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을 도와주는 궁극의 침대를 찾아서
우리는 매일 ‘슬립 퍼포먼스’를 행한다. 잠의 세계에서 활발히 재생되어야 다음 날을 맞이할 수 있다. 그 공연의 동반자를 해스텐스 공장에서 찾다.

스톡홀름 하가 공원 앞에 자리한 어느 호텔. 유럽에 오고 처음으로 통잠을 잤다. 어제까지 런던에서 시차 때문에 몽롱한 상태로 다니며 내가 무슨 말을 뱉는지도 헷갈렸는데 말이다. 왕이 산책한 공원이라더니 터가 좋은가? 녹다운될 만큼 피곤했나? 혹시 침대 때문인가? 이곳은 해스텐스(Hästens) 침대를 쓴다고 들었다. 침대 커버를 살짝 들춰 보았다. 해스텐스의 상징인 블루 체크가 드러났다.
내게 수면은 골칫거리다. 20대에는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잘 수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젠 피곤하면 잠을 설쳤다. 좋아하던 커피도 끊고 디카페인 커피만으로 연명하며(이마저도 카페인이 약간 들어 있긴 하다), 각종 수면 앱을 다운받았다. 출장을 가면 시차도 시차지만, 호텔 방의 건조함과 낯선 냄새 때문에 잠들기 더 어려웠다. 나만의 문제는 아닐 거다. 이제 운동, 식단을 넘어 수면이 지대한 관심사다. 해스텐스 한국 영업 총괄을 맡은 박상현 매니저는 ‘슬립 퍼포먼스’라는 표현을 썼다. 수면은 없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기억의 찌꺼기를 청소하고 몸이 재생되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라는 것. “우리가 판매하는 것은 침대가 아니라 최상의 깨어 있는 시간이죠.” 오늘 그와 스톡홀름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의 셰핑(Köping) 해스텐스 공장을 방문한다.

셰핑은 푸른 자연이 펼쳐진 조용한 지역이다. 해스텐스는 1852년 페르 아돌프 얀손(Pehr Adolf Janson)이 설립해 6대째 이어오고 있다. 초창기엔 최고급 가죽과 말총 등 천연 소재로 만든 말안장을 스웨덴 왕실에 납품했다. 말을 탈 때 엉덩이와 허벅지를 보호하는 기술은 매트리스와 연관되어 있다. 이후 해스텐스는 침대로 확장해 1952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아돌프 6세에 의해 스웨덴 왕실의 공식 침대 공급업체로 지정됐고 그 명예를 지켜오고 있다. 공장에 들어가니 장인과 직원들 사진이 걸려 있다. 현재 셰핑 공장에는 150여 명이 근무한다. 이들이 전 세계로 공급되는 모든 해스텐스 침대를 수작업으로 만든다. 기업화를 지향하는 요즘, 이곳은 공방 규모로 유지한다. 천천히 가더라도 확실한 품질을 위해서다.
공장에서 각 분야의 작업자를 지칭하는 이름이 재미있다. Mid-stichers(중간 바느질 작업자), Fabric-rackers(섬유 받치는 사람), Cotton-tassel-tiers(솜을 묶는 사람), Horsetail-hair-rufflers(말총 꿰매는 사람) 등이다. 내가 들어서자 한 직원이 이웃집 친구처럼 인사를 건넨다. 그는 “제 딸이 옆 팀에서 일하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이곳에는 대를 이어 근무하는 이들이 꽤 있다. 그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종소리부터 친근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다.

해스텐스는 장인의 행복도가 침대 품질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현재 해스텐스를 운영하는 5대 오너 얀 리데(Jan Ryde)가 쓴 책 제목은 ‘When Business is Love’다. 책표지에 ‘Love’가 큰 폰트로 쓰여 있다. 그가 강조하는 첫째가 장인에 대한 사랑이다. 해스텐스의 상징인 블루 체크 또한 장인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됐다. 수작업이 기본인 해스텐스 제작 과정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바느질을 해야 하는 장인들이 고충을 겪자 체크 패턴을 도입했다. 1978년 스웨덴 가구 박람회에서 블루 체크를 처음 선보일 때는 불호가 있었으나, 역시 좋은 디자인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정받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에 미학을 더한 ‘이유 있는 디자인’이니까. 참고로 얀 리데가 그다음으로 사랑하는 대상은 해스텐스 침대와 그곳에서 잠드는 고객이다.

한 직원이 내게 30cm 이상의 긴 바늘을 건네며 꿰매보길 권했다. 연습용 블루 체크여서 부담은 덜했지만, 여러 내장재가 겹겹이 쌓인 매트리스에 바늘을 넣기조차 쉽지 않았다. 사실 해스텐스는 매트리스라는 표현을 지양한다. ‘수면 시스템’이라 부르는데, 충전재 소재와 레이어만 봐도 수긍이 간다. 크게 말총, 순면, 양모, 아마, 소나무로 구성된다. 제일 처음 말총 파트에 들렀다.



컬링된 말총 가닥가닥이 스프링 작용을 하는데, 직접 만져보니 탄성이 부드럽다. 그래서 누우면 누군가 나를 받치면서 안아주는 느낌이 드나 보다. 직원들이 매트리스에 들어갈 말총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 골라내고 있다. 다른 것보다 탄성이 강한 말총을 골라내기 위해서다. 어떻게 순식간에 그 차이를 알아낼까. 그야말로 손끝의 장인이다. 말총은 천연 공기 순환 시스템이다. 미세한 모세관 현상을 통해 습기를 내보내고 신선한 공기를 들여보내며 통풍로 역할을 한다. 천연 소재라 알레르기를 걱정하는 이도 있지만, 해스텐스의 말총은 자연적으로 항균, 항곰팡이, 항진드기 기능이 있으며, 유럽의 여러 테스트를 거쳐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는 것을 증명했다.



순면, 양모, 나무 등 자연 재료도 자체적으로 숨을 쉬어 수분을 흡수하고 몸이 쾌적한 온습도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아마는 스프링을 감싸 삐걱거리는 소리와 정전기를 잡는다. 식물 종류인 아마는 천연섬유 리넨의 원료이기도 하다. 프레임용 나무는 북스웨덴산 소나무만 사용한다. 스웨덴 북부의 혹독한 겨울에 느리게 자라 단단하다. 이 모든 내장재를 고정하는 코튼 태슬(Cotton Tassel)을 부착하기 위해 매트리스를 얇게 압축한다. 코튼 태슬 부착 후 매트리스의 높이와 탄성은 복원되는데, 스웨덴산 철광석으로 만든 스프링의 높은 내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최고의 모델을 보여달라고 하자 장인 15명이 근무하는 곳으로 안내한다. 비비더스(Vividus)와 그랜드 비비더스(Grand Vividus)를 만드는 공간이다. 숙련된 장인 9명이 비비더스에 360시간, 그랜드 비비더스에 600시간을 들인다. 이들의 가치는 디테일이다. 미들 매트리스의 모서리 부분을 90도로 구현했으며, 옹이가 없는 깨끗한 나무만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나사 없이 나무와 나무를 이용해 접합한다. 장인은 “특히 그랜드 비비더스는 작품”이라고 자랑스러웠는데 개인적으로 고풍스러운 가죽 디테일이 눈에 띄었다. 이는 말안장을 제작하던 초기 해스텐스에 대한 헌사다. 역시 어느 분야든 급진적이다가도 전통에 경의를 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시차를 줄여준 호텔 침대를 발견했다. 드리머(Drēmər)다. 해스텐스의 스테디셀러인 2000T 모델을 기반으로 한 드리머는 블루 체크에 해스텐스 로고인 말 휘장이 결합되어 있다. 디자이너 페리스 라파울리(Ferris Rafauli)가 고안했으며, 그랜드 비비더스에서도 볼 수 있다.
공장을 나서기 전, 4m의 프레임을 제작하는 광경을 보았다. 해스텐스는 다양한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어떤 고객은 스프링 없이 제작된 초기 침대 모델을 주문하기도 한다. 역시 취향은 다양하다. 그나저나 4m라니, 그 사람의 방은 얼마나 큰 걸까. 아님 잠버릇이 고약한가. 해스텐스의 고객 정보는 비밀이지만, 한 명은 알려졌다.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다. 그녀는 2004년 토너먼트 우승 상금으로 해스텐스를 구입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장 평온함을 느끼는 곳이 어디냐고요? 제 침실이에요. 오래전 큰맘 먹고 해스텐스를 샀는데 인생 최고의 투자였죠.”
아쉽게도 내가 해스텐스에서 잠들 날은 남은 일정 이틀뿐이다. 호텔로 돌아가 이 침대를 언제 샀는지 묻자 아마 10년은 넘었을 거라고 한다. 그럼에도 바꿀 필요 없이 탄성을 유지하고 있다. 해스텐스가 25년간 품질을 보증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놀랍게도 1940년대부터 그래왔다. 침대에 누워 내 인생의 남은 날과 해스텐스의 가격을 나누기 해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니, 슬립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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