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S/S 파리 패션 위크 DAY 7
패션쇼의 재미는 단순히 새 옷 구경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디자이너의 화두와 비전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파리 패션 위크 7일 차를 채운 디자이너들이 건넨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누군가는 자신과 패션에 대해 돌아봤고, 또 누군가는 환경과 여성에 대해 노래했죠. 쇼장을 캔버스, 옷을 물감 삼아 완성한 아름다운 그림들, 오늘의 쇼를 만나보세요.
발렌시아가(@balenciaga)
패션과 관련된 뎀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유년 시절 골판지에 그린 룩을 가위로 오린 뒤 부엌 테이블에서 ‘패션쇼’를 했던 순간입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긴 다이닝 테이블 위에 자신의 비전을 완벽한 코스로 펼쳐 보였습니다.
쇼의 문을 연 건, 2025 S/S 트렌드로 확정된 란제리 룩이었습니다. 전형적인 관능미나 특유의 연약함을 강조한 룩은 아니었어요. 브래지어와 가터 벨트 등은 모두 타이트한 살색 보디 스타킹을 장식한 자수였습니다. 일종의 눈속임, 트롱프뢰유였던 거죠.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DNA인 누에고치 같은 오버사이즈 실루엣도 제법 많은 지분을 차지했습니다. 대신 크롭트 봄버 재킷 같은 아이템에 적용해 전형적인 느낌을 피해 갔고요. 기발함은 룩을 거듭하며 이어졌습니다. 드레스와 데님 룩의 뒷면은 하나의 거대한 코르셋처럼 조여 있었고, 딱딱하게 풀칠한 청바지는 외투의 옷깃을 대신했죠. 각종 아이템을 어지럽게 섞은 듯한 룩은 지난 시즌 브래지어로 만든 이브닝드레스의 맥락을 이어가는 듯했습니다. “패션계는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세련되고 완벽해지려고 하지만, 저에게 패션은 그런 게 아니에요. 패션은 엉망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망가져야 해요. 두려움이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뎀나의 말이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와닿는 쇼였죠.
스텔라 맥카트니(@stellamccartney)
“하늘에 비행기만 있고, 나무에 노래가 없는 세상은 결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선언문을 읽는 헬렌 미렌의 목소리가 지난 시즌에 이어 또 한 번 쇼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지난 20년간 환경과 지속 가능성은 스텔라 맥카트니의 원동력이자 창의력의 원천이었습니다. 이번 시즌 그녀의 마음을 건드린 건 새였죠. 맥카트니는 “매해 15억 마리의 새가 패션 산업 때문에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며 입을 뗐습니다. 지속 가능한 소재가 91%를 차지하는 이번 컬렉션은 새처럼 자유롭고 가뿐한 룩의 향연이었습니다. 하우스 특유의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수트 룩은 물론이요, 재활용 플라스틱 병으로 만든 드레스는 구름 뜬 하늘처럼 보송하고 풍성했습니다. 이 드레스는 맥카트니가 가장 좋아하는 룩으로 꼽기도 했죠. 동그란 실루엣의 미니 드레스는 갓 부화한 아기 새를 보는 것처럼 사랑스러웠고요. 비둘기 무늬는 옷 곳곳에 프린트되었고, 황금빛 새 모양은 브라 톱과 목걸이, 팔찌로 재탄생했습니다. 자신이 몸담은 업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아름다움과 희망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스텔라 맥카트니. 매 시즌 그녀의 행보에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가브리엘라 허스트 (@gabrielahearst)
지속 가능한 럭셔리, 차분하고 강인한 여성상, 세련되고 섬세한 스타일. 우리가 가브리엘라 허스트 하면 떠오르는 표현입니다. 이번 시즌, 그녀는 조금 더 멀고 깊은 곳을 내다보았습니다. 여신 숭배, 자연에 대한 경외심, 여성에 대한 존중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 붙었죠.
쇼 노트에는 각 룩마다 영감을 준 신화 속 여신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었습니다. 드레시한 가죽 케이프는 그리스신화에서 아르테미스로 통하는 다이애나를, 체인 잠금장치를 단 블랙 블레이저는 대지의 여신 헤카테를, 팬츠 수트와 퍼프 슬리브 드레스에 사용한, 금속으로 직조된 실크는 믿음과 신뢰의 여신인 피데스를 떠올리게 했죠. 카우보이 부츠와 가죽 코트 등 곳곳에 가미된 컨트리 요소는 가브리엘라 허스트만의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면모를 자연스럽게 강조했고요.
#2025 S/S PARIS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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