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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지중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만난 이솝

2024.09.23

어느 여름, 지중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만난 이솝

무화과나무 아래서 녹차를 음미하며 평화롭게 보내는 여름날의 지중해. 바로 이솝의 새 향수가 당신을 이끄는 유토피아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9월의 여름, 지중해의 무화과나무를 향으로 재현한 이솝 프래그런스의 최신작 ‘비레레 오 드 퍼퓸’. 그 안엔 예기치 못한 신선함과 편안한 친숙함이 깃들어 있다.

향수는 이솝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특히 다양한 제품군의 향기로운 아로마로 유명한데, 향수로 출시해달라는 고객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프래그런스 영역을 확장했다. 이솝의 프래그런스 제품에는 저마다 다른 브랜드의 DNA가 담겨 있으며, 하우스의 다른 제품과도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린다. 일례로 한 고객이 이솝의 대표 제품 ‘레저렉션 아로마틱 핸드 워시’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테싯’이란 향수를 권하기가 매우 수월해진다. 두 제품을 이어주는 미묘한 향의 연결 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일찍 향수 제품을 출시했다. 최초의 향수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마라케시’다(현재는 ‘마라케시 인텐스’라는 제품명으로 출시되고 있지만 초기작은 ‘마라케시’라고 불렀다).

어느 날, 이솝의 창립자 데니스 파피티스(Dennis Paphitis)는 모로코 마라케시로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휴가에서 돌아온 그는 호주 멜버른에 있는 개발 팀의 화학자에게 마라케시에서의 추억을 향수병에 담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이들의 향수 도전기가 시작됐다. 개발 팀은 스물다섯 차례나 시행착오를 겪은 뒤 천신만고 끝에 ‘마라케시’를 완성했다.

첫 향수를 출시한 후 이솝은 2012년부터 조향사 바나베 피용(Barnabé Fillion)과 협업을 시작했다. 이솝 프래그런스 제품 대부분은 바나베 피용의 능숙한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향수 전문가인 그의 특기는 기존 제품에 지속력과 부향률을 강화해 진정한 향수로서의 면모를 부여하는 것. 그는 ‘마라케시’를 ‘마라케시 인텐스’로 재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여기까지 이솝이 향수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게 된 과정을 살펴봤다. 사실 하우스가 향수 브랜드로도 인정받게 된 시점은 조향사와 협업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솝과 협업하는 조향사는 단둘, 바나베 피용과 셀린느 바렐(Céline Barel)이다. 바나베 피용이 ‘마라케시 인텐스’를 조향했다면, 그 유명한 ‘테싯’은 셀린느 바렐의 작품이다.

향수는 향료를 추출하는 방식과 각 아로마를 아름답게 조합하는 전문성을 갖춰야 비로소 온전한 제품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 향은 다른 향과 레이어링을 통해 새로운 향으로 변모한다. 이런 점에서 향수는 하나의 ‘예술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솝 프래그런스에는 열한 가지 제품이 있다. 향기 계열은 ‘프레쉬’ ‘플로럴’ ‘우디’ ‘오퓰런트’ 총 네 가지로 구성된다. 올가을 <보그>는 프레쉬 계열 향수에 조금 더 주목하고자 한다. 이솝이 ‘테싯’ ‘카르스트’에 이어 새롭게 출시한 무화과 향 향수 ‘비레레 오 드 퍼퓸(비레레)’도 프레쉬 계열이니까. 프레쉬는 시트러스나 허브, 바다를 연상시키는 향기로 주로 쓰이는 향료로 제라늄과 유자, 베르가모트가 있다. ‘비레레(Virēre)’는 ‘풍성한 초록’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신선한 그린 노트와 우디 노트가 생생히 느껴지는 향수의 특징을 잘 담아낸 이름이다. 바나베 피용과 나눈 대화를 통해 이솝과 ‘비레레’의 매력에 심취해보자.

이솝 프래그런스 제품 대부분은 조향사 바나베 피용의 능숙한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재료를 탐구하고 영감을 흡수하는 그에게 ‘비레레’는 단순한 향수를 뛰어넘어 독창적인 이솝 프래그런스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솝 향수를 창작할 때 지키는 전통이 있나요?

이솝과 함께 향수를 개발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프래그런스를 개발하는 접근 방식에 대해 이솝과 긴밀히 논의하는 한편, 특정 식물에 대한 제 관심과 후각 분자 연구, 에센스를 혼합하는 즐거움을 통해 구체적으로 개발하죠. 저는 이솝 창립자에게 ‘이솝피언’의 철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말처럼, 단순함은 이솝의 분위기를 조성해주었죠. 조향할 때 자연의 아름다움과 단순함을 표현할 성분을 엄선하는 이유입니다.

지중해 여행담을 들려주세요. 당신이 바라보고 느낀 지중해를 어떻게 향수에 녹여냈는지도요.

‘비레레’를 통해 9월의 여름, 유럽 거리의 무화과나무를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거나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그 향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요, 특유의 아로마는 신선한 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을 즐기는 시간과 축하의 순간, 여름날의 추억이 떠오르게 하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여러 요소를 조합해 아로마를 완성했고, 이는 차를 우리는 행위, 공기 중에 맴도는 무화과 향기, 소중한 순간과 기억을 연상시킵니다.

‘비레레’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향수 포뮬러를 구상하고 있었나요, 아니면 창작 과정을 거치며 구상한 건가요?

향수를 조향하는 동안에는 포뮬러나 다른 향수에 대한 생각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대신 건축물, 주변의 풍경, 노래 혹은 예술 작품을 염두에 두죠. 호기심 가득한 새로운 시각으로 매일 재료를 탐구하고 영감을 흡수합니다.

이번 컬렉션의 주요 원료는 무엇인가요? 원료를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CO₂ 추출법을 통해 그린 티와 카다멈 같은 성분에서 활기차고 밝은 노트를 추출했습니다. 또 자연스럽고 상쾌한 아로마틱함을 살리기 위해 그린 마테를 앱솔루트 형태로 사용했죠.

증류 공정의 특별함이 궁금합니다.

재료를 우려낼 때 맡을 수 있는 향과 유사하게 표현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찻잎에서 맡을 수 있는 허브와 우디 향으로 표현되는 그린 티가 있고, 여기에 그린 마테를 더해 완벽한 베리에이션을 완성했습니다. 그린 마테 앱솔루트는 온침법을 통해 무거운 분자가 형성되어 강렬하고 지속력 있는 베이스 노트를 선사합니다. 또 드라이한 허브 향으로 말린 찻잎 냄새를 맡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전합니다.

그린 아로마 노트로 강조하고자 한 핵심은 뭔가요?

‘비레레’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생동감 넘치는 싱그러운 아로마로 시작하며, 자연스러운 그린 노트로 강조된 밝고 상쾌한 시트러스 향이 특징입니다. 베르가모트, 페티그레인, 그린 만다린이 어우러져 활기차고 세련된 노트를 선사하죠. 그린 만다린이 허브 향에 살짝 다가가는 느낌이라면, 갈바넘은 다소 ‘극단적’이라 할 수 있는 그린 노트로, 오프닝 노트에 볼륨과 텍스처를 더합니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초록 열매와 고유한 아로마를 지닌 잎이 달린 줄기가 그린과 허브 향을 동시에 발산하면서 은은한 제비꽃 같은 플로럴 노트를 풍기는 무화과나무의 첫인상을 만들어냅니다.

전형적이지 않아서 더 흥미로운, ‘비레레’ 특유의 상쾌함은 어디에서 느껴질까요?

열이나 습도처럼 보이지 않는 순간을 포착한 데서 그 특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차를 우릴 때 올라오는 증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 느껴지는 촉감처럼 ‘비레레’에는 예상치 못한 신선함과 편안한 친숙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마른 잎이 허브의 신선한 아로마로 변화하는 것처럼, 우려내고 분사되는 과정을 통해 아로마가 변화하는 증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프래그런스의 베이스 노트는 미네랄의 풍미와 함께 짭짤한 아로마를 통해 풍부한 과즙의 무화과가 담긴 갓 내린 한 잔의 녹차가 주는 ‘우마미(Umami, 감칠맛)’를 떠오르게 합니다.

프레쉬 노트를 진부하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나요?

자연과 상호작용하거나 함께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떠올려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무화과 나뭇잎을 꽉 쥐어보거나, 코와 입으로 ‘교쿠로(Gyokuro, 녹차의 일종)’를 느껴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특정한 감각을 따라가며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아로마를 구상했습니다.

수많은 과일 중 ‘무화과’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요?

무화과 향은 여름날 추억, 지난날의 향수, 그리고 단순한 즐거움과 기쁨을 불러일으킵니다.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여름에 항상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쉬며 그곳에 영원히 머물렀으면 하는 순간이 있었죠. 또 이탈리아의 좁은 거리 한가운데서 갑자기 무화과 향기를 맡는 순간, 어디서 풍기는지 추측해보는 상황을 떠올리곤 합니다.

향수를 완성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나요? 이번 작업은 평소에 비해 빠르게 전개되었나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하나의 프래그런스를 완성하기까지 몇 주 혹은 1년까지 소요되기도 합니다. ‘비레레’는 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죠.

향수를 뿌린 뒤 바로 향을 맡는 행위는 향수의 첫인상을 알아가는 것과 같죠. 이번 향수를 개발하며 착향도 많이 해봤나요?

네, 특히 입고 있는 옷에 뿌려보곤 했습니다.

‘비레레’가 이전 향수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비레레’는 이솝의 열한 번째 작품으로, 독창적인 이솝 프래그런스 레인지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마라케시 인텐스’ ‘테싯’ ‘휠’ 같은 클래식 프래그런스와 자리를 함께하죠. 시트러스·그린·우디 향이 돋보이는 이번 신작은 ‘마라케시 인텐스’의 화려한 우디 향과 스파이시 아로마, ‘테싯’의 산뜻한 그린 아로마, ‘휠’의 복잡한 우디 향과 스모키 아로마와는 차별됩니다.

‘비레레’를 통해 바라는 단 한 가지를 꼽아본다면?

어릴 적부터 최근 여름의 절정,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떠올리길 바랍니다.

소비자들이 이 향수를 언제, 어떤 감정으로 사용하길 바라나요?

저에게 무화과 향기는 다른 향에 견줄 수 없습니다. 너무 강렬해서 거리를 오가며 한번 맡으면 완전히 매료되어 향기를 좇게 될지도 몰라요. 그 근원을 찾고 있는 거죠. 이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흥미로운 자극이어서, 짧은 시간 차를 급하게 우려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 아래 앉아 사색에 잠기는 것처럼 온전히 누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레레’와 잘 어울리는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유럽의 푸른 하늘 아래 여름 햇살을 맞는 순간, 하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비레레’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옷이나 가방, 궂은 날씨나 어둠 속에서도 혹은 점심이나 저녁 시간이든 여름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면 언제든 ‘비레레’를 추천해요. 향수를 뿌리는 시간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할 순 없지만, 그 자체로 축하나 아름다운 추억 혹은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솝이라는 브랜드와 ‘비레레’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비레레’는 시간과 계절을 표현함과 동시에 시간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이솝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향수를 통해 여름날의 기억이 1년 내내 지속되기를 바라는 점에서 말이죠. 또 ‘비레레’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트렌드를 좇지 않습니다. 무화과를 표현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열매와 잎의 향을 포착해 더 상쾌하고, 그린 티의 복합적인 아로마를 아우르죠. (VK)

    뷰티 디렉터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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