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1.5배속 시청 습관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것

2025.05.02

1.5배속 시청 습관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것

@tinvcb

처음에는 녹음 파일이었습니다. 효율성을 핑계 삼아 녹음 음성을 1.5배속으로 재생했죠. 대화 중간중간 뜨는 침묵이나 ‘음’, ‘아’ 같은 의미 없는 말, 그리고 메인 토픽과 상관없는 어수선한 멘트를 견딜 수 없었거든요. 다음은 메이크업 튜토리얼이었고, 그다음은 유튜브 영상이었습니다. 최근에는 OTT의 드라마와 예능을 1.5배속으로 봤죠. 보는 즐거움은 없이, 단순히 어디 가서 ‘봤다’고 말하기 위해 내용만 확인한 셈입니다. 마치 체크리스트 항목처럼 시청한 거죠.

1.5배속의 편리함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생활도 잠식해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친구가 생각을 정리하려 말을 멈추자 제 눈꺼풀이 떨려오는 겁니다. 뇌가 스킵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한 거죠.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저뿐만은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친구는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1.25배속으로 봤다고 말했죠. “전개가 너무 느려서 말이야.” 사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포인트는 거기에 있습니다. 침묵이 내려앉은 한 컷의 긴 샷, 캐릭터들이 대화 없이 존재하는 순간, 모두 시청자를 긴장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의도된 장면이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 장면들을 그저 빠르게 넘겨버렸습니다. 저와 친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럴 거예요.

유저의 행동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파악하는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은 얼마 전부터 릴스를 더 빠르게 재생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짧은 길이의 콘텐츠를 홀린 듯 바라보게 만드는 플랫폼임에도 불구하고요. 실제로 우리는 모든 면에서 더 빠른 재생이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정적과 고요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니까요.

누군가는 이를 두고 멀티태스킹, 최적화, 시간 관리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어쩌면 ‘효율성’의 탈을 쓴 새로운 종류의 불안감은 아닐까요? 트라우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심리 치료사 아누샤 만자니(Anusha Manjani)는 배속 시청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신경계에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지적합니다.

“더 빠른 것을 더 좋고, 더 효율적이라고 여기죠. 점차 우리 신경계는 무언가가 계속 움직이는 상태에 익숙해지고, 정적과 침묵을 낯선 것으로 받아들이게 돼요.” 이미 신경계가 수많은 배속 재생이 주는 과도한 자극에 적응해,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정상 속도를 유지하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설명입니다. 만자니는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소음 속에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극에 둘러싸여 있지만 휴식을 취할 곳은 없어 피로와 긴장만 가득한 상태라는 것이죠. 차분함과 침착함을 잃을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입니다.

@tinvcb

임상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네야마트 구르반스 싱(Neyamat Gurbans Singh)은 배속 습관이 집중력의 용량을 감소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공동체로서, 우리는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어요. 긴 시간 집중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은 욕구조차 약해지고 있죠. 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인간관계의 깊이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변화는 극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금씩, 미묘하게 우리 삶을 바꾸죠.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조용히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되돌아가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요.

하지만 또 다른 관점도 있습니다. 심리학자이자 정신건강 케어 서비스 기업 ‘더 소트 컴퍼니(The Thought Co.)’ 창립자 프리얀카 바르마(Priyanka Varma)는 빠른 배속으로 영상을 보는 습관이 크게 해롭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언제나 가장 소중한 자원이니까요.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할 수 없어요. 왜 배속으로 시청을 하는지, 그 이유가 중요하겠죠.”

바르마는 배속 시청이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시간을 훨씬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고, 또 효율적인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잖아요. 하루 24시간 중 수면, 일, 그리고 운동이나 요리 등 여가 시간을 빼면 영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녀는 배속 시청의 ‘의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영상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또 왜 그렇게 빠르게 보는지가 중요해요. 더 균형 잡힌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전혀 나쁜 습관이 아니죠.”

하지만 정말 우리는 시간 절약을 위해 1.5배속을 선택할까요? 그저 평범한 속도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극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요? 배속 시청은 확실히 우리 생활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배속 시청이 당연한 일이 된 이후, 사람들은 대부분 온전히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메시지를 보내면서 대화하는 동시에 배속 재생해둔 드라마를 시청하는 식으로요. 빠르게 넘기고, 반만 집중해서, 여러 가지를 하죠.

“우리는 ‘무언가를 얼마나 많이 하는가’가 아니라, ‘무언가에 대해 어떤 것을 느끼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만자니의 말입니다. 효율성보다 내실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죠. 여가조차 생산적인 활동으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은 종종 기쁨 없는 완성으로 남게 되니까요. “영화나 드라마를 배속 시청하거나 건너뛰면 결말은 알게 되지만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될 거예요.” 그 결과는 결핍으로 돌아옵니다. 극 중 주인공에게 느끼는 친밀감, 인물들이 서로 공유하는 감정, 몇 단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등을 경험할 수 없게 되죠.

@tinvcb

이는 화면 속 이야기,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할 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배속 습관은 현실에서 인간관계를 맺거나 대화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주거든요. 우리 삶은 배속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느린 것을 어색하게만 느끼잖아요. 의도치 않게 정적이 찾아드는 순간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한때 느림과 침묵은 우리 삶의 즐거운 동반자였지만, 이제는 불청객이 되어버렸고요.

모든 것은 정반합의 원리로 돌아간다고 하지요. 빠른 속도가 기본값으로 자리 잡은 만큼, 느린 속도가 주목받는 시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가 세 명이 모두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거든요. 급한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깊이 있고, 조용하며, 감정적으로 공명하는 긴 순간을 추구한다고 말이죠. 플랫폼은 속도를 높이지만, 우리는 빠르게 달리면서도 다시 느려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tinvcb

이 글을 쓰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배속 재생의 유혹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 드라마 한 편을 정상 속도로 시청해봤는데, 극 중 인물이 문을 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벌컥 열지 못하고 손잡이를 어색하게 만지작거리기만 하는데, 속이 터져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배속 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느림과 침묵을 버티는 건 알면서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최근 여러 가지 ‘웰니스 챌린지’에 도전 중인데, 다음 챌린지로는 영화 한 편을 정상 속도로 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아보려 합니다. 지루한 부분, 대단히 지루한 부분, 끔찍하게 지루한 부분… 모두 버틸 수 있을까요? 버틸 수 있겠죠? 여러분은 버틸 것 같은가요?

Sara Hussain
사진
Instagram
출처
www.vogu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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