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마틴 파와 나눈 패션에 대한 신랄한 인터뷰

2024.05.14

by VOGUE

    마틴 파와 나눈 패션에 대한 신랄한 인터뷰

    이번에도 기분 좋은 홀인이다. 마틴 파의 새 사진집 〈Fashion Faux Parr〉가 화제의 신간에 선정됐다. 기상천외한 스타일을 강렬한 색과 에너지로 포착한 사진이 뜨거운 계절을 끌어당기는 가운데 〈보그〉가 그와 함께 패션과 삶에 대한 신랄한 이야기를 나눴다.

    Katz’s Delicatessen, New York, États-Unis, 2018. 미국 <보그> 커미션 작업(P. 258~259). 스스로 ‘패션 사진가’가 아니라며 확실히 선을 긋는 마틴 파의 통찰력과 심미안은 패션계의 열렬한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어왔다.

    개인적인 취향과 스타일을 밀어붙여 시각예술사에 큰 획을 남긴 사진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영국 출생의 포토그래퍼 마틴 파(Martin Parr)는 1986년 공개한 ‘The Last Resort’ 시리즈로 영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다. 그의 성격은 차분하고 대체로 친근하지만 때로는 아주 신랄하게 현대사회를 논한다. 스스로 ‘패션 사진가’가 아니라며 확실히 선을 긋는 파의 통찰력과 심미안은 아이러니하게도 패션계의 열렬한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어왔다. 지난 3월 28일, 패션 신의 파격적인 스타일을 포착한 마틴 파의 새 사진집 <Fashion Faux Parr>가 파이돈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을 때 패션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유다. 일단 주제부터 대놓고 패션이다. 책에서 마틴 파는 사진가로서 이제까지 직접 관찰하고 경험해온 물질 만능주의 산업이 탄생시킨 강렬한 색채와 연극적인 페르소나를 예술적으로 그려냈다. 신간 출간을 기념해 파리의 클레망틴 드 라 페로니에르(Clémentine de la Féronnière) 미술관에서는 5월 26일까지 그의 사진전이 열린다. 전시는 파의 작품 속에서 패션이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나 공고한지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책과 전시의 홍보 기회를 틈타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는 그와 한 편의 소설 같은 대화를 나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생루이섬 한가운데서 따사로운 여름 햇살을 만끽하며 날 선 영국식 유머를 끊임없이 듣는 듯했다.

    Cannes, France, 2018. 구찌의 커미션 작업(P. 16~17). 마틴 파의 신간 <Fashion Faux Parr>를 통해 다시 한번 대중에게 공개됐다. “흥미로운 피사체를 찍을 수 있다면 어떤 사진 촬영이든 즐겁게 임할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패션이 정답은 아니다.”

    기분 좋은 첫 만남 이후 패션계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높아졌을 법도 하다.

    아무래도 그랬다. 화보 촬영을 위해 준비된 모든 피사체는 완벽하게 아름다웠고, 촬영장은 언제나 멋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도 더러 있었다. 특히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나를 짜증 나게 한 적이 많다.(웃음) 그들의 손길이 더해질수록 촬영 시간이 길어졌으니까. 효율적으로 촬영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에 스태프들과 자주 부딪쳤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통해 패션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부 사정을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패션계는 지나친 소비를 부추긴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당신 또한 사진을 통해 그런 소비 만능주의를 꾸준히 비판해왔다.

    나에게 작품을 의뢰한 사람, 그리고 의뢰받은 주제가 품고 있는 허점과 허세 부리는 부분을 교묘하게 디스하는 걸 사실 조금 즐긴다.(웃음) 물론 나를 고용한 쪽에는 그런 뉘앙스를 일절 전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패션계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다. 이제껏 수많은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왔지만 마법에 홀린 것처럼 압도된 경험을 해본 적은 솔직히 없다. 스티븐 마이젤처럼 아름다움 그 자체를 탐구하는 작업 스타일 역시 내가 추구하는 방향은 아니다.

    동경하는 포토그래퍼 중에 혹시 패션 전문 포토그래퍼가 있는지 궁금하다.

    음… 비비안 사센과 유르겐 텔러의 사진은 좋아한다. 촬영 컨셉과 제작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늘 과감하게 도전하는 아티스트에게 마음이 이끌린다. 둘 다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패션과 개성의 조화에 탁월하며 패션 촬영으로 번 수입을 다큐멘터리 작업에 투자한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패션 사진을 명확히 구분하며 작업하는 편인가?

    이번 신간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둘의 분리된 세계, 그것을 관통하는 나의 시선에 대해 자주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내린 결론은 패션쇼 사진이든, 룩북 사진이든,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어떤 작업에서든 한결같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패션 전문 포토그래퍼와 차이가 있다면 난 패션계의 중심이 아니라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남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도 프랑스 <보그>와 작업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런 소신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최근에야 프랑스 <보그>와 작업하게 됐는데 드디어 나도 성공한 패션계 인사가 된 건가 싶었다.

    Versailles, France, 2023. 자크뮈스의 커미션 작업(P. 280~281). “다른 패션 전문 포토그래퍼와 차이가 있다면 난 패션계의 중심이 아니라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남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2020년에는 영국 <보그> 커버를 장식했다.

    팬데믹 시기에 유의미한 기획을 고민하던 영국 <보그> 편집장 에드워드 에닌풀이 내 풍경 사진을 표지 이미지로 사용했다. 허허벌판에서 양 몇 마리가 배회하는 아주 평화로운 장면을 담은 사진이었다. 아마 수많은 후보 이미지가 있었을 텐데 옷가지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그 사진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에드워드 에닌풀과는 첫 만남이었나?

    그가 내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얼마 안 된 느낌이었다. 영국 <보그> 2020년 8월호 커버가 탄생하기 얼마 전 그가 내게 전화를 걸었고, 그 후 마련된 미팅 자리에서 내게 사진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후로는 한 번도 만나거나 연락을 취한 적 없다.

    대표적인 패션지 <보그>와의 인연이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웃음)

    그러게나 말이다. 미국 <보그>에도 여러 번 내 사진이 실렸다. 스페인 <보그>와도 작업한 적이 있고. 프랑스와 영국 <보그>와는 아직까지 화보 촬영을 함께 한 적은 없는데 다행히도 아직까진 패션계의 비주류로 남아 있는 것 같아 달갑다. 지금의 위치가 딱 좋다. 어느새 나이도 꽤 들었고, 패션지에서는 나처럼 오래된 작가보다는 떠오르는 인재를 발굴하고 싶은 열망이 더 클 테니까.

    젊고 새로운 사진가의 활약을 눈여겨보는 편인가?

    물론! 새로운 사진가가 눈에 띄면 검색도 해보고, 내가 설립한 예술 재단 ‘마틴 파 파운데이션’에서 직접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기도 한다. 지난 2022년에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카비 푸자라(Kavi Pujara)의 사진전을 열었고, 조만간 1970년대 초반 영국의 노던 소울 클럽의 모습을 필름으로 남긴 패션 포토그래퍼 일레인 콘스탄틴(Elaine Constantine)과 합동 전시를 열 예정이다.

    강렬한 색채로 가득한 당신의 사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영국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브라이턴을 자주 떠올린다. 당신을 흥분시키는 또 다른 지역이 있나?

    광기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일본을 좋아하고 그다음으로는 이탈리아를 사랑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이 말도 안 되게 아름답다. 게다가 이탈리아 음식은 세계 최고지 않나.

    그렇다면 가장 패셔너블한 나라는 어디라고 보나?

    굳이 꼽자면 그 또한 이탈리아라고 답하겠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남들이 옷을 어떻게 입고 살아가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나를 봐라. 언제나 한결같이 회색 스웨터에 청바지 차림인 패션 테러리스트에게 할 질문은 아니지 않나.(웃음)

    Fashion Week, Paris, France, 2018. 구찌의 커미션 작업(P. 302~303). <Fashion Faux Parr>에서 마틴 파는 사진가로서 직접 관찰하고 경험해온 물질 만능주의 산업이 탄생시킨 강렬한 색채와 연극적인 페르소나를 예술적으로 그려냈다.

    사진가로 활동하는 데 패션에 무심한 삶이 과연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훨씬 독특한 개성으로 패션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패션 사진은 주로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데 밀폐된 실내에서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자주 발생할까? 내가 야외 촬영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 수 있어서다. 물론 구찌와 손잡으면 큰돈을 벌 수 있다.(웃음) 나도 지금껏 수많은 패션 브랜드와 협업했고, 구찌나 자크뮈스와는 정말 마음에 드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피사체를 찍을 수 있다면 어떤 사진 촬영이든 즐겁게 임할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패션이 정답은 아니다.

    방금 이야기한 두 브랜드와의 협업은 어쩌다 성사되었나?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구체적인 진행과 관련된 일은 전적으로 에이전트에게 맡긴다. 때로는 어떤 모델이 오는지도 모르고 촬영장에 가기도 한다. 자세히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와 작업하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번 사진집에서도 사람들이 유명 모델이 많이 등장했다며 놀라워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들을 잘 모른다. 여기 이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가?

    카라 델레바인인데!

    나는 잘 모른다.

    카라 델레바인의 초상화 외에 화려한 액세서리를 촬영한 독특한 정물 사진도 눈길을 끌었다. 패션 사진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피사체는 무엇인가?

    액세서리는 정말 좋은 피사체다. 재미있게 촬영해볼 수 있는 방식도 무궁무진하고, 사람과 달리 어디에든 놓고 편리하게 촬영할 수 있다. 물론 아주 까다로운 아이템도 존재한다. 선글라스가 그렇다. 렌즈에 내 모습이 비치지 않게 촬영하려면 구도를 영리하게 잘 잡아야 한다.

    패션 사진을 찍을 때 가장 견디기 힘든 상황은?

    헤어와 메이크업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때, 의뢰한 쪽에서 재촬영을 요구할 때 난감하다. 우리가 그보다 더 잘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는 상대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왠지 찔리는 이야기다.(웃음) 그렇더라도 당신은 결코 화를 내지 않을 것 같다.

    웬만하면 화를 잘 안 낸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현장에서 만난 베테랑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우린 결국 결과물을 통해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패션 사진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어마어마할 텐데 값비싼 옷을 사 입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주로 어디에 돈을 쓰나?

    대부분의 수입은 고스란히 재단에 전달한다. 재단 기금으로 다양한 영국 사진가들의 작품을 구매하고, 먼 훗날 방대한 사진을 보유한 아카이브 센터를 설립할 꿈도 갖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사람들은 당신의 사진을 소개할 때 ‘키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이런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나를 그렇게 표현한다니 기쁘다. ‘키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다. 누군가 나를 ‘키치’를 대표하는 사진가로 소개한다면 나는 그 수식어를 최고의 칭찬으로 여길 것이다. (VK)

    사진
    MARTIN PARR/MAGNUM PHOTOS
    LOLITA 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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