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 “연기, 이제 도전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모델 김원중이 생애 첫 연기에 도전한다. 장거리달리기를 하듯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지금 그는 인생의 새로운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박상영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옴니버스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출연 소식에 의외라고 여겼다. 연기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간 숱한 제안과 기회가 있었을 텐데?
제안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렇게 또 많지도 않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다기보단 개성 강하게 생겼다는 얘길 듣는 얼굴이지 않나. 물론 관심은 있었다. 20대 때 패션 디자인 관련해 비즈니스를 시작하다 보니 그땐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거다. 표현에 대한 갈증은 분명히 있었다. 그걸 연기라는 출구를 통해 풀어나갈 거라 맘먹은 건 2년 정도 됐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을지, 계속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디자인 일은 이만하면 즐겁게 했으니 더는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 생기면서 생활이 안정되고 나니, 과거에 놓친 것들이 떠올랐다. 제일 아쉬움이 남는 게 연기였고, 이제 다시 도전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연기를 해보니 어떻던가?
조금씩 꺼풀이 벗겨지는 느낌이다. 편한 사람과 있을 때가 가장 ‘나’답다고 살아왔는데,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도 ‘나’고, 불편한 상황 속에 있는 나도 ‘나’였다. 연기를 배우면서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이 모두 나라는 걸 깨닫고 있다.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고, 때로 울기도 한다.
퀴어 로맨스 장르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내가 연기를 한다는 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쑥스러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지만 장르적인 부분은 문제 되지 않았다. 제안을 받고 곧장 서점에 가서 책을 읽어봤다. 쉽게 읽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퀴어물이라기보다 청춘과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이 더 큰 둘레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거기에 맞춰 연기했다.
소설가 박상영(1988년생)과는 한 살 차이다. 당신이 맡은 ‘하비비’ 역시 동시대의 인물이라 아무래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겠다.
박상영 작가와는 회식 자리에서 인사를 나눴다. 작품에 누를 끼칠까 걱정이 많았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된다”고 말해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원작에서 하비비에 대한 서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더 자유로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 고영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 속에서 하비비의 감정은 과거 미국 유학 시절이 치열하고 외로웠다는 정도로만 짧게 드러난다. 단지 성 정체성에 대한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나 혼자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주인공이자 당신의 상대역인 고영 역의 남윤수 역시 모델 출신이다. 아는 사이인가?
모델 일을 할 때 많이 보긴 했지만 한자리에서 대면한 건 대본 리딩 때가 처음이었다. 에너지가 좋고 긍정적인 성격이라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덕분에 재미있게 촬영했다. 서로 뿌리가 같다 보니 거기에 기대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많이 묻고 의지했다. 내 어깨 너머로 윤수 씨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눈빛과 표정에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오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하비비는 멋지고 부유한 일본계 남자다. 스타일링에도 신경을 많이 썼겠다.
서울에선 평소 내가 즐겨 입던 맞춤 수트에 구두를 신고 촬영했다. 태국에서는 또 그곳 분위기에 맞췄다. 직업이 모델이라 그런지 잘 맞는 옷을 입었을 때 확실히 자신감이 더 생긴다.
당신의 도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누구인가?
가족이다. 든든한 가족이 생기니까 더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어떻게 보면 내가 쉬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온 건 빨리 안정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안정적인 지금이야말로 모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무책임한 건 절대 아니다. 다 마련해놨다.(웃음) 약간 삐끗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그런 상황에 대해선 부담이 없다.
팔에 있던 문신은 지운 것인가? 꼬마 김원중의 모습도 있었는데···
지우고 있는 중이다. 연기 일을 하는 데 영향이 있을 것 같은 부분만 지우고 있다.
혹시 10km 달리기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그렇다. 드라마 촬영을 해보니 체력이 절실했다.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달리기를 한 지는 9개월 정도 되었다. 주로 한강과 서촌 쪽이 코스다. 혼자 러닝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 내겐 특별한 시간이기도 하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고등학교 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줄곧 여기서 생활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회색 콘크리트의 도시다.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다양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여러 컬러가 존재한다. 네온사인 혹은 무지갯빛처럼 각각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색깔이 있는 도시라고 본다.
요즘 당신의 일과는?
전에는 집, 회사, 촬영, 이 세 가지를 반복했다면 지금은 여가 시간이 늘었다. 불안을 양분 삼아 강박적으로 일해오며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잠시 일을 쉬기도 했고, 갈증이 나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주변의 것들이 보인다. 내가 하는 일도 자세히 보게 된다. 문어발식으로 일을 벌이기보다 하나에 집중하니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기도 하다.
아메리칸 어패럴 매장에서 일하다 모델로 발탁됐다. 그게 벌써 15년 전이다.
15년!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몰랐다. 모델 일은 지금도 즐겁고 재미있다.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다. 다만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에 대한 고충은 있다. 모델로 많이 알려지다 보니 어느 순간 ‘김원중이니까’ 하는 수식어가 붙어버렸다. 그게 칭찬의 뜻이라는 건 알지만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좀 씁쓸하기도 했다. 그런 고민이 일종의 발화재가 되어 연기를 하게 된 것도 같다.
베테랑 모델이니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을까?
제발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연기를 하는 걸 수도 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감독님과 청춘에 대해 얘기 나눈 적 있는데, 나이를 떠나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난 그게 청춘이라 여긴다. 이젠 나라는 사람의 확장판을 만들어보고 싶다. 게임에도 확장판이 있지 않나.
드라마는 10월 21일 첫 방송된다. 청춘으로 사는 김원중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촬영이 끝난 후 감독님이 “고맙습니다. 당신의 동료 김세인”이라고 적힌 작은 손 편지를 주셨다. 동료라는 그 말이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모델 일과 연기 모두 공동 작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생각보다 빨리 연기를 하게 됐고, 거기에 대한 떨림, 걱정이 많은 상태다. 연기자로서 계속 노력하고, 쓰임새 있는 동료가 되기 위해 준비하겠다.
하비비(Habibi)는 아랍어로 ‘내 사랑’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하비비를 연기하면서 참 좋았다. 모델 캐릭터는 그날 촬영이 끝나면 사라져버리는데 하비비라는 인물은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살아 있지 않나. 내가 또 하비비가 되는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애착이 크다. 솔직한 마음으로,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한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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