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10년

2025.05.21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10년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가 10여 년간 주고받은 교감과 시간의 흔적이 서울에 전해졌다. 체르노빌에서 DMZ까지, 이들이 소망하는 자연과 사람, 소리에 관하여.

전시 공간 피크닉을 방문한 패티 스미스. 오른쪽 나무 조각은 함께 전시를 여는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스테판 크라스닌스키가 DMZ에서 가져와 만든 설치 작품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다.

4월 17일 아침, 남산 언저리에 패티 스미스(Patti Smith)가 나타났다. 워커에 검은색 진을 구겨 넣고,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는 양 갈래로 땋아 내렸다. 검은색 오버사이즈 재킷 안에는 자신의 전시가 열리는 피크닉(Piknic)의 기념 티셔츠를 입고 있다. 패티가 물었다. “가위 있나요?” 티셔츠 밑단이 패티식으로 잘렸다. 패션에 대해 묻자 그녀가 웃었다. “1970년대부터 늘 같은 스타일이에요. 딸이 말하길, 우리 엄마는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거래요.” 살아 있는 전설의 뮤지션이자 시인, 환경 운동가인 그녀는 딸 이야기에 금방 해제된다.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Soundwalk Collective)의 협업 전시 <끝나지 않을 대화(Soundwalk Collective & Patti Smith: Correspondences)>가 뉴욕, 메데인, 상파울루 등을 거쳐 서울 피크닉에서 7월 20일까지 열린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는 음향 예술가 스테판 크라스닌스키(Stephan Crasneanscki)와 프로듀서 시몬 메를리(Simone Merli)가 이끄는 사운드 아트 그룹이다. 그들이 세계를 탐험하며 현장의 소리를 녹음한 필드 리코딩에 패티가 영감을 받아 시를 쓰고 목소리를 덧입혔다.

전시 첫날, 패티 스미스가 즉흥적으로 피크닉의 돌담에 시를 썼다. 스테판이 녹음기를 꺼내 낭송을 부탁했다. ‘Nature’를 반복할 뿐인데 그대로 음악이었다. “멋져요, 패티.” 지켜보던 이들이 웅성댔다. 패티는 가만히 듣더니 “한국어는 음악처럼 아름답군요”라고 화답했다.

전시에서는 비디오 작품 8편을 선보인다. 원전 사고 이후에도 체르노빌에 거주하는 이들의 삶을 녹음한 <체르노빌의 아이들(Children of Chernobyl)>, 1946년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대형 산불과 생태 파괴를 다룬 <산불 1946-2024(Burning 1946-2024)>, 영화감독 파올로 파솔리니(Paolo Pasolini)의 삶과 미공개 영상을 조명한 <파솔리니(Pasolini)> 등이다. 현장에는 패티 스미스의 시와 드로잉, 스케치와 답사 기록 등도 있다. 특히 한국 전시를 위해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집한 흙과 식물로 설치 작품 ‘보이지 않는 풍경(The Invisible Landscape)’을 만들었다. 헤어지기 전, 패티는 관람객에게 한글로 직접 쓴 종이를 나누어주었다. 거기에는 처음 글을 배우는 아이처럼 순수하지만 또박또박한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가 체르노빌, 재해 지역 등 세계를 탐험하며 현장의 소리를 녹음한 필드 리코딩에 패티가 영감을 받아 시를 쓰고 목소리를 덧입히는 과정이 이어졌다. 전시에서 영상 작품과 아카이브로 만나볼 수 있다.

어딜 가든 소리에 귀 기울인다죠. 한국에서는 어떤 소리가 인상적이었나요?

스테판 여행할 때마다 그곳이 어디든 땅이 건네는 소리를 찾으려 합니다. 투어든 전시든 혹은 단순한 탐방이든 어디를 가든 현지의 소리 풍경을 반드시 기록해요. 한국에서는 DMZ를 방문했어요. 인간이 정치적, 군사적 혹은 환경적 재난으로 버리거나 살 수 없게 된 지형에 본능적으로 끌리거든요. 사람이 떠난 자리에, 버려진 경계 공간에 새로운 생태계가 싹트는 모습은 언제나 저를 사로잡습니다. DMZ의 소리가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엔 숲과 동물, 새소리 같은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를 담을 거라 기대했죠. 실제로 그랬고요. 그러나 동시에, 그 위에 겹쳐진 충격적인 소리가 있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 군인들이 훈련하는 소리, 북쪽에서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대남 방송. 자연의 고요함 위에 날카롭고 폭력적인 인간의 소리가 끊임없이 덧입혀진,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이 두 세계의 대비는 몹시도 매혹적이고 섬뜩했어요. 두 세계는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쩌면 더 오래 공존해왔습니다. 아마 동물들은 이 소리에 적응했을 거예요. 하지만 녹음을 하며 스스로 물었습니다. ‘군인들, 인간들도 과연 주변의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을까?’ 제 마이크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아요. 새와 총알, 나뭇잎과 확성기 소리를 모두 똑같이 담아냈습니다. 어떤 소리가 더 중요하거나 옳다고 여기지 않고, 모든 소리를 동등하게 받아들였죠.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두 세계, 자연과 군사화된 인간 세계가 한 공간에서 불안하게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DMZ에서 느낀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어요.

두 분의 첫 만남은 대서양을 횡단하는 기내에서 우연히 이뤄졌죠. 스테판이 니코(Nico)의 시집을 읽고 있었고, 이를 본 패티가 이야기를 꺼냈다고요.

패티 우리가 함께 작업한 전시 <Correspondences>의 출발점은 바로 그 만남이에요. 스테판과 나는 무한히 넓은 하늘에서 만난 뒤로 우정을 돈독히 하며 작업을 만들어갔죠. 스테판은 당시 니코의 시로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니코는 이비자섬에서 비극적인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사고 당시 유일한 소리는 귀뚜라미의 높은 울음뿐이었죠. 스테판은 이 소리에 니코의 시 낭송을 입히고 싶어 했어요. 니코는 내 친구였기에 나는 누가 그 시를 읽을 것인지 물었어요. 스테판이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말하자 내가 즉흥적으로 자원했죠. 다음 날, 어색한 사이였음에도 뉴욕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고, 우리는 곧바로 말과 기억과 귀뚜라미 소리를 통한 협업을 시작했어요. 이후 계속 작업하고 싶은 강한 끌림을 느꼈죠. 우리의 모든 프로젝트는 스테판의 여행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인도의 신성한 산, 아마존강, 그린란드의 빙하가 부서지는 현장, 체르노빌의 폐허를 여행하며 소리뿐 아니라 의미 있는 물건이나 돌멩이, 부적 등을 가져오죠. 나는 스튜디오에서 이것들을 글과 이야기로 전환합니다. 이후 우리의 작업은 영상, 영화, 설치까지 확장되었지만, 모든 것은 여전히 소리와 시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작업 중심에는 언제나 듣고 말하며 기억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교류가 자리하고 있어요.

스테판은 패티 외에도 감독 장 뤽 고다르, 사진가 낸 골딘, 안무가 사샤 발츠 등과 협업해왔어요. 여러 장르의 예술가와 함께하는 이유가 있나요?

스테판 여러 예술가, 그리고 그들 인생의 다양한 시점에서 함께 작업해왔습니다. 고다르가 80세가 되었을 때 함께했고, 패티 스미스를 만난 것도 10년 전이죠. 필립 글래스, 사샤 발츠, 낸 골딘과도 작업했어요. 창작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친구가 되었죠. 우리의 작업은 언제나 그 우정의 흔적을 담고 있어요. 제게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함께 창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화하고, 협업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것. 그게 세상과 가장 깊이 연결되는 방식입니다. 저는 휴가를 보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목적 없이 ‘소일’하는 것보다 아이디어를 나누고, 작업을 발전시키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시간이 더 소중해요. 그래서 사운드워크 컬렉티브를 시작했습니다. 영혼이 모여 서로를 자극하는 공간. 저를 감동시킨 사람들이 함께 머물며 대화하고, 녹음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예술품을 남길 수 있는 곳. 각각의 작업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교감의 흔적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록이자 창조적 에너지의 증거죠.

영상 작품 ‘파솔리니’는 파솔리니의 영화 ‘메데아’ 촬영지를 찾아 그곳의 소리, 이미지, 오브제를 수집해 과거 창작자들과 시간을 뛰어넘어 대화를 시도했다. 전시장 내 라이트테이블에 패티가 직접 쓴 글과 아카이브도 전시한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는 왜 ‘소리’를 작업의 첫 번째 수단으로 선택했나요?

스테판 내가 소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소리가 나를 선택한 것 같아요. 소리는 향기처럼 우리의 감정과 마음에 직접적으로 강렬한 영향을 줍니다. 분석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도 곧장 감정과 소통하죠. 패티와 나는 스튜디오에서 먼저 원본 녹음을 주의 깊게 듣습니다. 그러면 패티는 그 소리 풍경을 글로 옮깁니다. 그것이 메데아의 이야기든, 체르노빌 아이들의 이야기든 느리고 층층이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깊이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점차 드러납니다. 보이지 않는 심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또 소리로 하는 작업은 그림 그리기와 같아요. 목소리와 악기, 패티의 시 낭송을 한 겹씩 천천히 덧입히며 소리 풍경을 풍성하게 만들죠. 이런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려요. 때로는 몇 년이 걸리죠. 특정 녹음을 오랫동안 손대지 않고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 새로운 층위를 더하기도 하죠. 그렇게 작품은 천천히 펼쳐지며, 자연스럽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로 성장합니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는 체르노빌, 인도의 산, 산불 재해 지역, 망망대해 등으로 필드 리코딩을 떠났어요. 슬픈 역사가 있거나 심각한 문제를 겪는 곳들이죠.

스테판 녹음 장소는 오랜 시간 패티 스미스와 나눈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됐어요.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도시를 함께 걷고, 세계의 아름다움과 취약함,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격자로서 느끼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죠. 이런 대화가 새로운 장소로,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끌었습니다. 히말라야산맥이든, 아프리카의 심장이든, 멕시코의 어느 지역이든 여정은 늘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현장에 도착할 때 가능한 한 마음과 생각을 비웁니다. 무언가를 억지로 끌어내려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를 지키며 소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립니다. 어떤 기대나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면 표면적인 결과만 얻기 쉬워요. 결과물이 깊이와 신비를 가지려면, 오로지 깊은 ‘존재’의 상태에서만 녹음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욕망하지 않고 그저 ‘있는’ 것. 그렇게 가만히 있을 때 소리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죠. 소리는 결코 독립된 요소로 다가오지 않아요. 언제나 수많은 톤과 질감, 순간이 겹겹이 쌓여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그 겹침과 교차 지점에서 우리의 트랙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편견 없이 다가가 듣는 것. 현장에서는 중요해 보이지 않던 소리가 스튜디오에 돌아와 다시 들으면 놀라운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 소리들은 메신저 같아요. 그 안에는 아직 꺼내지 않은 이야기와 영혼이 숨어 있죠.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 그 울림을 패티가 받아 글로 옮기고 우리가 함께 새로운 작품으로 빚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특별한 지역의 필드 리코딩이라 그 자체로 힘이 있는데, 왜 패티의 목소리까지 덧입히나요?

스테판 소리 작업을 할 때 우리는 서로 보완되는 두 가지 차원, 예를 들면 음반의 A면과 B면이 있다고 상상합니다. A면이 새와 공기, 하늘 같은 공중의 소리라면, 패티는 그 공중의 차원을 시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아요. 그리고 B면에서는 땅과 우리 발아래 숨겨진 세계를 탐구하죠. 이런 대화가 우리 창작 과정을 형성하며, 양쪽이 서로에게 점진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스튜디오에서 어떤 특정한 소리가 패티의 기억과 감정을 깨우는 것을 본 적 있어요. 반면 패티의 시는 일종의 매개체가 되어 보이지 않는 기억과 감정을 불러내고, 그 본래의 소리에 담긴 영혼과 깊이 공명하는 이야기를 꺼내 보여주죠.

석유 시추 작업에 사용되는 탄성파 공기총의 폭음에 고통받는 해양 생물이 등장하는 ‘길 잃은 자들의 절규’. 지구에 존재하지만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고통을 말하고자 한다.

음악 코드가 아니라 필드 리코딩에 목소리를 녹음하는 경험은 어땠나요?

패티 1973년부터 밴드와 함께, 혹은 샌디 불(Sandy Bull)이나 여러 록 밴드, 재즈 뮤지션과 다양한 즉흥연주를 해왔어요. 그래서 소닉 랜드스케이프 위에서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목소리를 얹는 데 익숙합니다. 그 소리는 때로는 음악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앨버트 아일러(Albert Ayler)에게 영감을 받은 것처럼 훨씬 추상적이기도 했어요. 몇 개의 코드 위에 피드백을 가득 얹어 완전히 즉흥적으로 만든 적도 있었죠. ‘Radio Baghdad’ ‘Radio Ethiopia’ ‘Constantine’s Dream’ 같은 작품도 그렇게 탄생했어요. 하지만 사운드워크와의 작업은 조금 달라요. 이들은 종종 특정 장소에 기반한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드는데, 그 안에는 멜로디나 구조가 제거된, 완전히 열린 생소리가 존재합니다. 오로지 소리 자체를 위한 소리, 날것 그대로의 풍경입니다. 그래서 더 해방감을 느껴요. 스테판과 함께 스튜디오에 들어갈 때마다 늘 새로운 영감을 받아요. 스테판은 발트해든, 체르노빌이든, 성게든, 인간의 목소리든, 심지어 고다르의 목소리나 발자국 소리든 ‘보이지 않는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언제나 깊은 영감을 줘요. 사운드워크와의 협업은 전에 시도해본 적 없는 것들, 이를테면 긴 독백이나 새로운 형태의 탐색으로 저를 이끌죠. 그러나 과거의 경험, 즉 늘 즉흥성과 채널링을 중심으로 작업해온 이력 덕분에 이런 새로운 도전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깊이 각인된 필드 리코딩의 순간은요?

스테판 많은 경험이 있지만 안드로니코프 수도원과 체르노빌을 꼽겠습니다. 수도원에서는 부활절 새벽, 수녀와 수사들이 찬송가 부르는 소리를 녹음했어요. 눈이 고요하게 내리는 그 아침, 무너져 내린 지붕의 타일 조각 위로 종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를 하나하나 받아들였죠. 단지 기도나 종교의식이 아니라, 시간을 쌓아온 공간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말 같았어요. 이 소리는 패티에게 영감을 주었고, 우리는 함께 ‘수도자와 예술가와 자연’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죠. 그리고 체르노빌은 또 다른 방식으로 깊이 남았어요. 폐허가 되어 수천 권의 책이 흩어진 프리피야트의 도서관, 방사능에 오염되어 손댈 수 없는 나뭇잎, 그 침묵을 뚫고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너무 슬프고도 아름다웠어요. 그곳엔 더 이상 공부할 학교도, 오를 수 있는 나무도 없지만 그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상상하며 살아가고 있었죠.

소리를 흘려버리거나 기억하는 것을 넘어 녹음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패티 소리는 그 자체로는 그저 바람 소리, 발소리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그 소리를 듣고 기록할 때 우리가 담아내려는 의도, 그 소리에 부여하는 이야기입니다. 늘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 짓는 것을 좋아했지만, 주로 동화나 허구의 이야기였어요. 스테판과 함께 일할 때 특별한 것 중 하나는 이거예요. 스테판은 실제 장소의 실제 소리, 진짜 역사를 담은 소리를 가져옵니다. 신기하게도 이 소리를 통해 실제 역사와 상상력이 뒤섞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물소리든,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든, 흑해의 화물선이 내는 잡음이든 말이죠. 즉흥성도 우리의 협업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종종 장소 특정적 작업을 하고, 녹음은 그 시작점이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내가 도착했을 때 스테판이 이미 소리와 이미지를 수집해놓은 상태였어요. 나는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느낀 강렬하면서도 불안정한 에너지, 그러니까 환경 위기나 정치적 혼란 같은 글로벌한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에너지를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어요. 우리에게 환경에 반응해 예술을 창작하는 것은 서로 주고받는 행위예요. 피크닉이 우리의 작업을 초대하는 선물을 줬듯이, 우리는 이곳의 본질을 작품화해 도시와 국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로 되돌려주고자 합니다.

대형 화면 두 개를 나란히 보여주며 몰입도를 높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총 8편의 비디오 작품을 상영한다.

전시에는 영상이 함께합니다. <파솔리니>는 2014년 영화 <파솔리니>의 미공개 장면을 활용했죠. 사운드 외에 영상까지 더한 이유는요?

스테판 전시에 소리뿐 아니라 영상을 함께 선보이는 것은, 우리의 작업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됐어요. 우리는 종종 역사적 혹은 영화적으로 중요한 장소, 이를테면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나 파솔리니의 <메데아>를 촬영한 장소를 찾아 작업을 이어갑니다. 그곳에서 소리, 이미지, 물리적 오브제를 수집해 과거의 창작자들이 시작한 대화를 시간을 건너뛰어 오늘날까지 확장하려 해요. 우리가 사용하는 영상은 주로 B-롤, 그러니까 타르코프스키와 파솔리니가 최종 편집본에 포함시키지 않은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예를 들어 <파솔리니> 작업에서는 2014년 아벨 페라라 감독이 윌렘 대포를 주연으로 촬영한 영화의 미공개 장면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페라라가 이탈리아 오스티아, 즉 파솔리니가 살해당한 바로 그 해변에서 촬영할 때 초대받아 주로 밤에 몇 주 동안 촬영 과정을 기록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영상은 일종의 미장 아빔(Miseen Abyme), 그러니까 한 영화감독이 다른 영화감독을 상상하는 구조를 띠게 되었죠. 둘 모두의 작업에서 제외된 장면을 통해서요. 이런 버려진 이미지—바다와 땅, 영화에서 수집한 시각적·청각적 기록물—는 원래 프레임 바깥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구축하는 데 쓰입니다. 예를 들어 오염되어 만질 수 없는 체르노빌의 야생마들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역병이 창궐하던 시대 러시아를 떠돌던 야생마와 겹쳐지며 시대를 넘어선 기억을 환기합니다. 이런 시각적 장치는 의도적으로만 설계되지 않아요. 때로는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펼쳐집니다. 우리가 새로운 층위를 추가할 때마다 그 층위는 이전의 이야기와 조용히 대화를 나눕니다. 그래서 영상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예술가로서 끊임없이 부르고 응답합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흐름에 맡기면서요. 스크린은 과거에 생략된 것들과 지금 다시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만나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죠.

여러 산불 현장에서 가져온 나뭇가지, 고분 발굴지에서 가져온 흙 등도 전시에서 함께 선보입니다.

스테판 우리는 늘 여행을 통해 작업을 시작합니다. 현장에서 채집한 소리와 이미지, 물리적 오브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목소리를 지니죠. 조지아의 고분 발굴지에서 가져온 흙, 체르노빌의 붉은 숲에서 채집한 나뭇잎, 코카서스산맥에서 첫눈 내리기 직전에 주워 온 들판의 잎사귀까지, 이 모든 것은 장소의 기억이자 우리가 마주했던 시간의 단면입니다. 그 장소에서 느낀 감정이나 분위기를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때, 대신 그것들을 가방에 담아 옵니다. 소리와 마찬가지로, 이런 오브제 역시 그 땅이 간직한 이야기의 연장이며, 전시 공간에서 또 다른 대화를 시작하게 되죠.

패티 맞아요. 스테판이 들고 온 오브제는 제게 늘 말을 걸어요. 예를 들어, 그가 들판에서 모은 나뭇잎을 내려놓았을 때, 저는 옆에 앉아 연필로 글을 쓰기 시작했죠. 그 나뭇잎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한때 살아 있었지만 이제는 죽었습니다. 우리는 오염된 나무에서 태어났고, 아무도 우리 열매를 먹지 못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기도해줄까요?” 그리고 동시에 깨끗한 공기 속에서 자라난 허브, 수도원의 들판에서 채소를 수확하는 수도승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해요. “우리는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며 양식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을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그것이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며,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려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오브제를 통해 장소와 대화하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과 기억을 시와 이미지로 전환해요.

한국 전시에서는 특별히 DMZ의 식물을 활용한 작품을 설치했죠.

스테판 한국에 오자 자연스럽게 체르노빌 작업이 떠올랐어요. DMZ와 체르노빌은 모두 인간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장소에서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며 번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버려진 곳에서 자연은 의식적으로 그곳을 차지하려 하지 않죠. 그저 인간이 떠난 빈자리를 다시 채울 뿐이에요. 전시를 준비하며 DMZ를 방문해 그곳에서 무성해지는 식물의 모습을 기록하고 되새기는 것이 중요했어요. 특히 이번 전시장 루프톱에 마련된 DMZ의 식물 정원은 소멸과 파괴의 주제를 넘어 회복과 재생의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그중에서도 버섯은 가장 상징적이에요. 버섯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이자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생명체일지 몰라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버섯은 방사능까지 흡수해 정화한대요. DMZ 식물 설치 작품 ‘보이지 않는 풍경(The Invisible Landscape)’은 인간의 파괴적인 행위에도 다시 살아나고 스스로 치유하는 자연의 놀라운 힘을 상징해요.

이번 전시는 뉴욕과 메데인, 상파울루,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서 열렸고, 서울과 도쿄로 이어집니다. 기억나는 관객 반응이나 풍경이 있나요?

스테판 우리가 지나간 모든 장소는 층층이 쌓인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깊은 밀림, 멕시코의 사막과 코퍼캐니언, 조지아의 산, 서울 근처 DMZ, 교토의 사원 모두 살아 있는 경험이 되었죠. 우리는 주로 공연이나 전시,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 그곳을 찾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녹음하는 시간이 중요했습니다. 그 녹음은 결국 패티와 제가 스튜디오에서 다듬어가는 작업의 중요한 소재가 되죠. <끝나지 않을 대화>는 단순히 패티와 나의 대화가 아닙니다. 수년간 창작하며 교류해온 과거를 품고, 끊임없이 확장되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여행한 풍경과 문화, 그 모든 것이 대화에 목소리를 더합니다. 이 여정은 순환합니다. 대화가 우리를 특정 장소로 이끌고, 그곳에서 작업을 발표하며, 또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작업은 계속 발전해요. 세계와의 대화를 통해 살아 있는 하나의 우주가 되죠.

전시는 관객에게 여러 문제(기후변화, 전쟁, 인간 고립 등)를 사유하게 하려는 목적이 느껴져요.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나요?

패티 퍼시 비시 셸리가 쓴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라는 시가 있어요. 제 생각을 완벽하게 담아낸 시죠. 이 시는 한때 땅을 정복하고 궁전을 세우며 자신이 무적이라 믿은 지배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가 세운 모든 것은 모래에 묻혀 허물어졌고, 남은 것은 조각상의 파편 하나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권력도 결국 자연 앞에서는 무너진다는 것을 상기시키죠. 인간은 자신이 강력하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핵무기와 기술을 손에 쥐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입니다. DMZ에서든 체르노빌에서든, 자연은 결국 자신을 다시 드러내죠. 앙코르와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대한 사원과 궁전이 숲에 의해 갈라지고 무너졌죠. 자연은 언제나 돌아옵니다. 저는 작업을 통해 자연이 경계도 모르고, 전쟁도 벌이지 않으며,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장 높은 이상을 품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미국인이라는 것은 단지 우연일 뿐, 저는 휴머니스트입니다. 자연은 경계를 넘어 존재하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시와 협업을 통해 우리가 다시 서로 연결되어 꿈을 이루고, 세상을 연대와 자비의 방향으로 돌려세울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세계는 극단적 탐욕과 부를 축적한 소수 권력층에 의해 움직이죠. 하지만 저는 믿어요.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 아이들의 미래와 환경을 걱정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요. 이 희망을 품고 작업을 이어가며, 세상을 향해 행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사회문제는 무엇인가요?

패티 환경 붕괴는 가난, 질병, 이주 문제 등 모든 문제와 맞닿아 있어요. 모든 것은 자연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날 겪는 일은 탐욕, 무지, 미래에 대한 무관심, 물과 공기와 숲에 무책임했던 인간이 초래한 결과예요. 우린 재앙으로 향하고 있죠. 팬데믹 이전에는 그레타 툰베리 같은 젊은 활동가들 덕분에 변화를 향한 흐름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흐름은 멈췄고, 이제는 그 활동가들마저 체포되고 조롱당하죠. 지금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그것이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반면에 저를 설레게 하는 것은 ‘살아 있음’이에요. 매일 상상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지루할 틈이 없어요. 다른 이들의 작업에도, 제 프로젝트에도, 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에도 끊임없이 관심과 흥미를 느끼거든요. 78세가 된 지금도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설레요. 그래서, 네, 저는 매일 행복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매일 가슴이 아파요.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 난민들의 고통, 콩고 광산에서 일하는 아이들, 중동의 참상, 심지어 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치 시절의 책 소각을 떠올리는 특정 서적 금지 조치까지 저를 분노케 해요. 그럼에도 삶은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이기에, 살아갈 가치가 있는 하루하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요.

패티 스미스를 사이에 두고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음향 예술가 스테판 크라스닌스키(좌)와 프로듀서 시몬 메를리(우)가 서 있다.

스테판은 지금 무엇이 가장 설레나요?

스테판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장소와 자연환경에서 계속 녹음할 수 있다는 것. 패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세상을 들여다보고 아이디어를 탐구하며 길 위에서 다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여행하는 장소, 함께 보내는 시간, 창조하는 작업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Correspondences’ 세계야말로 저를 끊임없이 설레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는 사실. 움직이고 사랑하는 일을 하고 세상이 건네는 모든 것에 마음을 열어둘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큰 기쁨이에요.

전시명 중 ‘Correspondences’는 ‘조응’ ‘공명’ ‘응답’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 같아요.

스테판 이 제목은 패티와 함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떠올랐죠.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말을 경청하며, 때로는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서로를 자극했고, 그렇게 하나의 단어가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Correspondence’라고 부릅니다. 이 긴 대화는 음악, 소리, 시라는 형태로 발전해왔어요. ‘Correspondences’는 듣기 행위 자체를 상징하기도 해요. 저는 듣기가 깊은 의식의 행위라고 여깁니다. 그것은 다른 이의 관점,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강물, 나뭇잎 사이를 지나는 바람, 물방울, 동물과 곤충, 심지어 식물까지 모든 것은 말을 겁니다. 우리가 듣는 법을 배운다면 말이죠. 듣는다는 것은 우리 안의 ‘나’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스스로를 열어, 세상이 우리를 가르치도록 맡기는 것. 이런 정신으로 필드 리코딩에 임합니다. 목적 없이, 기대 없이, 열린 마음으로. 그렇게 다가갈 때 공간과 소리가 오히려 우리를 이끕니다. 이 과정은 종종 명확한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길을 잃은 것 같죠. 그러나 방향을 강요하지 않고,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의미가 드러나요. 바로 그때, 성장과 공감이 싹트죠. 이것을 ‘작업’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 이 모든 과정은 삶 자체입니다. 저는 관광하기 위해 여행을 하지 않습니다. 예술적 실천과 삶을 분리하지도 않고요. 걷고, 듣고, 녹음하고, 사유하고, 창조하는 모든 행위가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제 마음과 인생은 광활한 들판처럼 얽혀 있죠.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포토
    신선혜, Courtesy of Kurimanzu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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