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더 작은 손목시계를 차는 이유
모두 작은 손목시계를 찬다.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작으면 작을수록 더 매력적이다.
제니퍼 로페즈와 재결합한 벤 애플렉이 2000년대 초 베니퍼(Ben+Jennifer=Bennifer) 시절에 커플 워치로 착용하던 프랭크 뮬러의 생트레 커벡스를 다시 찼을 때만 해도 모두 놀리기 바빴다. 가죽 스트랩 대신 크롬 하츠 체인 브레이슬릿으로 커스터마이징한 데다, 25mm 케이스는 털이 무성하고 전완근이 발달한 그의 손목에는 터무니없이 작아 보였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아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빈티지 까르띠에 워치 컬렉션을 공개하자 사람들은 작은 케이스의 빈티지 워치가 얼마나 멋진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배드 버니가 23mm 케이스의 파텍 필립 여성용 워치를 착용하고 커버에 등장했을 때쯤 유행을 직감한 멋쟁이들은 본격적으로 자신에게 어울릴 작은 손목시계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다. 스몰 워치가 대세라는 사실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은 지난해부터 23mm 케이스의 팬더 드 까르띠에 미니를 데일리 워치로 차고 다니는 티모시 샬라메다.
이들이 착용한 워치 모두 여성용 중에서도 작은 사이즈로 제작된 거라 팔찌인지 시계인지 구별조차 하기 어렵지만, 유별나게 더 작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포켓 워치가 손목시계로 옮겨가던 20세기 초부터 1970년대까지만 해도 통상적인 워치 케이스의 크기는 30~35mm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드라이빙 워치가 크고 대담한 스타일로 바뀌면서 40~42mm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최대 50mm까지 커졌다. 당시 셀럽들은 롤렉스 데이-데이트 프레지던트나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오프쇼어 같은 묵직하고 거대한 오버사이즈 워치로 과장된 자신의 페르소나를 과시하곤 했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워치 브랜드의 앰배서더들은 마초 스타일의 근육질 팔에 42mm 케이스의 스틸 소재 스포츠 워치를 차고 있었다는 걸 떠올려보자). 그리고 이 기준이 최근까지도 이어졌으니, 갑작스럽게 반으로 줄어든 시계가 이상할 정도로 작아 보일 수밖에 없다.
패션에 민감한 남자 셀럽들이 유독 작은 사이즈를 선택한 탓에 남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여자들도 작고 깜찍한 워치로 눈을 돌리고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 기록보다 초커로 더 화제를 모았는데, 그녀의 목을 감싼 반짝이는 블랙 다이아몬드 네크리스 중앙에는 케이스에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한 아르데코풍 워치가 장식돼 있었다. 이 워치 초커는 19세기 초 까르띠에와 티파니, 반클리프 아펠 같은 유명 주얼리 하우스에 시계를 공급한 스위스 시계 제조사 콩코드(Concord)의 빈티지 워치를 주얼리 디자이너 로레인 슈워츠(Lorraine Schwartz)가 네크리스로 커스터마이징한 것이다. 미우미우 쇼에서 까르띠에 베누아 미니를 초커로 연출한 엠마 체임벌린은 평소에도 까르띠에 베누아(젠지 사이에서 대표적인 ‘IYKYK(If You Know You Know, 아는 사람만 안다는 뜻)’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를 즐겨 착용하고 두아 리파, 카일리 제너, 벨라 하디드, 젠데이아 등 ‘잇 걸’들은 다 같이 공구라도 한 듯 22mm 팬더 드 까르띠에를 차고 다닌다. 원래 40~41mm 케이스의 ‘남자 친구’ 시계 취향이던 헤일리 비버마저도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28mm와 파텍 필립 노틸러스 27mm, 로열 오크 모델 중 가장 작은 사이즈인 33mm의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로 슬금슬금 ‘갈아탔다’.
트렌드세터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스몰 워치의 공통점은 빈티지 모델이라는 것이다. 세계적 규모의 빈티지 워치 온라인 중개상 스위스워치엑스포(SwissWatchExpo) CEO 유진 투투니코프(Eugene Tutunikov)는 한동안 치솟던 빅 사이즈 스포츠 워치의 인기가 2022년 후반부터 사그라지면서 정반대 스타일로 관심이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유행을 따르기보다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빈티지 워치나 스톤이 박힌 독특한 디자인의 여성용 주얼리 워치를 찾기 시작했고요. 처음부터 크기가 작은 걸 원했다기보다는 색다른 디자인의 모델 대부분 크기가 작은 거죠.” 빈티지 워치 컬렉터들은 기본적으로 작은 모델을 선호하는데, 크기가 작다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정교하고 제약이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무브먼트부터 케이스까지, 작고 얇으면서 내구성과 정확성을 갖춰야 하는 복잡한 기계장치는 장인 정신을 상징하며, 완성도 높은 결과물일수록 안정적인 비율과 절제된 우아함이 드러난다. 싱가포르의 유명 빈티지 워치 부티크 에어룸 갤러리(Heirloom Gallery)의 설립자 숀 탠(Shawn Tan)은 작은 사이즈와 실험적인 디자인이 1990년대 빈티지 워치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좋은 취향을 가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해요. 그러기 위해서 시계가 엄청 클 필요는 없죠. 예를 들어 1990년대에 제작한 30mm 케이스의 쇼메 점프 아워처럼 소매를 걷었을 때 사람들이 보고 ‘와, 그거 뭐야?’라고 할 만한 시계를 찾습니다.” 워치 브러더스 런던(Watch Brothers London) 설립자인 영국 기반의 빈티지 워치 딜러 벤 던(Ben Dunn)도 스몰 워치가 과시적이지 않으면서 사적이고 세련된 취향을 드러내기 좋다는 데 동의한다. “바에 들어설 때 사람들이 전부 당신 시계만 쳐다보길 바라나요? 난 아닙니다. 과거에 생산된 작은 시계가 더 희귀하고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착용하다 보면 큰 시계에 비해 작은 시계가 얼마나 편한지 알게 된다. NV 밀라노(NV Milano)의 주얼리 디자이너 니콜로 빌라(Nicolò Villa)는 원래 어머니에게 선물하기 위해 빈티지 롤렉스 레이디 데이트저스트 26mm를 구입했지만, 마음을 바꿔 자신이 착용하고 있다. “차보니까 편하더라고요. 작고 납작한 시계를 선호하게 됐습니다. 우아해 보일 뿐 아니라 제 체구에도 작은 게 더 어울려요.” 작고 얇은 케이스는 가벼운 데다 신체의 곡선에 잘 맞아 착용감이 좋다. 42mm 이상의 케이스가 큰 워치는 끊임없이 무게를 의식하면서 집에 가서 풀어놓을 순간만 고대하게 되지만, 사이즈가 작은 모델은 어느 순간 착용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시계가 나를 차는 게 아니라 내가 시계를 차려면, 그리고 자연스러워 보이려면 작은(혹은 적당한) 쪽이 맞다.
시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계 산업의 전통적인 성 구분에 저항하는 움직임 또한 스몰 워치로 트렌드가 바뀌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시계를 성별로 구분하는 건 다수의 시계 애호가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남녀 누구나 자기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브랜드에서 제시한 성별 기준을 따르는 게 아니라 말이죠.” 워치 전문 온라인 플랫폼 다임피스(Dimepiece)를 운영하는 브린 월너(Brynn Wallner)는 시계에 관심 있는 여자들이 전부 남성용으로 출시된 큼지막한 시계를 착용할 때도 작은 시계에 끌리는 자신이 안티페미니스트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대관식 때 몰래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계식 무브먼트가 장착된 예거 르쿨트르 101 칼리버를 착용했죠.” 테니스 팔찌처럼 보이는 101 칼리버의 케이스는 4.8mm다(정말 손톱만 하다). 오늘날 여성용이라는 표현만큼 유동적이고 모호한 것도 없다. 여자들이 착용하는 ‘남자 친구’ 시계가 여성용 시계일까, 남자들이 착용하는 ‘여성용’ 시계가 여성용 시계일까?
크리스티 경매 시계 분야 헤드 출신으로 빈티지 파텍 필립 거래 사이트 컬렉터빌리티(collectability.com)를 운영하는 존 리어든(John Reardon)은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파텍 필립 모델을 찾는 고객을 최근 들어 처음으로 상대했다. “31mm 옐로 골드 모델을 사려고 남자 고객 한 명과 여자 고객 한 명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죠. 심리 치료사라도 된 것 같았어요. 남자 고객이 자신의 손목에 31mm가 괜찮을지 걱정하길래 소셜 미디어 사진을 보여주고 요즘 이 사이즈가 얼마나 인기인지 알려주면서 안심시켰거든요. 여태껏 이 사이즈의 시계를 찾는 남자 고객은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체형과 취향이 다른데도 케이스 사이즈를 ‘여성용’과 ‘남성용’ 두 가지로만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최근 몇 년 동안 시계 박람회 ‘워치스 앤 원더스’는 42mm 이하의 신모델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혁신적이라고 하기엔 40mm를 넘지 않을 뿐 기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올해 ‘워치스 앤 원더스’의 최고 화제는 까르띠에가 새로 발표한 24mm 탱크 루이였다. 너무 작아서 소멸해버릴 것만 같은 이 초미니 사이즈의 탱크 루이는 남녀노소, 성 정체성 구분 없이 모두를 사로잡았다. 클래식하고 절제된 디자인은 유지한 채 크기만 축소한 이 시계는 놀랍게도 특정 성별에 치우치지 않는 완전히 중립적인 우아함을 어필했다. 보수적이고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는 시계 시장에서 성 구분을 없애는 것이 꽤 심각하고 근본적인 변화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뛰어난 기술력을 과시하는 다른 신제품에 비해 언뜻 보잘것없어 보이는 탱크 미니는 그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입증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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