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생애, 그 속에서 찾은 ‘시간’

2024.04.23

by 신은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생애, 그 속에서 찾은 ‘시간’

    오래된 미래, 새로운 과거.

    매끈한 대리석과 휘황한 생루이 크리스털 잔, 부드러운 벨벳 소파, 조르조 모란디의 그림, 아르떼미데 조명으로 가득한 밀라노의 대저택 빌라 네키 캄필리오.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 <아이 엠 러브>의 한 장면이다.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선연한 볕과 초록이 가득한 여름으로 향하며 극에 달한다. 주인공 ‘엠마’ 역할의 틸다 스윈튼은 이탈리아의 겨울을 지나 여름으로 향하는 내내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스타일링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던 이 영화에서 그녀가 선보인 감각적인 의상과 액세서리는 대부분 펜디와 페라가모, 질 샌더 등 이탈리아 브랜드다. 그중에서도 돋보인 것은 페라가모의 ‘바라(Vara)’ 슈즈였다. 엠마가 우연히 딸의 편지를 발견하며 본격적인 심경 변화가 시작되는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빛이나 표정보다 바라를 신은 발에만 계속 시선이 갔다. 동그란 앞코와 낮은 굽, 가지런한 리본 장식의 바라가 어딘가 새롭고 낯설게 느껴진 건 분명 그때부터였다.

    바라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가 사망한 후, 가업을 물려받은 큰딸 피암마 페라가모(Fiamma Ferragamo)에 의해 1978년 출시됐다. “바라는 경제적이면서도 스포티하고, 우아함을 잃지 않는 여성을 상상하며 만들었습니다.” 바라를 상징하는 리본 장식은 피암마가 바라의 디자인을 고심하던 당시, 우연히 상자에서 발견한 그로그랭 리본을 브랜드 로고가 찍힌 골드 메탈 버클과 함께 덧붙이면서 탄생했다. 피암마는 처음에 가죽 리본으로 소재 변경을 고민했지만, 가죽이 아닌 그로그랭 리본을 그대로 활용했다. 결과는 대성공! 바라는 지금까지 100만 켤레 이상 판매되었고, 다양한 색상과 소재로 변주되며 계속 사랑받고 있다.

    바라는 페라가모의 아카이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바라에 쓰인 세부는 여러 소재와 형태로 변화하며 새로운 슈즈와 백 컬렉션의 무한한 영감이 된다. 특히 바라의 그로그랭 리본과 골드 메탈 버클은 페라가모의 정체성이 되었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시밀리언 데이비스(Maximilian Davis)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페라가모에 처음 왔을 때, 아카이브에 슈즈가 1만4,000켤레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이 슈즈를 전부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죠.” 맥시밀리언은 ‘뉴 바라 플레이트’ 슈즈를 통해 바라를 좀 더 우아하면서도 간결하게 재해석했다. “뉴 바라 플레이트 슈즈의 매력은 미니멀한 디자인과 어떤 룩에도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실용성이에요. 새로운 로고를 새긴 메탈 버클은 현대적이죠. 버클 아래 자리 잡은 그로그랭 리본은 페라가모의 헤리티지를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맥시밀리언의 디자인은 피렌체 오스만노로(Osmannoro) 지역에 위치한 ‘마노비아(Manovia)’에서 빈틈없이 구현된다. 마노비아는 1967년에 설립된 페라가모의 슈즈 아틀리에다.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가족은 그의 비전과 장인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이 아틀리에를 설립했다. 맥시밀리언을 놀라게 한 1만여 켤레의 신발이 완벽하게 보존된 아카이브와 장인 정신, 제작 노하우,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영감이 한곳에 모여 있는 이곳은 그 누구보다 ‘신발’에 진심이었던 살바토레의 사명이 깃든 공간이자 새로운 페라가모를 정의하는 공간이다. 인체의 균형과 해부학, 신발의 건축적 형태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그의 열정이 마노비아의 장인들을 통해 시대를 초월해 이어지기 때문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삶은 하우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언어다. 나폴리의 작은 신발 가게에서 일하던 17세 소년이 마릴린 먼로, 주디 갈랜드, 오드리 헵번의 신발을 만드는 ‘스타들의 슈메이커’로 불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15년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8년이 지난 1923년, 할리우드의 그라우맨 이집트 극장 건너편에 페라가모의 첫 번째 부티크를 오픈했다. “세상에 나쁜 발은 없습니다. 오로지 나쁜 신발만 있을 뿐.” 그의 말처럼 페라가모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을 위해 진화를 거듭하며 100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리고 살바토레의 발자취를 기념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1898년부터 생을 마감한 1960년까지 다룬 전시 <살바토레 페라가모 1898-1960>이 피렌체의 뮤제오 페라가모(Museo Ferragamo)에서 공개됐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1898-1960> 전시는 페라가모의 창작물이 지닌 심미적 가치뿐 아니라 그의 일과 삶을 특별하게 만든 다양한 영감의 원천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르노강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한 뮤제오 페라가모에서 열린 전시는 그의 기업가적 면모, 컬러에 대한 열정, 해부학에 대한 지식과 장인 정신, 새로운 소재에 대한 흥미와 유난히 사랑했던 예술 작품, 그에게 영향을 준 고대와 현대의 문화까지 폭넓게 다룬 9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회고전에 전시된 문서와 물건, 사진과 비디오 컬렉션은 살바토레의 열정과 선견지명을 보여주는 동시에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한 그의 막대한 공헌을 드러낸다. 결국 전시는 단순한 전시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이미 있으니까.”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살바토레 페라가모 1898-1960> 전시는 페라가모가 100년 전에는 물론이고 100년 후에도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라는 선언이자 다짐이다. (VK)

      사진
      COURTESY OF FERRAGAMO
      SPONSORED BY
      FERRAG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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