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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 이름을 붙인다면, 요르고스 란티모스

2024.08.03

비극에 이름을 붙인다면, 요르고스 란티모스

문제적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의 최신작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Kinds of Kindness)>를 보러 영화관에 간다면 절대 지각해선 안 된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고도 가장 격동적인 순간을 놓치고 말 테니까. 발매하자마자 음산한 사운드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던 1980년대 노래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가 폭발하듯 울려 퍼지는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오프닝 음악은 어떤 영화의 포문을 열기에도 적합하겠지만 나는 <더 랍스터>(2015)와 <킬링 디어>(2017) 같은 신랄하고 음울한 영화를 만든 그리스 출신 감독 란티모스가 유리스믹스의 이 음악에 매료된 까닭이 너무 궁금했다. 어쩌면 빅토리아 시대 분위기를 어지럽게 뒤섞어 완성한 <가여운 것들>(2023) 이후로는 기이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되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썩어들어가는 영혼을 노래하는 차갑고 냉소적인 이 가사에서 감독 자신의 영혼과 꼭 맞는 지점을 발견했거나. “누군가는 너에게 이용당하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너를 학대하려 하지(Some of them want to get used by you/ Some of them want to abuse you)”라는 노랫말은 란티모스가 이제껏 도착적인 특징을 살려 만든 영화들이 보여준 잔혹한 스펙터클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세상이 그에게 보내온 스포트라이트의 크기와 상관없이 란티모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소름 돋을 정도로 한결같은 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실험 목표에만 집요하게 매달리는 과학자 같다. 그리고 그의 영화는 신경가스가 천천히 스며드는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행동 변화 실험처럼 느껴진다. 얼굴에 아무런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등장인물들, 그런 그들이 내뱉는 단조롭고 심드렁한 어조. 다들 감정 둔화 마취제라도 맞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처럼 감정적으로 둔감한 인물들 사이에서도 전복적 에너지가 피어난다. 피학대자가 아무 생각 없이 학대자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독재라는 주제에 우화적으로 접근한 장편영화 <송곳니>(2009)의 3남매는 부모에 의해 평생 집에 갇혀 지내다가 서서히 그와 같은 감금 상태에서 벗어나려 한다. 18세기 영국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란티모스에게는 색다른 도전이었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는 귀족들의 삼각관계를 보여주면서 정치적·심리적 권력의 균형이 언제나 뒤바뀔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 속에서 란티모스는 종종 강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자신의 교훈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섹스의 부조리, 폭력의 불가피성, 동물의 순수함, 그에 대비되는 인간의 추악함, 그 모든 존재의 부패와 같은 것들··· 또 다른 흥미로운 교훈도 있다. 나쁜 것들은 꼭 셋으로 짝을 지어 등장한다는 것.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는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통해 지배와 비굴함, 자유의지라는 망상에 관한 세 편의 어두운 이야기를 엮어낸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란티모스와 그의 오랜 동료인 시나리오 작가 에프티미스 필리포우(Efthimis Filippou)가 지었다. 그리고 제시 플레먼스, 엠마 스톤, 윌렘 대포, 마가렛 퀄리, 홍 차우, 마무두 아티, 조 알윈 등 어마어마한 출연진이 세 편의 이야기에 모두 다른 역할로 등장한다. 역할 변화 자체도 물론 풍자적이다. 예컨대 윌렘 대포는 맨 처음 정장 차림으로 등장했다가 종국에는 마약중독자로 모습을 비친다. 그는 냉혹한 권위주의자의 모습을 세 가지 버전으로 연기하는데, 이는 <가여운 것들>에서 그가 인정 많은 ‘아버지’ 역할을 떠안은 것과는 뚜렷하게 대조된다. <가여운 것들>에서 그는 ‘갓윈’ 혹은 하나님이라고 불렸는데 이 영화에서는 악마와 함께 춤을 추고 있으니 말이다.

알려진 것처럼 란티모스는 상상 이상으로 신학에 관심이 많다. 종종 신학을 조롱하려는 욕망을 앞세우긴 하지만.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의 첫 번째 이야기는 성경의 이사야서가 말하는 공동체 이야기와 유사하며, 탕자의 비유도 반갑지 않은 덤으로 얹혀 있다. 제시 플레먼스가 무신경한 게으름뱅이 ‘로버트’를 연기한다. 로버트는 부유한 직장 상사 ‘레이먼드(윌렘 대포)’의 손에 놀아나는 사람이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로버트에게는 좋은 집과 근사한 은빛 SUV, 사랑스러운 아내 ‘사라(홍 차우)’가 있지만, 충격적인 것은 그 모든 것이 레이먼드에 의해 주어지고 마련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로버트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입을 것이며, 심지어 아내와 섹스를 할지까지 레이먼드에게 일일이 지시받는다. 매일 밤 명령에 따라 <안나 카레니나>도 조금씩 읽는데, 자유를 위한 시도가 얼마나 비극적이고 헛된 일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다 로버트는 잠시나마 자유를 손에 넣는다. 영화 초반부에 레이먼드는 로버트에게 그의 SUV를 R.M.F(요르고스 스테파나코스)라는 남자가 운전하는 차에 갖다 박으라고 명령한다. 레이먼드가 R.M.F의 죽음을 바라는 상황이다. 그러나 로버트의 어설픔은 충돌을 실패로 만든다. 레이먼드가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다시 한번 박으라고 명령하지만 로버트는 거부한다. 그리고 레이먼드는 로버트와 완전히 의절한다. 플레먼스는 꾸준히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한 인물을 연기하는 데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그런 호소력을 바로 그 장면에서 로버트가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무력함 속에 불어넣는다. 상관으로부터 명령이 사라진 후 그는 음료 하나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하는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인다.

로버트의 그런 우유부단함처럼 란티모스가 이 영화에서 무엇을 꼬집고자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기업가의 횡포? 종교적 도그마? 어느새 평범한 나라가 되어버린 미국의 따분함?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는 뉴올리언스에서 촬영했지만, 극 중 배경은 교외 주택과 낡은 모텔, 매끈한 오피스 빌딩이 듬성듬성 자리한, 미국 어디에서나 볼 법한 장소로 보인다.) 란티모스는 결코 그 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위와 같은 질문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란티모스의 뉘앙스다. 그보다 그는 반복적인 패턴과 자신만의 언어유희에 관심이 더 많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요 캐릭터가 모두 ‘R’로 시작하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나는 레이먼드가 로버트의 자리를 대체할 인물로 고용한 ‘리타(엠마 스톤)’에 관해서는 아직 언급도 하지 않았다. 란티모스의 눈에는 모두가 교체 가능한 존재들이다. 언제든 누구에게나 대체 가능한 존재 말이다.

첫 이야기에서 관객의 눈에 의심스럽게 띈 것들은 그 후에도 꾸준히 등장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성의 발뒤꿈치를 클로즈업한 장면, 유산을 가장한 낙태, 참혹한 자동차 사고에 의한 사망 등등. <가여운 것들> OST를 작곡한 1995년생 작곡가 저스킨 펜드릭스(Jerskin Fendrix)의 음악 또한 불길하게 뚱땅거리는 피아노 선율을 단조롭게 반복하며 불편한 긴장감을 몰고 온다. 또한 영화는 세 편의 이야기를 경유하며 때때로 중의적인 의도를 슬그머니 내세운다. 그러면서도 불쾌한 자기 확신과 자화자찬의 비열함을 드러내는 대사를 통해 란티모스 영화가 품은 일관적인 개성을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누군가 차를 빙빙 돌리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는 순간, 계속 빙빙 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란티모스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플레먼스는 ‘다니엘’이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영적인 의미를 지닌 다니엘은 거짓말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존재다. 그는 경찰관이지만 해양 생물학자이자 자신의 아내 ‘리즈(엠마 스톤)’가 실종된 후 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를 위로하는 것은 ‘닐(마무두 아티)’과 그의 아내 ‘마사(마가렛 퀄리)’다. 두 사람은 존재만으로 이야기에 가장 우스꽝스럽고 음탕한 개그를 불어넣는다. 그러다 어느 날 기적처럼 리즈가 살아서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전에는 극도로 싫어했던 초콜릿에 푹 빠진 리즈의 모습을 단서 삼아 다니엘은 그녀가 자신의 진짜 아내가 아니라고 의심한다(그녀의 몸이 뒤바뀌었다거나). 그리고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겠다고 굳게 마음먹는다.

그 후 그랑기뇰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짓궂긴 하지만 다행히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 광경이다. 그러면서도 정교하고 아이러니한 대칭을 보여준다. 리즈의 입맛이 변한 것처럼 다니엘의 입맛도 갑작스럽게 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가장 탁월한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흑백으로 촬영한 환상 시퀀스다. 리즈가 자신의 아버지(윌렘 대포)에게 개들이 지배하는 섬에 발이 묶인 꿈을 꾸었다고 털어놓는 장면이다. “정말이지, 아빠. 개들이 나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몰라요.” 리즈가 중얼거리며 내뱉는다. 란티모스 특유의 무표정하고 부조리한 징후가 아주 신빙성 있게 한 장면 한 장면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웃기기보다는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지닌 인간보다 개가 우리에게 잘해줄 때가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런 진실을 깨달은 후 시작되는 세 번째 이야기에서 마주한 수의사는 관객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의사 ‘루스(마가렛 퀄리)’는 어느 다친 개의 상처를 세심하고 다정하게 치료하는데 그 상처는 ‘에밀리(엠마 스톤)’라는 여성의 몰인정한 계획범죄에 의한 것이다. 그녀가 기이한 섹스 종교 집단의 지도층이라는 것이 유일한 범행 동기로 추측된다. 집단을 이끄는 리더는 ‘오미(윌렘 대포)’와 ‘아카(홍 차우)’라는 인물이며 둘은 신체의 정결함을 엄격하게 내세우는 교리를 강력하게 설파한다. 바로 여기서 앞선 두 편의 이야기에서 은근슬쩍 등장했던 모든 암시(종교적 서브텍스트와 금식에 대한 권유)가 둔탁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를 탄생시킨 란티모스의 초기 아이디어가 별안간 마지막 장면에 폭발하면서 모든 세계를 환히 밝혀주는 순간이다.

루스에게는 일란성 쌍둥이가 있는데 그 때문에 마가렛 퀄리가 총 네 명의 인물을 연기하면서 누구보다 많은 역할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 특별하고 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연 엠마 스톤이다. 그녀는 두려움 없는 결연한 의지로 광적인 사이비 집단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 영화와 <가여운 것들>에서 보여준 엠마 스톤의 연기를 놓고 우열을 가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에서 스톤의 연기는 상당히 절제되어 있어 아쉽긴 하지만 그녀는 집중력 있게 무결점 연기를 선보였다. 반면 <가여운 것들>은 아주 극적인 이야기인 만큼 여러모로 창작자의 틀을 깨뜨리는 영화였다. 프랑켄슈타인을 흉내 내듯이 해체적인 측면을 보이기도 하고, 란티모스는 특유의 에너지와 목적의식으로 단단히 무장한 채 아이코닉한 여주인공을 창조하며 우리에게 통합적인 황홀경을 선사했다. 이토록 모든 영화적 요소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작품을 만든 후 도대체 왜 란티모스는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로 다시 돌아가 내면 한구석에 자리한 무정한 악동 같은 면모를 드러내며 모든 것을 다시 해체하기로 결심했을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대신 내 마음이 향한 곳은 제시 플레먼스가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열연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과소평가된 독창적인 배우이며, 란티모스도 이를 확신한 듯하다. 플레먼스는 란티모스라는 창조자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세 명의 다른 캐릭터에 각기 다른 정서적 색깔을 입히며 1인 3역을 탁월하게 소화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썩은 동태눈을 한 무감각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아주 절제된 호흡만 내뱉어야 할 때도 그의 열연은 계속된다. 예술적인 피로감을 잔뜩 풍기는 영화 속에서 란티모스호에 새롭게 승선한 배우가 가장 신선한 충격을 준다는 것은 인상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여정의 끝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제시 플레먼스라는 배우를 통해 마지막으로 회심의 교훈을 던진다. ‘삶이 너에게 제시 플레먼스를 주거든, 그가 너를 돕도록 하라.’ (VK)

JUSTIN CHANG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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