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나만의 진 토닉을 찾아서, 12종의 진을 마셔봤다

2025.05.31

나만의 진 토닉을 찾아서, 12종의 진을 마셔봤다

클래식한 런던 드라이 진부터 한국 진과 무알코올 진까지, 이번 여름휴가에는 나만의 진 토닉을 주문해보겠다고 다짐하며 12가지 진을 음미하고, 비교했다.

한국 진은 소규모 증류소에서 만드는 크래프트 진을 중심으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확장하는 중이다. 양평에서 한국 최초의 크래프트 진인 부자 진이 탄생한 후 정원 진, 선비 진, 코리 진 등이 계속 등장하며 코리안 진의 정체성을 실험하고 있다.

매번 똑같은 종류의 진을 마시면서 스스로를 안정적이고, 무척 행복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세 번째 마티니를 마신 후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야, 도대체 ‘진’이 뭐지?”

어디에선가 (아마도 인터넷에서) 진은 주니퍼(측백나뭇과 향나무속에 속하는 노간주나무) 향이 나는 보드카라고 간단히 요약한 것을 봤다. 진과 보드카는 둘 다 중성 곡물 스피릿(곡물, 포도, 사탕무, 당밀 등에서 증류한 95도 이상의 순수 알코올로 보통 다른 술과 섞어 마시며 곡물을 발효시킨 후 증류해 얻은 발효물이라는 뜻에서 ‘증류 주정’이라고도 한다)에 해당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진은 보드카와 달리 스피릿에 식물류(말린 허브, 열매, 뿌리, 감귤류 껍질, 향신료 등을 아울러 우아하게 표현하면)를 넣고 한 번 더 증류해 특유의 향이 더해진다.

역사를 깊이 파고들 생각은 없지만 진의 초기 형태는 네덜란드의 헤네버르(Genever)로 일컫는다. 시간이 지나며 생겨난 새로운 규정, 법률, 세금, 유행의 결과 올드 톰 진(Old Tom Gin), 슬로 진(Sloe Gin), 플리머스 진(Plymouth Gin), 네이비 스트렝스 진(Navy Strength Gin), 런던 드라이 진(London Dry Gin) 같은 다양한 종류의 진이 영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에서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다. 당시 탄생한 몇몇 종류는 오늘날까지도 건재하며 여기에 더해 새로운 스타일과 논알코올 진까지, 진의 세계는 날로 다채로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주류 매장이나 칵테일 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로 다른 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진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인 김렛, 네그로니 혹은 진 리키 한 잔을 앞에 두고, 12가지 진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를 시작하자.

LONDON DRY GIN

런던 드라이 진 런던 드라이는 ‘진’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스타일이다. 바에서 진 토닉이나 마티니를 주문하는 경우 반드시 런던 드라이가 들어간다. 비피터, 탱커레이, 봄베이 사파이어가 바로 런던 드라이 진이다. 벨파스트 출신의 세계적인 믹솔로지스트이자 런던 호텔 클라리지스(Claridge’s)의 믹솔로지 디렉터로 활동 중인 네이선 맥칼리 오닐(Nathan McCarley-O’Neill)은 이야기한다. “런던 드라이 진에서는 주니퍼 향을 확실히 느낄 수 있어요. 주니퍼는 진에서 가장 지배적인 향이죠. 그래서 진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주니퍼는 프랑스어로 제네브리에(Genévrier)이고, 단어의 앞 글자만 따서 애칭처럼 부르면 ‘진’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니퍼’ 하면 많은 사람이 배스 앤 바디 웍스에서 맡아본 적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향을 떠올리지만, 증류 과정을 거친 주니퍼에서는 훨씬 더 부드럽고 감미로운 향이 배어난다. 일부 런던 드라이 진은 증류 과정 전에 말린 감귤류 껍질이나 신선한 껍질을 우려내기도 하는데 그러면 상큼한 시트러스 풍미가 증폭된다. 마티니에 얇게 썬 레몬 한 조각을 올리면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금세 맛이 좋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닐이 덧붙였다. “인공 향류는 전혀 들어가지 않고, 향은 모두 식물성 재료에서 자연스럽게 추출한 것입니다. 감미료도 첨가하지 않아요. 만약 진에서 단맛이 느껴진다면, 그건 감초 같은 재료 때문일 거예요.”

추천 십스미스 런던 드라이 진

OLD TOM GIN

올드 톰 진 19세기 유럽에서는 펍 주인이나 소매업자들이 증류주 제조업자로부터 스피릿 원액을 사서 자기만의 노하우로 직접 진을 만들곤 했다. 오닐이 말했다. “당시에는 진을 달게 만들기 위해 감초나 감미료 등을 넣었을 겁니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그렇게 진을 만들어 파는 펍은 간판 없이 검은 고양이 동상을 가게 앞에 세워두어 술을 팔고 있다는 비밀 신호를 건넸다. 주류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원드리치(David Wondrich)는 저서 <옥스퍼드 스피릿 & 칵테일 백과사전(The Oxford Companion to Spirits and Cocktails)>에서 올드 톰 진이라는 이름이 두 명의 토머스에게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한 명은 VIP 고객을 위해 고급 진을 따로 보관해두었던 증류소 관리인 토머스 체임벌린, 다른 한 명은 그 특별한 진을 ‘올드 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에서 판매한 토머스 노리스다.

원드리치에 따르면 올드 톰 진은 “당시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는 가장 도수가 높고 달콤한 진”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오늘날의 올드 톰 진은 런던 드라이 진보다 풍미가 더 깊고 달콤한 것이 특징이다. 오닐은 올드 톰이 “금주법 이전에 개발된 칵테일이나 쌉싸름한 맛이 나는 칵테일에 이상적인 베이스”가 될 거라고 귀띔한다. 톰 콜린스나 라모스 진 피즈 같은 칵테일을 올드 톰과 런던 드라이로 만들어 서로 비교해봐도 좋다. 요즘은 대부분 드라이 진을 사용하지만, 사실 두 칵테일은 올드 톰 진으로 만드는 것이 근본이다.

랜섬(Ransom)사에서 생산하는 올드 톰 진은 오크 통에서 숙성하기 때문에 캐러멜색을 띠지만, 헤이먼스(Hayman’s)사에서 생산하는 일부 올드 톰 진은 투명하다. 어떤 회사에서는 설탕을 넣어 단맛을 더하고, 어떤 곳은 감초 같은 약초를 사용해 은은한 단맛을 낸다. 이렇듯 브랜드마다 올드 톰이라는 역사적 진을 해석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추천 랜섬 올드 톰 진, 헤이먼스 올드 톰 진

DRY GIN

드라이 진 드라이 진은 단맛이 강한 초기 진과 런던 드라이 진 사이에서 유행한 스타일로 양쪽의 특징을 절충한 형태다. ‘드라이’라는 용어는 1800년대에 등장했는데, 이른바 ‘배스터브 진(Bathtub Gin, 금주법 시대에 집에서 몰래 만든 낮은 품질의 진)’을 만들던 시절, 정체 모를 불순한 재료의 맛을 감추기 위해 더한 단맛을 탈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드라이 진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죠.” 찰스턴의 도어 브라더스(Doar Bros.)에서 수석 바텐더이자 SNS 매니저로 활동 중인 스테판 블랙먼(Stephan Blackmon)의 말이다.

드라이 진은 런던 드라이 진에 비해 제조 규정이 덜 엄격한 편이다. 런던 드라이처럼 설탕은 거의 또는 전혀 들어가지 않고, 주니퍼 향이 가장 두드러지지만 여러 번 증류가 가능하고, 천연 식물류뿐 아니라 인공 향료도 첨가할 수 있다. “‘드라이 진’이라는 이름을 내건 제품은 정말 다양해요. 그런데 이름 앞에 ‘런던’이 붙지 않았다면 대체로 첫 증류 후에 뭔가 첨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블랙먼이 설명했다. “예를 들어 헨드릭스는 장미와 오이 향으로 유명한 진이죠. 물론 주니퍼 향이 기본이지만, 증류 후 오이와 장미 향을 추가해서 더 창의적인 스타일이 탄생한 거예요.”

드라이 진은 또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뉴 웨스턴 진’ 혹은 ‘모던 진’ 스타일의 시초로 여겨진다. 전통적인 재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식물류를 활용해 진을 만들어내는 선례가 된 덕분에 지역색을 가미한 창의적인 스타일의 진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추천 더 보타니스트 아일라 드라이 진

PLYMOUTH GIN

플리머스 진 영국 플리머스에 자리한 블랙 프라이어스 증류소(Black Friars Distillery)는 지금까지 플리머스 진을 생산해온 유일한 곳이다.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 남아 있는 진 증류소로,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과 보드카의 유행 같은 시대적 변화를 겪어왔다.

오닐이 설명했다. “플리머스 진은 <사보이 칵테일 북(Savoy Cocktail Book)>에 언급된 유일한 진입니다. 이 책이 소개한 23개 진 칵테일 레시피에 사용되었죠. 이 책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칵테일 책인데, 거기에 실제 브랜드명이 명시된 것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덕분에 20세기 초 진 시장이 확장하던 시기에 플리머스 진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죠.”

풍미 면에서 플리머스 진은 런던 드라이 진보다 시트러스 향이 더 강하고, 마지막에 톡 쏘는 매운맛이 두드러진다. 이는 주니퍼, 고수씨(산미를 추가한), 말린 오렌지 껍질, 카다멈, 당귀와 붓꽃 뿌리 등 7가지 식물 조합에서 발휘되는 특징이다. 오닐이 덧붙였다. “이 중 뿌리 계열 재료 덕분에 플리머스 진은 약간 더 흙 내음이 돌고, 주니퍼 향은 좀 더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또 기름진 질감이 있어서 마티니나 네그로니 같은 칵테일에 정말 잘 어울리죠. 쓴맛이 강하다 싶은 술에 플리머스 진을 조금 섞으면 정말 완벽합니다.”

또한 플리머스 진에 들어가는 물은 아주 특별하다. 다트무어(Dartmoor) 저수지에서 나온 순수한 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곳을 방문해 물을 직접 마셔본 오닐은 “이 물이 진에 아주 깨끗하고 신선한 맛을 더해준다”고 증언한다.

추천 플리머스 오리지널 진

NAVY STRENGTH GIN

네이비 스트렝스 진 ‘네이비 스트렝스’라는 라벨이 붙은 술은 그 자체로 강력함을 자랑한다. 알코올 도수가 최소 57.15% ABV로, 일반적인 런던 드라이 진이나 드라이 진이 보통 40% ABV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치다.

과거 영국 해군이 운반하던 진은 도수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는데, 이는 화약에 빠르게 불을 붙이는 경우를 염두에 둔 전략적인 조치였다. 듀크스 런던(Dukes London)의 바 매니저 알레산드로 팔라치(Alessandro Palazzi)는 또 다른 이유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700년대에 해군들이 ‘건파우더 진’이라고 부르던 네이비 스트렝스 진은 군인에게 보급되던 술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도수가 높은 진을 준 겁니다. 군인들 참 불쌍하죠.”

최근 몇 년 동안 알레산드로 팔라치는 네이비 스트렝스 진의 부활을 목격하는 중이라면서, 점점 더 많은 주류 회사에서 이 진을 대표 제품군에 추가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스테판 블랙먼이 이야기했다. “진은 증류 과정을 거치면 알코올 도수가 무척 높아집니다. 그 상태에서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죠. 그런데 네이비 스트렝스 진은 희석 비율이 낮기 때문에 풍미가 훨씬 진하고 선명합니다.” 높은 알코올 도수와 진한 보태니컬 향은 칵테일 제조에 특히 적합하다. 블랙먼이 덧붙였다. “높은 도수는 맛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저는 아미 네이비 같은 칵테일에서 다른 재료가 진을 압도하지 않도록 일부러 도수가 더 높은 진을 선택합니다.”

추천 레오폴드 네이비 스트렝스 아메리칸 진, 코닙션 네이비 스트렝스 진

NEW WESTERN AND MODERN GIN

뉴 웨스턴과 모던 진 <바인페어>의 한 기사에 따르면 ‘뉴 웨스턴 드라이’ 진이라는 용어는 에이비에이션 진(Aviation Gin)의 공동 창립자 크리스찬 크록스태드(Christian Krogstad)와 라이언 마가리언(Ryan Magarian)이 만든 진에 처음으로 사용됐다고 추정한다. 이후 북미 지역의 다른 증류소도 지역 특유의 식물류를 강조한 드라이 스타일 진을 지칭할 때 그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진은 전통적 재료인 고수, 당귀, 감귤 껍질을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을 표방했다.

그러나 진 생산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뉴 웨스턴’이라는 명칭은 진의 광범위한 지리적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됐다. “‘뉴 월드’나 ‘웨스턴’이라는 용어는 현대 진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진을 그냥 ‘크리에이티브 진(Creative Gin)’이라고 부르는 편입니다.” 스테판 블랙먼의 말이다.

이 스타일을 정의하는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보통 드라이 진과 비슷한데, 슬로 진(슬로베리라는 과일을 주재료로 만든 리큐어)과 올드 톰 진 같은 단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주니퍼베리가 여전히 핵심 재료지만,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다른 식물류(제철 베리, 라벤더, 차조기, 유자 등)의 맛을 더 부각하기도 한다. 일부 진은 꽃향기와 감귤 향이 진해 블랙먼의 말처럼 “강한 주니퍼 향 때문에 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진에 입문할 수 있는 계기가 돼준다”.

예를 들면 일본의 로쿠, 스코틀랜드의 더 보타니스트, 독일의 몽키 47은 모두 각국의 독특한 식물 재료로 만든 진이다. 병에 적힌 숫자, 즉 47(몽키), 22(더 보타니스트), 6(일본어로 ‘로쿠’는 숫자 6을 의미한다)은 레시피에 들어간 식물 재료의 수를 의미한다. 이렇게 다채롭고 독창적인 스피릿은 ‘플레이버드 진(향미를 더한 진)’으로 분류되지 않더라도 창의적인 칵테일을 만드는 데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허브 향이 강한 프랑스 전통 리큐어 제네피 데잘프(Génépy des Alpes)를 가미한 시트러스한 맛이 일품인 칵테일 ‘서머 베이브’는 어떤 브랜드의 뉴 웨스턴 진을 넣어도 잘 어울릴 것이다.

추천 햇 트릭 보타니컬 진, 로쿠 진, 스트레이 독 와일드 진

JAPANESE GIN

재패니즈 진 새로운 현대 진의 흐름 속에서 일본 진이 독특한 재료를 앞세워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 교토 증류소(Kyoto Distillery) 같은 대형 증류소가 유자, 차조기, 산초, 녹차 같은 식물류를 넣어 만든 키노비 드라이 진을 출시하면서 일본의 진 생산업체를 선도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많은 일본 증류소(대부분이 소주를 만들던 업체다)가 진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재패니즈 진의 핵심이 되는 몰트 스피릿은 보통 보리, 고구마, 쌀, 사탕수수 등을 증류해 만드는데, 여기에 현지에서 생산한 과일, 채소, 허브, 향신료, 그리고 필수 재료인 주니퍼베리를 가미한다. 브루클린의 일본 전통 주류 전문점 쿠라이치(Kuraichi)의 매니저 샘 미야자와(Sam Miyazawa)는 일부 일본산 진이 사케나 소주를 베이스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방식은 진에 풍부한 맛을 더해줍니다. 많은 사람이 그걸 재패니즈 진의 ‘우마미(감칠맛)’이라고 표현하죠.” 예를 들어 135° 이스트 효고 드라이 진은 사케를 베이스로 하며 고수씨, 주니퍼베리, 차조기, 유자, 매실을 포함한 8가지 식물 재료가 들어간다. “아주 복합적인 맛이에요. 독특하고 유자와 매실의 산미가 느껴지면서, 사케가 풍부한 감칠맛을 내죠.”

추천 135° 이스트 효고 드라이 진, 키노비 교토 드라이 진

KOREAN GIN

코리안 진 한국 진 시장 역시 소규모 증류소에서 만드는 크래프트 진을 중심으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확장하는 중이다. 양평에서 한국 최초의 크래프트 진인 부자 진(Buja Gin)이 탄생한 후 한국 최초 싱글 몰트 위스키 증류소인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서 만든 정원 진, 토끼소주가 만든 선비 진, 한옥 호텔 락고재의 서브 브랜드 하우스 오브 헤리티지에서 선보인 코리 진 등이 계속 등장하며 코리안 진의 정체성을 실험하고 있다.

2020년 주니퍼베리와 카모마일꽃, 허브, 솔잎 등에 한라봉의 시트러스한 맛을 가미한 부자 진 ‘시그니처’를 소개한 부자 진 조동일 대표는 이후 개똥쑥, 오미자, 오크 에이지드, 둥굴레, 탱자 향을 더한 ‘디스틸러스 컷’, 꽈리고추로 쾌감을 더한 ‘잔소리’ 등 15종에 이르는 라인업을 소개하며 코리안 크래프트 진의 매력을 과시했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각 계절마다 드러나는 향과 맛이 다르기에, 한 병의 진으로 그 모든 것을 담아내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한국의 자연과 시간을 담아내려 노력한 결과 복잡하고 섬세한 향이 매력인 15종의 진을 만들게 됐죠.” 조동일 대표가 추천하는 부자 진을 음미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차갑게 보관한 술을 개봉해 20분 정도 공기와 접촉한 다음 숲과 뿌리, 과일과 허브의 결과 향을 음미하며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다.

전통주를 활용한 칵테일을 주특기로 내세우는 바(Bar)를 찾는 것도 코리안 진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서울 논현동 영동시장에 안착한 장생건강원 대표 서정현 바텐더는 ‘도라지 크림’과 시장 안의 태국 음식점과 협업해 만든 ‘똠얌’ 등 진을 베이스로 한 흥미로운 칵테일 메뉴를 꾸준히 선보였다. 정원 진에 헤네시 VSOP 코냑을 넣어 만든 ‘허브(드라이 스타일)’는 칵테일 애호가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메뉴다. “한국에서 드라이한 술을 찾는 분이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약처럼 쓴 ‘극강의 드라이’를 경험하게 할 칵테일을 구상했습니다. 깻잎 향을 잘 살린 정원 진을 쓰니 의도한 풍미가 확 살아났죠.”

추천 부자 진 시그니처, 정원 진

GENEVER

헤네버르 현대 진에서 미래의 풍미를 맛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는 재미도 존재한다. 일명 ‘더치 진(Dutch Gin)’이라고도 부르는 헤네버르(Genever)는 16세기 또는 그 전부터 네덜란드에 존재해온 가장 원형에 가까운 진의 원조 격이다. 맥아(Malt)를 사용한 곡물 베이스 덕분에 이 스피릿은 더 묵직하고 풍부한 맛을 갖췄으며 위스키 애호가들이 특히 매력적으로 여긴다.

오닐은 헤네버르 생산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적인 중성 곡물 스피릿 대신, 헤네버르 증류소에서는 몰트 와인 스피릿을 만들어 사용합니다. 그래서 헤네버르는 맥아 향이 무척 강하죠. 곡물을 5일 정도 발효시켜 죽 같은 상태로 만드는데 이는 위스키 생산 방식과 비슷해요. 그런 다음 주니퍼 등 다양한 식물 재료를 첨가하죠. 드라이 진과의 가장 큰 차이는 주니퍼가 지배적인 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맥아 풍미가 훨씬 강한 상태에서 정향, 캐러웨이(미나릿과에 속하는 향신료), 생강, 육두구 같은 향신료가 더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맛이 확연히 다르고, 훨씬 더 진한 흙 내음이 느껴지죠.”

런던 드라이 진과 달리 헤네버르에서 시트러스 계열의 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후숙이 필수는 아니지만, 많은 증류소에서 헤네버르를 오크 통에 숙성시키기도 한다. 만약 올드 톰 진이 풍미가 진하다고 평가된다면, 헤네버르는 그보다도 훨씬 진한 맛을 지녔다. 그래서 스위트 베르무트 같은 진한 재료가 들어간 칵테일이나 비터스와 설탕을 살짝 넣고 저어 마시는 올드 패션드 스타일의 칵테일에 특히 잘 어울린다. 오닐이 말했다. “몰트 와인 스피릿으로 만든 헤네버르는 워낙 맛이 강해서 풍미가 깊은 재료와 섞을수록 풍성한 조화를 이룹니다.”

추천 봄스마 올트 헤네버르

AGED GIN

숙성 진 “진을 숙성하는 관행은 500~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거에는 운반하기 편하도록 나무통에 저장했죠.” 알레산드로 팔라치의 설명이다.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숙성 기간이 매우 중요한 술이 있는 반면, 진은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만 숙성된다. 하지만 일부 예외적인 진 종류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진과 큰 차이를 보인다. 숙성 럼이나 레포사도 테킬라를 알고 있다면, 숙성 진의 특징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원래 투명한 색의 진은 숙성을 거치며 황금빛 갈색으로 변하고, 식물 향에 오크와 향신료의 풍미가 더해지며 향과 맛이 깊어진다.

알레산드로 팔라치가 덧붙인다. “이전에 다른 술을 담았던 나무통에 진을 숙성할 경우, 통에서 배어나온 달콤 쌉쌀한 맛이 더해지며 독특한 풍미가 생깁니다.” 릴레(Lillet) 배럴에서 숙성한 비피터 버로우스 리저브가 대표적인 숙성 진이다. 알레산드로 팔라치가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풍미가 느껴지는 진입니다. 이걸로 만들면 익숙한 올드 패션드 맛도 확 달라지죠.” 기존 오렌지 비터스 대신 셀러리 비터스를 사용하는 방식은 그가 런던의 바 듀크스(Dukes)에서 실제로 활용하는 레시피다. “혹은 릴레의 향을 강조해 만든 베스퍼도 추천합니다.”

마티니를 만들 때는 보통 숙성 진을 피하지만, 팔라치는 예외를 소개했다. “마티니를 만들 때 쓰고 싶은 숙성 진이 하나 있다면, 딕타도르(Dictador)에서 나온 콜롬비아 숙성 진이에요. 처음엔 럼 증류소였죠. 이 진으로 클래식 마르티네스를 만들곤 합니다.”

추천 딕타도르 트레저 콜롬비안 숙성 진

SLOE GIN

슬로 진 달콤하면서 소박한 매력을 지닌 슬로 진은 증류 과정에 슬로베리(Sloe Berry, 슬로나무에서 자라는 작은 보라색 열매)를 넣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블랙손나무(슬로나무의 또 다른 이름)에서 슬로베리를 비롯한 자두 등 다양한 과일을 수확하는 시기인 가을에 영국 시골 지역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집집마다 만드는 법이 가지각색이었으며, 텃밭이나 정원에서 쉽게 수확할 수 있는 과일과 식물을 사용했다. 그래서 슬로 진은 펀치처럼 색이 진하고 과실주처럼 달콤하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슬로 진은 보통 알코올 도수가 25~30% ABV 정도로 일반 진보다 훨씬 낮다.

슬로 진은 1800년대 칵테일 열풍을 타고 미국으로 진출했다. 알레산드로 팔라치는 그때만 해도 달콤한 술이 유행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드라이한 맛의 칵테일이 인기를 끌면서 슬로 진이 유행에서 급격히 멀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슬로 진 피즈 같은 몇몇 클래식 칵테일 덕분에 그 명맥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슬로 진 스프리츠 같은 칵테일이 최근 등장해 인상적인 존재감을 발휘했다.

요즘 바텐더들은 슬로 진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중이며, 플리머스(Plymouth), 포즈(Fords) 같은 유명 증류소도 슬로 진을 포트폴리오에 포함하고 있다. 카시스 같은 달콤한 풍미가 더해진 슬로 진은 매력적인 베리 향을 발산하며, 중간 정도의 당도를 지닌 칵테일에 가미하기 좋다. 정말 간단하게는 토닉 워터와 레몬 조각을 곁들여 즐길 수도 있다.

추천 플리머스 슬로 진, 헤이먼스 슬로 진

NON-ALCOHOLIC GIN

논알코올 진 최근 몇 년 사이 논알코올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바에서도 논알코올 진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진짜’ 진과 맛이 아주 똑같진 않지만, 진이 가진 핵심적인 특징을 꽤 완벽하게 재현한 경우도 많다. 블랙먼이 도어 브라더스 바 뒤쪽에서 리추얼 제로 프루프 한 병을 꺼내며 이야기했다. “이보다 더 진의 특성을 완벽하게 재현한 논알코올 음료는 아직까지 만난 적 없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까지 진과 거의 똑같죠.” 블랙먼은 이런 점을 주류 역사의 상당한 발전으로 추켜세우며, 특히 오이 향이 상쾌하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논알코올 진은 넣은 다음 저어 마시는 것보다 셰이커로 흔들어 완성한 칵테일에 더 잘 어울립니다.” 이를테면 논알코올 식전주나 논알코올 베르무트 대체품을 활용하면, 기분 내킬 때 언제든 네그로니 스타일의 논알코올 칵테일을 만들어 즐길 수 있다.

추천 리추얼 제로 프루프 진 얼터너티브 (VL)

    피처 에디터
    류가영
    Alex Beggs, Hannah Lee Leidy
    사진
    민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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