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담담한 노랫말이 되는 그 이름, 패티 스미스 ‘끝나지 않을 대화’展

2025.05.09

담담한 노랫말이 되는 그 이름, 패티 스미스 ‘끝나지 않을 대화’展

바야흐로 5월, ‘피크닉’ 가기 참 좋은 날씨입니다. 그간 여행, 명상, 정원, 일 등 다양한 주제로 독창적이면서도 친밀한 전시를 선보여온 피크닉이 이번에는 시와 소리의 향연을 펼쳐 보입니다. 그 주인공이 무려 패티 스미스(Patti Smith)라는 사실이 새삼 감동적인데요.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영원한 청춘’ 패티 스미스, 그리고 동시대적 소닉 아트 플랫폼인 사운드워크 컬렉티브(Soundwalk Collective)가 의기투합했습니다. 분야와 세대를 뛰어넘는 이들의 협업은 <끝나지 않을 대화 CORRESPONDENCES>라는 제목으로,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서울 한가운데에서 영혼을 위무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 & 패티스미스 ‘끝나지 않을 대화 CORRESPONDENCES’ 전시 모습.
사운드워크 컬렉티브 & 패티스미스 ‘끝나지 않을 대화 CORRESPONDENCES’ 전시 모습.

패티 스미스는 말이 필요 없는 시대의 예술가입니다. 시로 시작해 음악, 미술, 사진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해온 다재다능한 예술가죠. 1975년에 전설적인 첫 앨범을 선보인 후 스미스는 고유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펑크의 대모’로서의 존재감을 예술사에 각인했습니다. 전설로 남은 현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의 사랑과 동료애를 담은 책 <저스트 키즈>의 작가로도 유명하죠. 여러모로 패티 스미스는 나이가 한낱 숫자에 불과하며, 스스로 매 순간 더욱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입니다.

전시 '끝나지 않을 대화 CORRESPONDENCES' 포스터에 담긴 패티 스미스 모습.
전시 '끝나지 않을 대화 CORRESPONDENCES' 포스터에 담긴 사운드워크 컬렉티브 모습.

한편 패티 스미스의 시를 영상 및 소리로 풀어낸 사운드워크 컬렉티브는 음향 예술가 스테판 크라스닌스키(Stephan Crasneanscki)와 프로듀서인 시몬 메를리(Simone Merli)로 구성된 팀입니다. 이들은 사운드를 물질적이고 시적인 요소로 다룬다고 하는데요. 기억, 시간, 사랑, 상실 등 다양한 주제를 문학과 예술, 철학과 접목해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더 나아가 이를 감각적,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사운드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두 예술가가 주고받는 편지 같은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전시 제목인 ‘CORRESPONDENCE’는 서신, 대응, 연관성 등을 뜻하지요. 10년 이상의 협력을 통해 예술, 환경, 인간 존재, 자연에 대한 깊은 연구를 공유해온 두 예술가의 작업 방식을 대변하는 셈입니다. 그 결과물인 ‘파솔리니 Pasolini’, ‘메데이아 Medea’, ‘체르노빌의 아이들 Children of Chernobyl’, ‘수도자와 예술가와 자연 The Acolyte, The Artist and Nature’, ‘길 잃은 자들의 절규 Cry of the Lost’, ‘무정부 상태의 군주 Prince of Anarchy’, ‘대멸종 1946-2024 Mass Extinction 1946-2024’, ‘산불 1946-2024 Burning 1946-2024’ 등은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혼란 등 세계의 부조리함과 이를 극복하는 태도를 시적으로 풀어냅니다. 혁명가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고, 기후변화를 실감하게 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고하게 합니다. 사운드 작품과 시가 공존하는 공간에는 세상을 향한 절박한 메시지가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 풍경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끝나지 않을 대화 CORRESPONDENCES’ 전시장에서 포착된 패티 스미스.
‘끝나지 않을 대화 CORRESPONDENCES’ 전시장에서 포착된 패티 스미스와 스테판 크라스닌스키.

혼자 전시 보는 걸 훨씬 좋아하는 제가 평일 오후 피크닉에 간 것은 패티 스미스가 오프닝에 온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성한 백발을 인디언 소녀처럼 땋은 패티 스미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의 관객처럼 전시장을 둘러보던 그녀는 자신을 향한 스마트폰 카메라들을 향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Nature Knows No Boundaries)’라 삐뚤빼뚤 적은 종이를 관람객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기다린 수많은 이들 앞에서, 무반주로 ‘Wing’을 불렀습니다. 아니, 노래가 아니라 시를 읊는 듯, 말을 거는 듯하더군요. 전시가 선사한 ‘음향적 기억’과 그녀의 깊은 목소리가 맞물려 인간 존재에 대한 묵직한 울림이 내면에 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대화’는 오는 7월 20일까지 계속됩니다.

정윤원(미술 애호가, 문화 평론가)
사진
피크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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