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S/S 파리 패션 위크 DAY 3
과거를 답습하기보다는 재해석에 가까운 룩이 눈에 띄었습니다. 세계 정세나 흐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반항적 의미는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우스의 정체성을 잃지 않되 ‘옷이라는 목표를 향해 간다’는 의지의 컬렉션처럼 보였습니다. 관심사란 오로지 ‘옷’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처럼 사회 정치적 맥락에 휩쓸리지 않고 각 하우스의 목소리를 낸 파리 패션 위크 3일 차 쇼를 만나보세요. 어느 날보다 패션 위크라는 느낌이 들 겁니다.
끌로에(@chloe)
“우리는 끌로에의 다른 측면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셰미나 카말리는 끌로에에서 성공적인 1년을 보냈습니다. 두 번째 컬렉션에 부담감이 컸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서 어떤 불안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는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쇼가 어떻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 알았고 많은 행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모든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집니다. 알죠?”라고 되물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죠.
2024 F/W에서 진화한 버전이자, 2004년 피비 파일로의 S/S 컬렉션과 스텔라 맥카트니 시대의 건방진 무드도 섞여 있었죠. 하이 웨이스트 플레어 진과 핑크 플라밍고 수영복 같은 캐주얼한 요소가 그 증거였고요. 확실히 ‘샤랄라한’ 무드의 레이스보다는 좀 더 입기 쉬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컬렉션은 1977년과 1978년 칼 라거펠트의 끌로에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특히 웨이스트 셰이퍼와 레이스 블루머에 꽂혀 있었죠. 둘 다 2025년 섹시한 옷차림의 인상을 바꿀 잠재력이 있었죠. 속이 비치는 레이스 드레스에 코튼, 스웨이드, 가죽으로 만든 재킷은 관능미를 눌러주며 균형감을 주었습니다. 신선함과 가벼움, 끌로에를 끌로에답게 만든 컬렉션을 살펴보세요.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
다니엘 로즈베리가 기성복 컬렉션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조용한 럭셔리와 알고리즘에 벗어나겠다는 빅 브랜드의 행보에 그도 한 표를 내밀었습니다. 물론 꾸뛰르처럼 할 순 없겠지만 기발함을 유지하되 기성복의 세계에서 납득할 수 있는 룩을 만들기 위해 몇 년째 노력 중이죠. 켄달 제너의 청바지가 매우 적절한 예였습니다. 지퍼를 잠그면서 이것이 맞는지 확인해볼 듯한 느낌을 주었죠. 허리 라인이 U자 모양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안쪽에 스트레치 코르셋이 달린 아이보리색 저지 보디수트는 그녀의 잘록한 실루엣을 강조했고요. 이 모래시계 모양은 데이 드레스와 홀터 드레스 등 다양한 곳에 활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로즈베리의 이번 컬렉션은 다양한 도전에 있었기에 공통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특히 그는 이번 시즌 자수를 얼마나 적게 사용했는지 강조했습니다. 대신 매듭을 꼬아 만든 긴 끈을 모델이 채찍처럼 들게 했죠. 특기인 트롱프뢰유를 교묘하게 활용하기도 했고요. 푸른색 배경 때문이었을까요? 그의 룩에서 해변가를 산책하는 사람들부터 심해 물고기와 생물까지, 바닷속을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니엘의 바다 생물 모음집 같았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해보세요!
뮈글러(@muglerofficial)
케이시 캐드월라더는 식물을 탐구했습니다. 꽃의 단면이 해부학적으로 묘사된 일련의 이미지를 보면서 식물 내부의 복합성에 매료된 것처럼 보였죠. 충격적인 데다 불안한 느낌을 주었고 그는 ‘위협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진주 단추 하나로 잘록한 허리를 잠근 블랙 재킷은 꽃을 피우듯 어깨로 갈수록 넓어졌죠. 오간자를 겹겹이 쌓아 만든 청록색 꽃이 숨죽이고 있다든가, 막 피어나려고 땅을 밀어낸다든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흐드러지게 핀 모습은 극적이었으며, 함께 있을 때나 한 피스씩 따로 떼어내도 이야기가 되었죠. 또한 뮈글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카키색 드릴 수트와 데님 조끼, 다리가 약해진 줄기 모양 청바지도 있었습니다. 모든 건 창립 50주년을 맞아 브랜드가 옷을 입히는 방식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이번 컬렉션이 의미 있었던 건 50주년인데도 노스탤지어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죠. 리바이벌이란 쉬운 길을 두고, 과거의 것을 재맥락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카이브에 있는 아이디어를 깊이 파고드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죠”라고 말했으며, 말 그대로 자신만의 뮈글러를 만들어냈습니다. 마음에 드는군요.
릭 오웬스(@rickowensonline)
영화 <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자주 이야기하는 세실 B. 드밀이나 켄 러셀을 떠올렸으면 좋겠지만, 광기나 욕망이 거세된 디스토피아적 무드가 런웨이에 감돌았죠. 비가 내린 후 자욱이 가라앉은 공기 무게나 옷 무게나 조심스럽게 걸어야만 했던 모델들 발걸음까지 모든 것이 무겁게 다가왔으며, 다른 행성에 떨어진 느낌마저 풍겼습니다.
타르에 담근 듯한 데님 컷오프, 화려한 튤 스톨, 자주 협업하는 스트레이투케이(Straytukay)의 바람 빠진 풍선 부츠를 결합한 룩을 통해 그의 자율성을 마음껏 드러냈습니다. 통풍이 잘되는 프린트 시폰 카프탄도 그러했고, 슬로베니아의 장인 탄야 비딕(Tanja Vidic)과 협업한 니트 가운은 편안함과 웅장함이 아주 매력적으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번 시즌 오웬스는 파리 디자인 학교의 학생들을 모델로 기용했습니다. 체형이 다른 학생들에게 옷을 입히며 “모든 체형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며, 우리 회사에도 좋은 연습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죠.
#2025 S/S PARIS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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