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새벽과 음악

2024.03.25

새벽과 음악

커피와 담배, 담배와 영화, 영화와 시, 시와 산책, 산책과 연애, 연애와 술, 술과 농담, 농담과 그림자, 그림자와 새벽 그리고… 출판사 시간의흐름에서 지난 4년간 펴낸 산문집의 제목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생각과 말의 흐름. 그 마지막 10권은 이제니 시인의 첫 산문집 <새벽과 음악>(시간의흐름, 202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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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다. 이 책이 작가가 첫 시집을 내고 떠난 시베리아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큰 사고를 겪은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일 말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줄곧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 꼼짝할 수 없을 만큼 아픈 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통증의 감각, 아픈 이로서는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에 관해서라면, 작가가 겪은 것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나도 얼마간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훤히 보이는 천장의 네 귀퉁이를 올려다보면서. 내가 왜 이 머나먼 땅으로 오려고 했는지. 이곳에서 무엇을 보려고 했는지 생각했고. 매 순간 모양을 바꾸는 사각의 면과 색이야말로 내가 오래도록 꿈꾸어왔던 실현 불가능한 문장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 모든 문장은 이미 마음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은 후회처럼 곱씹었고.”(15쪽)

이제니의 ‘새벽과 음악'(시간의흐름, 2024)

저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콕콕 박혔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모든 문장은 이미 마음속에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작가라는 ‘쓰는 이’의 깊은 비탄의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먹먹해진다. ‘쓰는 이’로서, 바로 그 ‘쓰는 이’이기 때문에, 다시 써 내려가야 할 문장과 만나기 위해, 머나먼 땅 시베리아까지 건너왔건만. 더는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이 되고서야 불현듯 깨닫게 되는 무엇이란. 거듭해 모르핀을 맞으면서, 환각과 망각 어디쯤 있는 듯한 몽환의 상태에서, 작가에게 들려오는 그것은 진정 비정하고 날카로운 삶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요, 당신이 그토록 찾고자 하는 문장은 이미 당신 안에 있어요.’

그때, 침상 너머에서, 어디서 들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아베 마리아’가 들려온다. 병상에 누워 있는 작디작은 영혼에 음악이 유일한 구원처럼 느껴졌을까. 어찌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 병실 청소를 하러 들르곤 했던 고려인 여자아이는 울고 있던 작가에게 다가와 자꾸만 말을 건넨다. 아이의 이름은 체첵으로 한국어로 꽃을 뜻한다고 하고 아이의 뒷덜미에는 한국어 ‘꽃’이 새겨져 있다. “나는 그토록 슬프고 아름답고 강렬한. 그 어떤 단어를.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누군가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잊지 않기 위해서. 잃지 않기 위해서. 무언가 기억하기 위해서. 무언가 간직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 새겨놓은 간절하고도 간절한 모국어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 먼 이국의 땅으로 밀려가. 기어이 보려고 했던. 보아야만 했던. 단 하나의 낱말이었다.”(17쪽)

가장 아프고 연약하고 나약하고 취약해진 상태에서 비로소 새로이 보이는 그것은 누군가의 간절함이 깃든 마음이었다. 그것이 문장이 되고, 시가 되고, 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결국 쓴다는 것은 자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어 속에서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슬픔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기가 가진 지극히 단순한 낱말 속에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또 다른 소리와 의미를 다시 새롭게 겹쳐 새겨 넣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세계와 사물들 앞에서 매번 뒤늦은 존재로서… 쓴다는 것은 선행된 것에 비하면 늘 뒤늦을 수밖에 없는 일이고. 늘 쓰려는 그것을 망치는 일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19~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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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존재.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언제나 뒤늦게 오지만, 그럴 수밖에 없지만, 끝내 쓸 수밖에 없는 것. 그 이격과 간극에도 불구하고, 그 무수한 공허와 틈새와 구멍 사이에서도 끝내 쓰는 일. 무수한 새벽을 지켜준 음악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 글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 모인 스물네 편의 글은 그렇게 모인 것들의 흔적이다, 쓰는 이의 자기 고백이다, 쓰기 그 자체에 관한 고견이다.

“어떤 주제나 소재를 찾으려고 굳이 애쓰지 않으면서, 무엇을 쓰는지 모르는 채로 써 내려가는 것. 삶에 대한 애정을 견지하면서. 재능과 용기를 끝없이 불러내면서. 지속적으로 규칙적으로 조금씩 써 나간다는 것.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시간과 시간이 어긋난 뒤에야, 그 어긋남이 나를 나 자신이게 했음을, 내가 나 자신일 수밖에 없었음을, 어떤 회한 섞인, 그러나 안도의 마음을 가지고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 그런 순간. 그런 순간이야말로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뒤늦게 다시 태어나는 건지도 모르겠다.”(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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