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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 권하는 사회, 그 심리와 이유

2024.04.07

by 김나랑

    영양제 권하는 사회, 그 심리와 이유

    ‘갓생’을 위해 오늘도 영양제를 포식했다. 우린 정말 자기 관리 중일까?

    1998년에 열린 데미안 허스트의 개인전 <End of a Century>에 전시된 ‘Pharmacy’ 시리즈.

    밀라노의 호텔 로비, 함께 출장 온 20대 후배가 무지개색 텀블러를 꺼냈다. 여기까지 텀블러를 들고 온 너는 정말 친환경적이구나, 그런데 무지개색이라니. 그건 요일별 약통이었다. 빨간색엔 월요일에 먹을 약이, 주황색엔 화요일분이, 그런 식으로 보라색 일요일까지 이어졌다. 20여 년 전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사만다가 손바닥만 한 요일별 약통을 들고 나오긴 했다. 식전에 알약을 열심히 삼키는 사만다에게 친구들이 별스럽다는 듯이 한마디씩 했다(이 드라마의 매력은 브런치를 먹으면서 별스럽지 않은 대화를 별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사만다는 그때 “너희들도 늙어봐”라고 답한 것 같다(극 중 사만다는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은 설정이다).

    그 드라마를 “알고는 있다”던 후배는 사만다의 것보다 3배는 크고 화려한 약통을 이역만리까지 챙겨 왔다. 색깔별로 나온 약도 10여 알은 됐다. 이게 일주일 치가 아니라 하루치라니. 건강염려증 같은 거 있나? 후배는 “다들 이 정도 먹어요”라고 말했다. 귀국 후 둘러보니 <보그> 오피스도 영양제 홀릭이었다. 책상에는 바이레도 핸드 크림, 프레데릭 말 향수, 편백수 탈취제, 토피넛 캔디와 함께 세계 제약 회사의 영양제가 크기별로 놓여 있다. 오후 2시에 먹는 약, 퇴근하면서 먹는 약 등 세분화돼 있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아일랜드>에서 건강을 관리받던 복제 인간(스칼렛 요한슨과 이완 맥그리거)이 그렇게 때맞춰 알약을 먹었던 것 같다. 사무실에서 나만 옛날 사람인가?

    함부로 단정하고 싶지 않지만, 20~30대 초반 후배들이 영양제를 더 고루 챙겨 먹었다. 카르니틴, 루테인, 마카, MSM, 지아잔틴, 아스타잔틴, 우루소데옥시콜산, 판토텐산, 타트체리 등 후배들이 제품명을 말할 때마다 되물어야 했다. 그게 브랜드 이름이야? 영양제 이름이야? 종합 비타민과 유산균 정도만 챙겨 먹다 그마저도 끊은 내게 요즘 인기라는 영양제는 제3세계에서 떠오르는 패션 디자이너처럼 생소하면서도 나만 모르나 하는 포모가 생겼다.

    사무실에서 나 같은 부류는 주로 차장님, 부장님이었다. 그들은 비타민, 오메가3 같은 기본적인 영양제만 챙겨 먹거나 그마저도 끊었고, “그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뭔가 놔버린 듯이. 20여 명의 작은 집단 표본조사지만 더 젊은 세대가 영양제에 더 열려 있음은 분명했다.

    2019년 팬데믹이 시작되고서 2023년까지 영양제 시장 규모는 완만하지만 분명한 곡선을 그리며 상승했다. 4조, 5조, 6조까지. 대략 가구당 연 36만원 정도를 쓴다. 한때 비타민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던 오쏘몰은 이제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홍삼 대안품이 되었을 만큼 여러 제품이 향유된다. 전국 단위 조사에서도 MZ세대, 특히 20대의 영양제 구입 비용이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헬스디깅, 갓생 트렌드, 얼리케어족 등으로 불렸다. 그러고 보니 한 아이돌이 관절염 약부터 영양제는 종류별로 다 챙겨 먹는다는 방송을 봤다. 자신의 약통을 공개하며, 가는 목으로 엄지손톱만 한 알약을 계속 삼키는 모습은 약간 기이했다. 물론 어린 나이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가혹한 사회생활을 하니 영양제는 필수일 거다. 얼마 전 제니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4일간 잠 못 자고 활동한 적 있어요”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 해도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이 영양제를 포식하는 모습은 미디어에 너무 자주 노출된다. ‘설마 이걸 다 먹는다고요?’ ‘갓생은 템발’이라는 제목과 함께 말이다. 햇살이 환히 든 미드 센추리 주방에서 매일 아침 루틴으로 영양제를 챙겨 먹는 모습은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처럼 메이킹된다. 보는 나도 사야 할 거 같다. ‘나도 언니처럼 될 수 있을까요?’란 의구심과 ‘나도 저 때부터 관리할걸’이란 후회와 함께. 알다시피 효과가 확실히 판명 난 영양제는 드물고 대부분 치열한 공방 중이다. 함께 먹으면 몸에 무리가 가는 영양제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약사와 인플루언서가 앞다퉈 제품을 추천한다. 그들 중에 최근 논문을 뒤져 고심해 추천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팔이피플’이 대부분이다.

    이 상황을 흘겨보는 내게 20대 후배가 자신이 영양제를 먹는 이유를 산뜻하게 말했다. “시성비죠.” 이 단어도 검색해봐야 했는데, 시간과 가성비를 결합한 신조어였다. “1시간 운동도 하는데 1분 투자해서 영양제로 관리하면 편하잖아요. 쇼핑하고 싶을 때 책을 사면 죄책감이 덜한 것처럼, 전 술 마시느니 영양제를 사요. 헬시 플레저죠.” 상대가 플레저 하다는 데 할 말이 없었다.

    미국도 비슷하다. 미국책임영양협의회(CRN)는 보충제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연령대는 18~34세로 전체의 41%라고 밝혔다. 이들은 웰빙에 대한 열망으로 영양제를 섭취하며, 92%가 앞으로도 그럴 거라 말했다. 머피 리서치(Murphy Research)는 영양제를 먹는 10~20대가 2019년에 비해 1,400만 명 더 늘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청소년층이 크게 증가했는데, 부모의 권유는 30% 정도였고, 40%가 스스로 결정했다. ‘새로운 것에 열린 세대’의 특징도 있을 거 같다. 채식주의, 글루텐프리, 유기농 우선주의 등은 젊은 세대부터 퍼져나갔다. 그것이 영양제로 옮겨갔을 뿐일까. 이젠 식사 초대를 받을 때 어떤 알레르기가 있습니까?’ ‘비건이세요?’란 질문 다음엔 ‘어떤 영양제를 드시고 있습니까?’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대답은 한참 길어질 거다. 영양제가 매우 세분화됐기 때문이다. 아는 동생은 구내염이 자주 나서 비타민 B를 먹었는데 효과를 보자 입술 건조, 생리 불순 등 어떤 조짐이 발견되면 바로 관련 영양제를 검색해 직구한다. 그녀는 이를 ‘선행 투자’라고 부른다. 피부 미용, 탈모, 숙면 관련 영양제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예전엔 피부가 건조하면 화장품을 바꾸거나 내가 물을 덜 먹지 않았나 자책했는데, 요즘 세대는 피부 영양제 판토텐산부터 주문한달까. 탈모 유전자를 물려받은 친구는 맥주 효소를 꾸준히 먹고 있다. 만약 효과가 있다면 노벨 평화상감이다. 부작용 없이 직효인 다이어트 약과 탈모 약은 세상 사람들을 평화롭게 만들 테니까. 소개팅 하루 전날 먹으면 에너지를 찾게 해준다는 문구의 영양제는 불티나게 팔렸다가, 과대광고로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영양제는 이제 자기 관리의 필수품일까. 영양제를 선물용(25.8%)보단 자기 관리용(74.2%)으로 구입하는 비율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나를 돌본다는 기쁨은 참으로 크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을 다룬 다큐가 떠오른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손가락을 따라 화면이 바뀌는 온라인 사이트뿐이어서 중독되기 쉽다는 내용이었다. 업무, 인간관계, 주거 환경, 미래의 꿈 등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기 불황, 전쟁, 어제 본 친구를 황망히 떠나보낸 인재 등 세계는 불확실하다 못해 카오스에 가깝다. 이러니 통제 가능한 작은 세계에 빠지긴 너무 쉽다. 나도 그랬으니까.

    몸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영양제는 식단 조절이나 운동처럼 큰 인내심이 없더라도 쉽게 몸에 대입할 수 있으며, 나를 돌본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물론 “다 소용없더라”며 허공을 응시하던 선배보다는, 이들이 훨씬 부지런하고 활기차다. 하지만 혹시 불확실성에 대한 도피는 아닐까 돌아보면 씁쓸해진다. 통각을 줄여주는 영양제는 없나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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