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S/S 파리 패션 위크 DAY 2
패션계, 아니 전 세계가 직면한 온갖 어려운 문제 앞에서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낙관은 고사하고 시니컬해지기 쉬운 현실이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차분히 파고들고 확장하며 깊이감을 더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파리 패션 위크 2일 차를 채워낸 하우스도 그랬습니다. 꾸레주, 아크네 스튜디오, 드리스 반 노튼 모두 하우스 고유의 목소리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죠. 각자의 색을 더욱 공고히 한 파리 패션 위크 2일 차, 오늘의 쇼를 만나보세요.
꾸레주(@courreges)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언제나 무언가가 끊임없이 ‘컴백’해요. 비단 패션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순환과 반복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니콜라 디 펠리체(Nicolas Di Felice)의 주제는 금속으로 만든 뫼비우스 띠 모양의 초대장에서부터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투피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로 이어진 드레스가 가장 대표적이었죠. 주제는 룩을 거듭하며 확장되었습니다. 바지 한쪽 솔기에서 시작된 천 조각은 다리 사이를 가로질러 반대쪽 다리 솔기로 연결되며 스커트와 반바지를 합친, 독특한 실루엣을 완성해냈죠. 동그란 암홀 구멍이 난 원형 드레스도 주제에 완벽히 부합했고요. 니콜라는 원래 똑같은 옷 40벌로 컬렉션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냉소적인 태도는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죠. 대신 니콜라는 앙드레 꾸레주가 1962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케이프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상투적이진 않았어요. 거대한 후디가 달린 케이프, 뒷면에 마틴게일이 달린 코트, 방도 디자인이 돋보이는 홀터 드레스 등 아카이브를 현대적인 버전으로 진화시키는 사이클을 반복하며 현재 꾸레주 특유의 섹시하고 쿨한 무드를 양껏 담아냈죠.
아크네 스튜디오(@acnestudios)
부드러움, 장난기, 자발성. 이 세 단어는 조니 요한슨이 지난해 아티스트 조나단 린든 체이스(Jonathan Lyndon Chase)의 작품에서 받은 영향이자 영감입니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패션에만 몰입했다는 생각이 든 그는 이번 쇼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로 마음먹었죠. 그렇게 아크네 스튜디오 2025 S/S 쇼장을 조나단 린든 체이스의 설치 작품으로 채웠습니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프런트 로에는 낙서와 해진 흔적으로 가득한 가구와 오브제가 놓여 있었습니다. 어지럽지만 친숙했어요. 누군가의 거실처럼요. 컬렉션도 그랬습니다. 꽃무늬 식탁보가 떠오르는 블라우스, 잘못 세탁한 것처럼 쪼그라진 조끼, 하도 오래 입어 가장자리가 닳아버린 니트웨어 등 익숙한 이미지가 장난스럽게 과장되고 변형된 실루엣으로 나타났죠. 옷은 가구와 마찬가지로 세월이 축적되는 사물입니다. 우리 몸과 정체성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조니 요한슨의 쇼는 우리가 패션을 넘어 옷 자체에 갖고 있는 이 감정을 기분 좋게 건드렸습니다.
드리스 반 노튼(@driesvannoten)
쇼장은 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감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드리스 반 노튼이 지난 6월 남성복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런웨이에서 은퇴한 후 공개된 첫 컬렉션이었으니까요. 이번 쇼는 앤트워프 스튜디오 팀의 손길로 완성됐습니다. 극적 변화보다는 드리스 반 노튼의 문법을 성실하고 유창하게 반영했지요. 풍부한 색채와 노련한 패턴 믹스, 섬세한 자수 디테일 등 하우스와 디자이너 고유의 느긋하고 고전적인 스타일이 컬렉션을 가득 채웠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란제리 요소가 곳곳에 가미되었다는 겁니다. 블루종 안에 받쳐 입은 레이스 방도 톱, 실키한 쇼츠, 자수가 수놓인 이브닝 재킷 룩 등은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해볼 수 있는 일종의 단서가 되어주었죠.
#2025 S/S PARIS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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