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가 말하는 100년

2025.05.05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가 말하는 100년

탁월함을 찾아 세상을 유영한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와 나눈 대화.

아는 사람은 알아보는 가치. 지난 100년간 로로피아나의 여정은 비밀 코드처럼 이어졌다. 촉감으로 느껴지는 은밀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1924년 4월 2일이었다. 피에트로 안토니오 로로피아나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콰로나에서 가문의 이름을 내건 양모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조카 프랑코는 전후 달라진 패션계의 요구에 맞춰 더 완성도 높은 소재를 생산했다. 곧 따라온 건 파리 오뜨 꾸뛰르와 로마 알타 모다의 러브콜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건 가장 아름다운 소재다. 그리고 로로피아나는 그 옷을 완성하는 소중한 파트너였다.

프랑코의 두 아들 세르지오와 피에르 루이지는 로로피아나의 세계를 한 단계 확장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등 원자재를 만드는 곳으로 직접 향했다. 손으로 최고의 양모를 몸소 만져봐야 더 훌륭한 패브릭을 만들 수 있는건 당연한 이치였다. 형제는 곧 남미와 몽고, 중국의 평원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캐시미어 염소 떼를 따라 생산자와 목부를 만났고, 그들과 깊은 관계를 이어갔다. 덕분에 로로피아나는 진귀한 원재료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을 세울 수 있었다. 피에르 루이지가 증인이다. “생산자와의 굳건한 협력 관계와 탁월함을 추구하는 우리의 원칙은 변치 않습니다.” 그 관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매년 가장 부드러운 소재를 만들어낸 생산자에게 상을 주는 ‘캐시미어 오브 더 이어 어워드(캐시미어 어워드)’가 그것이다.

지난 3월 중순 상하이에서 열린 로로피아나 100주년 기념 전시 오프닝에 맞추어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도 행사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그는 지난해 가장 세밀한 굵기의 캐시미어 원자재를 생산한 이들에게 직접 트로피를 건넸다. 세상을 떠난 형 세르지오 로로피아나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은 그는 자랑스러운 듯 행사장을 둘러보았다. 가문의 이름을 조용한 럭셔리의 대명사로 각인시킨 그가 직접 브랜드에 대한 소중한 애정을 담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로로피아나가 100년 동안 유지해온 핵심 가치와 철학은?

지난 100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늘 변치 않는 철학과 가치를 지켜왔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진정성, 파트너와 고객을 향한 존중의 마음, 품질과 지속 가능성에 집중하는 제품에 대한 철학이 바로 그것이다.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는 열정이 지난 한 세기 동안 로로피아나의 성공을 이끈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로로피아나가 지금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지금의 로로피아나를 만든 결정적 순간이 세 번 있었다. 첫째는 1970년대 후반, 모든 생산 과정을 통합하고 원자재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한 때다. 둘째는 1980년대, 기존 원단 사업에 머물지 않고 완제품 생산과 유통을 시작하면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게 된 시기다. 셋째는 뉴욕에 첫 직영 테스트 매장을 오픈한 순간이다. 이것이 밀라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으로 이어지며, 브랜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로로피아나는 최상의 소재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소재 개발 과정에서 가장 흥미롭던 순간은?

흥미로운 여정이 수없이 있었지만, 가장 놀라웠던 경험은 미얀마 인레 호수(Lake Inle)에서 자란 연꽃에서 섬유 추출 과정을 지켜본 일이다. 마법 같은 환경에서 한 땀 한 땀 손으로 짜는 연꽃 섬유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환경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자랑스러운 도전은 스포츠와 레저를 위한 천연섬유를 개발한 것이다. 보통은 합성섬유가 사용되지만, 우리는 방수성과 방풍성을 지닌 특허 기술 ‘Storm System’을 통해 천연섬유만의 기후 반응성과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고성능을 구현했다.

예상치 못했지만 브랜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재는?

로로피아나의 천연 소재는 대부분 유연성과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 비쿠냐, 캐시미어, 파인 울과 엑스트라 파인 울, 알파카, 모헤어 등은 부드러운 소재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내구성까지 갖추며 브랜드 정체성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자랑스러운 소재를 꼽는다면?

가장 성공적으로 혁신을 이룬 소재는 울이다. 지난 25년 동안 울 섬유를 30% 더 가늘게 만들면서 ‘더 기프트 오브 킹스(The Gift of Kings)’라는 새로운 최고급 원단을 탄생시켰다. 이는 로로피아나만의 독창적인 발명이다. 이 소재가 비쿠냐나 캐시미어 같은 가장 고귀한 천연 소재와 견줄 만큼 가치 있고, 섬세하며, 부드럽다는 것을 품질로 증명해야 했다. 울이 가진 가능성을 품질로 설득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이 필요했다.

좋은 캐시미어와 울을 구별하는 당신만의 기준은?

노하우는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해 쌓인다. 품질은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개인의 감각이 더해져야 완성된다.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진정으로 품질을 판별할 수 있다. 단순한 소재를 넘어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각적인 경험이어야 한다.

로로피아나가 매년 수여하는 캐시미어 어워드의 목적과 의미는?

로로피아나 캐시미어 어워드는 최고의 품질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캐시미어 생산자와 목축업자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자리다. 단순히 기록을 세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목장의 품질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이들의 노력을 기리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없던 슈퍼 파인 캐시미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겼으며, 이 어워드는 그 가치를 더욱 확고히 다지는 역할을 한다.

올해 수상자의 특별한 점은?

올해는 특히 뜻깊었다. 섬유 굵기 12.8미크론의 캐시미어 100kg을 확보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신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최고급 캐시미어라고 해도 14~15미크론 정도인데, 이번 성과는 그 기준을 크게 뛰어넘었다.

브랜드를 대표하거나 특별히 애정하는 제품은?

훌륭한 제품이 탄생하는 모든 과정이 큰 만족과 기쁨을 준다.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처음으로 캐시미어 ‘Storm System’ 스키 재킷을 입고 3,600m 알프스 정상에서 스키를 탄 순간을 얘기하고 싶다.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때 느낀 놀라움과 만족감이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로로피아나 고객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품질의 가치를 아는 사람, 그 깊이에 빠진 사람이다. 거의 마니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로로피아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타협 없는 퀄리티’, 그 자체다. (VK)

    에디터
    손기호
    포토
    COURTESY OF LORO PIANA
    SPONSORED BY
    LORO PIANA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