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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가을/겨울 밀라노 패션 위크 DAY 2

2025.02.28

2025 가을/겨울 밀라노 패션 위크 DAY 2

풍성한 하루였습니다. 100주년 기념 쇼를 펼친 펜디부터 전복의 정수를 보여준 디젤, 강인한 작별을 고한 루시와 루크 마이어의 질 샌더, 창의성의 힘을 증명한 마르니까지! 지극히 그들다운 방식으로 비전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지요. 과거를 반추하기보다는 미래를 꿈꾸는 쪽에 가까웠고요. 그 다채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충만했던, 밀라노 패션 위크 2일 차 쇼를 소개합니다.

섬네일 디자인 한다혜

펜디(@fendi)

펜디가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쇼는 펜디의 오리지널 아틀리에를 재현한 공간에서 실비아 벤투리니의 두 손자, 타치오(Tazio)와 다르도(Dardo)가 웅장한 문을 열어젖히며 시작됐습니다. 1966년 칼 라거펠트의 첫 쇼에서 귀여운 승마 의상을 입고 런웨이에 나섰던 여섯 살 실비아의 모습을 재연한 장면이었죠. “저는 아카이브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게 ‘펜디 100(컬렉션 제목)’은 과거의 펜디와 오늘날 펜디에 대한 (실제든 상상이든) 개인적인 기억에 가깝습니다”라고 밝힌 실비아의 말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오프닝 룩부터 등장한 인조 모피 코트는 하우스의 시작을 직접적으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모피 소재에 대한 숙련된 기술력은 스톨과 빨간 도트 무늬 드레스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요. 레이스 장식의 드롭 웨이스트 드레스, 페퀸(Pequin) 스트라이프, 퀼팅 가죽 드레스 등에서는 1920년대부터 펜디가 지나온 시대가 희미하게 비쳤습니다. 망사 베일이 달린 니트 비니는 펜디의 창립자이자 실비아의 할머니인 아델레 펜디에게 바치는 헌사였습니다. 가방에 달리고, 모델의 품에 안긴 펜디 인형은 10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감을 넉살 좋게 덜어냈죠. “아름다운 건 언제나 아름다울 거란 사실이 제게 참 뜻깊어요”라는 실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쇼였습니다. 한데 모인 펜디의 오랜 친구들뿐 아니라 타치오와 다르도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겠지요. 1996 쇼가 여섯 살 실비아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펜디의 창의적 유산이 지금껏 걸어온 시간만큼 지속될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죠.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Fendi F/W 2025 RTW

디젤(@diesel)

쇼장은 전 세계 아마추어·전문 그래피티 아티스트 약 7,000명으로 구성된 글로벌 스트리트 아트 컬렉티브가 채운 천으로 뒤덮였습니다. 가장 민주적인 브랜드다운 발상이었습니다. 2023 S/S 쇼에 등장했던 거대한 인형이 또다시 공간을 채웠고요. 글렌 마르탱이 프리뷰를 통해 밝힌 쇼의 컨셉을 정리하면 ‘발모럴(Balmoral) 성에서 여왕과 함께 셰리를 마시고 진탕 취한 코코 샤넬’이었습니다. 갸우뚱했지만 쇼를 보고 단번에 납득했죠. 스커트 수트와 범스터 컷을 같은 런웨이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컬렉션은 전복과 대조의 정수를 담고 있었습니다. 글렌은 늘 그랬듯, 데님을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가공했죠. 코코 샤넬과 왕실, 그러니까 고전미와 품격을 상징하던 부클레, 하운즈투스, 자카드 등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너덜너덜해지고, 재구성됐습니다. 삶은 니트와 가죽 재킷, 몸에 달라붙다시피 한 평면적인 니트는 주름과 구김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뒤틀려 있었습니다. 외계인 눈을 닮은 콘택트렌즈와 선글라스, 스프레이로 그려진 미소는 각 소재와 의상에 간신히 남은 격식마저 보기 좋게 무너뜨리며 이질적인 풍경을 연출했지요. 지금까지 글렌이 선보인 그 어떤 디젤 컬렉션보다 독창적인 쇼였습니다.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Diesel F/W 2025 RTW

질 샌더(@jilsander)

작별이었습니다. 루크와 루시 마이어가 선보이는 마지막 질 샌더였죠. 7년 전 따스한 저녁노을 아래서 펼쳐진 이들의 데뷔 쇼(2018 봄/여름)에서 어두운 지하 세계에 온 듯한 2025 가을/겨울 쇼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이 이끌어온 질 샌더의 변화를 돌아보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초창기에는 루시의 표현에 따르면 ‘여성스럽고, 가볍고, 관능적인’ 접근 방식에 중점을 뒀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질 샌더는 펑키하면서도 퇴폐적인, 더 강인한 모습을 추구하는 듯하죠. 오늘의 쇼도 그랬습니다.

스트랩리스 드레스와 수트, 트렌치 코트는 뾰족한 프린지 장식으로 뒤덮였습니다. 갑옷처럼요. 강렬한 인조 모피 디테일은 여성복과 남성복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화사한 노란빛에서 밑단으로 갈수록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어두워지는, 드레스와 코트 셔츠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뿜어냈고요. 마냥 묵직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실크 소재와 리본, 레이스 등이 부드러움을 위한 자리도 남겨두었지요.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Jil Sander F/W 2025 RTW

마르니(@marni)

“멸종 위기에 처한 창의성의 힘을 증명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합니다.” <보그 런웨이>의 티치아나 카르디니(Tiziana Cardini)가 이번 쇼를 두고 한 말입니다. 프란체스코 리소가 전개하는 마르니 쇼는 언제나 기대를 불러옵니다. 감탄을 넘어 상상력을 자극하거든요. 이런 종류의 쇼는 업계가 방향성을 잃었을 때 더 빛을 발합니다. 2025 가을/겨울 쇼가 그랬죠.

쇼장은 카바레·살롱으로 분했습니다. 테이블과 의자는 마르니 디자인 팀이 직접 그린 천으로 덮였고, 웨이터들은 칵테일을 서빙했습니다. 음악은 이번에도 블러드 오렌지로 잘 알려진, 데브 하인스(Dev Hynes)가 맡았습니다. 벽에는 리소와 나이지리아 태생의 영국 아티스트 올라올루 슬론(Olaolu Slawn)과 솔저 보이프렌드가 약 한 달간 진행한 아티스트 레지던시 ‘핑크 선(The Pink Sun)’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작품이 걸려 있었죠. 세 아티스트의 협업은 단순히 쇼장뿐 아니라 컬렉션에 독특한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룩 하나하나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더군요. 각기 다른 색과 프린트, 소재를 덧댄 드레스, 옷에서 터져 나온 듯한 모피, 튤립이 피어난 테일러드 수트, 좌우의 색을 달리한 가죽 트렌치 코트까지! 각 아이템의 시작과 끝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룩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장인 정신과 창의성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결과였죠. 컬렉션의 제목은 ‘감히 꿈을 꾸다(Dare to Dream)’였습니다. ‘감히’ 대신 ‘마음껏’이라는 단어를 선물하고 싶은 쇼였지요.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Marni F/W 2025 R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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