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F/W 파리 패션 위크 DAY 5
파리 패션 위크, 그 여정의 중간쯤에 당도했습니다. 알렉산더 맥퀸과 까르벵, 앤 드멀미스터는 디자이너들의 따끈따끈한 아이디어로 가득했어요. 중심을 잘 잡아준 건 에르메스였고요. 유서 깊은 하우스의 DNA와 디자이너의 미감, 그 조화를 보는 재미가 어느 때보다 쏠쏠했던 파리 패션 위크 5일 차, 오늘의 쇼를 만나보세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mcqueen)
가슴과 스커트 안에 팔을 집어넣은 채 런웨이를 가로지르는 모델. 모두가 고대하던 션 맥기르의 데뷔 쇼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맥기르는 장난스러운 공격성, 희망 같은 키워드를 내세우며 하우스에 밝고 가벼운 느낌을 더했는데요. 그가 영감의 재료로 삼은 건 알렉산더 맥퀸의 1995 S/S ‘새(The Birds)’ 컬렉션이었습니다. 맥기르는 “압축된 실루엣은 컬렉션 전반을 관통하는 아이디어예요. 그 메시지와 실루엣을 옷에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했죠”라고 말했습니다. 가죽 코트와 블레이저, 데님을 가리지 않고 꽉 조인 벨트처럼 전하려는 실루엣을 성실하게만 녹여낸 건 아니었습니다. 수트 안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니트웨어, 동물 가죽을 엮은 듯한 드레스와 애니멀 프린트 등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면모도 발견할 수 있었죠. 깨진 휴대폰 화면을 쏙 빼닮은 드레스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였고요. 테일러링 코트와 비즈 수트 팬츠 등에서는 알렉산더 맥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에르메스(@hermes)
쇼장은 풀이 무성한 초원이 펼쳐진 지난 시즌 런웨이가 무색하게 매끈한 풍경이었습니다. 비에 젖은 밤거리를 보는 듯 어두웠고요(실제로 비가 내렸습니다).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Nadège Vanhee-Cybulski)가 집중한 건 말과 오토바이, 라이딩 스포츠에 걸맞은 런웨이였습니다. 바니가 전하려는 아름다움은 명확했습니다. 가죽 팬츠는 뾰족한 카우보이 부츠와 짝지었고, 스커트와 드레스 밑으로는 지퍼가 달린 납작한 모토 부츠가 자리했죠. 시어링 칼라, 타조 깃털을 수놓은 재킷, 어깨의 둥근 라인 등 처음부터 끝까지 가죽 아우터에 대한 탐구도 놓지 않았습니다. 가죽 레깅스와 슬릿 스커트에서는 솔직한 관능미가 느껴졌죠.
까르벵(@carven)
지난 데뷔 쇼에 이어 까르벵에서 두 번째 컬렉션을 선보인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 그녀의 비전은 제법 설득력이 있습니다. 드라마틱한 변화보다는 자신의 의도를 더 명확히 하는 데 무게를 두었죠. 컬렉션은 한마디로 차분하고 자신감 있었습니다. 그녀의 미감 안에서 일상과 이브닝 웨어의 경계는 모호해졌어요. 트로터는 “회고적이진 않지만, 마담 까르벵의 유산을 기리고 싶었어요”라는 코멘트를 남겼는데요. 그녀가 특히 눈여겨본 까르벵의 유산은 칼럼과 모래시계 실루엣이었습니다. 플리츠 요소를 넣은 칼럼 드레스, 부드럽게 조각된 톱, 풀 스커트 위에 걸친 넉넉한 코트까지, 단순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이를 전달했죠. 선연한 레드와 그린 포인트는 절제된 컬러 팔레트에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편안함’도 교묘하게 활용했더군요. 납작한 베개를 닮은 가방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머금고 있었고, 패딩 마감의 발레리나 슬리퍼는 쿠션감만 확보된다면 히트작이 될 것임이 분명했죠. 트로터의 ‘기술력’과 페미닌한 감성의 만남, 까르벵의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 쇼였습니다.
앤 드멀미스터(@anndemeulemeester_official)
앤 드멀미스터 특유의 우울한 낭만은 분노와 울분으로 대체된 듯했습니다. 대신 덜 고통스러웠죠. 스테파노 갈리치(Stefano Gallici)는 여전히 하우스의 전형에서 힌트를 얻지만, 여기서 조금씩 물러나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결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웨이스트 코트, 테일러드 팬츠, 스리피스 수트뿐 아니라 가죽과 레이스에 대한 갈리치만의 취향까지 발견할 수 있었죠. 가시 모양의 자수는 또 어떻고요! 스타일링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매끈한 버건디 가죽과 실크, 새틴 소재, 마크라메 톱과 가죽 에이프런 드레스, 어둡고 로맨틱한 벨벳 오버 코트까지, 각종 소재와 형태가 멋스럽게 뒤얽혔죠. 앤이 쌓아 올린 수많은 아카이브 속에서 차근히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어나가는 갈리치. 그가 넘어설 다음 경계가 궁금해집니다. “길을 잃었을 땐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해요”라는 그의 말처럼.
#2024 F/W PARIS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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