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감각에 몰입하라! ‘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展
요즘만큼 높은 관심을 실감하는 시기가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현대미술 시장이 뜨겁습니다. 곳곳에 생겨나는 전시 공간이 이를 증명하는데, 특히 그런 공간에서 진행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저 같은 미술 애호가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9월 초 북촌 가회동에 새롭게 선보인 푸투라 서울(FUTURA SEOUL)은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 공간입니다. ‘푸투라’는 미래를 뜻하는 라틴어라고 하죠. 즉 유구한 역사를 지닌 북촌에서 미래를 향한 다각적 시선을 담아내는 예술 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셈입니다. 그 문을 여는 개관전의 주인공이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이라는 점도 꽤 의미심장합니다. <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라는 전시는 올해 초 서펜타인이 기획해 공개되었고,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점에서 예술적 야심의 근거까지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인 레픽 아나돌은 LA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의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들은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자연에 특화된 오픈소스 행성형 AI 모델인 ‘대규모 자연 모델(LNM)’을 기반으로 완성되었다는군요. 여기에는 자연에 대한 모든 것이 존재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수집해온 대량의 자연계 데이터, 각종 박물관과 학문 기관이 소장한 데이터, 그리고 전 세계 16곳의 우림에서 실제 수집한 사진, 소리, 3D 데이터까지, 시공간을 아우르는 무수한 자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의 시점으로 만들어낸 미디어 아트입니다. 인공지능이 파악한 자연 세계는 어떤 형태, 어떤 색감, 어떤 에너지를 띠고 있는지 보여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인식하는 자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레픽 아나돌은 자신이 오랜 시간 연구한 결과물을 다양한 형태로 선보입니다. 전시장 초입의 ‘대규모 자연 모델’은 이 공간에서 곧 보게 될 작품들의 탄생 과정, 즉 데이터 수집 과정을 소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1억 개가 넘는 자연 풍경 이미지에 기반한 작품 ‘기계 환각-LNM: 풍경(Machine Hallucinations-LNM: Landscape)’ 등의 작업은 거대한 스케일과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보는 이의 감각을 압도합니다. 특히 작가가 서울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서울 바람’은 서울 전역 바람의 풍속, 방향, 돌풍 패턴, 온도 등 각종 데이터를 수집해 만든 역동적인 작품입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바람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내가 사는 실제 세계와 디지털 세계, 자연과 인간을 연결합니다.
전시를 보는 내내 묘한 향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처음엔 그저 새로 생긴 건물이라 그렇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역시 작품의 일부라고 합니다. 약 50만 개의 향기 분자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개발한 향기가 실제 자연의 내음을 재현함으로써 완전한 몰입을 선사하려는 의도인 겁니다. 더 나아가 이로써 관람객에게 살아 있는 아카이브의 일환이 될 기회를 선사하는 거죠. 기술이 발전할수록 미디어 아트는 더욱 높은 완성도를 갖추기 위해 빠르게 진화할 겁니다. 그 어지러운 진화의 한가운데에서 레픽 아나돌은 현대미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 즉 감각과 참여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존재의 명분을 구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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