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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자 아트 투어_테마를 가지고 여행하기

2025.05.29

샤르자 아트 투어_테마를 가지고 여행하기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예술이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죽기 전에 여행할 곳은 중동이고, 미술 애호가가 봐야 할 전시는 샤르자 비엔날레였다.

중동의 신비로운 건축물을 현대적으로 재설계한 샤르자 미술관. 아름다운 내부 공간까지 샤르자가 새로운 미술 강국임을 보여준다.

예술의 중심은 언제나 이동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중동임이 분명하다. 특히 중요한 지역이 샤르자(Sharjah)라는 것은 영국 잡지 <아트리뷰>의 ‘파워 100’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워 100’은 매년 <아트리뷰>가 발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계 인물 리스트로, 올해 1위는 샤르자 비엔날레 디렉터인 후르 알 카시미(Hoor Al Qasimi) 공주가 차지했다. 후르 알 카시미는 샤르자 아트 재단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카타르 박물관 이사회 의장인 셰이카 알 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할리파 알 사니가 21위,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부 장관 바데르 빈 압둘라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왕자가 41위를 차지하며 중동의 위상을 뽐냈다.

후르 알 카시미 공주가 기획한 샤르자 비엔날레가 열리는 샤르자는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 토후국 중 하나다. 이곳은 두바이, 아부다비에 이어 아랍에미리트연방 세 번째 규모의 나라다. 두바이 공항 가까이 자리하지만, 도시화된 두바이와 달리 여전히 중동 고유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어 여행자에게 매혹적이다. 두바이는 비행기를 환승하며 스톱오버로 여행을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샤르자의 매력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더구나 막상 샤르자를 방문하려 해도 어느 곳을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는데, 그 명쾌한 해답을 비엔날레에서 찾을 수 있다. 샤르자 비엔날레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올해 16회를 맞은 중동 대표 비엔날레다. 아시아 넘버원 광주 비엔날레보다 2년 빠른 1993년 시작했다. 올해의 주제는 ‘투 캐리(To Carry)’이며, 17곳의 문화 명소에서 전시를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전시 장소가 도서관, 시장, 미술관, 사막, 학교, 지질 공원 등 다채로워 이곳들만 들러봐도 샤르자 문화를 접할 수 있고 비엔날레 작품도 감상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먼저 샤르자로 떠나기 전에는 화이트 숄을 하나 챙기는 것이 좋다. 샤르자는 여전히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한되어 있으며, 어깨와 무릎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으면 안 되기 때문. 음주는 모든 지역에서 금지되어 있다. 이슬람교의 성스러운 행사인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떠 있을 때는 음식과 물을 먹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샤르자는 여행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라마단 기간에도 여행자는 밝을 때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몸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어도 된다. 하지만 로컬의 전통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의상은 주의해서 착용할 것을 권한다. 이런 보수적인 나라에서 후르 알 카시미 공주는 여성 디렉터 다섯 명을 기용해 비엔날레를 구성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200명의 작가가 출품한 650여 점의 작품이 명소 17곳에 전시되어 있다. 새로운 커미션 작품은 200점 이상이다. 전시 작품 중에는 중동의 예민한 정치 상황과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것들도 많아 중동이 예술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포스터+파트너스 건축사 사무소가 지은 일명 ‘지혜의 도서관’.

17곳의 명소 중 가장 먼저 하우스 오브 위즈덤(House of Wisdom) 도서관으로 가본다. 포스터+파트너스 건축사 사무소가 지은 이 아름다운 도서관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 도서 수도(UNESCO World Book Capital)’에 선정된 것을 기념해 세웠다. 황량한 도로를 가로질러 만난 수려한 도서관은 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 로비와 1층 도서관에서는 뉴질랜드 원주민 조각가 마이클 파레코와이(Michael Parekowhai)의 거대한 코끼리 조각 두 점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도발적인 작품을 고국에서부터 선보이고 있는데, 이 코끼리 조각은 지혜를 상징한다. 시원한 도서관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낮의 더위를 피해보자. 한국어 책도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에 만든 칼바 얼음 공장은 작품 설치를 위해 재건축되었다.

다음으로 갈 곳은 칼바 얼음 공장(Kalba Ice Factory)이다. 1970년대에 만든 이곳은 2012년 비엔날레 작품 설치를 위해 재건축되었다. 코르 칼바와 맹그로브 늪 보호구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동식물 생태계 보존을 위한 노력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튀르키예 작가 엠레 후네르(Emre Hüner), 뉴질랜드 작가 케이트 뉴비(Kate Newby) 등 작가 8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망 좋은 카페도 멋지다.

아티스트 레지던시이자 전시 공간인 알 함리야 스튜디오.

샤르자는 서울 면적보다 훨씬 넓어 하루에 이 모든 장소를 다 보기는 어려우므로 3~4일 정도 잡으면 좋을 것 같다. 샤르자 아트 재단에서 운영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이자 전시 공간인 알 함리야 스튜디오(Al Hamriyah Studios)와 올드 알 디완 알 아미리(Old Al Diwan Al Amiri)는 한곳에 자리해 둘러보기 편하다. 샤르자가 얼마나 예술가 친화적인지 알 수 있는 모던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작가 15명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스튜디오에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로 터너상 후보에 오른 제이디 차의 작품도 있어 반갑다. 제이디 차는 아예 한 공간을 차지해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다른 곳에서 전시 중인 김상돈 작가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제이디 차는 베니토 메이어 바예호(Benito Mayor Vallejo)와 함께 그간 자신의 작품 세계를 지배해온 한국적 토속신앙 기반의 초현실적인 세상을 설치 작품으로 표현했다. 소라고둥 1,000개에서 들리는 벨 소리가 신비롭다.

1978년 문을 연 제과점이 도서관, 전시장 등을 갖춘 문화 공간 플라잉 소서로 탈바꿈했다.

플라잉 소서(The Flying Saucer)는 진정한 포토 스폿이다. 1978년 프랑스 제과점으로 문을 열었으나 이제는 카페, 도서관, 전시장, 아트 숍으로 이루어진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다. 별 모양의 이 특별한 건축물은 호주 원주민 작가 다니엘 보이드의 일명 ‘땡땡이 작품’으로 뒤덮여 있다. 쿠사마 야요이를 능가하는 다니엘 보이드의 사랑스러운 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의미한다. 작가는 “이 렌즈는 우리가 하나의 집단으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지각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버려진 사막 마을인 알 마담 부리드 빌리지에도 비엔날레의 작품이 들어섰다.

중동까지 갔으니 사막엔 꼭 가봐야 한다. 사막은 중동 여행자의 필수 코스다. 마침 비엔날레 베뉴 중에서 사막과 지질 공원이 포함되어 있다. 알 마담 부리드 빌리지(Al Madam Buried Village)와 부하이스 지질 공원(Buhais Geology Park)이 그것. 여행자 혼자 사막으로 달려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비엔날레 코스를 둘러보면 이상적이다. 알 마담 부리드 빌리지는 마담 지역의 버려진 마을이다. 사막에 둘러싸인 이곳에는 원래 베두인 부족이 거주하던 공공 주택단지가 있었다. 하지만 사막의 매서운 모래바람과 긴 출퇴근 시간으로 사람들이 모두 떠나 지금은 지난 비엔날레에 전시했던 조각과 이번에 새로 설치한 사운드 작품만 남아 있어 다소 스산하다. 미국 원주민 최초로 음악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 레이븐 차콘(Raven Chacon)과 아프리칸 아메리칸 휴 헤이든(Hugh Hayden)의 사운드 작품이 빈집에 숨어 있다. 가족 여행자들이 좋아할 법한 부하이스 지질 공원에는 메건 코프(Megan Cope)의 설치 작품이 야외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이 두 곳은 평소에도 사진 촬영을 위해 많은 이가 방문한다고 한다.

부하이스 지질 공원에서는 사막의 황량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두바이는 상업적 갤러리가 서구와 같이 발달되어 있으나, 샤르자는 미술관과 박물관 중심이다. 그리고 상업적이지 않아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샤르자의 감성을 담은 미술관과 박물관도 꼭 방문해보자.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이 비엔날레 전시에 포함되어 있는데, 샤르자 미술관(Sharjah Art Museum)과 캘리그래피 뮤지엄(Calligraphy Museum)을 특히 추천한다. 각각 아트 스퀘어(Arts Square), 캘리그래피 스퀘어(Calligraphy Square)에 포함되어 있어 다른 공간도 두루 살펴보기 좋다. 미술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화 관련 건물이 광장을 통해 이어진 구조다.

샤르자 미술관은 중동의 신비로운 하얀 건축물을 현대적으로 설계한 아름다운 곳이다. 그 세련된 공간 디자인과 쾌적함은 샤르자가 새로운 미술 강국임을 인정하게 한다. 리처드 벨(Richard Bell), 마벨 줄리(Mabel Juli) 등 작가 16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캘리그래피 뮤지엄에는 김상돈의 작품이 있어서 반갑다.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 샤머니즘에서 착안한 설치와 사진으로 21세기의 초소비주의를 비판한다. 아트 스퀘어의 바이트 알 세르칼(Bait Al Serkal)에서도 그의 작품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어깨가 으쓱해진다.

올드 알 주바일 베지터블 마켓은 비엔날레 기간에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여행 하면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올드 알 주바일 베지터블 마켓(Old Al Jubail Vegetable Market)과 바이트 오바이드 알 샴시(Bait Obaid Al Shamsi)를 놓치면 아쉽다. 올드 알 주바일 베지터블 마켓에서는 사키야(Sakiya) 등 다섯 작가의 작품이 거대하게 펼쳐지는데, 낡은 시장을 전시장으로 변모케 한 아이디어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바이트 오바이드 알 샴시는 19세기에 지어진 대저택으로 지금은 샤르자 아트 재단의 레지던시와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바로 옆에 작은 시장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장에서 도자기 찻잔을 구입하고 전통 의상을 맞춰보는 건 어떨까? 작은 상점에서 과자를 사 먹어보는 것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디안 수치 라마와티(Dian Suci Rahmawati) 등 작가 8명(팀)의 바다와 관련한 아기자기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트리뷰’의 ‘파워 100’에서 1위에 선정된 샤르자 비엔날레 디렉터인 후르 알 카시미 공주의 이름을 딴 알 카시미아 스쿨에선 다양한 아트 토크가 열렸다.

마지막으로 가볼 곳은 알 카시미아 스쿨(Al Qasimia School)이다. 후르 알 카시미 공주의 이름을 딴 이 학교는 전시뿐 아니라 아티스트 토크가 자주 열리므로 방문해볼 만하다. 저녁이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 에어컨이 필요 없는 야외에서 샤르자 스타일의 커피와 대추야자를 먹으며 듣는 아티스트 토크가 낭만적이다. 전시는 1·2층의 교실과 야외에서 열리는데, 그중 한 교실은 고양이 방이다. 교실 문에 ‘이곳에는 작품은 없고 고양이만 있다’고 씌어 있으니, 절대 문을 열지 마시라. 고양이가 뛰쳐나가면 잡기 어려울 테니까. 아티스트 토크와 공연이 열리는 날에는 전시장을 새벽까지 개방하므로 밤에도 전시를 볼 수 있다. 교실마다 특별한 표시가 없기 때문에 일단 문을 밀어 열리면 들어가서 감상하면 된다. 더 보이스 오브 도메스틱 워커스(The Voice of Domestic Workers)와 같이 여성이 여전히 폭행을 당하고 차별받고 있음을 알리는 작가 12명(팀)의 강렬한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올해 샤르자 비엔날레의 주제는 ‘투 캐리’다. 무엇을, 어떻게 운반할 것인지 탐구하려는 시도인데, 이것이야말로 바로 여행이 아닐까? 마음속 이야기를 옮기는 것, 변화를 견인하는 것, 노래를 전달하는 것,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 모두 여행이다. 샤르자가 당신에게 여행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비엔날레는 6월 15일까지 열리지만, 샤르자 아트 투어는 계속된다. (VL)

    피처 디렉터
    김나랑
    이소영
    사진
    COURTESY OF SHARJAH ART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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