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왕후’, 스릴과 자극이 넘치는 성인 사극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우씨왕후>는 조선 배경 정통 사극에서는 보기 힘든 과감한 여성 캐릭터가 매력이다. 배경은 197년, 고구려 9대 왕인 고국천왕(지창욱)이 돌연사한 직후다. 그에게 자식이 없어 왕위 쟁탈전이 벌어질 위기에 놓였다. 왕후 우희(전종서)는 왕의 죽음을 24시간 동안 비밀에 부치고 몰래 궁을 빠져나가 시동생들을 만난다. 형제가 죽으면 다른 형제가 그 배우자를 처로 맞아 가문을 보호하는 ‘형사취수제’를 이용해 직접 다음 왕을 세우고 자기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우희의 차기 남편 겸 국왕 선발 출장 심사가 시작되고, 이를 눈치챈 정적들이 사방에서 일행을 추격해온다.
이 스릴 넘치는 이야기의 뼈대는 놀랍게도 <삼국사기>에서 따온 것이다. 우씨가 고국천왕 서거를 비밀로 한 채 왕위 계승 1순위 왕자 발기(이수혁)를 먼저 떠본 것도, 그의 반응에 실망해 다음 시동생 연우(강영석)를 찾아간 것도 <삼국사기> 기록으로 남아 있다.
드라마는 상상을 많이 가미했으므로 이후 역사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도 감상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정 파트너를 결정한 우희는 선왕의 유지를 꾸며내 새 왕을 세우고 반란을 진압하는 등 정세를 주도한다. 친자는 없었지만 두 번째 남편 산상왕이 죽은 후에는 후비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왕태후로 군림한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천하에 음탕하고 간악한 여자, 요즘 시선으로 보면 최고의 정치력, 결단력, 능동성에 장수 유전자까지 지닌 영웅이다. 그의 비범한 생애는 고구려가 여성의 사회 활동과 연애를 허용하는 개방된 사회이기에 가능했다. 이 캐릭터와 시대를 소환한 것이 <우씨왕후>의 가장 큰 미덕이다.
<우씨왕후>는 여기에 여러 현대적 설정을 가미했다. 우희는 어릴 때부터 장수를 꿈꾸며 무술을 연마한 인물이다. 왕후가 호위만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칼을 휘두르게 함으로써 캐릭터의 주체성이 선명해졌다. 태시녀 우순(정유미)의 아둔함이 결정적 사달을 유발한다거나 형사취수혼이라는 묘수를 낸 것이 을파소(김무열)라는 설정, 무리한 노출 신 등을 보면 작품 전체가 여성주의에 기반했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술을 하는 왕후와 여성 호위무사, 포악한 졸본의 대가 연비(박보경) 등 강한 여성 캐릭터로 트렌드를 반영한 건 반갑다. 아예 장르물에 익숙한 OTT 이용자를 타깃으로 삼고 자극의 강도를 높인 것도 신선함에 일조한다. 이 전략이 성공을 거두는 건 노출보다는 폭력, 그리고 잔혹한 캐릭터 묘사에서다.
전종서는 배역의 무게에 비해 발성이 얕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특유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분위기로 과감한 지략가 우희 캐릭터에 신뢰를 더한다. 고국천왕은 초반에 사망하지만 왕후의 회상을 통해 계속 서사를 쌓아간다. 지창욱의 카리스마와 절제된 로맨티시즘은 작품 전반의 정서를 지탱하는 강력한 무기다.
극 중 고국천왕은 사이코패스 발기도 그 이름을 들으면 겸손해지게 하는 무서운 인물이다. 동시에 후한에 빼앗긴 북쪽 땅을 찾아오고, 가난한 백성을 위해 진대법을 추진하는 강하고 정의로운 군주다. 힘없는 정의는 무용하다 여기는 요즘 대중 정서에 부합하는 설정이다. 반면 귀족들은 사리사욕에 빠져 있다. 대외 확장을 노리는 지도자와 국내 정치에 매몰된 옹졸한 인사들의 대립은 한국 정치, 사극의 클리셰다. 그만큼 한국 대중의 역사 인식과 결핍감을 반영하는 구도다. 극 중 우희가 직접 다음 왕을 뽑으려는 것도 개인의 욕망이나 부족의 안위 못지않게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서다. 더 뒤틀리고 광기 어린 인물로 그려질 수도 있었을 우희에게 대의명분을 부여함으로써, <우씨왕후>는 안전한 카타르시스를 확보한다.
아쉬운 요소도 있다. 작품 공개 전 불거진 고증 논란은 다행히 금세 가라앉았다. <300>을 연상시키는 오프닝 전투 신의 빨간 망토에서부터 <우씨왕후>가 철저히 고증을 지향하는 장르도, 그렇다고 중국 복식을 생각 없이 끌어 쓸 만큼 가벼운 작품도 아니라는 게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친절하게 풀어가기 위해 보다 기능적인 선택을 해도 좋았으련만, 의상, 분장, 세트 등 미장센의 변주가 크지 않아 대립하는 여러 세력의 구분이 쉽지 않다. 세트가 주로 작고 어두운 목조건물인 데다 야간 촬영도 많아 조명과 앵글에 제약이 많았던 걸로 보인다. ‘300억 대작’을 기대한 시청자들은 간혹 당황스럽겠지만 최근의 드라마 제작비 상승을 고려하면 불평할 정도는 아니다.
파트 2는 을파소가 궁궐에서 진행 중인 살인사건 수사, 우희가 떠난 후 상황을 알아차린 발기의 폭주, 유력 가문들의 암투가 심화되면서 더 극적인 전개가 펼쳐질 예정이다. 스릴과 자극이 넘치는 성인 사극을 원한다면 만족할 작품이다.
<우씨왕후> 파트 2는 9월 12일 목요일 낮 12시 티빙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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