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본 소도시에서 생긴 일_테마를 가지고 여행하기

2025.05.29

일본 소도시에서 생긴 일_테마를 가지고 여행하기

그냥 무작정 걷고 싶은 일본의 소도시 네 곳. 나만의 방식대로 산책하며 익힌 오카야마, 구라시키, 오노미치, 다카마쓰의 개성 가득한 도시 문화가 추억 속에서 만개한다.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고라쿠엔 정원. 맞은편 언덕 위로 보이는 오카야마성은 흑색 기와와 짙은 벽면을 지닌 채 말없이 과거를 품고 있다.

교지 편집과 학보사 기자로 어른이 되고 매거진 에디터로 직장인이 된 다음부터 콘텐츠는 내게 빛이고 빚이다. 남자 잡지 피처 에디터로 호출되었을 때 “스포츠, 정치, 경제, 테크, 자동차 중 잘 아는 거 하나 없는데요?”라고 첫 고사를 했다. 당시 편집장은 “어, 너는 여자, 섹스, 음식, 술, 여행 써!”. 그렇게 여배우 인터뷰 전문 기자, 섹스 칼럼니스트, 여행 콘텐츠 편집장으로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그야말로 꿀이었던 업적이 하나 있는데 일본 기차 그룹 JR의 일이었다. 한국인들에게 더 많은 패스를 팔고 싶어 더 많은 고장을 둘러보게 하려던 그 기획으로 나는 열도의 곳곳을 열차에 오르내리며 샅샅이 훑었다. 대도시는 대도시대로, 소도시는 소도시대로 달고 짜고 맛있었다. 우리로 치면 논산, 고성, 남원을 도는 것이었는데 외국인의 눈에 그 작은 도시들은 ‘일본 여행’ 하면 자동 연상 작용처럼 따라붙는 아기자기 오밀조밀의 집약판이었다. 타베로그를 넘어 미쉐린에서 받은 별 앞에 줄을 서고 면세 창구가 전쟁터 같은 돈키호테에서 샤론 파스를 사지 않는 일본이라 더욱 좋았다. 무엇보다도 내 일상이 그대로 이어지는데 일상에서 완전히 떠난 객창감을 선사하는 그 간극에 마음을 뺏겼다. 이름도 모르는 도시에서 이름을 분명히 아는 관계를 나누는 것. 그 상대가 길고양이거나 어느 미망인이거나 우동이거나 관계를 맺게 하는 곳이 소도시였다. 가봤다고 말하기보다 지내다 왔다고 말하고 싶은 곳들, 기간과 지역이 아니라 감각으로 기억되는 곳들. 대도시에는 없는 것들이 가득한 곳, 관광보다는 여행, 여행보다는 산책 쪽으로 부등호의 입이 벌어지는 곳, 그런 곳 몇 군데를 추렸다. 비행기를 타면 90분 안에 도착하는 곳들. 가려면 못 갈 것도 없는 가깝고 만만한 곳들이다.

오카야마

오카야마역은 산요 신칸센, 산요 본선, 우노선, 쓰야마선, 기비선 등 오카야마에서 가장 많은 철도 노선이 교차하는 역이다.

요코하마, 와카야마, 오코노미. 이 정도면 충분히 헷갈리나? 기차로 오사카에서 45분, 히로시마에서 35분 걸리는 도시 오카야마. 거리를 누비는 노면전차가 낭만적 감성을 넘치게 견인하는 곳이다. 1925년 문을 연 백화점 덴마야는 지역 근대 상업의 시작이자, 한 세기를 지탱해온 기억으로 기능한다. 낮은 천장과 백색 조명은 낡은 앨범 속 사진인데 그 배경에 들어 있는 브랜드는 모두 오늘의 것들이다. 이름도 낯선 작은 도시에 100년 된 백화점이 있고 그 아케이드에 루이 비통, 구찌, 티파니가 있다는 사실이 오카야마를 설명한다. 기모노를 입은 토호들의 느린 걸음, 주말의 유모차, 평일 오후의 교복 차림 아이들까지 사랑방처럼 모여든다. 그 앞을 천천히 지나는 노면전차는 속도가 오카야마다. 한 시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궤도 위에서 지금도 하루 수십 번 반복되는 운행. 전차의 금속 소리가 도시 전체를 싱잉볼처럼 공명하는 중이다.

전차는 도시를 관통해, 고라쿠엔 정원과 오카야마성 앞을 지나간다.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고라쿠엔은 정원의 끝마다 여백이 깃들어 있고, 계절마다 결이 바뀌는 풍경이 천천히 걸음을 붙잡는다. 맞은편 언덕 위 오카야마성은 흑색 기와와 짙은 벽면을 지닌 채 말없이 과거를 품고 있다. 우리가 남한산성 앞에서 어느 조상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듯 그들 역시 이 까마귀 성에서는 그저 과거가 궁금한 후손인 듯하다. 공원을 가로질러온 시선들이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게 그저 신기하고 재밌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여우가 차를 마시는 키츠네 카페가 나타난다. 이 도시의 단정한 정서에 슬며시 흘러든 엉뚱함.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이 패션 브랜드의 카페는 고라쿠엔 정원 강 건너에서 빼꼼히 보인다. 오카야마는 모모타로의 고장이다. 복숭아에서 탄생한 소년이 개, 원숭이, 꿩과 함께 도깨비 섬으로 떠났다는 일본의 대표 설화. 그 이야기는 이 도시에서는 박물관 유리 장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소화전 표식, 맨홀 뚜껑, 시내 전차의 스티커, 초등학교 교과서, 편의점의 간식 패키지까지, 모모타로는 오카아마에서는 전설이 아니라 일상의 유머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중심에서 조금 더 걸어 나가면, 아그리 가든에 닿는다. 유통되지 못한 파과와 낙과가 상품이 된다. 구순이 다 된 할머니가 환갑을 넘긴 동네 어린애와 가지런하게 과일을 자르며 하루를 일군다. 상품성이 떨어진 과실을 상품성이 떨어진(더 이상 노동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람이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어낸다. 농장은 또 땅에 이로운 비료를 만들어 공짜로 나누어주며 마을의 토양에 기름칠을 한다. 여기서 먹는 샐러드 한 접시, 유기농이라는 세 글자가 우세스러운 자연의 순환을 본다. 오카야마가 택한 도시로서의 태도가 거기 있다. 오래 걷고 싶어지는 도시, 잠시 정착해도 괜찮을 것 같은 곳. 전차 소리, 복숭아 향, 오래된 건물의 벽돌색, 벤치에 내려앉은 새된 추임새 하나까지 감탄보다 여운으로 남는다.

구라시키

에도 시대, 막부 직할령이었던 구라시키는 물류 중심지였다. 전쟁의 손길을 비켜가며 거의 온전한 형태로 살아남은 이 풍경은, 이후 ‘특별 미관지구’와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국가의 손길 아래 정갈하게 유지되어왔다.

도시는 어떻게 시간을 품을 수 있을까. 구라시키는 이 질문에, 아주 조용하고 다정하게 대답한다. 일본인에게도 이 도시는 ‘잘 지켜낸 것의 미학’으로 통한다. 에도 시대, 막부 직할령이었던 이곳은 물류 중심지였다. 쌀과 면화가 강을 따라 흐르고, 상인들의 저택과 창고가 정연하게 들어섰다. 전쟁의 손길을 비켜가며 거의 온전한 형태로 살아남은 이 풍경은, 이후 ‘특별 미관지구’와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국가의 손길 아래 정갈하게 유지되어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도시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보존이라는 선택이 얼마나 감각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제된 사례다. 소도시 여행, 다시 말하자면 알려지지 않은 곳에 가서 자랑할 것 없이 지내다 오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구라시키는 괜찮은 목적지다.

대체로 그런 여행 애호가들은 관광보다는 풍경, 풍경보다는 그 속의 나, 나의 상태가 중요한 이상한 사람들이기 마련이니까. 흰 벽과 검은 기와, 정수리를 간질이는 대나무 그림자. 유카타를 입고 작은 운하 곁을 걷는 사람들, 찻집의 선율. 일상의 보속과 상관없이 보폭이 좁아져 걸음이 느려지는 곳이 구라시키다. 오하라 미술관은 이 도시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결이다. 일본 최초의 사립 서양 미술관이 이 시골에 있다는 게 어떤가? 감상에 방해될까 사진을 찍을 수도,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이 미술관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건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다. 말이 되나 싶어 헛웃음이 난다. 가로수길, 경리단길보다 작으면 작을 규모의 저잣거리에 부르델, 로트레크, 모네, 르누아르, 고갱, 마티스, 피카소, 세잔, 칸딘스키, 모딜리아니, 잭슨 폴록이 다 있다. 지역을 위해 자신의 컬렉션을 기부한 대부호 오하라 마고사부로. 그는 미술을 기념비가 아닌 일상으로 들여와 이 시골 마을의 품을 넓히고 격을 높였다.

이 미술관 하나만으로도 구라시키는 올 만한 곳이 되고도 남는다. 그리고 데님. 구라시키 남쪽 고지마 지역은 일본 데님의 발상지다. 1960년대, 일본 최초의 데님 브랜드 빅 존(Big John)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후 ‘베티 스미스’ ‘모모타로 진즈’ ‘재팬 블루 진즈’ 같은 이름들이 하나둘 이곳의 공기와 시간을 입었다. 워싱과 염색, 봉제와 재단까지 모든 공정이 장인의 손끝을 거치며, 데님은 옷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소비된다. 고지마 골목 끝에 자리한 캐피탈(Kapital)은 그 정점이다. 전통 직물과 아메리칸 빈티지를 해체해 재조합한 감각, 의류보다 오브제에 가까운 실루엣. 구라시키는 일본 사람들에게도 ‘어디서도 대체될 수 없는 감각의 도시’로 인식된다. 도시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미감, 재생과 철학은 묵직하다. 오래된 창고, 한 벌의 청바지, 한 사람의 기부, 한 그릇의 말차까지. 모두 정성스럽게 남겨진 것이며 새로 쓰이는 것들이다.

오노미치

오노미치역에서 나오면 바로 맞닥뜨리는 혼도리 상점가는 약 1.6km에 이르는 아케이드형 거리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너무 작아서 한눈에 들어올 것 같지만, 한 걸음씩 걸을수록 조용히 스며드는 도시의 리듬이 범상치 않다. 오노미치. 혼슈의 끝자락, 바다와 산 사이에 낀 이 도시에는 마음의 속도를 천천히 낮추는 기술이 있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맞닥뜨리는 혼도리 상점가는 약 1.6km에 이르는 아케이드형 거리로 붉은 조명, 비에 젖지 않는 얇은 천장, 오래된 간판들로 다시 보지도 않을 사진을 자꾸만 찍게 한다. 쇼와 시대의 공기를 아직 품고 있는 이곳에는 300여 개의 점포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찻집, 헌책방, 장난감 가게, 된장 냄새가 은은한 반찬 가게까지. 각자 모두 분주한 그 리듬은 한없이 느긋하다. 보지 말고 느끼라고, 누리라고 말없이 강권한다. 도시의 뒤편, 센코지산으로 향하는 로프웨이에 오르면, 오노미치는 또 다른 풍경으로 펼쳐진다. 도시가 작아지고, 수평선이 늘어난다. 창밖으로 겹쳐지는 섬들. 그 너머, 세토내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혼슈, 시코쿠, 규슈 세 섬 사이에 놓인 잔잔한 내해. 3,000여 개의 섬이 흐릿한 수묵처럼 흩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수면은 조붓하다. 일본인들이 ‘가장 일본적인 바다’라 부르는 이 바다는 1934년,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지금도 예술가들이 찾는 영감의 수면으로 남아 있다.

센코지산으로 향하는 로프웨이에 오르면 오노미치의 풍경과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3,000여 개의 섬이 흐릿한 수묵처럼 흩어져 있고, 그 너머 세토내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가장 일본적인 바다’라고 불리는 이 바다는 1934년,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로프웨이 안에서 보는 세토내해의 전경은 언젠가를 위해 슬로모션으로 저장되도록 천천히 지경을 넓혀갔다. 로프웨이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센코지 공원으로 이어지는 언덕 위 풍경이 펼쳐진다. 계절마다 색이 바뀌는 나무들 사이로, 고양이들이 천천히 그들만의 길을 만든다. 이 도시가 영화의 배경이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노미치는 일본 영화의 거장,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의 고향이다. 그의 대표작인 <전학생>과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바로 이 도시, 이 골목과 계단, 이 바람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특히 <전학생>의 장면 중 돌계단을 구르던 두 아이의 몸짓은 일본 영화 팬들에게는 내내 회자되는 장면이다. 그의 영화는 늘 어디로도 급하게 가지 않는, 천천히 흐르는 정서를 품었다.

그 정서는 오노미치의 골목과 상점가, 항구와 노을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다시 혼도리 상점가로 돌아오면, 아까 봤던 찻집의 유리창에 햇빛이 달라져 있다. 가게 앞에는 누군가의 자전거가 기대어 있고, 헌책방 앞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여행자가 서 있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는 아직도 세토내해의 풍경이 남아 있다.

다카마쓰

다카마쓰에 도착해 가장 먼저 거닐었던 리쓰린 공원.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정원으로 공원이라 부르기에도 멋쩍을 만큼 엄청난 규모와 자연을 자랑한다.

다카마쓰는 섬을 향해 열린 도시다. 바다와 맞닿은 평탄한 도심, 매일 아침부터 울리는 항구의 고동. 나오시마, 데시마, 이누지마, 예술로 숨 쉬는 섬들이 잔잔한 물 위에 떠 있고, 세계의 여행자들은 다카마쓰에서 그곳으로 건너간다. 먼저 리쓰린 공원을 걷는다. 여섯 개의 연못, 열세 개의 언덕, 가지를 쓸어내리는 정원사의 손길까지 모든 것이 그저 그림. 이 누추한 표현이 부끄럽지도 않을 만큼 말 그대로 산수화, 정물화다.

이곳을 정원이라 불러도 되나? 공원도 부족할 것 같은 규모와 풍경에 해가 넘어가는 줄 모르고 걷게 된다. 정원을 나와 도심을 걸으면 우동 냄새에 없던 허기가 생긴다. 다카마쓰는 우동의 고장이다. 기후 탓에 벼보다 밀 농사가 발달했고, 가난했던 시절엔 빠르고 저렴하며 포만감을 주는 음식이 필요했다. 그 시대의 필요가 지금의 문화가 되었다. 아침부터 문을 연 셀프 우동집은 지역 주민들과 여행자로 가득 찬다. 데치고, 고명을 얹고, 국물을 붓고, 계산을 마치는 3분 남짓. 값으로 치른 300엔으로는 죽어도 사지 못할 인생의 3분이다.

식당 앞 자전거 바구니에 든 신문, 뒷주머니에 냅킨을 꽂은 청년,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는 중년의 손등. 다시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뭐 어떨까 싶다. 언제 이렇게 헐겁게 속도로 조인 조리개로 일상에 천착했을까. 조금 더 걸으면 바다가 보인다. 기타하마 앨리. 한때 화물 창고였던 이곳은 지금은 카페와 북스탠드, 편집숍이 어깨를 맞댄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붉은 벽돌의 잔열, 낡은 철창을 덮은 벨벳 같은 녹, 열려 있는 창문 사이로 부는 바람. 거기엔 꾸며낸 솜씨가 없다.

고토덴 열차가 지나가는 다카마쓰역.

3년에 한 번, 다카마쓰와 주변 섬들을 무대로 열리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바다와 예술, 섬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축제다. 전시장 대신 섬을 걷고, 캔버스 대신 폐가를 본다. 젠체하는 예술 따위는 목격되지 않는다. 트리엔날레는 단지 예술 행사가 아니라, 다카마쓰라는 도시가 가진 본질을 드러내는 감식안이다. 이곳에서 예술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공기, 동행자 같은 존재로 머문다. 산책하며 발견하고, 멈추어 숨을 고르는 그 순간마저 예술이 되는, 쉽게 오지 않는 경험으로 남는다. 예술을 잘 몰라도, 좋아하지 않아도 예술 속에 머물러 예술을 누리는, 지식과 상관없는 지성의 향연, 무딘 감각으로도 벼린 감성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도시가 다카마쓰다. (VL)

    피처 에디터
    류가영
    조경아
    사진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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