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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컴퓨터로 니트웨어를 만드는, CFCL의 다카하시 유스케

2024.05.08

by 안건호

    3D 컴퓨터로 니트웨어를 만드는, CFCL의 다카하시 유스케

    정갈하게 뒤로 넘긴 머리, 유순한 인상,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착장. CFCL의 2024 S/S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서울을 찾은 다카하시 유스케에 대한 첫인상은 공학도에 가까웠다.

    ©Yosuke Suzuki

    청담동 카페에 앉아 쏟아지는 질문에 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답은 뚜렷하고 분명했다. 현지 공장과의 복잡한 관계, 바이어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대해 설명하는 그에게서 패션 디자이너 특유의 몽상가적 기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오직 ‘Clothing For Contemporary Life’, 즉 ‘동시대적 삶을 위한 의복’이라는 브랜드명처럼 현대인에게 의미를 더할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2024 S/S 컬렉션 팝업 현장에 함께했다. 이번 컬렉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면?

    시퀸을 장식한 CFCL의 드레스.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인 만큼 얇은 소재를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언제나 그렇듯 니트 소재 의류는 3D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했다. 그 위에 손으로 시퀸을 장식하는 등 ‘인간미’가 느껴지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CFCL은 본질적으로 니트웨어 브랜드다. 니트 소재는 덥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여름에도 입을 수 있는 시스루 니트도 개발했다.

    브랜드 코드에 대해 소개한다면?

    CFCL은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한다는 의미의 ‘세련미(Sophistication)’. 둘째는 ‘컴포트 & 이지 케어(Comfort & Easy Care)’다. 우리 옷은 편안한 착용감을 자랑하고, 아이템 대부분을 편하게 기계로 세탁할 수 있다. 마지막은 ‘환경 의식(Consciousness)’이다. CFCL의 의류 생산 과정에는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건축가였고, 본인도 어릴 때는 건축가가 되기를 꿈꿨다. 그 후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면서 후세인 샬라얀 같은 디자이너에게 빠져들었다.

    어릴 때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꾼 적은 한 번도 없다. 처음 패션에 빠져든 계기는 중학교 시절 베이프와 언더커버를 필두로 탄생한 우라하라 신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모두 진로나 대학 전공을 정할 때 내 관심사는 세 가지였다. 인테리어 디자인, 건축 그리고 패션. 고민 끝에 결정한 전공이 세 분야 모두 접목할 수 있는 섬유 디자인이었다.

    베이프와 언더커버의 옷을 입은 당신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14~15세에 베이프 파카를 입은 기억이 있다.(웃음) 당시 어머니가 패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셨다. “나도 패션에 관심이 생겼다”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세이 미야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르는 브랜드’라고 하자, 이세이 미야케도 모르면 패션을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어머니가 꾸중하셨다.

    섬유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으로 시작해, 결국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

    대학 시절 우상들의 영향이 느껴지는 CFCL의 구조적인 실루엣.

    대학교 1학년 때는 장 프루베(Jean Prouvé)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처럼 실용성을 우선시하는 디자이너에게 푹 빠져 있었다. 요시오카 도쿠진의 ‘허니 팝 체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약력을 훑어보던 중 이세이 미야케가 눈에 들어왔다.

    학부를 졸업하고 문화복장학원에 진학해 3D 컴퓨터로도 니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신 기술과 패션을 접목하는 데 집중했고, 2009년 젊은 디자이너에게 주는 ‘소엔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이세이 미야케에 입사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이세이 미야케에 입사만 하면, 요시오카 도쿠진처럼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줄만 알았다.(웃음) 이세이 미야케 132.5, 이세이 미야케 맨, 이세이 미야케 아이즈 등 다양한 라인을 디자인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미스터 미야케’가 일하는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었다.

    아직 이세이 미야케에 미련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다카하시 유스케는 이세이 미야케 재직 시절 배운 제작 공법을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에서 일하는 건 정말 즐거웠다. 그와 매일, 심지어 주말에도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하지만 결국 서로 추구하는 미학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9년에 딸이 태어났고, ‘나만의 브랜드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제로 웨이스트 역시 CFCL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일본 의류 회사 최초로 비콥(B Corp) 인증을 받았다.

    CFCL을 설립할 때쯤 패션계의 화두가 환경문제였다.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옷이 존재한다. 디자이너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컬렉션을 발표할 때마다 재활용 소재를 몇 퍼센트나 활용했고, 직전 시즌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하는 자체 보고서를 발행하며 ‘제로 웨이스트’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 목표는 2030년까지 완전한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이다.

    CFCL의 옷은 실루엣이 깊은 첫인상을 남겼다. 실루엣에 관한 영감은 어디서 비롯되나?

    도자기 모양을 연상케 하는 CFCL의 포터리 드레스.

    CFCL의 시그니처 아이템은 ‘포터리 드레스(Pottery Dress)’이다. 허리 라인은 잘록하고 밑으로 갈수록 볼륨이 풍성해지는, 전형적인 서양 복식 디테일을 차용한 드레스다. 포터리 드레스처럼 전체적인 실루엣은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의류에서도 영감을 받는다. 이런 실루엣의 의류를 니트 소재로 제작한다는 것이 CFCL만의 차별점이다.

    CFCL이 ‘니트웨어 브랜드’라는 사실을 강조하곤 한다. 유독 니트웨어에 끌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패션계라는 경쟁적인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고, 바이어의 관심을 끌 수 있으니까. CFCL의 드레스는 대부분이 총길이만 다를 뿐 ‘원 사이즈’나 다름없다. 니트웨어는 신축성이 좋아 사이즈 분류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소재와 제작 방식 덕분에 생산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고, 재고 관리가 수월하다.

    최근 니팅 기계를 구입했다고 들었다. 기계를 활용해 어떤 실험을 진행하는지 힌트를 줄 수 있나?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니트 공장 대부분은 대량생산에 특화되어 있다. 컬렉션에서 선보일 샘플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잠시 대량생산을 멈춰야 하는데, 이런 실험적인 샘플은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공장 입장에서는 시간만 소요되고 수익은 나지 않는 골칫거리인 셈이다. CFCL은 공급자와 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분업화를 실천하기 위해 니팅 기계를 여러 대 구입해 일종의 ‘실험실’을 설립했다. 지난 2월 기계를 구입해 지금은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는 단계다.

    동시대적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캐스팅한 후 촬영까지 하며 ‘Silhouette’이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질문을 똑같이 하고 싶다. 가장 먼저 다카하시 유스케에게 ‘의복’이란 어떤 의미인가?

    매일 아침 우리는 옷장 앞에 서서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고 싶은지 결정한다. 의복이란 결국 개인과 사회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다카하시 유스케에게 ‘동시대적 삶’이란?

    AI를 포함한 각종 최신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것. 기술 발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현명하게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는 자세가 동시대적이라고 여긴다.

    최근 하는 생각은?

    니팅 기계를 활용해 실험적인 샘플을 제작하는 데 푹 빠졌다. 실험을 거듭할수록 니트 소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사진
    Courtesy of CFCL, Yosuke Suz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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