을 착용하는 것은 개인의 소속과 권위를 뜻하고, 메달의 수는 성취와 업적의 질이나 양과도 같았다. 왕족 고객의 의복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초상에서 볼 수 있는 어깨 리본이나 화려한 예복을 차려입은 필립 공의 사진 속 수많은 메달과 자수 장식 같은 것 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예복에 내재된 역설이다. 표면적으로는 엄격함과 강인함을 보여주지만 각각의 피스로 들여다봤을 때는 정교하고 세련된 오너먼트의 조합이라는 것. 이런 메커니즘을 ‘파워 오브 쿠튀르’ 컬렉션 디자인에도 그대로 유지했다. 24개 피스를 함께 착용했을 때 강력한 힘을 보여주도록 말이다.
각각의 피스는 대체로 한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변형 가능한, 다목적성의, 각각 그리고 함께 있을 때 모두 아름다운 하이 주얼리를 제작하기 위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하이 주얼리의 본질을 잊지 않는 일. 부쉐론에 하이 주얼리란 창의적이고 다양성이 담긴 것이니, 착용 방식에도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파워 오브 쿠튀르’ 컬렉션은 일종의 주얼리 박스와도 같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피스는 ‘노우드(Nœud)’로, 풀 네크리스, 로우 네크리스, 브로치, 어깨 장식, 팔찌 그리고 센터의 다이아몬드를 반지로 착용하는 것까지 총 여섯 가지 방식으로 변형할 수 있다. 물론 자신만의 스타일로 또 다른 착용 방식을 고려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술적으로는 록 크리스털 같은 단단한 소재를 패브릭처럼 유연하게 표현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록 크리스털을 니트나 매듭, 메달, 레이스, 단추 같은 다양한 형태와 질감으로 구현한다는 건 확실히 기술적인 도전이었다. 이번 컬렉션은 처음 기획 단계부터 제품 완성까지 총 3년이 걸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만들기 복잡하고 어려운 피스를 꼽으라면, 단연 ‘노우드’다. 제작하는 데만 2,600시간이 소요됐고, 장인들은 435개의 섬세한 바게트 컷 록 크리스털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잘라 화이트 골드 프레임에 맞춰 넣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리본의 내부 또한 광채를 강조하기 위해 전부 다이아몬드로 하나씩 세팅했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까지 섬세하게 다루는, 꾸뛰르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2022년 ‘뉴 마하라자(New Maharajahs)’, 2023년 ‘라이크 어 퀸(Like a Queen)’ 등 지금까지의 ‘이스뚜아 드 스틸’ 컬렉션을 살펴보면 전통 속에서 어떤 의외성을 발견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다른 방식으로 창조하는 것을 좋아한다. ‘파워 오브 쿠튀르’도 마찬가지다. 의복에 사용되는 장식 요소에는 일반적으로 어깨 견장의 골드나 다양한 메달 색상에서 볼 수 있듯이 생동감 있는 컬러가 주를 이루지만 ‘파워 오브 쿠튀르’는 모노크롬으로 구성했다. 단일한 화이트 톤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부여하고 싶었다.
컬러뿐 아니라 소재 역시 한결 간결해졌다.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 록 크리스털, 단 세 가지로 컬렉션을 구성했다.
‘뉴 마하라자’ 컬렉션에서 록 크리스털을 컬렉션에 일부 사용하긴 했지만 록 크리스털을 컬렉션 전반에 사용한 것은 부쉐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하이 주얼리 업계에서 록 크리스털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소재지만, 부쉐론에서만큼은 1860년대부터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프레데릭 부쉐론은 하이 주얼리에 록 크리스털을 다이아몬드와 결합해 사용한 최초의 디자이너였다. 그는 록 크리스털의 순수함과 투명성을 칭송했다. 개인적으로도 록 크리스털은 가장 좋아하는 스톤 중 하나다.
‘이스뚜아 드 스틸’ 컬렉션의 핵심은 부쉐론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지난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디자인 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을 묻는 질문에 “일상에서도 착용할 수 있는 하이 주얼리를 제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작품처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하이 주얼리, 이 지점이야말로 부쉐론이 말하는 동시대성이 아닐까?
그렇다. 하이 주얼리란 금고가 아닌 거리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경계 없는 주얼리를 상상하면서, 성별의 관점이 아닌 스타일의 관점에서 디자인하는 것 역시 내게 무척 중요하다. 특히 요즘은 이런 다양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런 점에서 ‘파워 오브 쿠튀르’는 더 의미가 있다. 의복이나 예복은 역사적으로 남성의 권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를 전복하기 위해 이번 컬렉션 캠페인은 여성과의 연관성을 더욱 강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사실 제품 자체만 놓고 보면 여전히 이 컬렉션은 성별에 무관하게 모두 착용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새로운 힘과 권력의 상징을 부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하이 주얼리’를 만들기 위해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항상 고객이 이것을 어떻게 착용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피스 중 하나인 ‘브로드리(Broderies)’는 어깨 위에 있는 모습과 브로치로 활용할 경우를 모두 상상하면서 작업했다. 장인들과 함께할 때도 착용감을 우선시하며, 특히 분절되는 부분에 집중한다. ‘트히꼬(Tricot)’ 네크리스를 예로 들면, 분절되는 부분의 이음새와 무게감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결국 독창적인 잠금장치를 제작했고 하이 주얼리는 딱딱하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 생동감 있는 편안함을 주는 것이라는 신념을 표현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하이 주얼리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귀중하다’는 개념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 혁신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 그 한계를 초월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직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주얼리를 창작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는다면?
하이 주얼리를 디자인하는 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헤아리는 것은 단 한 가지, ‘감정’이다. 각 컬렉션은 추구하는 꿈이자 나누고 싶은 감정과 같다. 컬렉션 디자인뿐 아니라 제작 과정의 모든 단계에 열정적으로 임하지만, 가장 기쁜 순간은 마침내 완성된 최종 제품을 선보이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주로 부쉐론 방돔 부티크 아파트먼트에서 이뤄지며, 정말이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
그럼 ‘파워 오브 쿠튀르’는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나?
늘 예술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도전을 즐기는데, 이번에는 더욱 그랬다. 순수한 혁신의 목적이 아니라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맥락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어떤 여성이 아름답다고 여기나?
내게 아름다움이란 개성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유한 무언가가 각자를 특별하게 만든다. 또한 여성이 진정으로 자신이 믿는 가치에 근접한 삶을 살게 될 때 가장 멋진 존재가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모든 여성은 아름다울 수 있다. (VK)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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