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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의 나, 남이 보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가 함께 사는 법

2024.05.08

by 김나랑

    ‘실제의 나, 남이 보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가 함께 사는 법

    환경주의자인 나, 골프를 치는 나, 돈에 관심 없는 나, 집값이 떨어지면 슬픈 나. 자기기만의 무한궤도를 도는 중이다. 가혹한 현실에서 정신 승리하려면 실제의 나, 남이 보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가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Kim Minkyoung ‘Camouflaged Selves-9 People’, 2016, C-print, diasec, synthetic resins

    그린피스 홍보대사인 한 연예인이 골프 치는 사진을 공개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그린피스는 홈페이지에서 그를 5년 차 환경 운동가라고 소개했고, 그 역시 미디어에서 관련 발언을 종종 해왔다. 대중은 환경 운동가가 환경을 파괴하는 골프를 친다면서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 비꽜다. 정당한 비판일 수 있지만, 그가 휘말린 다른 스캔들에 대한 대중의 보복 심리도 엿보인다.

    그의 행동은 자기기만이라는 댓글을 봤다. 자기기만은 쉽게 말하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린피스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2016년부터 환경 단체를 후원했고, 차를 공회전 해놓고 에어컨을 틀면 마음이 힘들어 전기차를 구입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분명하다. 하지만 골프는 친다. 음··· 누구나 여러 면이 있지 않을까. 진짜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잘못일까. 자기기만은 꼭 나쁠까. 이렇게 옹호하는 건 나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육류는 먹지 않고 생선과 우유, 달걀까지는 섭취하는 채식주의자다. 사명감은 없고 취향만 있는 채식주의자랄까. “알레르기를 알려주세요”라는 디너 초대장에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고 회신하면서 약간 즐거워하는 부끄러운 유형이다. 특히 해외에서 식사 초대를 받으면 알레르기를 사전에 꼭 체크하는데, 외국인 대부분이 하나씩 언급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혹시 소스에 견과류가 포함됐나요?” 같은 대화가 왜 세련되게 들렸는지. 뭐든 잘 먹는 호방형 입맛의 내가 촌스러울 지경이었다. (궁색한 과거사를 용기 내 고백한다.)

    채식은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본 뒤 시작했다. 워낙 쉽게 빠졌다가 금세 질리는 편이라 얼마 못 갈 줄 알았다. 어느 정도냐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8)을 보고 그날 회를 못 먹었다. 부산에서 횟집을 건너뛰다니. 알다시피 그 영화는 물고기 인간이 주인공이다. 생선 기피 현상은 얼마 못 갔다. 애주가로서 살이 덜 찌는 안주를 포기할 수 없었으니. 돼지고기는 달랐다. <옥자>의 여운이 가라앉을 때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봤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준비차 도살장을 탐방한 뒤로 돼지고기를 잘 못 먹는다는 내용이었다. 작품을 위해 혼신을 다해 철저히 조사했을 그의 프로페셔널함과 ‘육식은 나쁘다’고 직언하지 않은 겸손함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정말 돼지고기를 (그를 따라) 먹지 않았고 차차 소와 닭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미약한 다짐을 공고히 하려 넷플릭스의 동물권 다큐멘터리를 일부러 찾아봤다.

    삼겹살집에서 사이드 반찬에 공깃밥만 먹는 내게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어떻게 채식을 하게 됐냐고. (진짜 궁금해서라기보단 옆 사람이 삼겹살에 손도 안 대면 묻는 것이 예의라고 여기는 섬세한 이가 많다.) 그러면 나는 <옥자> 이야기부터 꺼냈다. 멋져 보여서 따라 했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럼 상대는 “대단해요”라며 나를 ‘환경적인’ 인물로 포장해줬다.

    이 글을 쓰는 내 옆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일회용 컵이 있다. 커피 머신을 사면서 쿠팡에서 일회용 컵과 빨대 100개 세트를 주문했다. 이 사실은 무의식에 잠궈두고 환경 다큐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겠지. 적어도 나는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자기기만은 만족도가 꽤 높기에 계속된다.

    놀라운 건 이런 패턴이 9년째 반복되니 나는 봉준호 감독의 팔로워에서 명분 있는 채식주의자 비슷하게 됐다. 누가 물어볼까 봐 읽기 시작한 동물권 책 덕분에 정보가 쌓이고, 공감해서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다. 자기기만과 반복 학습의 효과인가. 나를 기만적이라고 인정하는 대신, 꽤 괜찮은 환경주의자라고 속이는 편이 행복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선망하던 모습이 현실이 될 것만 같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자기기만은 부도덕하게 취급받았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소망에 부합하는 것들로 그 자리를 채워 세상을 바로 세우고 재창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행복으로 가는 길을 닦으려는 자는 누구든··· 미친다.” 제발 자기 객관화하라는 외침인가. 동료 에디터가 어느 배우를 인터뷰한 뒤 꽤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휴대폰 화면에 ‘자기 객관화’라고 쓰여 있었어. 오만해질 때마다 그 말을 되새긴대.” 참으로 훌륭한 배우다. 그렇게 어려운 걸 시도하다니. 모두가 떠받드는 난공불락의 삶을 사는 스타가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경우를 많이 봤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극 중 스타인 루시 리우에게 사만다가 ‘팩폭’ 하는 장면이 있다. “당신이 그때 입은 드레스 최악이었어요.” 루시 리우는 단번에 사만다를 기용한다.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워스트 드레서 안 됐을 거라면서.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주변인의 ‘팩폭’을 귀담아들으라는 조언이 많다. 자기주장에 하나하나 반대 의견을 스스로 써보는 방법도 있다. 그만큼 자기 객관화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면 나는 나를 못 견딜 텐데.

    1980년대부터 심리학자들은 ‘적당한 자기기만’은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자기기만이 있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열심히 살고, 포기를 덜하고, 목적을 이루며 살더라고. 심리학자 셸리 E. 테일러(Shelley E. Taylor)는 이를 ‘긍정적 환상(Positive Illusions)’이라 불렀다.

    근래 서점가를 강타한 룰루 밀러의 논픽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기만으로 성공한 인물일지 모른다. 그는 학자로서 수천 종의 어류를 수집해 에탄올 병에 넣고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나면서 평생 모은 학술 자료, 그러니까 에탄올 병이 깨져버렸다. 우리 삶처럼 혼돈의 현장이었다. 나 같으면 집어치웠을 거다. 하지만 그는 다시 물고기를 수집, 분류한다. 이번엔 병이 아니라 물고기 비늘에 이름표를 꿰매서, ‘운명은 사람의 의지가 만든다’는 생각으로. 그는 학술 분야의 상을 받지 못할 때마다 내 분야가 너무 깊어서, 상의 규칙이 이상해서 못 탔다고 여겼다. 한마디로 세상은 날 담을 그릇이 못돼. 그를 오래 연구한 룰루 밀러는 이렇게 말한다. “조던은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자기기만이 상처를 아물게 하고 다음으로 나아가게 돕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스토리 에디팅’이라는 심리 치료가 있다. 자기 이야기를 더 긍정적으로 편집하는 것이다. 굳이 나의 부족한 능력, 과오를 있는 그대로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없다. 심리 치료사 로리 고틀립(Lori Gottlieb)은 스스로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편한 방향으로 수정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초라하니까.

    물론 “눈 가리고 아웅”이 현실에서 못 나오게 할 수도 있다. 인상적인 실험이 있다. A 팀과 B 팀 모두에게 지루한 일을 하게 하고, 다음 대기자들에게 정말 재밌었다고 말하라고 시켰다. 그 대가로 A 팀에겐 1달러를, B 팀에겐 20달러를 줬다. 누가 더 거짓말을 잘했을까. A 팀이었다. 자기가 고작 1달러를 받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현타’가 온 이들은 진짜 괜찮은 시간이었다고 자신을 속였다. 좀 지루했지만 인내심을 배울 수 있었어 같은. 그러니 거짓말도 수월했다. 이 사례를 듣고 나 또한 현타가 왔다. 월급 없이 일하면서 실무를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며 자위하던 과거. 안 그랬으면 나는 야근을 못 견뎠겠지. 실상은 휴학까지 한 6개월이 남긴 건 피곤함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과거를 미화하는 스토리 에디팅을 해야 오늘 밤 잠을 좀 잘 거 같다.

    세계적인 진화 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는 인간에겐 늘 자기기만의 덫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강력해지면 타인을 배척하고 수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적당한 자기기만은 꽤 유용하다. 혼돈의 세상에서 괜찮은 삶을 살아낸다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란 정신 승리는 필수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난 오늘도 준수한 칼럼이었다고 자기기만을 하고 글을 마친다. 그러지 않으면 무서워서 다음 호 칼럼은 손도 못 댈 테니.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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