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뉴스가 초래한 파멸적 식습관, ‘둠 이팅’ 멈추는 법
‘둠스크롤링(Doomscrolling)’이라는 표현 들어보셨나요? 파멸을 의미하는 ‘둠(Doom)’과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스크롤링(Scrolling)’의 합성어로, 암울한 뉴스를 강박적으로 소비하는 행위를 말하는 신조어죠. 헤드라인을 보면 우울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기후 위기로 고통받는 사람들, 끝나지 않는 전쟁, 점점 앞당겨지는 국민연금 고갈 시기, 내려올 줄 모르는 생활 물가 등 가슴 아픈 소식은 끝이 없습니다. 이런 뉴스만 스크롤링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겠죠.

그런데 둠스크롤링으로 인한 피해는 정신 건강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비참한 뉴스가 식습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파멸적 스크롤링에 이은 파멸적 식습관, ‘둠 이팅(Doom Eating)’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둠 이팅이란?
영국 런던 의학 연구소의 아비나시 하리 나라야난(Avinash Hari Narayanan) 박사에 따르면, 둠 이팅은 소셜 미디어나 포털 사이트 등에서 불행한 소식을 접한 뒤 폭식을 통해 위안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인 셈이죠. 부정적인 뉴스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며 받는 스트레스와 폭식을 통한 감정적 위안이 계속 되풀이된다는 게 나라야난 박사의 설명입니다.
특히 둠 이팅에 취약한 이들이 있습니다. 먼저 ‘MZ세대’는 둠 이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세대입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만큼 부정적인 뉴스를 접할 확률도 높죠. 또 남성에 비해 여성이 둠 이팅의 영향을 더 크게 받습니다. 이는 여성의 섭식 장애 발병률이 남성 대비 두 배에 달하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는 이미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폭식과 스트레스의 상관관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폭식을 하는 모습은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 ‘스트레스 먹방’을 검색하면 아주 매운 떡볶이나 닭발 등을 잔뜩 쌓아놓고 먹는 영상이 끝없이 나오죠.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틱톡에서 ‘#StressEating(스트레스식)’을 검색하면 패스트푸드나 라면같이 아주 기름진 음식을 과할 정도로 먹는 영상이 쏟아집니다. ‘스트레스 먹방’도 ‘스트레스식’도, 스트레스를 자극적인 음식으로 해소한다는 점에서 결을 같이하죠.
“스트레스를 푼다는 맥락에서 폭식이 유쾌하고 코믹한 일처럼 묘사되기도 하죠. ‘스트레스 먹방’이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스트레스식’이라는 해시태그가 트렌드 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보면 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폭식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한다고 해서 그게 좋은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죠.” 나라야난 박사의 말입니다.

맵고 짜고 단 음식을 먹은 뒤 마음의 평안을 찾아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자극적인 음식은 위안을 주기는 합니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화학물질을 함유했기 때문이죠. 나라야난 박사는 “설탕, 소금, 지방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으면 우리 뇌의 도파민 수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해요. ‘보상’을 주는 음식은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해 부정적인 감정에서 잠시 벗어나게 하죠”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보상’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자극 뒤에 찾아오는 건 나쁜 뉴스로 인한 우울감과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는 죄책감 같은 더 큰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질 뿐이죠.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도파민을 더 많이 생성하는 더 자극적인 음식을 더 많이 먹는 것이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패턴은 고착화되고 끊기 어려운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폭식이 일상에 미치는 악영향
런던 해머스미스에 사는 엘라(Ella, 26)도 이 끊임없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보통 하루 5시간 정도 인터넷에서 뉴스를 봤어요. 출퇴근할 때나 식사를 하거나 잠들기 전에요. 가끔 새벽까지도 침대에 누워 새로운 기사를 읽었죠.”
엘라는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성을 향한 폭력 사건이나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참극을 다룬 기사를 끊임없이 클릭하고 스크롤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일이 계속 일어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 무력감을 느꼈고, 우울해졌어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달래준 건 다름 아닌 피자, 초콜릿, 감자칩, 아이스크림 등이었습니다. “뉴스를 읽는 내내 입에 뭔가를 달고 살았어요. 식사를 하고 난 뒤에도 간식을 계속 먹었죠.”
엘라는 회사에서는 폭식을 절제할 수 있었습니다. 직장 동료 대부분이 식단이나 건강에 많이 신경 쓰는 편이라 간식이나 정크 푸드를 먹는 게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죠. “어떤 면에서는 그게 더 나빴어요. 직장에서는 건강한 식단을 고수하는 척하면서 밤에는 피자나 감자칩 등을 먹으니 죄책감이 더 커졌거든요.” 엘라의 말입니다.
둠 이팅이 육체와 정신을 망치는 과정
설탕, 소금, 지방 함량이 높은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게 건강에 나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음식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육체적인 해를 입는 것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질 수 있습니다. “자극만 있고 영양학적으로 이점이 거의 없는 음식이죠. 장기간 섭취할 경우 신진대사에 변화가 생기고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죠.” 이런 음식은 신체에만 나쁜 것이 아닙니다. “좋지 못한 식습관은 우울증, 불안, 중독 등 정신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역경에 처했을 때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약화되고 자극적인 음식에 더 의존하게 만들죠.” 나라야난 박사의 설명입니다.
엘라 역시 건강이 악화되는 징후를 느꼈습니다. “계속 피곤했고, 피부가 건조했어요. 몸도 아팠죠. 당뇨병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어요.” 그 후 엘라는 인터넷에서 당뇨병 증상을 찾아봤고, 모든 증상이 자신의 상태와 들어맞자 더 불안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병원 가길 꺼렸어요. 나쁜 식습관 때문에 병을 얻게 됐다는 것을 전문가에게 확인받는 게 무서웠거든요.”
다행히 비대면으로 검사받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런던 의학 연구소에 혈액 샘플을 우편으로 보내면 의사와 만나지 않아도 당뇨병 검사를 받을 수 있었죠. 검사 결과 엘라는 당뇨병 전 단계에 해당됐습니다. 혈당 수치가 매우 높았지만 다행히 당뇨까지 진전되지 않은 상태였는데요.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당뇨병에 걸리기 직전이라는 의미였으니까요.

악순환의 고리 끊는 법
충격받은 엘라는 폭식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무엇을 언제 먹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저녁 식사 후에 자극적인 간식을 먹는 게 일상이었죠. 이제 식사 시간 외에는 먹지 않으려 해요. 스마트폰 보는 시간도 줄이고요. 스크롤 시간을 제한하는 앱을 사용하는데, 꽤 도움이 돼요. 아직 인스타그램 계정은 있지만, X(구 트위터)는 완전히 지웠어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스스로 식생활과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노력해야죠.” 끝으로 엘라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후 미래에 대해 훨씬 낙관적인 마음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라야난 박사는 ‘둠 이팅’을 끝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엘라가 그랬듯 스크롤 시간을 제한하는 앱을 사용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입니다. “정해놓은 시간 외에는 불필요한 뉴스를 보지 않도록 하세요. 건강한 식탁을 직접 차려보고, 식사 중에는 오로지 음식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둠 이팅에 빠질 일은 대폭 줄어들죠.”
끝으로 나라야난 박사는 둠 이팅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언을 건넸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꼭 도움을 받으세요. 의사나 전문가 만나길 주저하지 마세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한다면, 언젠가는 목숨까지 위협받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최신기사
추천기사
-
Lifestyle
메종 페리에 주에가 선보이는 예술에 대한 찬사
2025.03.14by 이재은
-
웰니스
매일 똑같이 먹는 셀럽 9인의 식단
2025.03.01by 장성실, Marie Léger
-
웰니스
오렌지보다 비타민 C 함유량이 30배나 많은 콩알만 한 열매!
2025.02.14by 장성실, Alessandra Signorelli
-
웰니스
내가 뿌린 향수가 독이 될 수 있다
2025.02.21by 김초롱
-
웰니스
영양사가 추천하는, 장 건강을 위한 궁극의 프로바이오틱스 식품
2025.03.07by 장성실, Ana Morales
-
웰니스
불행한 뉴스가 초래한 파멸적 식습관, '둠 이팅' 멈추는 법
2025.03.03by 김현유, Devinder Bains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