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공개된 ‘정년이’, 원작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정년이> 원작은 2019~2022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어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 작품이다. 1950년대 짧은 전성기를 누린 여성 국극이 소재다. 여성 국극은 주로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고, 남역 주연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예술’은 그 자체로 <정년이>의 소재이자 주제이자 주인공이다. 정년이가 목포 시장에서 소리를 팔 때부터, 사람들은 자꾸 그에게 레코드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진 전설의 소리꾼 채공선의 딸이 아닌가 묻는다. 국극의 매력에 푹 빠진 정년이 무턱대고 노래 연습을 하다가 목을 다치기도 한다. 그만큼 음악이 중요한 작품인데, 웹툰에서는 그것을 독자들이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IP의 확장은 원작의 메시지를 완성한다는 점에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2023년 국립창극단이 <정년이>를 초연했고, 이번 드라마는 주인공 김태리가 3년 동안 노래, 무용, 사투리를 배우며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대가 큰 만큼 프로덕션 기간 중 잡음도 많았다. 가장 큰 논란은 퀴어 캐릭터의 삭제 혹은 변형 여부였다. 캐스팅 목록에 권부용이 빠진 것이 기존 독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부용은 윤정년의 ‘1호 팬’이자 재능을 감춘 작가다. 한편 부용은 결혼·출산·육아 도구로서 가부장제의 이상을 실현하도록 강요받는 부잣집 장녀다. 부용의 성 정체성과 창작욕, 강한 자의식은 이런 압박과 끝없이 충돌한다. 부용의 어머니는 남성 가부장에게 자기 작품을 빼앗긴 예술가고, 부용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세상의 벽을 실감한다. 부용과 정년은 퀴어 로맨스 관계이자 위기의 예술가와 페르소나 쌍이기도 하다. 원작 후반은 숫제 부용이 주인공인 스핀오프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 캐릭터의 존재감이 크다. 그래서 부용의 부재에 실망하는 팬들도, 이야기의 집중력을 위해 이 캐릭터를 덜어냈다는 제작진도 납득이 간다.
드라마 초반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한다. 김태리는 ‘흙 감자’ 같은 시골 소녀 정년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원작부터가 김태리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진 만큼 ‘싱크로율’은 걱정할 게 없다. 배우 특유의 털털한 제스처와 시선을 사로잡는 능력 덕분에 정년이가 차세대 남역 주연으로 발탁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김태리는 1~2회의 가창 장면도 직접 소화해 화제가 되었다. 다만 듣자마자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무학의 ‘천재 소리꾼’이라기엔 아직 소리의 감동이 약하다. 훈련을 통해 정년의 소리가 변화하는 과정을 이 작품이 어디까지 설득해낼 수 있을지가, 그래서 더 궁금하다.
<옷소매 붉은 끝동>(MBC)의 정지인 감독 작품답게 영상미는 뛰어나다. <정년이>는 제작비 갈등으로 편성 채널이 바뀌었을 정도로 완성도에 공을 들인 작품이다. 야외 로케이션, 코스튬, 매란국극단의 한옥 합숙소는 화면에 정돈된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어느 프레임을 잘라내도 잘 만든 화보 같다. 단체 신도 아낌없이 선보인다. 무용 연출도 공들인 티가 난다. 매란국극단 간판스타 서혜랑(김윤혜)의 유려한 춤 선, 자타 공인 차세대 남역 주연 허영서(신예은)가 방자 연기를 할 때의 발놀림 등은 장면과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훌륭한 볼거리가 되어준다. 아직까지는 이야기 전달에 치중하는 평이한 연출이 이어지고 있지만 본격 국극 장면이 시작되면 뮤지컬로서의 개성이 충분히 부각될 것이며, 무용이 큰 몫을 차지하리라는 게 이로써 짐작된다.
1~2회에서 원작과 가장 달라진 내용은 정년이와 국극 왕자 문옥경(정은채)의 관계다. 원래 옥경은 정년에게 호감을 보이긴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정년의 커리어에 적극 개입하지는 않는다. 정은채의 중성적인 매력이 이 캐릭터의 존재감을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남역 주연 문옥경이 여역 주연 서혜랑과 동거한다는 설정은 변하지 않았다. 대중성을 갖춘 극히 희소한 퀴어 콘텐츠라는 점에서 원작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얼마나 만족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적어도 제작진이 퀴어 요소를 암시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작의 아우라가 커서 비교를 피할 수는 없지만 사실 ‘기대와 다르다’는 것만큼 무의미한 비평은 없다. 문옥경에게는 문옥경의 왕자가, 정년이에게는 정년이의 왕자가, 허영서에게는 허영서의 왕자가 있듯, 웹툰 <정년이>와 창극 <정년이> 그리고 드라마 <정년이>의 매력도 각기 다르다. 드라마 <정년이>에는 여전히 꿈을 향해 돌진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있고, 기존 성 역할을 교란하거나 가부장제 밖을 배회하는 여성들이 있고, 아름다운 영상과 노래와 춤이 있으며, 극 중 예인들처럼 작품을 위해 새로운 재능을 연마하고 카메라 앞에 선 여배우들이 있다. 그 자체로 충분히 매혹적인 드라마다.
<정년이>는 총 12부작으로, 10월 12일부터 tvN에서 토·일요일 오후 9시 20분에 방송된다. 티빙, 시리즈온, U+모바일tv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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