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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원 김가언 대표의 집처럼 보이지 않는 집

2024.03.28

챕터원 김가언 대표의 집처럼 보이지 않는 집

‘챕터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양한 디자인 콘텐츠를 선보이는 김가언 대표의 새집은 과감함과 효율성, 개성과 취향을 모두 담고 있다.

김가언 대표가 앉아 있는 그린 컬러 소파는 공간에 어울리는 것이 없어 직접 제작한 것.

챕터원 매장이 여러 곳에 있지만,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하나로 합친 형태는 이곳이 처음인 것 같다.

맞다. 지하 2층은 전시 공간, 1층은 숍 혹은 대관 공간으로 기획 중이고 2·3층은 주거 공간이다. 이태원에 오래 살아서 농담으로 ‘챕터원 이태원’을 내면 좋겠다고 해왔는데 건물을 짓는 동안 챕터원 에디트, 한남,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등을 운영해보니 챕터원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는 공간별로 다양한 콘텐츠를 다루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곳은 일부러 챕터원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다. 전시만 할 수도 있고, 다른 작가에게 작업 공간을 내줄 수도 있고, 브랜드 프레젠테이션 공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음악과 관련된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첫 프로젝트부터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계단 아래 빈 공간에는 데미안 허스트와 앤디 워홀 등의 아트 피스와 트렁크를 놓았다.

흔히 이태원동 주택은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이는데 앞쪽이 열린 듯한 공간 구성도 특이하다. 의도한 것인가?

건축을 담당한 원오원아키텍스의 최욱 소장에게 “집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주거 이전에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챕터원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매우 대중적이라고 여기는데, 입구가 숨어 있는 챕터원 에디트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공간의 분위기도 무겁고, 취급하는 것들도 정제된 공예품이 많다 보니 고객이 진입 장벽을 느끼는 것 같았다. 물론 챕터원은 내가 좋아하는 것 혹은 추구하는 것을 일맥상통하게 선보이지만 나는 막힌 사람이 아니다. 이곳에 무언가를 한다면 열려 있고 밝으면서 어느 정도 상업 공간으로 보이길 바랐다. 외벽을 마감할 때 콘크리트 위에 메시로 작업하고 다시 유리를 더해 빛이 건물 전체를 감돌게 했고, 2·3층의 공간 전면, 1층 필로티 역시 모두 창을 내 열린 느낌을 주었다.

콘크리트와 스틸, 유리 등 모던한 소재로 마감한 공간에 한지를 덧댄 도어, 소반, 베르판의 펀 조명과 댓돌이 연상되는 계단 등 한국미가 조화를 이루는 2층 전경.

지금은 어느 정도 완성됐나?

조경도 모두 끝난 상태인데 겨울이라 바로 즐기지 못해 아쉬웠다. 내가 꽃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행복감을 느꼈으면 해서 꽃을 많이 심었다. 물론 조경 팀은 관리가 어렵다고 반대했지만.(웃음) 단풍나무와 배롱나무, 수국 등 사계절 내내 꽃이 만개하진 않아도 곳곳에 꽃이 피어 있길 바랐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공간 구성 면에서는 취침 공간과 즐기는 공간을 분리하고 싶었다. 대부분이 그렇듯 나 역시 아파트에 오래 살았는데 주방, 거실, 방이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어서 싫었다. 이전에 살았던 이태원 빌라도 주방에서 거실에 가려면 긴 복도를 지나는 구조였다. 3층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고 가정했을 때 시야가 트여 있으면 했고, 여러 사람과 모이기 좋게 최대한 넓어 보이고 천고도 높아 보이길 바랐다. 따라서 2층에 비해 1m 정도 천고를 높게 구성했다. 창을 많이 내서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반면 2층은 천고가 낮고 아담해 품에 안기듯 편안한 공간으로 구성했다. 여기에 각각의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제작해 채워 넣었다. 기성품을 쓰고 싶지 않아서 거의 대부분 제작했는데 일부는 프로토타입이 되어 챕터원에서도 판매할 듯싶다. 벽난로도 만들고,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도 기성품과 완전히 다른 비율로 제작했는데 이 집의 시그니처가 된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조 콜롬보의 체이스 롱규 체어가 놓인 전실. 간단히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와 바로 옆에 비슷한 외형의 와인 버킷까지, 집 안 곳곳에 파티를 염두에 둔 요소가 가득하다.

이 집을 위해 새로 들인 것도 있나?

제작한 것 외에 이 집에 들어오면서 새롭게 작품을 만들거나 하진 않았다. 다 있던 것인데 조합만 달리해서 이전 집과 달라 보일 뿐이다. 다만 실내에 식물이 너무 없어서 최근에 화분 몇 개를 더 들였다.

공간 대부분을 키친 & 다이닝에 할애한 3층. 대형 펜던트 조명과 아일랜드 식탁, 다이닝 테이블 등을 과감하게 배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달라 보이는 이유는?

스튜디오 형식이라 그럴 수도 있을 거다. 이 집에는 방이 없다. 드레스 룸과 슬라이딩 도어로 취침 공간을 슬쩍 나눴을 뿐이다. 아주 작은 방 하나는 넣을 걸 그랬다.(웃음) 취미 생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 중이다. 거실이 아주 작고 한 층이 거의 다이닝 공간인 것도 특이하다. 각 층별로 쓰임을 하나로 강조했더니 개성 있는 공간이 완성되었다.

이전 집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은?

이태원 빌라, 잠원동 아파트에 이어 세 번째 집인 셈인데, 직접 지은 집이다 보니 구획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층이 나뉜 집에 살다 보니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할 일이 너무 많다.(웃음) 때가 되면 나뭇가지도 쳐야 하고, 물도 줘야 하고… 확실히 공용 주택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맞다. 하지만 겨울에도 난방을 거의 안 할 정도로 집이 따뜻하고 늘 빛이 들어와서 좋다. 너무 바빠서 온전히 집에서 모든 것을 즐기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우드 프레임에 한지를 덧댄 수납장과 넥스트 마루니의 체어, 체르너 암체어의 우아한 곡선이 대비를 이룬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은 어디인가?

주방이다. 원래 계획과 다르게 바빠서 파티를 거의 못했지만.(웃음) 근사한 아일랜드 식탁과 테이블이 생겼으니 시간 나는 대로 요리도 즐기고 싶다. 그리고 벽난로를 제작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장작을 직접 때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이닝 룸과 거실을 분리하는 역할도 하고, 벽난로의 무드가 좋아서 TV 보는 시간도 줄었다. 벽난로를 켜고 와인이든 위스키든 한잔 마시거나 음악을 듣고, 따뜻한 날은 커피를 마시는 등 바쁜 와중에도 여유가 생긴 것이 가장 좋은 점이다. 전에는 그게 왜 쉽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집을 즐기는 마음이 달라진 것 같다. (VL)

피처 디렉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맹민화
컨트리뷰팅 에디터
양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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