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로 표현하는 출산과 육아
출산과 육아 경험을 감각적인 추상화로 표현하는 로이 홀로웰. 신체 변화를 조명하는 최근 작품을 통해 그가 꿈꾸는 것은 여성을 한결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신화로부터의 완벽한 탈출이다.
전설적인 페미니즘 예술가의 제스처와 네오-탄트라(고대 탄트라 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양 미술 사조) 화가 특유의 명징한 섹슈얼리티를 모두 품은 로이 홀로웰(Loie Hollowell)의 심오한 작업 세계에 대해 유선으로 그와 대화를 나누던 날, 그가 얼굴을 붉히는 것이 수화기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제 추상화를 ‘연결된 남근상(Linked Lingams)’이라고 불러요.” 캘리포니아에서 자라 지금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마흔한 살의 홀로웰이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건넸다. 곧바로 그는 멋쩍은 웃음을 곁들이며 자신의 시각언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몬드 모양의 만돌라(Mandorla, 후광)와 요니(Yoni, 여음상)는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하는 것이고, 튜브 모양의 링검(Lingam, 남근상)은 남성의 생식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다 우리의 대화는 수중 분만과 모유 수유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홀로웰은 시답잖은 이야기까지 구구절절 다 하는 진짜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찾아가는 그런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끼리’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와의 대화(그리고 그의 작품 세계)는 다소 금기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었다. 홀로웰이 맨 처음 보인 조신한 태도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어쨌거나 그는 첫 개인전을 열고 2년 후인 2017년 페이스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합류했으며 최근 경매에서 작품이 몇백만 달러에 판매되는 등 작가로서 무서운 상승 기류를 보이며 성과 몸에 관한 낙인에 맞서는 도발적이면서도 우아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로이는 자신의 몸을 렌즈 삼아 여성의 성과 페미니즘, 어머니로서의 정체성, 생식권 등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얘기하는 작가예요.” 올드리치 현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에이미 스미스 스튜어트(Amy Smith-Stewart)의 설명이다. 스미스 스튜어트는 혁신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1971년 전시 <Twenty Six Contemporary Women Artists(현대 여성 작가 26인)>전을 기리는 의미에서 2022년 추가로 기획한 전시 <52 Artists: A Feminist Milestone(52인의 작가: 페미니즘의 이정표)>을 공동 기획하는 과정에서 홀로웰을 처음 만났다. 이 전시는 1971년 전시에 참여했던 여성 작가 26인에 여성성을 작품의 중요한 특성으로 활용하는 라이징 아티스트 26인을 더해 선보이게 되었는데 그중 홀로웰이 포함된 것이다. “로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리고 다른 초기 페미니스트가 자주 시도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통해 그런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획일적인 예술계에 맞서는 것이죠.”
지난 1월 올드리치 현대미술관은 홀로웰의 첫 회고전 <Loie Hollowell: Space Between, A Survey of Ten Years(로이 홀로웰: 그 사이의 공간, 10년을 돌아보다)>를 선보였다(전시는 8월 11일까지 열렸다). 미술관 1층 전체를 포괄하는 이 전시는 홀로웰의 초기 드로잉부터 임신 기간 동안 부푼 복부와 유방을 본뜬 흉상을 포함해 최근 회화 작품을 모두 아우르며 작품 세계의 개념적이고 물리적인 변화 과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특히 홀로웰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방식에 매료되었다는 스미스 스튜어트는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로이는 자궁 경부가 확장된 모습이든 모유 수유 중인 가슴이 처진 모습이든, 작품을 통해 임산부의 몸이 부풀고 수축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몸을 은유적인 모래시계처럼 활용했어요.”
이 회고전은 홀로웰에게도 뜻깊었다. 그는 전시를 통해 “사람들의 반응을 많이 의식하게 됐다”고 터놓았다. “이런 훌륭한 환경에서 고작 10년간 작업해온 것들을 전시한다는 게 걱정스럽긴 했어요. 지금까지 예술계에서 여성들이 경시당해온 역사를 깊이 체감한 여성으로서 이런 기회가 무척 영광스럽게 느껴질 뿐입니다.” 같은 길을 앞서 걸었던 예술가들에 대한 홀로웰의 깊은 존경심은 조지아 오키프, 주디 시카고 같은 용감무쌍한 미술계 거장뿐 아니라 아그네스 로렌스 펠튼, 플로렌스 밀러 피어스, 힐마 아프 클린트 같은 초월론자와 신비주의 예술가로부터 받은 영향이 모두 응집된 그의 그림에서 생생히 드러난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한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미술가에 깊숙이 개입하려는 홀로웰의 흔치 않은 능력을 감지한 스미스 스튜어트는 홀로웰이 평단의 주목을 받아 마땅한 작가라고 단언한다. “로이는 선지적이고 선구적이며 매우 암시적인 방식으로 아주 중요한 것들이 일체 배제된 예술계를 확장해나가고 있어요.”
올드리치에서의 개인전에 선보인 홀로웰의 추상화는 여성의 신체와 그에 얽힌 모든 것을 숭배하는 듯한 색채와 곡선의 교향곡과도 같다. 그러다 이 작품이 2013년 그가 경험한 낙태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홀로웰에게는 감정적으로 ‘폭풍과 같은’ 시기였다. “당시 경험을 그림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이 사건을 통해 자궁과 질, 가슴을 달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깊이 돌아보게 됐거든요. 그러나 낙태 과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 주제를 추상적인 수준에서 탐구하기로 했어요.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표현하는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죠.”
올드리치 현대미술관 드로잉실에 전시된 홀로웰의 종이 위 흑연 그림 ‘Emerald Mountain’과 적나라한 제목을 단 ‘Happy Vagina’는 그가 낙태를 경험한 뒤 맨 처음 그린 그림이다. (홀로웰은 그 전까지의 자기 그림을 ‘바보 같은 페미니즘 구상화’라 칭한다.) 그는 이 드로잉 작업을 바탕으로 ‘내 자궁 크기’라고 덧붙인 소형 회화 연작을 그려나갔는데, 신체적 · 정서적인 당시 경험을 담고 있는 이 연작은 홀로웰의 시그니처 미학의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홀로웰 미학의 첫 번째 특성인 대칭성은 ‘우리 몸이 대칭이기 때문’에 비롯되었고, 두 번째 특성인 최면을 거는 듯한 그러데이션 컬러는 ‘정신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이 그림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기 전에 먼저 이 풍부한 색채에 푹 빠져들길 바랐어요.” 홀로웰의 증언이다.
홀로웰은 자신의 풍성한 색채 감각은 재봉사였던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의 어머니는 버닝맨 페스티벌에 가는 사람들이 입을 법한 블랙라이트 반사 의상과 회화과 교수였던 남편을 위한 옷을 손수 만들곤 했다. 아버지 덕분에 홀로웰은 캘리포니아 펑크 예술 운동과 ‘빛과 공간 예술’ 운동을 일선에서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색채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빛과 빛의 환영을 나란히 놓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제 작업은 그에 맞는 색채 구조를 필요로 해요. 그림에 꼭 포함시키고 싶은 색깔이 떠오르면, 도미노 현상처럼 모든 게 연속적으로 생각나면서 작품이 스스로 구축되죠.” 홀로웰이 말했다. 그는 회화 작업에 들어가기 전 항상 파스텔로 드로잉을 시작한다. “전달하고 싶은 명확한 느낌이 날 때까지 다양한 색상 조합을 시도하는 편이에요.”
홀로웰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입체성이다. “홀로웰의 작품은 실물로 봐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죠.” 스미스 스튜어트의 말이다. “로이의 초기 작품은 캔버스로부터 표면이 1~2인치 정도 솟아 있었는데 최근 작품을 보면 거의 7~8인치까지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홀로웰의 갤러리스트 제시카 실버맨(Jessica Silverman) 역시 그런 홀로웰의 테크닉을 높이 산다. “로이는 어려운 그림을 쉽게 그린 것처럼 보이게 하죠. 다채로운 색깔로 3차원적 형태를 표현하는 그의 능력은 해마다 발전을 거듭해요.”
홀로웰은 2015~2016년부터 그림에 조각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동시에 자신과 남편의 생식기를 추상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이 평평한 남근 같은 형태가 캔버스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따라서 중앙에 있는 만돌라를 좀 더 도드라지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아주 밝은색으로 칠하고, 높이 쌓아 올리기 시작했어요.” 홀로웰의 설명이다. 조각가인 그의 남편 브라이언 캐벌리(Brian Caverly)는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으면서도 캔버스에 깊이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테크닉을 개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분쇄한 고밀도 폼과 아쿠아 레진은 부부가 무척 선호하는 재료다.
팬데믹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3년 전 딸 주니퍼(Juniper)를 출산한 홀로웰은 그때부터 임신 후기의 가슴과 복부를 본뜬 캐스팅을 (원래는 친구들에게 선물하려던 것이었다) 작업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다섯 살 난 아들 린덴(Linden)과 달리 둘째 아이는 수중 분만으로 출산했는데, 홀로웰은 이 경험을 “신체가 변하는 본능적이고도 강렬하며 아름다운 경험”이라 회상했다. 이후 실제 임신한 몸과 출산 중인 몸을 표현한 예술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남들이 어떻게 여기든 ‘충혈된 유방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보여줘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우리를 둘러싼 문화에서 가슴이 얼마나 성적 대상화되어 있는지 깨닫고 난 뒤 그 깨달음을 아이를 낳은 직후에 제가 가슴에 대해 느끼는 것과 융화시키려 했어요. 제 가슴은 어머니의 가슴이에요. 남들이 소비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죠.” 또 다른 신랄한 작품으로는 ‘11pm, 1am, 3am, 5am, 7am, 9am’이 있다. 갓난아이에게 2시간 간격으로 젖을 물려야 하는 엄마의 일과를 표현한 이 작업은 6개의 12×9인치 캔버스 위에 파란색에서 노란색으로 그러데이션된 유방을 각각 하나씩 묘사하고 있다.
“다들 임산부의 배를 만져보고 싶어 하잖아요.” 홀로웰의 뛰어난 유머 감각은 작품 제목에 잘 드러나곤 하는데(‘Bouncing on the Bed(침대 위에서 방방 뛰기)’나 ‘Tick Tock Belly Clock(째깍째깍 배꼽시계)’처럼) 덕분에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관객은 그림을 만지지 못하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이 납작하고 남성적인 사각형의 캔버스를 ‘임신시켜서’ 절대 만질 수 없는 임산부 배를 만들어보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시장에 걸린 행성 같기도 한 복부 그림 ‘In Transition(변신 중)’은 요제프 알베르스의 ‘Homage to the Square’에 대한 페미니즘적이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응답이라 할 수 있어요.” 실버맨이 제시카 실버맨 갤러리에서 지난 3월 2일까지 열린 홀로웰의 놀라운 개인전 <Loie Hollowell: In Transition>에 대해 한 말이다. “로이의 작품은 옵아트와 에코 페미니즘적 유심론과 맞닿아 있어요. 로이는 자신만의 진화된 버전으로 창세기를 새롭게 그리고 있는 거예요.” 해당 전시는 10점의 회화 연작(그중 1점은 올드리치 현대미술관에 대여 중이다)을 집중 조명했는데, 자연 분만 시에 측정하는 방식대로 자궁 경부가 1cm부터 10cm까지 열리는 과정을 담아낸다. 또한 그림 아래쪽에는 점 같은 빨간 동그라미가 상당한 크기의 원으로 점점 커지는 과정도 그려 넣었다.
홀로웰은 캐스팅한 유방과 복부를 형상화한 작품은 팔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잘 알려진 저의 밝고 컬러풀한 기하학적 그림은 ‘예쁜’ 그림의 카테고리에 속하기 때문에 비교적 팔리기 쉬운 면이 있죠. 그런 것 말고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놀랍게도 이후 여성 큐레이터와 딜러들이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놀랍도록 잘 수용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3년간 작업을 하면서 특히 좋았던 건 예술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우리가 겪은 경험에 대해 아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거예요.”
홀로웰은 몸을 본뜬 작업을 계속해나가는 동시에 올해 말 로스앤젤레스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릴 전시를 위해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그림(가로 1.8m, 세로 2.4m에 이르는)을 그리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회화 입문 단계에서 그린 파스텔 드로잉 작품을 뉴욕 페이스 갤러리에서 전시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전시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제 작품은 몸과 같아요. 언제나 변신 중이죠.” 홀로웰이 말했다. “예술계에서, 특히 저와 같이 출산한 여성 예술가로서 신체의 주기적인 특성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제겐 정말 중요해요. 시장 원리 외에도 정말 많은 요소가 저의 예술에 침투하기 때문에 언제나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VK)
- 글
- Stephanie Sp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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