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기다릴 결심을 했을 때, 함경아 개인전 ‘유령 그리고 지도’
어떤 미술가의 개인전은 그동안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행보를 목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국제갤러리에서 무려 9년 만에 열리는 함경아 작가의 개인전(<유령 그리고 지도>, 11월 3일까지)을 오래 기다린 이유이기도 하지요. 함경아는 그간 사회·정치적 문제를 본인만의 언어와 실천으로 다루어왔습니다. 그중 2008년부터 본격화된 자수 프로젝트는 단연 작가의 대표 연작이라 할 수 있죠. 자수 프로젝트는 자신이 그린 밑그림을 제3자인 중개인들을 거쳐 북한의 수공예 노동자들에게 보내고, 기약할 수 없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작업을 중개인들을 통해 돌려받는 방식의 작업인데요. 이 설명은 몹시 간단하지만, 모두를 불러 세울 만큼 강력합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보다 더 중요한 건 작가의 예술적 의도가 ‘보이지 않는’ 타자의 노동 행위를 통해 구체적인 작업으로 구현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자수 작업을 행한 사람들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부재의 대상’입니다.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으니까요. 작가의 작업이긴 하지만 일정이나 디테일은 물론이고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에 작가가 전혀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통제할 수 없다는 작업 특성상 불가항력적인 변수가 생겨날 수밖에 없겠죠. 그들에게 보낸 작업은 왕왕 사라지고,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즉 우리가 보는 함경아의 자수 연작은 보이지 않는 지난한 과정을 다 극복하고 작가 손에 당도한 작품인 셈이죠. 절대적 상황, 그리고 시공간의 단절을 넘나드는 소통의 매개체인 자수 연작은 보이지 않는 그들의 존재를 촘촘하고 세밀한 자수 스티치로 되살려내는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지정학적 서사를 인식하게 합니다.
자수 프로젝트 중 대표작으로 알려진 샹들리에 연작의 제목처럼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라는 사실은 작품 캡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보통 캡션엔 연도나 재료 등 객관적인 팩트를 기입하죠. 하지만 이 자수 연작의 캡션에는 중개인, 긴장, 열망, 검열, 뇌물, 이데올로기 같은 낯선 단어가 가득 적혀 있습니다. 대략 1명당 1,800시간, 하는 식으로 소요 시간도 추정해서 적어두었군요. 즉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모든 작업 과정이 그 자체로 자수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질료인 겁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곳의 보이지 않는 존재와 무언의 소통을 시도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 의지겠지만 말이죠. 그렇게 함경아는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을 시어 삼아, 만나지 못하는 그들에게 편지를 쓰듯 추상적인 시를 보내왔습니다.
예측 불가한 시간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자수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필연적인 기다림을 전제로 합니다. 작가는 “만약 작업을 하는 데 1만 걸음이 필요하다면, 그중 9,999걸음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는 상태로 걷는 것이다”라 말합니다. 보낸 작품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그럼에도 손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의 간극은 지난 팬데믹 때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춰 선 단절의 시대에, 작가는 그 누구보다 길고 깊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겠죠. 새롭게 선보이는, 자수 작업 가운데에 가로로 긴 리본 테이프가 놓인 신작 ‘유령 그리고 지도 / 시01WBL01V1T'(2018~2024) 등은 이런 시간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캔버스 사이를 잇는 기다란 형태의 선은 작가의 절박한 기다림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기다림은 또 다른 고민과 연구로 이어집니다. 당시 전 세계를 휩쓴 개인적, 집단적 슬픔을 눈물 자국으로 표현한 태피스트리 작업을 함께 선보인 거죠. 물로 번진 수채화처럼 은은한 작업들은 선명하고 컬러풀한 자수 연작과는 또 다른 감정의 소회를 그려냅니다. 한편 3관의 대형 신작 ‘유령 그리고 지도 / “너는 사진으로 왔니 아니면 기차 타고 왔니?”'(2024)는 기다림의 한가운데서 길어 올린 사유로 직조한 작업입니다. 존 버거의 말에서 인용한 이 제목은 실체 없는 유령 같은 이들과 협업해온 예술가로, 가상 세계와 실제 세계 사이에서 사는 동시대인으로서 늘 고심한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리얼리티인가. 디지털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배경에 컬러풀한 곡선을 올린 작업은 다른 두 차원이 충돌하는 작금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작가가 실체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을 오가며 걸어온 길 혹은 그렇게 만든 지도이기도 하죠. 그 혼란한 길에서 직접 맞닥뜨린 감정, 공포든 두려움이든 원시적이고도 아날로그한 감정만이 오직 진실된 것임을 작가는 인정합니다.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신작의 존재가 북한 노동자들과 협업하는 자수 프로젝트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하지만 본인 작업의 끝을 아는 미술가가 과연 있을까요. 기다림이 운명이 된 예술가에게 끝은 시작과 동의어입니다. 함경아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힘겨운 작업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기꺼이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냈습니다. 어쩌면 기다림은 작업의 일부이자 전부였을 것이고, 그 시간을 대하는 작가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적합한 질문은 문제의 자수 프로젝트가 끝났느냐가 아니라 이것이 어떤 다른 형식과 개념의 작업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이번 전시 <유령 그리고 지도>는 작가의 ‘기다릴 결심’이 묵묵히 지켜온 지속성의 단서를 보여줍니다. 제게도 그것은 언제까지라도 함경아라는 작가를 ‘기다릴 결심’의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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