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거장 퀸시 존스, 눈감다
70년간 미국 팝계를 이끌어온 퀸시 존스가 향년 9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존스는 지난 주말 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자택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존스의 가족은 “우리는 그가 살았던 위대한 삶을 기념하고, 그와 같은 사람은 다시없을 것임을 안다”며 “우리는 그의 본질이었던 사랑과 기쁨이 그가 만든 모든 것을 통해 세상에 공유되었다는 사실에서 위안과 자부심을 느낀다. 그의 음악과 무한한 사랑을 통해 존스의 심장은 영원히 뛸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팝계에서 존스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알파벳 ‘Q’가 그를 상징할 정도였죠. 존스의 뿌리는 재즈였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는 14세 때 레이 찰스의 밴드에 들어가 트럼펫을 연주하며 음악을 시작했죠. 18세 때 보스턴 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해 음악을 제대로 공부한 후 듀크 엘링턴, 클리포드 브라운 등 재즈 아티스트의 앨범을 작업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존스의 능력은 마이클 잭슨을 만나면서 폭발했습니다. 그의 음악적 업적에서 잭슨을 논하지 않을 수 없죠. 잭슨과의 협업은 1979년 솔로 앨범 <Off the Wall>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앨범으로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습니다. 존스는 ‘Billie Jean’이 수록된 앨범 <Thriller>로 올해의 앨범상과 올해의 레코드 트로피를 받았죠.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특히 이 앨범은 전 세계 판매량이 1억1,000만 장을 넘겨 역대 베스트셀러 앨범으로 기록됐습니다. 두 사람은 계속 승승장구하며 1987년을 장악한 앨범 <Bad>도 함께 작업했죠. 아프리카 기근 구호를 위한 노래 ‘We Are the World’ 역시 존스가 프로듀싱한 곡입니다. 팝의 황제 잭슨의 황금기에는 언제나 존스가 함께한 셈입니다.
존스는 이후 뮤지컬·영화 사운드트랙, TV 프로그램 제작, 매거진 창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비욘세와 제이 지에 이어 그래미 어워즈에 세 번째로 많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무려 80번을 올랐고, 그중 28번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2011년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예술 훈장을 받았죠.
엔터테이너로서 활약 외에도 광범위한 사회 공헌에 2014년 <버라이어티>에서 ‘올해의 자선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흔적은 오래도록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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